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71화 (71/163)

방송 후 (3)

“그럼, 제가 매일 방송 출연하게 하는 것처럼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하실 건가요?”

갑작스러운 내 말에 이해가 되지 않은 듯, 어르신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게 뭔 소리고? 네 방송국에 취직이라고 했나?”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럼 뭔소리고? 매일 방송 출연하게 하는 것처럼 만들어 준다는 게 뭔데?”

하지만 매일 방송에 출연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는 소리에는 관심이 있는지, 모두들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장 이장님은 잘 아시는 건데요···.”

어서 말해보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내가 웃으며 설명을 하려 할 때였다.

“아! 너튜브! 너튜브 말하는 거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장 이장님이 손을 번쩍 들고는 말했다.

“네. 맞습니다. 너튜브입니다.”

장 이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또다시 어르신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너튜브가 뭐꼬?”

“와 있다 아이가. 장 이장이 멧돼지랑 밭 가는 영상.”

“아아. 그 방송국에서 보고 왔다는 거?”

“그래. 그 영상 덕분에 방송국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서 촬영하러 왔다카이.”

“오메. 그럼, 거기서 유명해 지면 테레비 또 나오는 거네?”

“그라제.”

“그럼 무조건 해야지. 내는 한다! 한울아! 내 할게!”

“내도한다! 뭐하면 되는데?”

내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어르신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관련 자료들도 많이 준비해 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을 회관에 모인 모든 어르신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시곤, 고개를 홱 돌려 나에게 방법을 물어보았다.

“우선 어르신들의 일상을 찍을 예정입니다.”

“우리 일상? 재미없을 텐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영된 ㅇ회차 영상 조회 수만 봐도 어르신들이 나오신 부분이 높습니다.”

“그라긴 하지. 그 연예인들이 다 예쁘고 잘생기긴 했어도, 여서 뭐 하는 데는 영 서툴더라니까.”

“네.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 마을만의, 시골이어서 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들은 모르는, 그런 걸 찍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생각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미 할머니 유튜버로 활동하시는 분 중에 명성을 얻은 분들도 계시기도 했고, 무엇보다 할머니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어 하고자 했었다. 회사일에 바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엔 시기를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마을을,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의 정겨운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게다가, 방송으로 인해 우리 마을과 어르신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올라있으니,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꼭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들은 모르는? 그러면 자신 있다! 내가 또 여 산골에서만 60년을 넘게 살았다 아이가!”

“맞다! 다 가르쳐 줄 수 있제. 내랑 산에 가면 먹을 거 천지인 거 알제?”

도시 사람들이라면 모를 것들이라고 하니, 어르신들은 산골에서만 평생을 보내 알 수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형님,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데요?”

어르신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온 박준혁이 속삭였다. 갑작스러운 속삭임에 펄쩍 뛴 나는 귀를 비비며 말했다.

“속삭임 금지. 우리보다 배는 더 사신 분들인데, 당연히 이야깃거리가 넘쳐나시지.”

그저 기회가 없어 이야기보따리를 채 풀지 못하신 것뿐. 어르신들의 속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그 깊이만큼 많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 기가 막힌다고, 자신이 가진 노하우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서로의 지식을 뽐내는데, 그 모습이 꼭 소풍 가기 전 신이나 자신이 가지고 갈 준비물들을 말하는 학생들 같았다. 활기가 넘치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는 귀를 문지르던 손을 내리고, 다시 마이크에 입을 댔다.

“어르신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스피커에 울리는 내 목소리에 대화하느라 바빴던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 걸 확인한 나는 박준혁에게 눈짓했다.

“넵.”

박준혁은 미리 가지고 온 노트북을 조작해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스크린은 복지 차원에서 설치된 것이었다. 영화관을 가려면 하루에 몇 대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또 다른 버스를 갈아타야 했기에.

“오메. 저게 뭐꼬?”

“저게 저리 쓰는 거였나?”

하지만 반응을 보니, 설치만 됐지, 여태 한 번도 사용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도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사용방법을 알려드리던가 해야겠다. 어르신들의 반응을 살핀 나는,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우선, 이건 방송 후, 저희 온라인 스토어에 게시된 문의 글들입니다.”

박준혁이 띄운 화면에는 어제까지 핸드폰 알람을 미친 듯이 울리게 한 주범인, 고객들의 문의가 캡처되어있었다.

“저게 다 뭐꼬?”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로다.”

“누가 글자인 거 몰라서 묻나? 뭐라고 쓰여 있느냐고.”

“내도 모른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어르신들의 시력을 깜빡했다. 스크린에 띄워진 문의 글들의 글자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기도 하거니와, 액정이 아닌 스크린에 띄워진 터라 선명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점을 파악한 나는 문의 글 몇 개를 읽었다.

“‘사장님, 혹시 체험농장은 안 하시나요?’, ‘상품 모두 품절인데, 혹시 직접 가면 있을까요?’ 보시다시피, 저희 농장 작물에 대한 체험 문의입니다.”

