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농장! (3)
“어머, 냄새가 너무 달콤해요. 세상에. 이게···?”
아이를 데리고 체험농장을 온 건 처음이 아니었다. 시멘트 빌딩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교육적으로는 좋을지 몰랐지만, 아이의 건강에는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자신이 어릴 때만 해도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치며 놀곤 했는데, 이제는 놀이터로 가도, 운동장을 가도 땅은 흙이 아닌 보호 매트가 깔려있어 아이가 흙을 만지며 놀 방법은 근처에 있는 산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도 아이가 어느 정도 커야 가는 게 가능했지, 이제 막 뽀짝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엄마! 얼른얼른!”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체험농장을 알아보고 아이에게 흙을 만질 기회를 줌과 동시에 친정과 시댁 두 곳 다 도시에 있는 탓에 느낄 수 없는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탁월했다. 여태껏 다녔던 체험농장보다 작물이 훨씬 더 파릇파릇해 보였다.
“우리 민율이, 왜 이렇게 신났을까?”
마치 열대 우림에 온 듯 빽빽한 초록색 사이에 앉아 열심히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아이를 향해 수진을 서둘러 달려갔다.
“엄마! 이거 지인짜 맛있어!”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같은 자세로 쪼그려 앉은 엄마를 향해 민율은 빨갛게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내밀었다.
“어머, 이거 민율이가 딴 거야?”
민율의 주먹만 한 딸기를 받아들며 수진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입구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김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바로 먹어도 되냐는 무언의 질문을 하기 위해서. 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가 아닌, 앞에서 들려왔다.
“걱정 말고 드시면 됩니다. 체험시간 동안 수확하신 건, 드셔도 되고, 가져가셔도 됩니다.”
“어머! 깜짝이야! 어후. 죄송해요. 거기 계신 줄 몰라서···. 어···?”
아이에겐 누구든 만나면 인사를 하라고 가르쳐 놓고는 건너편에 사람이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죄로 수진은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다 낯익은 얼굴에 멈춰 섰다.
“제가 반대편에 있어서 안 보였을 겁니다. 안녕하세요.”
저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언제 왔는지 김 할아버지가 뒤쪽에서 반색하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쿠. 우리 신비농장 사장님 오셨는가?”
“신비···. 농장···? 아!”
신비농장이라는 단서에 수진은 제 기억력을 탓하던 걸 멈추고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어머! 안녕하세요!”
신비농장의 사장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이 산골에 있는 체험농장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신비농장 때문이었다. 여느 때처럼 선착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신비농장 스토어에 들어갔을 때였다.
[미화리 산골 마을 체험농장 오픈]
‘어라, 이게 뭐야? 체험농장?’
신비농장의 판매방식인 선착순 시스템이나 예약 문의 등을 안내하는 공지가 아닌, 다른 팝업 공지가 뜬 건 처음이라 놀란 것도 잠시. 수진은 홀린 듯이 공지에 적힌 링크를 클릭하여 체험농장에 신청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우리 민율이 데리고 이번엔 어디로 가나 했는데. 잘됐어. 신비농장에서 운영하는 곳은 아니지만, 신비농장에서 홍보하는 거니까, 잘하면 신비농장에 직접 가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제보다 잿밥에 더한 관심을 가지고 집에서 무려 4시간이나 떨어진 이곳으로 왔건만. 어떻게 저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는지! 수진의 눈은 당혹스러움을 내비친 게 언제였다는 듯, 반가움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
“삼쵼! 이건 모에요?”
“어, 그건 말이지···.”
마을 사람 중 유일하게 체험농장을 선택한 김 할아버지의 첫 사업인 만큼, 여러 가지로 도와주기 위해 왔건만. 찐빵처럼 빵빵한 볼을 하고 힘들지도 않은지 오리걸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민율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한 칸 너머에서 민율이 한 번씩 집어먹은 작물들을 수확하며 이쪽을 보는 민율의 어머니의 눈빛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오호호. 민율아 그건 블루베리야.”
