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2)
[컁! 좋은 냄새가 난다! 찬성이다!]
노을의 기분 좋은 평가가 울려 퍼지고.
“그래? 하기사. 여기가 괜찮지.”
노을의 평가를 들은듯한 장 이장님의 대답이 들려왔다.
“들리세요?”
혹시나 노을의 목소리를 들으시나 싶어 넌지시 물어봤지만, 장 이장님은 내 질문에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라카노. 그럼 니 목소리가 들리지 내가 뭐 귀신이랑 얘기하나? 내 아직 귀 안 먹었다. 니가 쥐새끼만큼 작게 말해도 다 듣는다!”
반응을 보니 노을의 말은 듣지 못하는 모양. 확인을 마친 나는 안심하고 고개를 돌려 1800만 원짜리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대학을 가기 전, 평생을 이곳에서 산 나에게도 이 집은 생소했다.
“그럴 수도 있지. 이 집 혼자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으니까.”
보통 마을의 집은 이웃집끼리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그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이 작은 마을에도 주거 구역과 논밭 등의 일하는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 셈. 하지만 장 이장님의 말씀대로 이 집만 이상하게 마을 주거 구역이 아닌 밭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누가 사셨어요?”
어릴 적 내가 아무리 쏘다녔다 하더라도, 그건 집 주변 한정이었다. 내 놀이터는 뒷마당과 이어진 대나무 숲. 그리고 대나무 숲과 이어진 산이었다. 집과 완전 반대편인 이쪽으로는 온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가 누가 살았냐믄···. 하···. 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잠깐만 있어봐라. 내 생각해 볼 때 동안 니는 여기 좀 둘러 봐라.”
내 질문에 장 이장님은 하도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집주인이 가물가물하다며 나를 향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컁! 한울! 이쪽이다!]
장 이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을이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앞장섰다.
“그럼 전 뒷마당 좀 보고 오겠습니다.”
“어어.”
골똘히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는 장 이장님께 가는 곳을 알린 나는 천천히 노을의 뒤를 따라가며 집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지붕은 기와···.”
전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본채는 군데군데 거미줄이 쳐져 있었는데, 다행히 벽에는 금이 간 곳은 없었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가 만져본 기와도 진짜였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기와가 아닌 진짜 진흙을 반죽해 만든 기와.
“역시 우리 선조들은 대단하시다니까.”
군데군데 낀 먼지를 보자면, 이 집이 얼마나 관리가 안 되어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이루는 것들은 멀쩡한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이야. 이거 앵두 아니야?”
앞장선 노을의 뒤를 따라 거미줄이 제거된 길을 걸어 집의 뒤로 가니, 대문이 있는 앞마당보다 더 넓은 뒷마당이 나왔다.
“컁! 맞다!”
수풀이 무성한 뒷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었다.
“앵두나무! 자두나무! 이건 복숭아다! 컁!”
“오···.”
벚꽃처럼 생긴 하얀 꽃이 가지에 소담히 핀 앵두나무만 알아본 나와 달리, 노을은 나무 사이를 총총 뛰어다니며 미처 내가 알아보지 못한 나무들의 종류를 알려주었다.
“대추나무도 있다! 컁!”
과실나무만 4종류가 있는걸 보니 이 집의 전 주인은 과일을 정말로 좋아한 모양.
“이야. 엉게도 있네.”
엉게. 개두릅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엄나무에서 자라나는 나물의 일종이었다. 엄나무 순은 두릅처럼 봄기운을 가득 품고 자라나, 봄이 되면 나는 할머니를 따라 엄나무 새순을 따러 다니곤 했다.
“컁? 이것도 먹는 거냐?”
“그럼.”
“가시가 이렇게 많은데! 먹다가 피가 나면 어쩌냐?”
풉.
노을의 걱정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노을의 질문은 엄나무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꼭 할법한 질문이었다.
“엄나무에서 우리가 먹는 부분은, 이 부분.”
똑.
나는 손을 뻗어 엄나무 가지 끝에 연한 초록빛을 띠는 순을 떼어냈다.
“컁! 안 아프냐?”
엉게 나뭇가지는 두껍고 뾰족한 가시로 덮여 있는데, 가시가 있는 건 이 순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것 봐봐. 괜찮아.”
놀라서 멀찍이 서 있다, 내게로 도도도 달려온 노을을 보며 나는 방금 딴 엄나무 순을 내 팔에 문질러 보였다.
“호에에!! 에···?”
그런 내 모습에 기겁하며 두 앞발을 양 볼에 대던 노을은 아무렇지도 않은 내 팔을 보곤 내 손에 있는 엄나무 순을 향해 조심스럽게 앞발을 뻗었다.
“호에! 아프지 않다!”
“그렇지?”
엄나무 순은 단단한 가시를 가진 고동색의 가지와는 달리 아주 여렸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아아. 이건 주로 쌈으로 싸 먹지. 노을이 삼겹살 먹을 때 상추에 싸서 먹어봤지?”
“그렇다! 나는 이제 쌈도 아주 잘 싼다! 컁!”
삼겹살이라는 소리에 침을 주륵 흘리던 노을은 자신도 이제 쌈을 아주 잘 쌀 수 있다며 가슴을 쭉 내밀었다.
“오늘은 쌈의 신세계를 알려주지.”
“컁! 바라던 바다!”
엄나무 순은 물에 살짝 데친 후 단독으로 간장에 찍어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지만, 쌈처럼 고기를 싸서 먹게 되면 또 다른 맛을 선사했다.
“일단 여기 좀 다 둘러보고.”
