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3)
장 이장님의 말대로 마을과 동떨어진 곳의 집주인은 계약금을 보낸 당일 오후에 마을로 와 집을 넘겨주었다.
“꽈아악! 여기가 어디냐? 새로운 집이냐?”
“나는 풀을 처리하러 가겠다 컁!”
“킁! 먹을 게 별로 없다···.”
알고 보니 그 집의 주인은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라 재미 삼아 해본 경매에서 싼 가격에 덜컥 낙찰을 받은 뒤, 인프라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우리 마을의 모습을 보고 바로 장 이장님께 혹시 살 사람이 있다면 저렴하게 넘길 테니 팔아달라 부탁을 한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이 아니라 장 이장님도 그 집주인의 이름을 쉽사리 기억하지 못했던 것.
혹시 경매에 넘겨지기 전 그 집의 주인을 아시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장 이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어릴 때 이 집에 어떤 할매가 살았던 거 같은데···. 그 뒤로는 내도 잘 모르겠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릴 적 보았던 할머니 외에는 그 집에서 누가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장 이장님의 말에 나는 재차 물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 혹시라도 인터넷 어느 사이트에 돌아다니는 괴담처럼 이상한 것들이 사는 집일지. 집을 둘러본 노을이 아무 이상 없다고는 했지만, 또 모를 일이다.
‘일? 아니. 없었는데? 그냥 이 집이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주인이 여러 번 바끼가 그렇다.’
하지만 장 이장님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자신이 역대 집주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일하게 이 집만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서 라는 것.
“컁! 한울! 포동이 도망간다!”
“꽈아악! 거기서라 포동!”
장 이장님으로부터 고쳐야 할 것이 많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걱정할 게 없다는 확답을 받은 이 집은 드디어 등기까지 모두 내게 넘어온 오늘, 내 소유가 되었다.
내 소유가 되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 폐가를 정리할 차례.
“포동아, 여기 정리하고 나면 여태까지 네가 먹어 보지 못한 아주 맛있는 걸 만들어줄 테니까 좀 도와줄래?”
우선 나는 비닐하우스와 달리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곳을 단번에 간파하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포동이를 붙잡았다.
“킁. 그게 정말이냐? 내가 여태 먹어 보지 못한···?”
뽈뽈거리며 대문을 넘어가기 위해 앞발을 턱 하니 올리던 포동이 내 말에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내 소유. 오늘 정리가 대충 끝나면 엉게를 따 오늘 저녁 삼겹살과 함께 먹을 계획이었다.
“킁! 뭘 하면 되냐?”
당연히 정령 중 제일의 먹보 포동이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내 발치로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미 포동은 두 앞발을 배 위에 가지런히 놓고선 자신의 능력을 쓸 준비를 한 채였다.
“잠시만. 일단 찹쌀이랑 노을이 할 일 좀 알려주고. 포동이 너는 나랑 같이 움직이면 돼.”
“킁. 알았다.”
포동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내 말에 바로 땅에 털푸덕 앉아버렸다. 나는 내 발등을 쿠션 삼아 앉은 포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뜨거운 눈빛으로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찹쌀과 노을을 향해 말했다.
“찹쌀, 너는 아까 네가 말했던 대로 저기 있는 연못 좀 손 봐줘. 혹시 가능하면 개울물을 연못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꽤액!”
“오케이. 그럼 부탁해.”
“꽤애액!”
아까부터 고개를 쭉 뻗어 앞마당 오른쪽 구석에 있는 연못이었던 무언가를 보던 찹쌀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힘차게 날갯짓했다.
“오케이. 그럼 연못은 찹쌀이가 해결 할거고···.”
연못이 자리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으니, 그것을 연결할 수만 있다면, 항상 깨끗한 물이 찬 연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꽤애애액!
벌써 연못에 도착한 찹쌀은 녹색이다 못해 검게 바란 이끼가 낀 돌에 물대포를 날리기 시작했다.
“컁! 나는 풀!”
