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1)
“그게 말이죠, 집을 몇 개 사려고요. 마을에 있는.”
“으잉? 갑자기?”
장 이장님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한 이장님의 반응에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을에 빈집들이 많죠?”
“어. 그렇지. 요번에 장씨네도 손주들이랑 더 가까이 살고 싶다고 서울로 이사갔제, 우리 옆 옆집 할배도 돌아가시가 비어있제···.”
그저 빈집을 물어본 것뿐인데도 장 이장님의 입에서는 마을 빈집들에 대한 정보가 줄줄 흘러나왔다.
“역시. 이장님 정보력이 최고네요.”
“뭐, 이 조그만 마을에 정보력이랄게 뭐 있노. 그저 대소사가 있으면 내한테 다 말하니까 알고 있는 거제.”
그렇다. 이곳은 부동산도 없는 산골의 작은마을. 이런 작은 시골의 매물은 부동산을 통해 구하는 것 보다, 그 마을 이장님을 통해 구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나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장님께 온 것이고.
“그럼 내일 혹시 거래 가능한 집들을 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장 이장님은 정말 집을 구매하려는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보는 건 상관없제. 다들 나가면서 내한테 혹시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아 달라고 부탁하긴 했는데, 이 깡촌에 누가 와서 살라고 하노. 있는 거라고는 논이랑 밭밖에 없는데.”
지금 내놓은 집들 태반이 관리도 잘 안 되어 있어 사더라도 가치가 없을 거라며, 이 깡촌에 살 바에는 조금이라도 시내와 가까운 곳에 사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가만히 할아버지의 주장을 듣던 민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에이. 할아버지, 복돼지 있잖아요.”
“아. 맞다! 우리 복돼지를 잊었네. 갸가 우리 마을 스타지.”
“우리 복돼지 본지 좀 됐는데. 잘 지내고 있죠?”
눈을 반짝이며 멧돼지의 안부를 묻는 민주의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처음 멧돼지를 봤을 때의 반응이 생각나서였다.
‘으아악! 멧돼지! 할아버지! 진짜 멧돼지! 으악!!’
‘꾸, 꾸잉···?’
멧돼지를 보자마자 순간이동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장 이장님의 뒤로 가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새로운 사람을 보게 된다고 강 할머니가 새로 만들어준 리본을 예쁘게 하고 있던 멧돼지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을 쳤을 정도였다.
“저 이번에 멧돼지한테 주려고 막걸리도 사 왔어요! 멧돼지가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어? 한 번도 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하이고. 한울이 니가 모르는 것도 있네? 멧돼지들이 막걸리에 환장한다아이가. 새참 먹고 막걸리 남겨두면 대번에 와서 먹어가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막걸리만큼은 다 마신다 아이가.”
“아···.”
장 이장님이 막걸리를 다 마시는 이유는 멧돼지 때문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멧돼지 데리고 내려올 테니까 그때 줘요.”
현재 멧돼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닐하우스 앞에서 고라니와 함께 경비 역할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오케이! 영상 찍어야지! 감사합니다! 악!”
민주는 내 말에 두 팔을 번쩍 들고는 내일 멧돼지를 찍을 준비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민주야! 괘안나? 조심해라! 어휴···. 쟈는 이제 어른이 됐는데도 아직도 천방지축이다. 언제 어른이 될라꼬 저러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다 식탁 다리에 무릎을 부딪쳐 콩콩거리며 주방에서 사라지는 손녀를 본 장 이장님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할 일은 잘하잖습니까.”
아직도 몸만 컸지 망아지가 따로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장 이장님은 내 말에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글긴 하제? 민주 쟈가 좀 덜렁대기는 해도, 지 맡은 일은 어릴 때부터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아. 맞다. 그래서, 내일부터 집을 좀 보여 달라꼬?”
손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장 이장님은 조금 전만 하더라도 부정적이었던 우리 마을 부동산 소개를 자처했다.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네. 있는 거 다 보고 싶습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집으로 찾아오신 장 이장님과 함께 동네의 빈집 투어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저기 그 뭐냐. 이 집 아들이 의사 되가지고 현수막 걸었던 거 기억하나?”
첫 번째 집은 바로 마을의 현수막을 담당했던 삼촌이 살던 집이었다.
“당연히 기억하죠. 저 어릴 때 마을에 현수막 걸리면 다 그 삼촌이었으니까···. 잊을 수가 없죠. 그런데 언제 이사하셨대요?”
마을 어귀는 물론이거니와, 저기 읍내까지 걸려있는 현수막을 잊기엔 그 수가 매우 많았다. 똑똑하기로는 도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았던 삼촌이었으니. 하지만 삼촌만 서울로 갔을 뿐, 삼촌의 부모님들은 내가 할머니를 뵙기 위해 마을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살고 있는걸 보았기에, 언제 이사를 하였는지 궁금해졌다.
“갸가 서울서 지 부모님 모신다고 집을 하나 샀다 카드라고. 간지 한 1년 된 거 같은데?”
“오.”
1년 전이면, 그래도 시간이 꽤 지났다. 하지만 그런데도 집은 사람이 사는 것처럼 깔끔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장 이장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는 그냥 별장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놔두고 갔는데, 가서 적응을 잘하는지 도통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 저번에는 전화 와서 뭐라는 줄 아나?”
“뭐라고 하셨는데요?”
“서울 가보니까 지가 원래 날 때부터 서울 체질이었던 것 같다고, 이 집 좀 관리해 달라 카드라.”
그건 바로 이장님이 여태 이 집을 관리한 것.
달칵.
장 이장님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뭇잎 하나 없이 깨끗했던 마당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내부가 드러났다.
