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73화 (73/163)

변화의 시작 (2)

“놀라지 마라. 저 산에 폭포가 있다!”

“예?”

장 이장님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반문했다. 저 산속에 실처럼 떨어지는 폭포가 있긴 하지만, 그곳은 모두가 아는 곳이다. 그러니 장 이장님이 저렇게 호들갑떨 이유가 없었다. 그럼 진짜 다른 폭포를 발견했다는 건데···. 이장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실처럼 떨어지는 폭포보다는 더 대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폭포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진짜 폭포다! 폭포! 아니 그 물소리도 큰 걸 우리가 왜 여태 못 발견했는지 그게 더 이상할 정도라니까? 아. 말로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는 한번 보는 게 더 낫다. 이 봐봐라.”

흥분한 어투로 두 팔을 넓게 벌려 오늘 발견한 폭포를 설명하던 장 이장님은, 허공에서 부지런히 폭포를 그리던 팔을 내리고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냈다.

“어? 이장님 핸드폰 바꾸셨어요?”

그런데 꺼낸 핸드폰이 지금까지 알던 장 이장님의 것과는 모양이 달랐다.

“역시. 젊은 아라 그런지 한 번에 알아보네? 어떻노? 쥑이제?”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낼 때부터 내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꺼내더니, 보란 듯이 투명케이스를 끼운 핸드폰을 눈앞에서 천천히 휘두르는데 몰라보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장 이장님의 질문에 말없이 웃어 보이자, 이장님은 신이 나서 핸드폰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다, 우리 손주가 사 준 거다!”

“오? 정말요?”

장 이장님의 손주의 나이가 아마 20대 중반인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100만 원이 넘는 핸드폰을 사줬다니. 능력 있는 친구임이 분명했다.

“어. 작년인가? 우리 집에 와서 내 핸드폰 보더니 우리 손주가 ‘할아버지, 핸드폰 바꿔줄까?’라는 기라. 그래서 내가 ‘아이다. 괘안타. 한 10년은 더 쓴다.’라고 했는데, 부득불 바꿔준다더니 지난주에 이거 들고 왔다 아이가.”

지난주에 온 손주라면, 분명 아주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며 짐벌에 핸드폰을 끼우고 온 마을을 찍고 다녔던 학생이었다.

“그···. 민주? 라고 했던 그 손녀분?”

마을을 산책 나온 강아지 마냥 마을을 돌아다니던 소녀는, 나와 마주치자마자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했었다.

‘어? 멧돼지 주인이다!’

내 얼굴을 향해 검지를 쭉 뻗으며 말하는 장 이장님 손녀의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네. 맞습니다. 근데, 누구···?’

초면부터 다짜고짜 삿대질하며 멧돼지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여태 없었기도 하거니와, 마을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 같아 정체를 묻자, 대답은 그 뒤에서 나왔었다.

‘아이고. 우리 공주, 뭔 놈의 걸음이 그치로 빠르나. 그 손은 뭐꼬? 사람한테 손가락질 하는 거 아니라고 했제? 얼른 손가락 안 내리나?’

우리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온 장 이장님은 지치셨는지, 나를 보고 손을 슬쩍 올리시더니, 이내 고개를 손녀에게로 돌리고는 대번에 역정을 내셨다.

‘아. 미안.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좀 놀라서.’

장 이장님의 말에 대번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손녀에게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손바닥을 올려 보였다.

‘괜찮습니다.’

시무룩해진 모습이 꼭 산책하다 엉뚱한 걸 집어 먹다 말고 그걸 주인에게 들켜 혼난 강아지 같았다. 그나저나, 장 이장님의 예절 교육은 아직도 힘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이곳에서 사는 어린아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온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내 성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손을 뻗는 것만으로 어르신들은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을 전해 주었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내가 무얼 먹고 싶다 하면 그 날 저녁에 가져다주셨다.