찹쌀의 물대포 소리를 들은 노을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렸다. 얼른 자신도 일손을 보태고 싶으니 얘기해 달라는 신호였다.
“그래. 우리 노을이는 마당에 자란 풀 좀 정리 부탁해도 될까?”
“당연하다! 나는 찹쌀이 보다 더 빨리 끝낼 거다 컁!”
슝-.
내 부탁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을은 바람을 일으키며 뒷마당을 향해 달려갔다. 어찌나 빠른지 ‘날아갔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 찹쌀과 노을의 빠름을 목격하니, 새삼 둘이 나와 다닐 때 배려해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우리도 이제 가 볼까 포동아?”
둘의 배려를 생각하며 미소지은 나는, 내 발등에 앉아 이제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포동에게 말을 걸었다. 깊게 잠든 건 아니었는지, 포동이 눈을 끔뻑이며 느릿느릿 내 발 위에서 일어섰다.
“흐아아암-. 준비되었다. 킁!”
앞발을 뻗어 눈을 비빈 포동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먼저 가라는 뜻이었다. 행동이 나무늘보가 뺨칠 만큼 느긋한 포동의 모습에 나는 앞선 정령들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포동이가 있으니까. 좋네. 어깨에 올라올래?”
“킁! 좋은 생각이다!”
**
“킁! 치워야 할 게 많아 보인다!”
내 어깨에 앉아 편하게 집안으로 들어온 포동은 먼지가 잔뜩 쌓인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걸 보고는 콧잔등을 찌푸리더니 뽈뽈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맞아. 여기서 벽이랑 지붕만 놔두고 다 치우려고.”
“알았다. 킁!”
치워야 할 것들을 말해주자, 포동은 앞마당 쪽을 향해 있는 전면 창을 열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능력을 사용해 띄웠다. 그리고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킁! 어디로 두면 되냐?”
아마 작물을 수확해 박스에 넣던 것이 생각난 모양.
“저기 트럭 뒤로 부탁해.”
“킁! 알겠다!”
트럭은 장 이장님의 트럭이었다. 오늘 직접 철거를 한다고 했더니, 철거한 것들을 직접 가져다주는 게 더 저렴하다며 트럭을 내 주신 것.
‘내 일 끝나는 대로 도와주러 갈 테니까 살살 하고 있어라. 알았제?’
거기다 철거까지 도와주신다며 자신이 올 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셨다.
“그럼 이장님 오시기 전에 끝내볼까?”
포동이 능력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던 물건들을 트럭으로 옮기는 걸 확인한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집을 살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멋진 서까래가 노출된 천장은 높은 층고를 자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 요즘 옛날 집들처럼 패널 등으로 서까래를 가려두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거기다 구들장을 제거해 둔덕에 손대야 할 곳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마친 나는, 가까이 있는 벽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이야. 이건 엄청 두껍네.”
헤라를 쥔 손으로 벽을 만지자, 집의 나이만큼이나 많은 벽지의 두께가 느껴졌다.
“한번 해봤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작업을 시작하기 전, 괜히 어깨를 한번 돌린 나는, 벽지가 벌어진 틈에 헤라의 모서리 부분을 꽂아 넣었다.
탁.
“크. 이거지!”
사아악-!
헤라로 인해 벽에서 떨어진 벽지의 끝을 잡고 밑으로 뜯어내자, 세월을 머금은 벽지가 시원하게 벽에서 분리되었다.
“그럼 이 기세를 살려서···!”
사아악-!
사아악-!
헤라를 들이미는 족족 기다렸다는 듯이 벽과 분리되는 벽지를 떼고 있자니, 오래된 전자기기에 붙어있는 비닐을 제거할 때 느끼는 쾌감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호에에? 그게 뭐냐? 재밌어 보인다!”
한참을 무아지경으로 헤라 모서리를 벽과 벽지 사이에 박아 벽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뒤에서 노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을이 왔니?”
“컁! 풀들을 전부 다 해치웠다!”
