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84화 (84/163)

삽질 (4)

팡-!

굉장한 파공음과 함께 연기처럼 피어나는 먼지.

“잠, 깐······. 쿨럭.”

노을을 말리려 입을 벌리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며 밀려드는 먼지에 하던 말을 멈추고 두 손을 휘저었다.

탁.

휘잉.

한참을 시야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바람이 일더니 집안 가득한 먼지를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캬항! 어떠냐?”

먼지가 사라져 깨끗해진 마루 중앙에 당당하게 선 노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내 꼴은 영락없이 먼지 구덩이를 들어갔다 나온 모양새인데, 먼지구름을 만든 노을의 모습은 먼지 한 톨 없이 반짝거렸다.

“...그래. 너만 괜찮으면 됐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먼지인데, 괜찮다. 어차피 벽지를 뜯으면서 이미 한차례 먼지를 뒤집어쓴 마당에, 조금 더 뒤집어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씻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는 것만 제외하면. 그것보다 벽이 멀쩡한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헐?”

꼬리를 살랑거리며 턱을 있는 데로 치켜든 노을에게서 급하게 시선을 돌린 나는, 노을이 만든 결과물에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어떠냐? 컁!”

별다른 말 없이 벽만 쳐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노을이 다시 물었다.

“대단한데?”

노을의 재촉에 나는 시선은 벽에 고정한 채 노을이 있는 쪽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히힛! 나는 대단한 노을이다!”

내 칭찬을 받은 노을은 제자리에서 컁컁거리며 점프했다. 그런 노을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어이없는 웃음을 입에 걸고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진짜, 대단해.”

여태 내가 헤라로 긁어 떼어냈던 벽지는 노을의 손짓 한 번으로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보통 아무리 벽지를 떼어내더라도 초배지는 벽에 붙어있기 마련인데, 노을이 제거한 부분에는 벽지도, 초배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 그럼 나는 저쪽 벽에 있는 종이들도 끝장내고 있겠다! 컁!”

다른 이물질 없이 오롯이 본연의 재료인 주황빛 황토만 보이는 벽을 보며 연신 감탄하는 내 모습을 확인한 노을은, 컁! 하고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고선 포동이가 이동했던 동선을 따라 다음 건물로 이동했다. 포동이보다 배는 빨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노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저녁 제대로 안 해주면 큰일 나겠는데?”

**

잠시 후.

“컁! 다 끝났다!”

후련한 표정의 노을이 앞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속력을 줄이지 않고 마당 가운데로 간 노을은 턱을 치켜들고 작업을 마쳤음을 알렸다.

“우물은 깨끗하다! 연못은 내가 봐도 훌륭하다! 꽈악!”

노을의 외침에 우물가에 있던 찹쌀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노을의 옆으로 가 섰다.

쿵-.

방금 노을이 나온 집의 창문을 통해 먼지를 빼곡히 뒤집어쓴 잡동사니들이 공중에 둥둥 뜬 상태로 한데 뭉쳐 나오더니, 트럭에 실렸다.

“킁. 배가 고픈 것 같다.”

잡동사니들이 나온 창문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온 포동은 노을과 찹쌀이 모여있는 마당 한가운데가 아닌,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느릿하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도, 포동은 고개를 뒤를 돌려 나를 한 번씩 보는걸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픈 것 같다 컁!”

포동의 행동을 보던 노을도 당당히 치켜든 턱을 내리고는 총총거리는 걸음걸이로 포동의 뒤를 따랐다.

“꽈악? 내가 다시 만든 연못은 구경하지 않고 가는 거냐?”

찹쌀만이 제자리를 지켰다. 고개를 쭉 빼고 대문으로 향하는 노을과 포동의 모습에 찹쌀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구경하고 가야지. 어디 한번 가서 볼까?”

실내에서 함께 작업했던 노을, 그리고 포동과는 달리 찹쌀은 외부에서 홀로 작업을 한만큼, 나도 아직까지 찹쌀의 결과물을 보지 못한 상태이다.

“이쪽이다! 꽈악!”