‘할아버지, 나 사과했어. 멧돼지 주인분도 괜찮다고 하셨음.’

마을 어르신들과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나는 날이 갈수록 버릇이 없어졌었다고 한다.

‘그래. 우리 공주 잘했다. 그렇게 사과하고, 상대방이 받아드리는 거. 그거까지가 사과다. 알았제?’

‘네. 할아버지.’

버릇이 없어진 나를 바로 고쳐 세우신 건 장 이장님이셨다. 젊은 날부터 이장님은 내게 예의를 가르쳐주고, 대화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셨다. 엄할 때는 눈물이 글썽 거릴 때까지 혼내면서도, 잘못을 반성하면 누구보다 더 자애롭게 감싸주시곤 했다.

“어. 민주 맞다···. 확실히 우리 한울이가 기억력이 좋네.”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었다. 워낙에 옷차림이 화려하기도 했고, 조용했던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핸드폰으로 찍는 바람에 조용히 집에 있던 어르신들도 나와 한 번씩 구경하며 훈수를 뒀었다. 결국엔 장 이장님의 손녀 한 명 때문에 온 마을 어르신들이 나왔었지.

“손녀분이 대학생이라고 하셨죠?”

“어. 그 뭐냐. 영상 뭐시기 하는 학과라던데···. 숙제가 맨날 영상 찍는 거라 하더라. 그때도 그래서 와서 계속 우리 마을 찍고 다녔다 아이가.”

“아하. 그럼 손녀분이 영상 편집도 잘하시겠네요?”

“고롬. 안 그래도 그때 찍은 거 보내줬는데 함 볼래?”

사실 우리 마을을 홍보하기 위해 너튜브용 영상을 찍고는 있었지만, 박준혁이나 나나 전문적으로 영상 편집을 배우지 않은 터라 다른 전문 너튜브 채널의 영상들처럼 잘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네.”

괜찮다면, 장 이장님의 손녀에게 외주를 맡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손녀의 편집 실력이 출중하다는 전제하에.

“잠깐만 있어봐라. 어디 보자···. 이 폰을 바꾼 지가 얼마 안 돼서 좀 기다려야 된다.”

“네. 천천히 찾으세요.”

새것이라 어색하다는 장 이장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걸려있었다.

“이게 새거라서 진짜 속도도 빠르다. 예전 것은 손가락으로 눌러도 반응이 한참 있다 됐거든? 근데 이건 살살 눌러도 막 이렇게 휙휙 바뀐다. 아! 여있네. 함 봐봐라.”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손녀가 선물해준 핸드폰을 두드리던 장 이장님이 영상을 찾아내게 건네주었다.

‘따라란~’

장 이장님이 건네준 화면에 있는, 손녀가 찍었다는 영상의 시작은 우리 마을 당산나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별다른 나레이션없이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어떻게 담았는지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청량한 소리에 절로 눈이 감겼다.

“어떻노? 좋제?”

“네. 좋네요. 아주요.”

돌아다니는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골목대장 같아 영상도 비슷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내도 우리 손녀가 사진을 잘 찍는다는 건 알고있었거든? 그 뭐시기냐. 왜 프로필 사진올리는 거 보면 분명 내 손녀가 맞는데, 아닌 거라.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는가 보더라.”

프로필 사진이라면, 이해가 간다. 나도 가끔 강지민에게서 톡이 올 때마다 놀라니 말이다. 현대 기술로는 카메라가 사람의 실물을 온전히 담지 못하기 때문에, 어플을 사용하여 최대한 자신과 비슷하게 찍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그냥 사기였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장 이장님께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을 보니, 학교에서 인정받을 만하네요. 이거 보니까 제가 올리는 영상은 정말 아마추어인데요?”

엄지를 세워 손녀의 칭찬을 하자, 장 이장님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아이고. 뭔 소리고. 니 영상도 니대로 맛이있는기라. 니는 대신에 다른걸 잘하니까 됐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좋은지 활짝 웃는 장 이장님의 모습엔 손녀에 대해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혹시, 저희가 올린 영상도 봤을까요?”

