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후 (2) >
“역시. 방송은, 반응이 빠르다니까.”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가 방송의 광고효과를 알리고 있었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화면에 갱신되는 알림이 그 증거였다. 어찌나 많이 울리는지 알림이 아니라 전화라도 오는 것 같은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을 때였다.
-딩동! 딩동!
“컁! 똥 덩어리다!”
초인종이 울리더니, 거실 창문으로 도도도 뛰어간 노을이 앞발로 창문 짚고 서서 대문 쪽을 보며 말했다.
-띡.
인터폰 화면을 보니 과연 박준혁이 맞았다. 밤늦게 그가 우리 집에 뛰어온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바로 대문을 열어주었다.
“헉, 헉. 형님, 이거 보셨습니까?”
곧이어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박준혁이 아직까지 진동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 나도 마찬가지.”
온라인스토어에 계정을 연결해 놓은 건 나나 박준혁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지금 울리고 있는 것도 다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와, 진짜 형님 말씀대로네요!”
“그래서, 공지는 올렸어?”
“네! 올리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오케이.”
식품 회사에 있을 때, 제품 개발과 유통도 담당했지만, 홍보도 같이했었다. 뭐가 그렇게 한 사람이 개발부터 홍보, 판매까지 다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파트를 명확하게 나눈다는 건 대기업이나 있을 일이지, 내가 다녔던 ‘가족’ 같은 중소기업에서는 어딜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팀장직을 달았으면, 더더욱.
“아니, 근데 형님은 어떻게 이걸 예상하셨습니까? 예능에서 우리 농장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도 아니고요.”
2화가 방영되고 나면, 문의가 폭주 할 테니 미리 공지를 만들어 놓으라고 한 게 궁금한 모양.
“직접적인 홍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알았는지 궁금해?”
“네! 궁금합니다!”
“그건 간단해.”
사실 홍보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저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아, 제품을 알리는 것. 그것이 홍보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면 된다.
“인간에게 삼대 욕구라는 게 있지?”
“네. 식욕, 수면욕, 성욕!”
“그렇지. 난 거기서 식욕을 건든 거야.”
“식욕이요? 아···!”
몇 마다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차린 걸 보니, 어떻게 대학원생이 됐는지 알만했다. 싹싹하고, 일 잘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데···. 내가 교수라도 치킨이든 피자든 사줘서 데려갔을 거다.
“너튜브 초창기에 일반인들이 시작해서 성공한 분야도 먹방이고, 유명해져서 TV에 나오는 너튜버들 보면 거의 다가 먹방 했던 사람들. 사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최대의 만족감을 주는 것도 뭐다?”
“식(食)! 입니다!”
“그렇지. 그럼 의식주 중에, TV에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건 뭐다?”
“그것도! 식(食) 입니다!”
“맞았어. 그래서 난 그걸 이용 한 거야.”
“오···!”
의식주 중 사람들의 오감 중 두 개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건 식(食)이 유일하다. 옷이나 주거공간은 ‘와 좋네.’ 혹은 ‘와 나도 입고 싶다/사고 싶다’ 내로 끝날 수 있지만, 음식의 경우는 다르다.
고기가 불판에 닿아 촤르르 나는 소리는 청각을 자극하고, 지글지글 불판에서 구워지며 노릇노릇해져 가는 삼겹살의 모습은 시각을 자극함과 동시에 뇌에 명령을 내린다. 지금 당장 저걸 먹자고.
“우리 핑크가 사과를 먹는 장면도 그렇고, 출연자들도 아라씨 덕분에 우리 밭작물들을 먹었으니까, 당연히 호기심이 생기는 거지. 저 작물은 대체 뭘까. 저 작물이 난 곳은 대체 어딜까. 뭔데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걸까? 나도 먹고 싶다.”
회사에 다닐 시절, TV 광고는 엄두도 못 낼 때 써먹었던 방법들이 있었다. SNS나 너튜브 셀럽들에게 협찬하기. 비교적 적은 돈으로 최대의 가성비를 끌어낼 수 있기에,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박람회를 얼마 전에 했으니, 고객님들 중에 분명 우리 얼굴을 알아보신 분들이 있을 거란 말이지.”
“아···. 그래서!”
“거기다 대놓고 협찬을 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었으니, 효과가 더 큰 거지.”
“맞아요. 저도 프로그램 보다가 너무 노골적으로 말도 안 되게 협찬 티 내면 싫더라고요.”
“바로 그거야.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시골 작물들. 근데 출연자들이 하나 같이 맛있다네? 그것도 고기를 외치던 출연자들까지. 그럼 시청자들은 어떨까?”
“무조건 검색하죠. 촬영지부터. 구매할 수 있는 루트까지.”
정확했다.
박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직까지도 미친 듯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리고, 박준혁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은 우리가 마을 회의를 한번 주도해 볼까?”
“넵! 알겠습니다!”
매일 강 할머니의 주도로 이뤄진 마을 회의, 내일은 내가 주도로 해 볼 생각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이 밭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웅성거렸다.
“뭐꼬? 누가 모이라고 했다고?”
“한울이. 뭐, 우리랑 상의할 게 있다더만. 그체 준혁아?”
“네. 그렇습니다.”
“니는 무슨 내용인지 아나?”
“저도 다는 몰라요. 아마 방송에 관해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옴마야. 와? 또 방송국에서 촬영 한다카나?”