자신의 결과물을 보러 간다는 내 말에 찹쌀은 기쁘게 날개를 퍼덕이며 앞장섰다.

“컁? 그럼 나도 같이 간다!”

신이나 꽁지깃을 씰룩이며 걸어가는 찹쌀의 뒤를 따라가니, 대문 밖에서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노을이 총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킁···. 그것만 보고 가는 거다.”

노을이 떠나 대문 밖에 혼자 있게 된 포동 또한 무거운 엉덩이를 땅에서 떼어 느릿느릿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것 봐라! 어떠냐? 꽈악!”

결국, 모두를 연못으로 데려가 찹쌀은 한쪽 날개를 연못 쪽으로 펼쳤다.

“오?”

찹쌀의 날개가 가리킨 곳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응달에 있는 연못에는 이끼가 잔뜩 낀 돌들만 가득했었다. 며칠 전 비가 온 탓인지 원래라면 검은 흙만 있어야 할 연못 바닥도 기분 나쁜 질척임을 머금고 있었다.

-졸졸졸.

하지만 찹쌀의 손을 거친 연못은 축축하고 어두운 기운을 품고 있던 게 언제였냐는 듯, 맑은 물소리를 내며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첨벙.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응달이었던 연못은 햇살을 머금은 것도 모자라 물고기까지 품고 있었다. 나는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그야말로 연못을 탈바꿈시킨 찹쌀에게 시선을 돌렸다.

“꽈악! 개울물을 끌어오면서 물고기들도 같이 데려왔다!”

내 시선을 받은 찹쌀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 깃을 부풀리며 제가 한 일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야. 진짜 대단한데? 물고기는 나중에 읍내에서 사 오려고 했는데···. 어떻게 물고기를 넣을 생각을 했대?”

연못 안에 무리를 이루어 유영하는 물고기들은 관상용 어종들처럼 알록달록하지는 않았지만, 맑은 물과 옅은 갈색빛을 띠는 물고기 덕분에 연못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산속 계곡을 보는 것과 같은 청량감이 느껴졌다. 아랫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연못의 깨끗함과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고기까지 가져다 놓은 기특함에 찹쌀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였다.

“물고기는 내 별미다!”

눈을 감고 쓰담쓰담을 받던 찹쌀이 내 칭찬에 별안간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별, 미?”

별미라니. 영락없이 관상용으로 물고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혹여나 잘못 들었나 싶어 찹쌀을 재차 바라보았다.

“꽈악! 맞다! 가끔은 불량식품도 당긴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저 물고기가 불량식품이라니. 비유가 적절하지 않았지만, 찹쌀의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노을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또 어떤 방송에서 봤겠거니 하고. 그러고 보면, 처음 찹쌀이를 만났을 때도 찹쌀이는 넓은 물가를 헤엄치고 다니며 이따금 고개를 물속에 집어넣었었다.

“...그래. 그래도 자주 먹지는 말고.”

그때는 숨이 턱 하고 막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잠깐 넋이 나갔던 탓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는데···. 불량식품이라는 찹쌀의 말에 순식간에 자연 내음이 듬뿍 나던 연못이 가두리 양식장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찹쌀의 작은 양식장으로 보이는 연못에 표정이 조금은 떨떠름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어투가 어떻든 자신만의 가두리 양식장을 만든 찹쌀은 기쁘게 날갯짓하며 말했다.

“원한다면 한 마리는 양보해 주겠다! 꽈악!”

“어···. 그래. 고마워.”

손가락보다 더 작은 물고기를 한 마리 양보하겠다는 말에 나는 떨떠름했던 표정을 풀고 찹쌀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한 마리씩 양보해 준다니, 연못의 물고기가 모두 한꺼번에 없어지는 일은 없겠네.

**

연못을 구경한 뒤, 찹쌀의 뒤를 따라 우물까지 확인한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 장 이장님께 전화하였다.

달칵.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뭐 필요한 거 있나? 한 2시간만 있으면 여긴 끝난다. 가면서 가져갈 테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문자로 남겨놔라. 그럼 내 바빠서 끊는다?]