새로운 맛이라는 소리에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노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엄나무 밑에서 벗어났다. 아직 집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마음대로 딸 수는 없었다. 최소한 장 이장님께 여쭈어보고 따는 게 순서였다.
“컁! 알았다! 그럼 나는 화장실을 보고 오겠다!”
“그래.”
첫 번째 집부터 화장실을 확인했던 노을은, 이번에도 화장실을 확인해 보겠다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퐁.
“오. 이번에는 집 안에 있나 보네?”
나는 기와집의 벽을 뚫고 들어가는 노을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래된 시골집들 대부분은 화장실이 밖에 있다. 정말 저렴한 집들은 도시에서 자란 현대인들이라면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화장실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재래식 같은. 그런 면에서 1800만 원밖에 하지 않는 집 안에 화장실이라니. 하수도가 설치되어있다는 말이니, 공사도 쉬울 것이다.
“그럼 나는 밖을 좀 더 둘러 볼까?”
이미 노을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테니, 나는 노을을 따라다니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던 뒷마당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오. 여기는 밭이었나 보네. 헐. 이건 장독대 아니야?”
관리되지 않은 수풀이 무성히 자라있는 곳을 발로 밟으며 안을 돌아다니니 밖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여기 씨 간장 같은 거 있으면 대박인데.”
먼지가 뿌옇게 쌓인 장독대는 총 6개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중 3개는 깨져있었다.
“여긴 조금만 정리하면 될 것 같고···.”
과실나무와 장독대를 제외한 나머지를 싹 밀어버리면 꽤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내부를 좀 볼까? 읏차.”
옛날에 지어진 기와집들은 대부분 앞뒤로 문을 낸다. 무더운 여름에는 앞뒤로 난 문을 활짝 열고 마루에 누워만 있어도 시원할 수 있도록.
-끼익.
뒷마당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문은 다행히 열려있었다.
“어후. 먼지가···.”
힘을 주어 문을 열자, 녹이 슨 문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 먼지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자, 햇살이 가득한 마루와 마주했다.
“...”
주황색의 밝은 햇살은 마루를 가득 감싸 안고 있었다.
“컁! 왔냐? 여기 화장실은 괜찮다!”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마루를 가로질러 노을이 꼬리를 살랑이며 나타났다.
따스한 햇살이 노을의 주황빛 털을 비추니, 노을의 주변이 빛이 산란하듯 반짝였다.
“여기다.”
“호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기숙사를 떠나 처음으로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 때. 도대체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집은, 주인이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마음이 가는 곳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집의 문을 열자마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노을아, 너는 여기 어떤 것 같아?”
비록 나무 대들보와 햇볕을 제외한 집안의 내부는 모두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했다. 노을의 마음에도 쏙 들었을 거라고.
“따뜻해서 낮잠을 자기에 좋을 것 같다! 컁!”
“오케이.”
노을의 의견까지 들은 나는 앞마당을 향해 있는 창문을 단번에 열어젖히고 외쳤다.
“이장님! 계약하시죠!”
**
“니 다시 한 번만 더 생각해봐라.”
장 이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내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시간은 많다 아이가? 저 집 거의 폐가에 가까운데 아무리 싸다 해도 손볼 곳이 많다. 저거 고치려면 머리 빠게질구로?”
장 이장님은 햇빛이 잘 들어올 뿐이지 싹 뜯어고쳐야 하는 집의 상태를 계속해서 내게 상기시켜주었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거라며 장 이장님은 계속 말리셨지만, 나는 벌써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철거라고 해봤자, 집안에 별거 없으니 300안에서 모두 해결이 되어 보였고, 설비와 전기를 전부 다시 따야 할 것 같았지만, 날씨가 따뜻해 시멘트 양생도 잘 될 터였다. 남은 건 목수인데···. 실력 좋은 목수 2명만 붙으면 저 집을 싹 다 바꾸는데 2주도 채 걸리지 않을 터였다.
“내는 분명히 말렸다? 낸중에 후회하지 마라?”
몇 번을 말해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나에 장 이장님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집이 문제가 아니라, 마당에 있는 풀도 다 베야 되고, 앞마당에는 연못도 있더구먼? 이끼가 잔뜩 끼어가꼬 시꺼멓던데 그거 언제 다 할 거고. 가뜩이나 니 일도 많은데···. 아이고마. 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도 장 이장님은 계속해서 그 집의 단점을 줄줄이 읊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씩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여기 도장 찍으면 된다. 계약금은 이 계좌로 보내고. 살 사람 있다니까 오후에 당장 인감 들고 온단다.”
“좋네요.”
“좋기는 뭐가 좋노. 아이고.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설마 싶어서 보여줬구먼, 진짜 계약할 줄 알았으면 안 보여줄 걸 그랬다.”
“에이. 이장님, 제가 딱 찾고 있는 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나중에 리모델링 싹 다 하고 보여드릴게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당연히 보여줘야지. 안 보여주려고 했나? 니 공사할 때 도움 필요하면 재깍 말해라? 알았제? 풀이라도 제초기 들고 가서 베 줄라니까. 알았제?”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 장 이장님의 애정어린 잔소리는 더욱 심해졌다. 어차피 아직 계약금을 보내지 않았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거였다.
-지잉.
그런 장 이장님을 향해 나는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매매대금의 10%인 180만 원의 이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문구가 또 있었다.
“아이고. 나는 이제 모른다!”
“걱정 마세요. 도와줄 친구들이 많아서요.”
나는 걱정을 좀처럼 놓지 못하는 장 이장님을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내 어깨에는 풍성한 꼬리를 살랑거리는 노을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풀은 내가 다 정리하겠다! 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