“오. 잘했어.”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라면서도 내게로 제 머리를 내미는 노을. 그런 노을의 모습에 나는 위험한 헤라를 내려놓고 노을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주었다.
“히힛!”
콩. 노을을 쓰다듬고 있는 손에 폭신하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혀왔다.
“킁! 나도 다했다!”
포동이었다.
“와. 진짜 대단한데? 역시 최고다.”
포동의 말을 듣고 눈을 돌리자, 쓰레기로 가득했던 집안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처음에 말한 천장과 벽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창밖으로 보이는 트럭에 실려있었다. 심지어 내가 노을이 오기 전까지 뜯고 있던 벽지까지도.
“....킁!”
내 칭찬에 포동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제 머리를 내 손 쪽으로 들이밀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소리였다.
슥슥.
혼자 하였으면 며칠이 걸려도 다 못할 작업을 얼마나 빨리 끝낸 것인지. 흐뭇한 표정으로 노을과 포동을 얼마나 쓰다듬었을까. 눈을 초승달로 만든 노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도와주겠다! 얼른 해치우고 밥 먹으러 가고 싶다 컁!”
“킁. 동감이다.”
쓰담쓰담은 이제 되었으니, 얼른 남은 걸 마무리 하자는 둘의 모습에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아직 이 집으로 온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일단 여기 벽지 벗기는 거 끝내고, 다음 건물 마무리하고 바로 가자.”
이 집은 특이하게 ‘ㄱ’자 모양으로 되어있었는데, 꺾이는 부분에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못 정리가 끝나면, 찹쌀에게 우물도 한번 봐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건물 하나는 카페로 만들려고 하는 만큼 우물물이 괜찮다면 우물에서 물을 끌어다 음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로는 우리 마을 물을 마시다 다른 곳의 물을 마시면 맛이 없어 못 마신다고. 여하튼, 중간에 자리한 우물 탓에 현재로서는 건물 안에서 다른 건물로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하여, 일단 이곳의 작업을 끝내고 이동하자고 한 것. 하지만 내 계획은 물고 있던 꼬리를 퉤! 뱉고는 벌떡 일어나 포동에게 지시하는 노을에 의해 변경되었다.
“컁! 포동! 너는 먼저 가서 정리해라! 난 한울을 괴롭히는 종이들을 없애고 따라가겠다!”
“킁! 알았다!”
노을의 지령을 받은 포동은 벽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 최단 거리로 건너편 건물로 쏙 들어갔다.
“포동이도 빠르네?”
떡하니 있는 문도, 창문도 아닌 벽을 통해 최단 거리로 이동했다는 건 지극히 포동이다웠지만, 그 속도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찹쌀이 날갯짓하는 수준과 비슷했다. 항상 포동은 느릴 거라 생각했던 건 내 편견이라 말 할 수밖에 없었다.
“포동이는 아주 가끔씩 빨라진다.! 원래는 느리다!”
“아···. 오케이.”
노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자, 노을이 아직 벽지가 있는 벽 앞으로 다가가 벽지를 노려보며 내게 물었다.
“컁! 이걸 다 없애면 되는 거냐?”
“어? 어. 그렇지.”
카리스마 넘치는 시선을 벽에 고정한 노을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발톱을 꺼내 들었다.
“다 없애버리겠다 컁!”
파칭!
짧아 보이지만, 노을의 발톱은 바위도 깨부순다. 옛날 벽의 재료 대부분은 바로. 흙. 바위도 부수는 강력함을 가진 노을의 발톱. 노을의 발톱과 벽을 번갈아 보던 나는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중요한 사실에 다급히 노을에게로 손을 뻗었다. 이 둘이 부딪히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
“어? 잠깐만 노을아!”
하지만 발톱 장전을 마친 노을의 앞발은 이미 노을의 이미 기합과 함께 노을의 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야아아압!”
노을의 잘 벼려진 발톱과 벽지가 만난 그 순간.
팡!
노을의 발끝에서 시작된 파공음이 집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