“...네.”

시크하게 전화를 받은 장 이장님은 속사포처럼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

장 이장님께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나는 통화종료로 깜빡이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로 하려 했던 말을 문자로 보내기 시작했다.

“...트럭 놓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철거가 다 끝났으니, 트럭을 다시 가지고 가셔도 된다는 알림 문자. 처음 장 이장님이 트럭을 빌려주면서 폐기물 처리까지 당신이 할 테니 트럭에 손가락 하나 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경하게 말씀하셨기 때문.

“이제 가자. 얘들아.”

문자를 보내기 전,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르며 내 곁에서 나의 일이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는 정령들에게 말했다.

“컁! 가자!”

“물고기를 좀 가져가는 건 어떠냐? 꽈악?”

노을은 좋다고 내 어깨로 폴짝 뛰어 올라와 자리를 잡았고, 찹쌀 나를 따라서 오면서도 연신 고개를 연못 쪽으로 돌렸다.

“킁···. 저건 안 가지고 가냐?”

하지만 포동은 마당 가운데서 앉아 일어나지도 않고 앞발만 쭉 뻗어 엄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포동의 볼록한 배에 가려 반밖에 보이지 않는 앞발이 가리키는 나무를 보고 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 엉게! 잊어버릴 뻔했네. 땡큐. 포동.”

포동이 아니었으면, 오늘 저녁의 메인요리인 엉게를 나무에서 따지도 않고 갈 뻔했다.

**

한울이 깜빡할뻔한 엉게를 정령들과 함께 열심히 다고 있을 무렵.

“이게 뭔 말이고?”

한울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장 이장은 축사를 청소하던 걸 멈추고 청소용 장갑을 벗고 화면을 확대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트럭 갖다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가져 가라카노?”

오후 일과를 시작하기 전,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트럭을 가져다주었다. 그게 약 12시 30분 정도.

“뭐꼬? 아직 2시도 안 됐나?”

그리고 지금은 1시 39분. 트럭을 가져다주고, 한울과 몇 마디 대화한걸 생각하면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철수를 결정했다는 것.

“아이고. 그러게 그 집 사지 말라니까. 딱 봐도 배보다 배꼽이겠구만···. 나머지 청소는 내일 하고, 도와주러 가야겠네.”

빠르게 철수를 결정했다는 소리는 분명, 혼자서 하다 하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는 소리이다. 집을 소개해준 대가로 한울로부터 수고비까지 받은(한울이 억지로 쥐여주었다.) 이상, 장 이장은 그저 입만 싹 닦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공!일!공!칠!사!....

축사 청소를 내일로 미루기로 한 장 이장은 머릿속에 언제나 저장되어있는 핸드폰 번호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두루루.

[어. 와?]

장 이장이 통화를 건 상대방은 연결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어. 내다. 니 내 좀 도와야겠다.”

재깍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장 이장이 말했다.

[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하는 장 이장의 부탁에 상대방은 어이없다는 듯, 설명을 요구했다. 별것 아니면, 돕지 않겠다는 어투가 핸드폰을 타고 전해졌다. 하지만 장 이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김찬명이, 니 오늘 쉰다메. 나와라.”

[아 뭔데? 이유나 설명하고 나오라 말라 해라. 내 어제까지 손님들 많아서 하루죙일 밖에 서 있었다.]

통화 상대방은 바로,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김 할아버지.

[니가 뭐, 다리 뿌아진거 아니면 내 오늘 집에서 안 나간다.]

김 할아버지는 주말에 힘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예시를 들며 파업을 선언했지만, 장 이장은 그런 김 할아버지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머금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었을 뿐.

“한울이 도울 라카는 건데?”

그건 바로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어서였다.

[으잉? 한울이? 와? 한울이한테 무슨 일 있나? 뭔데?]

“오면 안다. 밭에 있는 집 앞으로 온나.”

상대방이 중요시 하는 점을 정확히 긁어낸 장 이장의 말의 효과는 굉장했다.

[알았다! 바로 갈게!]

-우당탕!

김 할아버지의 준비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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