“블루베리! 엄마! 그럼 내가 여태 집에서 먹던 건 블루베리가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일까?”
“맛이 완전히 달라!”
“어머? 얼마나 다르길래? 우리 민율이가 그럴까?”
민율은 저 멀리서 제가 먹고 있는걸 보고 블루베리라고 하는 엄마를 향해 도도도 뛰어가 엄마가 블루베리라고 부른 것을 쑥 내밀었다.
“엄마! 요기!”
눈을 부릅뜨며 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먹어보면 엄마도 내 말이 뭔지 알겠지!
“어머, 블루베리 알이 엄청 크네. 우리 민율이가 가져왔으니까 한번 먹어볼까?”
“응!”
기대로 반짝거리는 아이의 눈을 본 수진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민율의 손에 있어서 그런지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배는 더 커 보이는 블루베리를 입에 넣었다.
“...어라?”
블루베리라 함은, 눈 건강에 좋다고 해 매번 챙겨 먹고 있긴 하지만. 달콤함보다는 특유의 시큼함과 밍밍해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맛있는 과일이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한번 씹었을 뿐인데 입안 가득 팍하고 터지는 과즙은 과연 민율이 다른 과일이라고 오인할 만큼 달콤했다.
“내 말이 맞지?”
민율은 제가 준 블루베리를 맛보고 눈이 동그래진 엄마를 보며 작은 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가슴을 쭉 폈다. 아이는 가슴을 편다고 폈지만, 가슴보다는 볼록한 배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어머. 그러게. 우리 민율이 말이 맞네.”
올챙이 같은 아이의 배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자, 간지러운지 민율은 ‘히힛’하고 웃으며 재빨리 원래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니, 옆에서 작물들을 설명하던 김 할아버지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맛이 다르지예?”
“네. 블루베리 아닌 줄 알았어요. 여기가 물이 좋은가요? 사실 저도 신비농장에서 추천해서 왔는데···. 신비농장도 그렇고 사장님 밭도 그렇고 다 맛이 엄청나네요. 산지라서 그런가?”
“흘흘. 우리 동네가 산 바로 밑이라 물 좋고, 공기가 좋긴 하제! 근데, 원래 우린 것도 밖에서 파는 거랑 맛이 비슷했다.”
“정말요?”
“고롬.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그런 사소한 거로는 거짓말하면 안 되지!”
그럼 큰 거짓말은 해도 된다는 건가? 라는 생각하며 수진이 눈을 끔뻑이자, 김 할아버지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게 다 우리 한울이 덕분이제!”
“한울이요···?”
“아. 한울이라카면 모르제. 저기 저 있는 신비농장 사장!”
“아···.”
“쟈가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여 와서 농사 짓는다 할 때 다 뜯어말렸거든? 젊은 아가 여 와서 할 게 뭐 있냐믄서. 그리고 농사도 막 씨만 뿌렸다고 그냥 되는 건 아니거든? 때맞춰서 물도 줘야 하고, 비료도 뿌려야 되고, 소독도 해야 되고,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고···. 암튼, 할 게 억수로 많다 이 말이지.”
“오···. 그렇군요.”
수진은 김 할아버지의 말을 경청하며 따던 걸 멈추고 소쿠리에 있는 딸기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이런 스토리는 아주 귀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비농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았는데, 이걸 얘기해주면 다들 흥미로워할 게 분명했다.
“와···. 딸기 미쳤다.”
무심결에 집어먹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달콤함이 퍼져 수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딸기는 블루베리보다 더 달제? 우덜도 처음에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가. 아무튼,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하자면, 우리는 다 한울이 저놈이 몇 번 하다가 잘 안돼서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정말요?”
