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말이다...(2) >
“이장님, 진짜 가수셨어요?”
박경배의 질문에 장 이장님이 멋쩍은 듯 페도라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뭐, 그런 건 아이고···.”
“뭐가 그런 게 아니고! 왜 가수였다고 말을 못 하는데! 시원하게 말해뿌라!”
더듬거리며 말을 흐리는 장 이장님의 대답에 답답한 듯 김찬명 할아버지가 나서서 말했다. 할아버지의 말에 박준혁이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에? 장 이장님 가수셨어요? 어쩐지. 통 울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아시는지 모르시겠지만, 저도 한 노래 하거든요.”
"아, 그래?"
박준혁의 말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관상은 과학이라고 하질 않나, 한 노래를 한다고 하지 않나···. 관상 얘기가 틀리고부터 박주혁의 주장은 더이상 나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하물며 '한 노래' 한다라···. 아직까지 그의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노래 실력은 노을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호에에! 찹쌀이 보다 더 귀가 아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아침을 먹기 전, 텃밭 순회를 다녀온 노을이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와 내 어깨 위로 앉으며 말했다.
'누군데?'
지금 텃밭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연구에 반쯤 미친 박준혁밖에 없지만, 아침마다 뒷산으로 운동 삼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있기에 혹시나 해 물었다.
'똥 덩어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아···.'
하지만 혹시나 하였던 내 예상은 맞았다.
‘똥 덩어리를 만드는 사람’은 바로 박준혁이었다. 노을은 비닐 안의 그것을 발견한 후부터는 그를 똥 덩어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상한 사람으로 불렀다. 다행히 그 후, 박준혁의 실험실로 가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한번 뇌리에 박힌 단어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준혁이가 찹쌀이 보다 더 심하다고?'
그나저나, 아무리 사람이 노래를 못 부른다고 하더라도, 찹쌀이 보다 더 심하다니. 그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찹쌀의 노래는 폭포에서 득음한 오리의 소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찹쌀의 노래보다 더 심하다니.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며칠 뒤 호들갑을 떠는 노을의 뒤를 따라갔다 들은 박준혁의 노래에 나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사라져---어—억!’
남성 보컬의 최고봉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부르다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심취했는지 들고 있던 모종삽을 마이크 삼아 텃밭 한가운데서 부르는데, 정말이지 끔찍했다.
“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밴드 보컬을 맡았었는데요, 버스킹도 나가고 그랬죠.”
모른 척 노래를 잘 부르냐는 내 물음에, 박준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참···. 그 버스킹을 어디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을 집으로 빨리 보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 그 재능은 네 실험실에서 많이 펼치자.”
“예! 예?”
노래는 실험실에서만 하라는 내 말이 의외였는지, 박준혁은 씩씩하게 대답하다 말고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박준혁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장 이장님의 스토리가 시작된 것.
“...그게, 내 꿈이 원래 가수였는데···. 그 젊은 사람들은 알려나 모르겠네. 우리때는 가수 한다카면 그냥 마 딴따라라고 손가락질부터 받았다 아이가.”
“그렇지. 맞다 맞다.”
장 이장님의 말에 주변에 있던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님의 말은 맞았다. 나 때만 하더라도, 반에서 가수를 하겠다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애들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혀를 쯧쯧 차며 지나가셨다.
‘저놈은 커서 뭐가될라고.’ 라는 말과 함께.
“공부는 못하고, 노래는 쪼매하고···. 내 어릴 때 지금처럼 가수에 대한 인식이 좋았으면 했을끼다. 근데 내 어릴 때는, 농부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공부 못한다? 그럼 농부밖에 할 게 없었다.”
그때 그 시절에 가수에 대한 인식은 그랬다며, 고개를 주억거린 장 이장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출연자들을 보았다.
“그러니까네,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부를 수 있으니까 참 좋네. 내 평생소원이 테레비에 나가가꼬 노래 부르는 거였거든.”
씨익.
소원을 이뤘다며, 주름진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장 이장님의 모습에 왜인지 모르지만, 울컥함이 솟아났다.
“으허허헝. 형님, 우리 이장님 소원이 TV나가서 노래 부르는 거였대요.”
내 울컥함은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박준혁 때문에 삽시간에 식긴 했지만, 박준혁의 주접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 어르신, 더 부르실래요?”
“크흡. 어르신, 다음 곡 부탁드립니다.”
예능에서 잔뼈가 굵은 강산이 어렵사리 운을 띄우자, 박준혁과 마찬가지로 감수성이 뛰어난지 눈꼬리에 눈물을 주렁주렁 단 이추성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뜬 채로 물었다.
“아이고마. 됐다. 여기 이 아가씨가 기다리는데, 우예 그라노. 방송국 사람들, 고맙습니데이.”
장 이장님은 그들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며 마이크를 제작진에게 넘기고, 다시 마을 사람들의 무리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금색 스팽글 자켓 덕분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장 이장님을 보며 그 다음 타자, 김은비가 마이크를 제작진에게서 건네받고는 손을 T자로 만들며 멍하니 말했다.
“잠깐, 타임. 아니, 제가 여기서 어떻게 불러요?”
**
이건 대결이 안된다며, 어떻게 장 이장님과 같은 실력자와 저를 대결 붙이냐며 제작진들에게 눈을 희게 뜨던 김은비는 이장님 뒤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제작진들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고, 미션은 미션이라고 잡아떼는데, 김은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 퍼포먼스 점수는, 80점! 노래방 기계 점수 45점을 합산하면, 총 125점! 이로써 이번 미션의 승자는 산골 마을, 장 이장님입니다!”
