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76화 (76/163)

체험농장! (2)

"우와아-!"

따스한 햇볕이 마을을 감싸 안는 기분 좋은 날.

조용한 마을에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민율이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응! 엄마 여기 오니까 코가 뻥 뚫렸어!"

"그러게. 우리 민율이 말 들어보니까 엄마도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네?"

숨이 너무 잘 쉬어진다며 작은 가슴을 후하후하 부풀리는 아이를 보는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어이구. 이 예쁜 아는 어느 집 아인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마을 어귀를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이를 발견한 장 이장님이 몸을 구부려 앉았다.

"무궁화 유치원 햇님반 하민율입니다!"

장 이장님의 물음에 꼬막 손을 다소곳이 배꼽에 모으고 꾸벅 인사를 하는 아이의 모습은 장 이장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심장을 부여잡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메. 오메. 어디서 이런 예쁜 애가 나타났노. 우리 민율이는 사탕 좋아하나?"

오전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 어귀 팽나무 밑에 모여 참을 먹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고개가 전부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개중에서는 벌써 평상에서 내려와 아이를 향해 다가가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물론 손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달콤한 간식을 들고서.

"사탕···?"

츄릅.

사탕이라는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민율의 입에 침이 고였다.

사탕.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고 엉덩이가 씰룩 거려질 것만 같은 마성의 식품.

하지만 사탕은 하루에 하나만 먹는 거로 엄마와 약속했기에, 착한 아이 민율은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릇 아이들이라면 단것에 환장하는 게 일반적인 만큼, 예상치 못한 민율의 반응에 약과를 건네던 어르신이 눈을 끔뻑였다.

"뭐꼬? 요즘 애들은 이거 안 좋아하나? 산골에만 있다 보니까 요즘 아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네. 우짜지?"

저 예의 바른 아이를 위해 뭐 하나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약과를 든 어르신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런 어르신의 모습에 민율은 짧은 팔을 바동거리며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울망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곤란함을 알아챈 여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었다.

"할부지! 엄마가 먹어도 된대요! 감사합니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크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앞을 보며 다시 한번 인사를 꾸벅했다. 그러고는 고사리 같은 손을 어르신 쪽으로 쭉 뻗었다.

“아이고. 엄마한테 허락 받은기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민율의 손에 약과를 쥐여준 어르신은 이미 아이에게 반쯤 넘어갔다. 너무 귀여워서.

“네! 엄마가 처음 보는 사람이 뭐 주면 절대 먹지 말라고 했어요!”

민율은 할아버지의 말에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칭찬하는 것인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야. 저 애기 말이 맞다. 막 애들한테 아무거나 주면 안 되는 거다. 우리 며늘아는 나한테 애 먹이면 안 되는 걸 한바닥 적어서 보낸다니까.”

그런 민율의 모습에 평상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던 할머니가 손뼉을 짝짝 치며 아이를 칭찬했다.

“아 맞네.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된단다. 미안해요. 애기 엄마.”

할머니의 타박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조심성을 탓하며 고개를 들어 민율의 엄마에게 사과했다.

“어휴. 아닙니다. 어르신. 저야 우리 민율이 예뻐해 주면 좋죠. 민율아, 뭐해?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할아버지의 사과에 민율의 엄마는 화들짝 놀래며 손을 저었다.

“할아버지 고맙숩니다!!”

엄마의 말에 민율은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약과를 받아들고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마나 고개를 숙이는지 허리가 반으로 접힐 지경이었다.

“어이쿠. 그러다 니 넘어진다 조심해라!”

그런 민율의 모습에 약과 할아버지는 쪼그려 앉아있는 상태로 아이가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두 손을 뻗었다. 언제든 아이를 잡을 수 있도록.

“헤헤. 저 인사 잘한다고 상도 받았어요!”

하지만 당사자인 민율은 씩씩하게 고개를 들더니 가슴을 쭉 펴며 활짝 웃었다.

“아이고. 그노마 예쁘네.”

활짝 웃는 민율의 빵빵한 볼 양쪽에는 보조개가 쏙 들어가 있었는데, 노란색 옷을 입어서 그런지 개나리가 활짝 핀 것처럼 예뻤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칭찬에 노란 개나리 찐빵, 민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 예쁜 거 아니고 잘생긴거랬어요!”

“어잉? 아이고. 할배가 또 실수 해버렸네.”

