< 나는 말이다...(1) >
“내 노래 잘 못 하는데···. 퍼포먼스로 승부해 보지 뭐.”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난 어르신은 바로 장 이장님이었다.
“와. 은비 씨가 비주얼로 밀리는데요?”
“그러게.”
눈이 멀 정도로 빛이 나는 장 이장님을 보며 출연자들이 감탄했다. 김은비 또한 마을 회관에 입장 할 때부터 시선을 확 빼앗았던 할아버지의 등장에 침을 꼴딱 삼켰다.
‘내가 이길 수 있겠지···?’
노래가 선택되어 기뻐하던 것도 잠시, 왜인지 모르게 노래 배틀에서 질 것 같은 느낌에 김은비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장 이장님이 카메라 중앙으로 등장하자, 박경배가 노래 미션의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노래 미션은 간단합니다. 저기 노래방기기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이기게 됩니다. 퍼포먼스 점수도 포함되니 참고해 주세요.”
노래 점수와 퍼포먼스 점수를 합산하여 최종 점수를 낸다는 소리에 장 이장님이 반색했다.
“퍼포먼스도 점수에 포함이 되나? 오랜만에 몸 좀 쪼매 풀어볼까?”
이장님은 한쪽 팔을 옆으로 쭉 뻗고, 다른 손으로 팔을 누르며 하는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목, 허리, 손목, 발목 등을 풀기 시작했다.
“하하. 퍼포먼스라면 제가 또 질 수 없죠. 피디님, 그래서 누구부터 시작하나요?”
장 이장님의 스트레칭에 위기감을 느꼈을까, 김은비가 긴 소매 옷을 둘둘 걷어 올리며 말했다. 모내기하러 가는 차림새처럼 바지까지 둘둘 걷어 올리는 것도 모자라 사방을 매의 눈으로 둘러보며 장 이장님의 모습에 필적해지려 했다. 김은비가 이추성의 선글라스를 빼앗아 쓸 무렵. 박경배 피디가 순서를 정할 방법을 얘기했다.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겠습니다. 이기신 분이 순서를 정하시면 됩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안 내면 진겁니다. 가위, 바위, 보!”
박경배의 말에 허리를 뒤로 젖히는 스트레칭에 집중하던 장 이장님이 헐레벌떡 자세를 바로 하고 주먹을 내밀었다.
“흐어어억! 남자는 주먹!”
급하게 올라오느라 괴상한 소리를 냈지만, 주먹은 확실하게 냈다. 박경배 피디의 말이 끝나기 전에.
“와! 제가 이겼어요!”
결과는 손바닥을 활짝 펼친 김은비의 승. 자신이 이긴 걸 확인한 그녀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럼 순서는···.”
김은비는 가위바위보로 순서가 정해진다는 말을 듣고부터 간절히 자신이 이기기를 바랬다. 둘만 승부하는데 순서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그렇게 순서에 신경을 쓰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개그 프로그램을 했던 김은비는 순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앞의 순서는 잊힌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여러 명이 있으면, 앞 순서였다는 이유만으로 점점 잊혀지기 때문. 잊혀지기 않기 위해서는 뒤에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기량을 보여줘야만 했다. '적당히'가 아닌, ‘훨씬’ 뛰어난.
“...어르신께 처음을 양보하겠습니다.”
그러니, 김은비는 마지막 피날레를 담당할 생각이었다. 퍼포먼스라면, 여기 있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르신이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해 비주얼적으로 앞선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경력과 노하우가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끌어낼 수 있는.
“아이고. 고맙네. 원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더라고.”
장 이장님은 김은비의 결정에 반색하며 좋아했다.
“형님, 이장님 노래 실력이 어떻게 됩니까? 잘 부르십니까?”
박준혁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내게 작게 물었다. 아라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작은 소리였다.
“글쎄···?”
나도 박준혁과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했다. 사실 장 이장님의 노래 실력은 명성이 자자했다. 잘 부른다고. 하지만 명성만 들었을 뿐, 나는 단 한 번도 이장님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흥얼거리는 걸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건 제대로 된 노래가 아니었으니 논외로 치고.
“형님, 제가 봤을 때는, 잘 못 부르실 게 확실합니다.”
“어째서?”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말입니다, 이장님의 관상은 노래를 못 부를 관상입니다.”
“...?”
뭔가 과학적인 이유가 나올 것 같았는데, 관상이 노래를 잘 못 부르게 생겼다니. 과학학도에게서 오리엔탈적인 해석이 나와 조금 당황스러웠다. 동양의 신비를 오래전부터 내려온, 검증된 과학이라고 하는 박준혁에 헛웃음을 지을 때였다.
-삼! 칠! 오! 일! 칠!
노래방기기에서 숫자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숫자 외침이 다 끝나고, 잔잔한 가운데 톡톡 튀는 음이 깔리기 시작했다. 반주가 시작되고 부터 어깨를 들썩거리던 장 이장님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정확한 박자에 노래를 시작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선글라스로 뒤로 보이는 장 이장님의 눈은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카메라를 본떠 만든 빨간색을 칠한 상자로 연습한 성과였다.
“헐. 말도 안 돼.”
장 이장님의 노래가 시작되자 옆에 있던 박준혁에게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노래 못하는 관상이라며?”
“아니···. 그게···. 이게 무슨···.”
노래를 못하는 관상이며, 관상은 사이언스! 라고 외치던 박준혁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평소 나이보다 더 짱짱한 목소리를 자랑하던 장 이장님은, 노래도 수준급이었다.
“우와. 어르신 목소리 죽이는데요?”
“가수 아니야?”