장 이장님의 퍼포먼스와 노래 실력에 기가 죽은 김은비는 자신의 기량을 100% 발현하지 못했고, 결국 승자는 장 이장님께 돌아갔다.
“이건···. 불공평해!”
김은비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며, 이건 제작진들의 농간이라고 씩씩거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제작진들에게 닿지 못했다. 김은비의 항의를 자연스럽게 무시한 박경배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타자, 이추성에게 말했다.
“자, 그럼 다음 분, 이추성 씨, 준비되셨으면 돌림판을 돌려주세요!”
노래를 부를 때 타이머를 멈추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박경배는 출연자들에게 재촉했다.
“으라라라!”
박경배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이추성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돌림판을 돌렸다.
차라라라락-!
앞서 아라와 김은비가 돌림판을 돌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굉장한 소리를 내며 돌림판이 돌아갔다.
타타-탁.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던 돌림판은, 한참 후에 틱, 소리를 내며 한 단어에 멈추었다. 그 단어는 바로, 앞서 아라가 했던 ‘촉각’. 돌림판 내, 화살표가 가리킨 단어를 확인한 박경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추성 씨, 땡!”
“에? 왜요?”
앞선 두 사람에게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땡!’이라는 소리에 이추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앞으로 쭉 빼며 물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뭐꼬? 아아. 도전을 말 안 했네!”
이추성과 같이 물음표를 그리던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돌림판을 돌릴 때는 꼭! ‘도전!’을 외치고 돌려주세요.”
박경배는 이추성이 ‘도전’을 외치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제작진들 옆에 있던 나는 보았다. 작가 중 한 명이 조그맣게 손가락으로 엑스 표를 그리는걸. 아마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콘텐츠를 뽑기 위해서일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도전! 아자자자!”
이추성은 박경배의 말에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곤, 아무 말 없이 다시 돌림판 앞으로 가, 거세게 돌렸다.
촤라라라라라-!
‘도전’을 외쳐서였을까, ‘도전’이 기합이 된 듯, 이추성이 돌린 돌림판은 먼저 돌린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오메. 힘이 억수로 세네.”
“그러게 말이다. 농사일해도 잘하겠다. 저 총각은.”
마을 사람들 안에서 이추성의 존재가 ‘농사를 잘 할 것 같은 총각’으로 입력될 무렵, 그가 돌린 돌림판이 속도를 줄이며 멈추었다.
“오!”
“아자자자!”
돌림판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강산에게서 감탄이 나온 뒤, 뒤이어 돌림판을 확인한 이추성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격투기선수 출신인 그에게 딱 맞는 미션이었다.
“이추성 선수가 고르신 미션은 ‘힘!’입니다. 제작진분들, 세팅해 주세요.”
‘힘’에서 멈춘 돌림판의 결과를 만족스럽게 본 박경배가 옆에 있는 제작진들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제작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이 가득 쌓인 테이블을 들고 와 가운데에 세팅했다.
“박···?”
“하, 힘이면 제가 너무 쉽게 이길 것 같은데 어떡하죠? 이 박들을 머리로 깨면 되는 거죠?”
잘 말라 연한 노란빛을 띠는 박들이 가득 쌓인 테이블의 등장에 이추성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자들은 모두 아연실색했지만, 이추성만은 싱글벙글했다. 어지간히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네. 그렇습니다. 제한시간 1분 안에, 더 많은 박을 깨시는 분이 승리합니다. 박을 깨는 건 어떻게 깨든 무방합니다. 다만, 박을 깰 때는 꼭 자신의 신체 부위를 이용해야 합니다.”
“으흐흐. 피디님, 그럼 제가 너무 유리 한 거 아닙니까. 제 머리가 돌이거든요. 제가 이 머리로 많이 KO 시켰다 아닙니까.”
어떤 방법도 좋으니, 자신의 신체 부위로 박을 깨라는 피디의 설명에 이추성은 두 손을 비비며 웃었다.
“그럼, 산골 마을 팀 선수, 나와주시죠.”
박경배는 익숙하게 이추성의 말을 넘기곤 마을 어르신들이 앉아있는 곳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이제 내 차례가. 기다렸다.”
“예? 이 어르신이 하신다고요? 피디님,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박경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간으로 나오는 어르신을 보며 이추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서라. 괘안타.”
다치면 어쩌냐고 호들갑을 떠는 이추성에게 걱정 말라고 하신 강 할머니는 테이블 앞에 섰다. 이추성의 호들갑을 손짓 한 번으로 멈추게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체 그의 옆에 선 강 할머니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우와. 여기 마을 분들은 전부 존재감이 장난 아닌데요?”
“그러게. 혹시 여기 막 숨은 고수들만 사는 그런 마을 아니야?”
마치 여장군같이 포스가 넘치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아라와 김은비가 감탄하며 말했다.
“아···. 그래도 안 되실 텐데. 표주박이 말이죠, TV에 많이 나와서 다들 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단단하거든요? 피디님, 어떻게, 할머니께 베네핏을 좀 주시죠?”
강 할머니의 단호한 말에 호들갑을 멈추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을 멈춘 건 아닌 이추성은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 박경배에게 보호구나 망치라도 주라고 요청했다
“어르신, 필요하실까요?”
이추성의 요청에 박경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장 할머니께 물었다. 강 할머니는 그의 질문에 도리질 치더니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마 됐다.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