“아니에요! 햇님반 친구들도 그래서 괜찮아요!”

할아버지의 사과에 민율은 조막만 한 손을 할아버지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푸하하! 그러나? 아이고. 고마워라. 그래. 우리 잘생긴 아가는 어느 댁 손주인고?”

귀여운 아이의 행동에 멍하니 눈을 끔뻑이던 할아버지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아, 저희 농장체험 와서요. 여기서 뵙기로 했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이의 엄마에게서 들려왔다.

“체험 농장? 아아. 그 김가가 하는데. 거기 벌써 손님 받나?”

“아이고. 저 영감 소식이 저래 늦어서 어쩌노. 며칠 전에 김 영감이 예약 잡혔다고 난리 치는 거 못 봤나. 아주 야단법석을 떨어댔는데 모르는 것도 재주다. 재주.”

“아···. 그랬나? 내사 뭐 김가 갸가 뭘 하든 신경을 안 쓰니까.”

평상에 앉은 할머니의 핀잔에 할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어이쿠. 우리 손님이 일찍 오셨네. 엄마랑 아기, 두 명 맞죠? 오늘 체험 농장 신청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김 할아버지가 저기서부터 뛰어오더니 그들의 앞에 섰다.

“오메. 내가 오늘 귀한 걸 보네. 저 이상한 서울말은 뭔데?”

할머니의 말마따나 김 할아버지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결혼식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꺼내 바르는 무스까지 꺼내 머리를 세팅한 참이었다. 무스를 얼마나 떡칠했는지 바둑알같이 반질거리는 머리와 이상한 표준어의 조합은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였다.

“냅두라. 나름 손님 맞이한다고 노력하는 모양인데. 놀랄 시간에 핸드폰이나 꺼내 봐라.”

하지만 친구의 이상한 모습에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린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핸드폰? 핸드폰은 와?”

“와긴와노? 동영상을 찍어야제. 우리 한울이가 마을 홍보한다고 맨날 카메라 들고 다니잖아. 이거 가져다주면 좋아할끼다.”

한울이? 홍보? 오! 아는 거다! 드디어 아는 정보에 할아버지는 늦은 정보력 때문에 축 처졌던 어깨를 단번에 활짝 펴며 턱을 치켜들었다.

“아아. 요즘엔 장 이장 손녀가 맡았다 카든데. 그 뭐꼬. 외주? 하청? 암튼 그런 거랬다.”

‘에헴. 니는 이건 모르제?’라는 속의 말이 여실히 드러나는 오만한 표정이었다.

“하청은 무슨. 하청인데 장 이장이 그렇게 얼굴이 좋을 리가 있나. 쉰 소리 말고 얼른 핸드폰이나 꺼내라.”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라 여겼던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정보마저 털린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꺼내다 말고 벌컥 화를 냈다.

“근데 왜 내보고 핸드폰 꺼내서 찍으라 하노! 니는 핸드폰 없나?”

하지만 할머니는 강적이었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태도 변화에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더니 핸드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내고는 차분하게 입을 뗐다.

“있지. 있는데 내 거가 어디 보자···. 언제 바꿨더라···. 6년 전이었나···.”

“핸드폰을 6년이나 썼다고? 그거 고장 안 났나? 어떻게 핸드폰을 6년이나 쓰고 있노!”

“6년이라니. 잘만 되고만. 봐봐라. 액정도 멀쩡하고! 전화도 잘 터지고! 이게 오래됐어도 스마트폰이다! 잘만 되는 거를 왜 바꾸노.”

“니 아들이 뭐라 안 카드나? 금마 성격에 벌써 바꿔줬어도 바꿔줬을낀데.”

“안 그래도 바꿔준다는 거 내가 됐다켔다. 야도 이 세상에 나왔는데 죽을 때까지 내가 쓸기다.”

할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

“...”

깜박했다. 이 할멈이 지독한 구두쇠였다는걸. 뒤늦게 할머니의 실체를 상기한 할아버지는 받아칠 말이 없어 입을 물고기처럼 뻥긋거렸다. 세상에 나왔으니 죽을 때까지 쓴다는 사람한테 더 할 말이 있을 리가.

“그래서, 내 걸로 찍을까? 화질이 구릴 텐디?”

말문이 막힌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다. 냅두라. 내가 찍을게.”