연예인 측에서도 감탄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추성의 감탄에 이어, 장 이장님의 신분을 의심하는 강산까지. 제작진들도 장 이장님의 실력이 의외였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인생은 지금이야-”
EDM의 곡의 특징인 딱딱 끊는 구간.
장 이장님은 의미심장하게 마이크를 들지 않은 반대편 손을 들어 손날을 목울대에 가셔다 댔다. 그리고는 박자에 맞추어 툭툭 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박자의 스타카토가 지나고, 노래는 클라이막스로 향했다. 간주구간 동안 양팔을 머리 위로 뻗어 박자에 맞춰 몸을 들썩거리던 장 이장님은 클라이막스 직전, 마이크를 내려 입에 대고 외쳤다.
“김찬명이!”
“오야!”
장 이장님의 외침에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김찬명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이장님의 뒤쪽에 자리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가 시작되기 1초 전, 장 이장님의 뒤에 있던 김찬명 할아버지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파라라락-
김찬명 할아버지가 장 이장님의 금색 스팽글이 달린 자켓의 뒤를 잡고 흔들기 시작한 것. 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더욱 빛나기 시작한 장 이장님은 한쪽 손을 카메라 쪽으로 휙 뻗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클라이막스를 불렀다.
“아무-르 파티.”
장 이장님은 후렴을 내뱉고는, 손을 거두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외쳤다.
“다 같이 뛰어!”
짱짱한 스피커에서 울리는 신나는 EDM 반주와 화려한 장 이장님의 발재간에 장 이장님이 첫 소절을 부를 때부터 흥이 나 있던 마을 사람들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 같이 뛰기 시작했다.
“이야아아!”
“아이고 신난다!”
“역시 우리 마을 가수여!”
“얼쑤! 좋다!”
덩실덩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덩실거리며 즐기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함박웃음이 걸려있었다.
“파티! 파티! 파티!”
장 이장님과 같이 뛰기 시작한 김찬명 할아버지는 흥에 겨워 추임새까지 넣으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허···. 피디님, 여기 뭐···. 저희가 모르는 달인들이 사는 곳인가요?”
방방 뛰면서도 호흡하나, 음정 하나 틀리지 않는 장 이장님의 모습을 보며 강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박경배에게 물었다. 하지만 박경배도 강산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노래의 경우 사전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제작진들도 예상치 못한 장 이장님의 실력과 마을 사람들의 흥에 멍하게 박주만 짝짝 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노래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연애는!”
“필수!”
“결혼도!”
“선택!”
“아이지! 결혼도 필수!”
장 이장님이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마을 사람들 쪽으로 뻗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떼창을 했다.
“필수! 필수! 필수!”
장 이장님의 노래에 넋 놓고 바라보던 박준혁도 튀어 나가 연호했다.
“에잇! 나도!”
옆에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던 이추성도 참지 못하고 무리에 합류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오. 총각 좀 추는데?”
“예. 어르신, 제가 한 춤 합니다. 어르신도 최고십니다!”
“이름이 뭐라꼬?”
“격투기 선수 출신 이추성입니다!”
“아아. 이추성이! 최고다!”
어르신들은 몸을 흔들다 말고 자신들과는 다른 춤사위를 가진 이추성에게 연신 엄지를 치켜들었고, 이추성은 어르신들의 호응에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었다.
“어···.”
그런 그들의 모습에 김은비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파티!!”
마지막 소절이 끝낸 장 이장님은 마이크 든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며 노래의 끝을 알렸다.
“오오오!!”
“휘이익!”
반응은 엄청났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몇몇은 능숙하게 손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마치 나후나의 공연이 끝난 후 환호하는 팬들 같았다.
“하하. 괜찮았나?”
마지막 반주까지 끝나고, 위로 뻗었던 손을 내린 장 이장님이 노래를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으며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네! 최고였습니다! 이장님!”
장 이장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이추성이 제일 먼저 이장님의 말에 반응했다.
“이야. 여기 마을 이장님 과거가 궁금한데요? 가수 맞죠?”
강산도 이장님의 노래 실력을 칭찬하며 자신이 모르는 가수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저기서 장 이장님의 노래 실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질 때.
-빠밤! 귀가 정화되는 노래 실력! 완벽하세요!
노래방 기기에서 멘트와 함께 점수가 나왔다.
“와아아! 99점!!”
만점에서 1점 모자란 점수를 받은 장 이장님이 두 손을 번쩍 들고 기쁨을 표했다.
“100점짜리데, 이 기계가 좀 이상하다.”
“그러니까 노래방 기계 좀 바꾸자니까.”
하지만 주변 마을 사람들은 아쉬운지 노래방 기계를 탓했다. 노래방 점수를 확인한 박경배는 퍼포먼스 점수를 매기기 위해 바로 제작진 투표를 시작했다.
“자, 그럼 제작진 여러분들 1부터 10까지 점수를 적어서 보내주세요.”
띵! 띵! 띵!
박경배가 쥐고 있는 핸드폰에서 10번의 메시지 수신음이 울리고, 그는 제작진들이 보낸 점수를 합산해 계산했다.
“저희 제작진들의 점수 또한 100점 만점입니다. 이장님의 퍼포먼스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0점!”
“와아아아!”
제작진들이 준 퍼포먼스 점수가 공개되자, 마을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자기 일처럼 환호했다.
“...제작진들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환상적인 무대의상, 무대매너! 청중이 벌떡 일어나 함께 어울리게 하는 완벽한 무대! 점수를 깎으려야 깎을 수가 없다!”
제작진들의 평가를 읽은 박경배는 큐 카드를 내리고 모두가 궁금해하던 걸 물었다.
“이장님, 진짜 가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