“그건···. 아닐걸요?”
“그럼 와?”
“형님이 오시면 다 설명해 드릴 겁니다···. 아! 저기 오시네요.”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박준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들 사이에서 일어나 나를 반겼다. 아직 약속한 시각이 아닌데도 이렇게 많이 모이신 걸 보니 역시, 우리 마을 어르신들 성격 급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야야. 니 기다린다고 목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뭣 때문에 우릴 이렇게 다 불렀는데? 또 방송 촬영한다나?”
“방송 촬영 한 번 더 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모. 그 방송 나가고 내 우리 집에서 스타 됐다 아이가. 평소에는 연락도 없던 아들이 연락하질 않나. 우리 손주도 저기 나오는 사람 진짜 할미 맞냐고 계속 물어보면서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겠다고 하더라고.”
확실히. 방송이 방영되고 나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다고 방송 전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울상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히 전보다 더 활기가 돈다고 해야 할까.
“어이구. 우리 한울 사장님 왔네!”
“우리 손주가 테레비보고 한울이 니 누구냐고 묻더라!”
“그 뭐라카노? 화면발? 맞다! 화면발이 너무 잘 받더라.”
먼저 오신 마을 분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어제 방송분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장 이장님과 강 할머니, 그리고 심 할아버지가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며 등장했다.
“오셨어요?”
세분을 맞이하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딱 약속한 시각. 모든 마을 분들이 모인 걸 확인한 나는 앞으로 가 마이크를 켰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시나요?”
그렇게 크지 않은 방이지만, 귀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도 계셔서 마이크는 필수다.
“잘 들린다! 내 아직 귀 안 먹었다!”
“잘 들리냐꼬? 어! 들린다!”
제일 멀리 앉으신 어르신들도 잘 들린다고 하니, 이제 내 계획을 말해도 될 것 같다. 마이크를 손끝으로 한번 툭 쳐 전원이 들어온 걸 확인한 나는 미리 준비해 놓았던 멘트를 입에 올리며 장 이장님이 계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송 후, 어르신들도 느끼셨겠지만, 연락이 여기저기서 많이 오고 있습니다. 그렇죠, 장 이장님?”
“어? 나? 커흠. 뭐, 그렇지. 어디 보자···. 우리 손주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골프 클럽 회원들이랑···. 옆 마을 이장한테서도 연락 왔고···.”
“그분들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뭐라기는! 내 잘생겼다카지! 커흠.”
내 질문에 손가락을 하나씩 꼽던 장 이장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TV에 나온 당신의 모습이 정히 마음에 드셨던 모양. 하지만 이장님의 어깨 뽕은 오래가지 않았다.
“웃기고 있네. 잘 생기기는. 씨꺼먼 안경 써서 보이지도 않더구먼. 노래 잘 불렀다고 하면 몰라도.”
“노래 잘 부른다는 건 당연한 거고!”
옆에서 장 이장님의 말을 듣고 있던 강 할머니가 콧방귀를 뀐 것.
“노래는, 잘하긴 하지. 내사 맨날 왜 니는 가수 안 했나 했는데. 뭐, 이해는 가더라.”
“내만 그랬겠나. 그때는 다 그랬지. 니도 배구선수 더 할 수 있었는데 집에서 반대해서 그만둔 거 아이가.”
“...고마 됐다. 다 옛날이야기인데.”
장 이장님이 가수의 꿈을 접은 이유는, 미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강 할머니까지 그랬을 줄이야. 어르신들이 종종 나를 보고 지금 잘 태어났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오늘 어르신들께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으잉? 그게 뭔데?”
할머니가 생전에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세상은,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한울아, 사람은 말이다. 혼자 지 잘났다고 아무리 막 해봐라. 주변에 사람이 없잖아? 그럼 힘들다. 외로워.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라. 그러니까, 한울이 니는 항상 니 사람들을 챙기라. 알았제?’
그러니 내 주변의, 내 사람들을 챙기라고.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을 챙기려고 한다. 그저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어르신들도 항상 나를 챙겨주셨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로 생각한다. 물론, 모든 게 어르신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지만.
“어르신들도 느끼셨겠지만, 방송 이후 우리 마을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1번씩 방송되는 예능. 첫 화부터 출연자들과 어르신들의 코믹한 대결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더니, 2화에는 멧돼지로 인해 시청률이 확 늘었다. 방송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촬영장소인 우리 마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맞다. 옆 마을 이장이 나보고 그 멧돼지 어떻게 길들였냐드라. 지네도 멧돼지 덕 좀 보고 싶은가 보지.”
“그래서? 알려줬나?”
“내가 미칬다고 알려주나. 아는 것도 없는데 우예 알려주노. 알아도 안 알려 준다.”
“멧돼지 말고도 저 장 이장이랑, 강 할매가 누군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
“맞다, 맞다. 우리 손주는 심 할배 보고 영웅이라더라. 소화기로 불 껐다고.”
하하하.
호호호.
마을 어르신들은 각자가 방송 후 받은 연락들을 나누며 즐거워하셨다. 하루하루가 같은 나날이 반복되는 이런 시골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걸로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우려먹는다. 그러니, 전국구로 방영되는 방송은 어떻겠나. 어르신들에게는 이번 방송 하나로 평생 웃으며 얘기할 일이 생긴 것과 진배없었다.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매일 방송 출연하게 하는 것처럼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하실 건가요?”
< 방송 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