“이야. 깨끗한데요? 지금도 누가 살고 있다고 해도 믿겠어요.”
얼마나 관리를 잘해 놓았는지, 정말이지 누군가가 살면서 매일 청소를 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흘흘. 내가 시간만 나면 와서 쓸고 닦는다 아이가. 인테리어도 한 지 얼마 안 돼서 신식이다.”
과연 장 이장님의 말대로 집안은 노란 장판 대신 클래식한 분위기의 강화마루가 깔려있었고, 벽 또한 일반 벽지로만 마감한 게 아니라, 몰드를 사용해 멋을 내었다.
“그렇긴 한데···. 가격이 꽤 나가겠는데요?”
깨끗하고 좋은 인테리어는 좋지만, 보통 이런 매물의 경우에는 값이 비싼 게 일반적이다.
“어. 좀 비싸긴 하다. 2억은 줘야 할구로?”
“음···.”
2억. 집을 사기에 적다면 적을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이곳은 깡촌 중에서도 깡촌. 이곳 산골 마을로 오는 버스가 하루에 딱 2대밖에 없다는 생각한다면 굉장히 비싼 금액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싼 금액에 나는 현관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좀 비싸긴 하제?”
그런 내 모습을 본 장 이장님은 방문들을 열던 걸 멈추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것도 그런데, 제가 원하는 용도의 집과는 좀 달라서요.”
“그래? 그럼 뭘 원하는지 함 말해봐라. 원하는 게 딱 정해져 있으면 더 찾기가 편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술을 마시느라 장 이장님께 어떤 형태의 집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부동산에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방 몇 개짜리를 보여달라고 하는데···. 이건 나의 실수였다.
“오래된 고택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기와집. 나무로 뼈대를 만든 옛날 집이요. 마당도 좀 넓었으면 좋겠고, 창고가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아이구야. 원하는 게 많기도 하다. 가만있어보자···.”
내 요구조건들을 들은 장 이장님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요구가 골치 아픈지 한참을 중얼거리던 이장님은 몇 군데를 추렸는지 손가락을 모두 접으며 물었다.
“내도 제일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 예산은?”
“8천만 원 미만으로 부탁드립니다. 아, 집안은 어떻게 생겨도 괜찮습니다. 제가 리모델링 할 거라.”
“오케이! 알았다! 그럼 리모델링 안 한 집들을 보여주면 되겠네! 아이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걱정 마라! 니가 원하는 집 여기 천지삐까리다. 참고로 지금 본 집이 여기서 제일 좋은 집이다. 가자!”
리모델링을 할 거라 내부는 상관없다고 하자, 장 이장님은 살풋 찌푸렸던 미간을 활짝 펴고 앞장 서기 시작했다.
**
“자! 여기는 7000만 원짜리!”
마을 어귀와 가까운 기와집. 마당 한켠에 있는 커다란 대추나무가 인상적인 집이었다. 하지만 마당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창고 지붕이 슬레이트라 탈락.
“그러면 여기는 어떠냐! 5500!”
8천만 원짜리 집에서 나와 몇 걸음 걷지 않은 곳에 있는 3번째 집은 마당도 넓고, 지붕도 내가 원하는 기와였기에 꼼꼼히 둘러 보려고 했지만, 내 어깨에 앉은 노을의 반대로 탈락.
[저 집은 화장실이 별로다! 컁!]
세 번째 집에 들어서자마자 노을은 풍성한 꼬리를 탁탁 내려쳤었다. 꼬리가 잔뜩 부푼 모양이 무언가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그 원인이 화장실일 줄이야.
[호에? 왜 화장실이 별로인지 안 물어보는 거냐?]
노을은 자신의 말에 두말도 없이 뒤를 돌아 그 집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들은 걸 보고 싶지 않은 심리랄까.
노을이 반대한 집을 나와 몇 군데를 더 둘러 보았지만, 생각보다 나와 노을의 의견이 일치하는 집이 없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노을이 화장실이나 창고, 혹은 우물 안을 가리키며 꼬리를 탁탁 쳤기 때문. 노을이 괜찮다고 하는 곳은 이제는 폐기물로도 잘 처리가 안 되는 석면 같은 것들이 있는 곳이거나.
그렇게 몇 군데를 더 돌았을까.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나를 안내한 장 이장님이 낡은 대부분을 가리키며 충격적인 소리를 내뱉었다.
“자! 그럼 이건 어떠냐! 1800만 원!”
“예? 얼마라고요?”
장 이장님의 마지막 발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분명 숫자는 집값일 텐데, 말이 안 되게 저렴한 탓이었다.
“아이고. 니 귀 안 좋나? 젊은 아가 이제부터 그럼 우짜노. 1800만 원이라고. 와? 너무 비싸나?”
다시 한번 집의 가격을 들은 내가 벙찐 표정을 짓자, 장 이장님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래된 나무문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열었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자! 함 봐라!”
-끼이이익-.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없는 녹슨 경칩이 요란한 소리를 뿜어내며 문을 움직였다.
-파사삭.
문을 연 것만으로 먼지가 휘날려 손을 휘저으며 안으로 발을 내딛자,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봄이다 못해 조금 있으면 여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낙엽이라니. 때 이른. 아니, 철 지난 낙엽이 아무렇게나 놔 뒹구는 모습을 본 나는 탄성을 터트렸다.
“어째? 마음에 드나?”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관찰하느라 바쁜 나를 보며 장 이장님이 물었다.
“장난 아닌데요?”
장 이장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컁! 좋은 냄새가 난다! 찬성이다!]
노을이는 꼬리를 살랑거렸다.
오늘 처음으로 노을과 나의 의견이 통일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