“어! 그렇다니까. 원래 젊은 아들이 농사 쉽게 생각하고 달려드는데,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 내 아들놈도 사업 망했다고 여기서 땅이나 파먹고 산다 해가 내가 1년 동안 한번 해보라고 땅을 줬거든?”
“네.”
“근데 다 망치고 집에 갔다 아이가. 지금은 직장 다니고 있는데, 올 때마다 내가 ‘다시 농사해 볼래?’라 카믄, 절대 안 한다고 진저리를 친다.”
으하하!
감 할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농사라면 이제 질색을 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 모습을 보니, 아마도 김 할아버지는 아들을 놀리는 재미로 사는 듯했다.
“그런데 한울이 쟈는 다르더라고? 농사가 저렇게 체질인 아는 내가 머리털 나고 첨 봤다니께!”
호탕한 웃음을 멈춘 김 할아버지는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농사하면 얼굴이 씨 꺼멓지는 게 정상인데, 쟈는 뭘 하는지 가면 갈수록 얼굴이 펴지는 거라! 봐봐라! 저 면상 반짝반짝한 거!”
“그러게요. 무슨 비법이 있나 봐요?”
과연, 신비농장 사장의 얼굴은 혼자만 조명을 받은 것처럼 광이 나고 있었다.
“그게 다 지가 농사하고, 키운 것들을 먹어서 저런다는데···. 나도 처음엔 안 믿었는데 이제는 믿는다! 여 작물들을 보면 딱 알 수 있지!”
“...? 설마···?”
“어. 여기도 우리 한울이가 하라는 대로 했더만 이렇게 된 거 아이가.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그 흔한 벌레도 안 생기고, 아주 튼튼하게 잘 자란다! 맛은 기본이고!”
“오호···.”
“그러니까, 애기엄마도 이왕 온 김에 많이 따먹고 가라. 알았제?”
“네!”
**
체험농장을 마친 뒤, 수진은 민율을 데리고 평상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있느라 뻐근한 다리를 통통 두드렸다.
“으흥흥~!”
하지만 벌써 지친 수진과 달리 민율은 힘이 넘치는지 짧은 다리를 동동거리며 평상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딸기! 딸기! 세상에서 제일 죠아!”
“그렇게 맛있어?”
딸기를 얼마나 먹었는지 노란 상의는 딸기 물로 붉게 물들고, 안 그래도 볼록 나온 배는 정말로 올챙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많이 먹는 건 좋지만, 탈이 날까 인제 그만 먹으라고 수진이 제지하려고 할 때였다.
“읏차. 자 여서 잼 만들어서 갖고 가면 됩니다.”
김 할아버지가 버너와 냄비, 설탕, 그리고 주걱이 담겨있는 상자를 가져와 평상에 내려놓았다.
“어? 잼! 저 잼 진짜 잘 만드는데!”
몇 번의 체험농장 경험으로 잼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 민율이 발딱 일어나 김 할아버지, 아니, 잼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반기며 손뼉을 짝짝 쳤다.
“엄마야, 니가 잼도 만들 줄 아나? 대단한데?”
“네! 제가 만들어서 할부지도 줄게요!”
“그래? 그럼 내 기대하고 있을게. 어디 보자···. 그럼 할아버지는 빵을 좀 가꼬 와야겠다. 불조심하고 있어라!”
“네!”
“감사합니다.”
수진은 사이좋은 둘의 모습을 보며 말리려던 걸 그만두었다. 대신 가스버너를 앞으로 끌어와 냄비를 올리고 말했다.
“그럼 민율이, 엄마랑 같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잼 만들어볼까? 어떤 거로 만들래?”
비닐하우스에서 따온 작물들은 총 딸기,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3가지. 보통 딸기로만 잼을 만들었지만, 종류가 많은 만큼 수진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엄마의 질문에 포옹한 볼을 한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마침내 결정했다는 듯, 두 주먹을 옴팡 쥐고 말했다.
“다! 다! 만들래요! 딸기 잼! 블루베리 잼! 방울토마토 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