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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79화 (79/163)

커피? 커피! (2)

“쉿!”

김 할아버지는 검지를 입술 앞에 대더니, 테이블을 지지대 삼아 상체를 더 앞으로 내밀었다. 진지한 할아버지의 행동에 나도 덩달아 숨을 죽이고, 평상의 대화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여태까지 마셔본 믹스커피 중에서 최고야. 최고!”

한 손으로 믹스커피를 받쳐 든 수빈의 엄마는 다른 손으로 따봉을 만들어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얼씨구!

맛있는 걸 먹었을 때 저절로 생긴다는 진실의 미간까지 나타난 걸 본 김 할아버지는 소리를 죽이고는 섀도우 복싱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정말? 어우. 입맛 까다로운 수빈 엄마가 그렇게 칭찬하는 거면 나도 먹어봐야겠는걸?”

수빈 엄마라는 사람의 입맛이 꽤나 까다로운 편인 듯, 그녀의 진실의 미간을 확인한 일행이 고개를 매점 쪽으로 돌렸다.

“...저기, 사장님, 주문 그쪽에서 하면 될까요?”

“아휴. 아닙니더. 벌써 들었다! 내가, 아니. 제가 후딱 타서 드릴게예? 쪼매만 기다려보소!”

조심스럽게 주문 방식을 물어보는 여자에게 김 할아버지는 솥뚜껑만 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섀도우 복싱하며, 이곳을 부술 것같이 무음으로 기쁨을 표현했던 할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둘러 믹스커피를 섞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쨔합니다! 할부지!”

커피를 주문시킨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옆에 있던 여자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배꼽에 얹고 인사를 했다.

“오구오구. 예뻐라. 그래그래. 할아버지도 감사합니다-.”

아이가 허리를 펴고, 오동통한 단풍잎 같은 손이 여전히 배꼽 위에 올려진 것을 확인한 김 할아버지가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쪽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다, 아이와 같은 포즈로 화답을 해 주었다.

“우와! 할부지! 감쨔합니다-!”

김 할아버지의 행동에 아이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양팔을 퍼덕거리더니, 다시 한번 허리를 접고 꾸벅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이쁜 걸 어쩌누. 한울아, 너무 예쁘지 않나? 요즘 아들은 우째 다 저렇게 이쁠꼬.”

“그러게요.”

“아이고!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제! 저 얼라가 내한테 인사를 했는데, 뭐라도 손에 쥐여 줘야지.”

“...?”

저렇게 귀여운데, 예의 바르기까지 한 아이에게 인사를 받았는데 가만 있을 수는 없다며 김 할아버지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래! 아가야, 이거 좋아하나?”

김 할아버지는 커피를 제조하는 중이었기에, 간이매점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체를 있는 데로 뻗은 뒤, 손을 쭉 내밀었다. 할아버지의 쭉 내민 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과자가 들려있었다.

“오와아-.”

김 할아버지의 손에서 흔들리는 과자를 발견한 아이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타박. 타박.

아이는 홀린 것처럼 두 손을 앞으로 쭉 뻗고는 김 할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당황한 듯 아이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 어···? 과자···! 으으···.”

과자와 멀어진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좋아하는 과자에서 멀어진 것이 못내 억울한 듯 불퉁한 볼을 한 아이의 단풍잎 같은 손은 주먹이 꾹 쥐어져 있었다.

만두.

콕 찌르는 순간 터질 것 같은 아이의 볼과 세게 쥐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실통실한 아이의 손은 무섭기보다는 만두가 생각났다.

“우우···.”

“어? 울면 안 돼. 진규, 뚝!”

여자는 입술을 삐죽이며 한바탕 울 시동을 거는 아이를 품에 안아 얼렀다. 하지만 이미 과자에서 멀어져 기분이 우울해진 아이를 달랠 수 없었다.

“우에에엥-! 엄마 미워!”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팔다리를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얘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엄하게 쳐다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이고. 한울아, 어쩌노. 내가 또 사고를 쳤는갑다.”

아이의 땡깡에 김 할아버지는 자신이 과자를 괜히 보여줘서 그런 거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사고라뇨. 오해죠.”

김 할아버지가 첫 손님인 민율 모자를 맞이했을 적. 할아버지는 자신과 동향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민율 모자에게 친근하게 대했다. 한마디로 말을 편하게 했다는 것. 물론 민율 모자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광경을 할머니에게 들켰다는 것.

‘으이구! 으이구! 영감! 손님한테 말을 놔버리면 어쩌노! ‘손님은 왕이다!’라는 거 모르나?’

무려 미화리 산골 마을 체험 농장의 첫 평가를 해 줄 ‘첫 손님’에게 반말이 웬 말이냐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할머니에게 김 할아버지는 반항했다.

‘뭐라카노! 무슨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노! 요즘 신세대들은 아래위 분간 없이 편하게 지낸다더만!’

‘뭐라꼬? 어데서?’

김 할아버지의 반항에 할머니의 눈꼬리가 뾰족하게 올라갔지만, 눈치 없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물음에 당당한 포즈를 취했다.

‘테레비에서 그랬다! 와!’

‘테레비···?’

할머니의 말끝도 뾰족하게 올라갔다.

슬금.

나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위해 어르신들의 곁에서 살짝 벗어났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래. 테레비에서 봤다고 고대로 그랬으니까 나도 테레비에서 본 그대로 할게.’

할아버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할머니는 조용히 팔을 걷어붙이고는 장독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뭐, 뭐하는데? 뭐 할라꼬?’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김 할아버지가 그제야 타임을 외쳐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 철딱서니 없는 김 할아버지를 노려본 할머니가 스산한 어투로 말했다.