이미 결과를 예상한, 승리의 미소였다.

**

“하하. 노인네들이라 전부 새로운 사람만 들어오면 저렇게 관심이 많아요. 많이 당.황.하.셨.죠?”

자신의 흑역사를 남기기 위해 ‘네 핸드폰으로 찍니, 내 핸드폰으로 찍니’ 투덕거리는 틈을 타 첫 손님을 데리고 신속하게 빠져나온 김 할아버지가 팽나무가 보이지 않자, 조용히 자신을 따라오는 모자를 보며 말했다. 예의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준어를 구사하며.

“...호호. 괜찮습니다. 저야 저희 애 예뻐해 주시니 고맙죠. 사장님도 말 편하게 해 주셔도 되세요. 저희 할머니가 부산분이라, 사투리는 익숙해서요.”

민율의 엄마, 수진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다른 손을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 진짜가? 아이고마. 우리 마누라가 서울서 오는 손님이니까네 서울말로 해줘야 한다케가. 할머니가 부산사람이면 우리보다 사투리 더 심하겠네예.”

수진의 말에 김 할아버지는 반색하며 어색했던 표준어를 단박에 집어던졌다.

“네. 완전 옛날 분이시라, 심한 사투리도 잘 알아들어요. 걱정 마세요.”

평생 표준어라고는 서울 사람이었던 마누라와의 선 자리에서만 썼던 김 할아버지는, 수진의 말에 왠지 모를 중압감이 사라진 것 같아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라믄 내 진짜 신경 안 써도 되는거지예? 아이고. 말하다 보니까 벌씨로 다 왔네. 여깁니다.”

후련한 미소를 가득 지은 김 할아버지는 한 손을 뻗어 비닐하우스를 가리켰다.

*

<김가네 체험 농장. 체험문의 010-2456-8754>

비닐하우스로 가는 입구 쪽에는 나무를 직접 잘라 만든 듯, 투박한 모양새의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투박한 모양과 달리, 그 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는 유려했다.

“아, 그거? 나무판은 내가 만들었고, 글자는 우리 마누라가 세긴 기다.”

민율이 엄마의 손을 잡고 비닐하우스를 들어가다 말고 현판을 보며 멈춰서자, 아이에게 신경을 계속 쓰고 있었던 김 할아버지가 기민하게 알아채곤 설명했다.

“우와아. 할부지! 글씨가 저희 햇님반 선생님보다 더 예뻐요!”

“오. 그렇나? 내가 꼭 우리 마누라한테 전해줄게.”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못 한다고 했나. 김 할아버지는 순수하게 글씨를 보고 감탄하며 칭찬하는 민율의 머리를 흐뭇하게 웃으며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크흠. 그러면 저 나무판은 어떻노?”

온 사방이 비닐하우스고, 밭인 이 동네에서 체험 농장을 하려면 간판, 아니 최소한 나무판에 써놔야 하지 않겠냐는 마누라의 제안에 만든 현판이었지만, 기왕 하는 거 좋은 나무로 하기 위해 손수 산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딴딴한 나무라 어찌나 자르기 힘들던지. 저렇게 만들기 위해 한 고생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현판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기왕이면 거짓 없는, 솔직한 아이의 감상평을 듣는다면, 한 1년쯤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움······. 저 나무는······. 못생겼어요! 어? 달콤한 냄새가 쩌기서 나요!”

도도도.

하지만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인 민율은 제가 본 그대로의 감상평을 남기고 살짝 열린 비닐하우스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 짧은 다리로 어찌나 빨리 뛰는지, 김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민율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하. 현판이 아주 멋진데요?”

폭탄을 떨어뜨리고 사라진 민율의 모습에, 수진이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아들의 실수를 수습해보았지만, 이미 김 할아버지의 어깨는 축 처진 어깨는 도무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똑같은 소리를 들어가. 뭐 타격도 없다 아이가. 마, 싸개싸개 들어갑시다.”

괜찮다며 손을 살래살래 흔든 김 할아버지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살짝 열린 비닐하우스의 문을 활짝 열었다.

훅.

비닐하우스의 문이 열리자, 습하지만 따뜻한 바람이 먼저 수진을 맞이했다.

“어머, 냄새가 너무 달콤해요. 세상에. 이게···?”

바람에 실린 달콤한 향기에 한번 놀란 그녀는, 이윽고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비닐하우스의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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