“하모. 그거 보고 자기가 찍으면 뭐 구도는 이렇게 하고, 편집은 저렇게 하고···. 전화해서 뭐라 뭐라 해쌌는데, 내가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근데 한참을 얘기하긴 했다.”

오호라. 이러면 말이 빨라진다. 영상은 찍는 것도 찍는 거지만,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너튜브 채널을 마을 채널로 만들기로 한 후, 편집은 외주를 맡기려 전문가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편집한 아마추어적인 것보다는, 좀 더 좋은 퀄러티의 영상을 올리고 싶어서.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원하는 업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험 삼아 장 이장님이 멧돼지와 밭을 가는 영상을 맡겼었는데, 결과물이 내 생각과는 달랐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때가 없었지만, 그 현장감을 살리지 못한달까.

내가 편집한 영상은 비록 서툴렀지만, 이장님이 멧돼지를 타며 느꼈던 긴장감과 희열감 등이 잘 담아내 졌다. 이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라, 박준혁도 동의한 사항이라 여태까지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까지 나와 박준혁이 하고 있었다.

“그럼 혹시 아르바이트 필요하다고 하면, 저희 영상 편집하지 않으려 하느냐고 한번 물어봐 주세요.”

“아르바이트? 우리 너튜브에 올리는 거?”

“네.”

내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하는 게 의외였는지, 장 이장님은 한참을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보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르바이트 시켜주면 갸는 바로 올끼다. 저번에 와서도 마을 찍고 나서 집에 와가꼬 계속 일자리 알아보는 것 같더구먼. 뭐, 배낭여행은 지 혼자 힘으로 가고 싶다나. 근데···.”

뒷말을 줄이며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살피는 장 이장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중요한 아르바이트비 얘기를 깜빡했다.

“중요한걸 얘기 안 했네요. 아르바이트비는···. 아, 손녀분이 지금 몇 학년이죠?”

“몇 학년이라고? 가만 보자. 야가 지금 몇 살이더라···. 재작년에 입학식에 갔으니까···. 지금 3학년 일 거다!”

“그럼, 경력 3년 차 비용으로 맞춰 준다고 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한다고 하면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요.”

아직 대학생에게 경력직 대우를 해 주려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건 바로 우리 마을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손녀가 좀 말괄량이라서···. 진짜 괜찮나 싶어서 물은 긴데. 일단 전달은 한다? 나중에 막 내한테 항의하면 안된다?”

“네. 걱정 마세요.”

아무리 장 이장님의 손녀가 말괄량이라고 해도, 우리 집에 있는 정령들만 하겠나.

“그래. 밥 먹으러 집에 들어가는 거였지? 어서 들어가서 먹어라. 나도 이제 배가 고프네.”

“네. 이장님도 맛있게 드세요.”

“오냐.”

노을을 등지고 내리막을 가는 장 이장님을 배웅한 나는, 매실 방울토마토 절임을 옆구리에 끼고 대문을 열었다.

“컁! 드디어 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노을이 풍성한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에게로 총총 다가왔다.

“호에? 옆구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컁!”

그리고는 오자마자 내 어깨에 올라와 코를 킁킁거렸다.

“역시. 노을이 코는 대단하네.”

노을은 맛있는 건 그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한국에서도 송로버섯 버섯이 났다면, 아마 노을이 다 찾았을 거라는 거에 매실 방울토마토 절임을 걸 수 있었다.

“나는 냄새를 잘 맡는다 컁! 오늘 저녁에는 그걸 먹는 거냐?”

“그래. 이걸로 맛있는 요리해 줄게.”

매실 방울토마토 절임은 내일 먹으려고 했는데. 노을에게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호에! 좋다! 어서 가자! 컁!”

우리 집 말괄량이, 노을이 집을 향해 앞발을 쭉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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