‘이리 온나! 테레비에서 막 김치로 싸대기도 날리던데? 나도 함 해볼라꼬.’

‘어잉? 그게 뭔소리고?’

‘니도 테레비에서 그랬다메! 그래서 나도 테레비에서 나온 고대로 해 볼라카는데, 와? 불만 있나?’

‘...알았다. 고치면 된다 아이가. 고치면!’

‘내, 두고 볼끼다?’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과 김 할아버지의 눈을 번갈아 가며 가리키는 할머니의 눈빛은 살벌 그 자체. 할아버지는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로 말투를 고쳤다.

“아이고. 오늘부터 도와주러 온다 캤는데.”

“으아아앙-!”

내가 계속 김 할아버지를 도울 수 없기에, 할머니가 일을 배운다고 한 날이 바로 오늘. 비닐하우스 안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아이와 간이매점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져 계산대에 있는 과자와 이 난리 통 속에서도 만들어진 믹스커피를 들고 평상으로 향했다.

탁.

“맛있게 드세요.”

“아···?”

뚝.

과자가 제 눈앞에 등장하자마자, 아이가 버둥거리던 걸 멈추고 과자에 집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본 나는, 아이와의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우리 멋진 친구 이름이 뭔지 삼촌한테 알려줄 수 있어?”

“진...규!”

“진규구나. 진규는 저 과자가 좋아요?”

“응!”

“얼마나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그럼 엄마는?”

“음···. 하늘보다 땅보다 더!”

“그럼 할아버지가 준 과자는 이따 집에 가면 먹는 게 어때?”

“응! 알겠어요!”

“그래. 착하다. 진규 멋진데?”

“응! 나 멋쪄!”

내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진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일어나자, 비닐하우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한울아, 니 애도 잘 봤나?”

특히나 비닐 벽 안쪽, 간이매점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김 할아버지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양 벙찐 표정이었다.

“회사 다닐 때 종종 봤었죠.”

“회사 다닐 때?”

김 할아버지의 반문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식품회사를 다니다 보면. 아니, 식품회사에 다니더라도 나처럼 개발부터 영업, 판매까지 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게 된다. 특히나 영업의 경우 사람들이 항상 모자라 빈자리를 가끔, 아니 종종 채워야 할 때가 있었다.

“네. 식품 페어 같은 거 하면, 애들도 많이 오거든요.”

타 브랜드의 상품을 제조해 주기도 하지만, 자사 제품들도 있던 만큼 박람회나 페어는 필수로 참석을 했다. 제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만한 행사가 없기 때문.

“아아. 그래서···.”

다른 산업군들과는 달리, 식품과 관련된 행사에는 특성상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겸 오는 가족들이 많다. 행사장 안을 둘러보며, 평소 궁금했던 제품들을 시식할 기회도 많을뿐더러 신제품을 무료로 받을 수도 있고, 행사장 안에서만 하는 할인 혜택도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필연적으로 생기는 사고들에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잘 챙기며 다니지만, 몇몇 아이들은 통제를 벗어나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니다 빽 하니 우는 것. 뿐만이랴. 이걸 사달라고 생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 일단 샘플이건 본 품이건 구분 없이 마음에 들면 뜯어보는 아이. 등등. 사람들이 많은 만큼, 행사장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종종, 아니, 꽤 자주 일어나곤 했다.

“와. 그래도 대단하다 니!”

김 할아버지는 내 말에 손뼉을 치셨다.

“그렇다고 해도 애를 이렇게 빨리 진정시키게 하는 건 힘든 일인데···. 팁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커피를 시킨 규빈의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물었다.

“하하. 제가 아는 방법은 낯선 사람일 때 효과가 뛰어난 거라서요.”

비법이랄게 없었다. 아이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이는 아이이기에 당연한 부분이다. 또, 아이는 본능적으로 대중 앞에서 멋져 보이길 원한다. 특히나 처음 보는 또래들이 많을 때.

“에이. 그래도 알려주세요.”

“음···. 잘 이해시키고, 멋지다고 해주면 되더라고요.”

정말로 내가 아이를 달래는 방법은 다른 게 없었다. 아이의 불만을 들어주고, 칭찬하는 것.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고래보다 더 지능이 뛰어난 아이에게 이 방법은 백이면 백 모두 통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규진을 안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김 할아버지와 나를 향해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매점에서 파는 건데, 그냥 받는 게 실례일 것 같아 말렸는데 더 폐를 끼쳤네요. 사장님도 감사합니다.”

“아이고. 애는 원래 태어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키운다고 하는데, 무얼.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더. 안 그라나?”

“그렇죠.”

어느새 간이매점에서 뛰어나온 김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규진의 엄마가 미소 지었다. 어수선했던 상황이 정리된 그때. 그녀의 뒤로 목을 쭉 빼 무언가를 확인하던 할아버지가 대뜸 물었다.

“근데, 그 커피는 안 먹는감? 그거 좀 식어도 맛있는디······.”

**

며칠 후.

미화리 산골 마을 카페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제목: 체험 농장 가시는 분들 커피 꼭 드세요! (56)]

마을 사람들에게 사업을 제안한 뒤, 내가 개설한 이 카페에는 신비농장의 근황과 마을이 이모저모뿐만 아니라, 카페 회원들에 의해 우리 산골농장에서 이뤄지는 일들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오늘 올라온 이 게시글은 다른 게시글보다 몇 배는 많은 댓글을 달고 있었다. 게시글과 댓글까지 전부 읽은 나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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