“체험 문의? 하긴. 저쪽 고속도로랑 좀 가까운 마을에서는 농촌 체험 한다고 하더라. 비닐하우스 하나 만들어서 하면 주말마다 꼬마 손님들이 그렇게 온다던데...”

“꼬마 손님들?”

“어. 부모들이랑 아기들이 이렇게 손잡고 그 꼬막 손으로 체험한다 카드라.”

“우리 마을까지 오겠나?”

농촌 체험이라는 말에 마을 어르신들의 귀가 쫑긋했지만, 회의적이었다.

“몇 년 전이고.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몇 년 전에 했다가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여서 치워버린 거 생각 안 나나?”

그건 바로 이미 했다가 실패했었기 때문. 사실 읍내에서도 한참 들어와야 하는 이 산골 마을까지 체험을 올 이유가 없다. 고속도로와 가까운 곳에도 체험할 곳들이 충분한데, 완전동 떨어진 이곳까지 올라가.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몇 년 전 마을 어르신들이 하셨던 체험이 실패했던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미 방송으로 인해 우리 마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나 우리 신비농장의 작물을 맛있게 먹어준 출연자들과 멧돼지 덕분에 특히 농작물에 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하시면, 절대 손님들이 없어서 치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나는 체험농장이라는 말에 햑을 떼는 어르신을 향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내 확신 어린 말에 머리를 절레절레 돌리던 어르신이 돌리던 걸 멈추고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네. 만약, 이번에도 체험농장을 하셨는데, 저번과 같다면, 제가 해당 농작물을 다 사겠습니다.”

한번 실패했던 분야에 대한 불안감.

실패한 경험으로 인해 생긴 불안감은 웬만해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실패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그 전의 실패를 능가하는 성공 혹은, 그에 비견되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가령, 만에 하나 체험 손님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들여 키운 작물들을 모두 판매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거 말이다.

“뭐라고? 진짜가?”

역시나. 아마도 어르신의 최대고민이었던 부분을 긁어주자, 단번에 반색하며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면, 나도 하련다.”

“나도!”

어르신 한 분을 설득하니, 옆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까지 연달아 손을 들었다. 농장체험을 해보겠다며 손을 든 어르신들의 수를 눈으로 세고 있자, 비교적 뒤에 앉아있던 강 할머니가 뒤늦게 손든 마을 주민들을 모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요. 와이라노? 한울이가 우째다 책임진다고 이치로 손을 들고 있나?”

눈을 희번덕이며 묻는 강 할머니의 카리스마에 눈을 마주친 몇몇 주민들이 손을 내렸다.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말을 들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 온라인 스토어에서 팔면 됩니다.”

“니네 온라인스토어에서? 거기는 니 농장 것만 파는 거 아니었나?”

무슨 그런 말씀을.

물론 현재는 우리 신비농장의 작물들만 팔고 있지만, 신비농장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의 양은 몰려드는 구매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정령들에게 부탁하면, 수량은 어찌어찌 맞출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많이 써야 한다. 작물들을 키우는 건 정령들에게 부탁한다지만, 포장과 택배를 보내는 건 사람이 해야 했으므로.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거의 100%의 확률로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도대체 저 수량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질문과 함께.

상속받은 땅이 많아야 있지만, 내가 상속받은 땅은 미화리 산골 마을의 일부일 뿐이다. 게다가 그 땅에 농사를 모두 짓는다고 해도, 지금 몰려드는 구매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지금은 저희 작물들만 팔고 있지만, 제 목표는 마을 농작물들을 같이 파는 겁니다. 각자의 상표를 가지고요.”

“각자의 상표를?”

“네. 몇몇 어르신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스토어는 제한된 작물로 인해 선착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데, 구매에 성공하시는 분들 보다, 구매에 실패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그리 잘되나?”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르신의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음···. 비교하자면, 하루 만에 우리 마을 밭작물들의 반은 팔 수 있는 정도라고만 하겠습니다.”

“뭐라고? 하루 만에? 뭐꼬? 어떻게 그렇게 하는데?”

“저희 스토어에 입점만 하시면 됩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작물들도 입점시켜, 궁극적으로는 통합 야채 마켓같은 모양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온라인 스토어도 계속해서 규모를 키워갈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작물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때는 플랫폼을 하나 만들 생각이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그때까지 모인 입소문과 리뷰들을 모아 광고를 만든다면, 감히 단언컨대, 농작물 파트에서는 1등을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이루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게 뭔데?”

검지를 들어 1자를 만든 내가 뜸을 들이자, 성격 급한 강 할머니가 어서 말하라며 재촉했다.

“그건 바로 품질입니다. 그것도 저희와 비등한.”

“품질?”

“네. 저희 스토어가 광고 하나 없이 저렇게 단시간에 클 수 있는 저력은 바로 품질입니다.”

품질.

아주 간단한 단어이고, 모든 기업이 외치는 것 중 하나. 신비농장이 이만큼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품질.

”그리고, 그 품질관리를, 저희가 같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다른 읍내의 작물들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어르신들의 작물들을 아주 업그레이드 시킬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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