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1)
“어. 왔나?”
장 이장은 이미 집 앞에 도착해있는 자신의 친구, 김찬명을 보며 여유롭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왔나? 아니, 사람을 불렀으면, 부른 사람이 먼저 나와 있어야제! 그래서 뭔데? 여기 한울이도 없구만!”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주변을 이미 둘러본 김찬명은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인상을 쓰니 더없이 험악해진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장 이장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이고. 사람이 그렇게 성격이 급해서 어쩌노. 한울이는 당연히 없제! 한울이가 사람 부르기 전에 우리가 좀 치워주자고.”
“그건 또 뭔 소리고? 어디를? 뭘 치워주는데?”
성질 급한 친구의 모습에 장 이장은 그를 부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집, 한울이꺼다.”
“으잉? 언제부터?”
“오늘부터.”
“그러면, 이 폐가를 한울이가 샀다는 말이가?”
“그렇지!”
“왜?”
“나도 모른다!”
“뭐라꼬···?”
성의 없는 친구의 대답에 김찬명은 머리에 오랜만에 스팀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곳 마을의 부동산 중개는 거진 모두 장 이장이 맡고 있다. 그 말인즉슨, 한울에게 이 폐가를 소개해 준 것도 분명 장 이장이라는 말. 눈동자를 드륵드륵 굴리며 재빠르게 상황파악을 끝낸 김찬명은 제 철없는 친구를 향해 노성을 터트렸다.
“아니! 니는 생각이 있나 없나! 한울이한테 이 폐가를 왜 소개해주는데!”
한울이 오고부터 외지 사람들도 방문하며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이곳이 산간 벽촌이라는 대명제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에 집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한 곳을 소개해주다니.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뭔 놈의 목청이 그렇게 크노! 내 아직 귀 안 먹었다! 살살 말해라! 아이고 골이 울린다.”
“함 말해봐라! 여기를 한울이한테 왜 소개해줬는데? 오매. 니 미칬나?”
“뭐라카노. 그럼 우짜는데? 내가 말려도 굳이 굳이 이 집을 산다 카는데.”
친구의 호통에 장 이장은 웅웅 울리는 귀를 두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철딱서니 없는 그 모습에 김찬명은 답답한지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니가 어쨌든 간에 여기를 보여줬다는 얘기 아이가!”
“아이고. 잔소리는···. 귀 떨어지겠다. 마을에 있는 빈집 다 보여달라 카는데 내가 우째 안된다고 하노. 그래서 보여준 거지···. 그래도 여기 진짜 싸다! 걱정 마라.”
성난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들겨대는 김찬명의 모습에 장 이장은 잠시 저치를 괜히 불렀다는 후회를 했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가끔 고릴라를 닮은 생김새를 넘어 고릴라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김찬명의 힘은 마을 사람 중 가장 셌다. 철거 같은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에 가장 적합한 인물.
“...그래서 내가 한울이 도와주려고 이렇게 니도 불렀지. 한울이가 이거 사면서 우리 마을의 사랑방? 을 만든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랬다.”
장 이장은 성난 고릴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언뜻 들었던 한울이 이 집을 산 이유를 알려주었다.
“사랑방? 마을회관이 있는데 사랑방이 또 왜 필요한데?”
“내사 그건 모르지. 아무튼, 한울이 갸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계약했으니까는, 더 말하지 마라. 말할 기운 있으면 저 집 정리하는 거나 도와주던가.”
아직도 한울이 왜 하필이면 폐가로 유명한 이곳을 구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계약이 끝났다고 하니 지금 자신이 성질을 내봤자 무를 수도 없는 노릇. 그렇지않아도 한울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었던 김찬명은, 이 모든 결정을 한울이 했다는 소리에 끓어올랐던 화를 가라앉혔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진작에 한울의 선택이라는 걸 말할 걸 그랬나. 순식간에 차분해진 친구를 보며 장 이장은 걸음을 옮겨 폐가의 대문을 활짝 열고, 뒤를 돌아 친구 놈에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내가 저 안에 트럭을 세워놨거든? 한울이가 저 안에 있는 거 뼈대만 빼고 싹 다 들어낸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최대한 빼내 주자고. 아나. 이거 받아라.”
저 트럭을 다 채울 만큼만 치워주자며, 장 이장은 김찬명에게 미리 챙겨온 연장 중 하나를 내밀었다. 하지만 김찬명은 장 이장이 내민 빠루를 받는 대신 열린 대문 안만 뚫어지라 보았다.
“뭐꼬? 안 받나?”
답답해진 장 이장이 재차 빠루를 쥔 손을 흔들며 받으라 재촉했지만, 김찬명은 빠루를 건네받는 대신, 대문 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니가 말한 트럭이 벌써 다 찼는데?”
도대체 빈 트럭이 어디에 있냐는 말과 함께.
**
먼지를 뒤집어써 회색빛을 띠는 온갖 잡동사니가 실려 있는 트럭을 본 장 이장은, 서둘러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꼬. 분명히 내가 오늘 아침에 트럭 가져다 놓을 때만 해도 엉망진창이었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이곳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마당에는 어디서 굴러들어온 지 모를 쓰레기들이 길게 자란 잡초들과 한데 뒤엉켜 있었다.
“이야. 여기 연못이 있었네? 물 깨끗한 거 봐라.”
“...”
김찬명이 감탄을 뱉고 있는 연못 또한 아침까지만 해도 하루살이들만 꼬이는 음침한 곳이었는데···. 저 반짝거리는 수면은 뭐란 말인가.
-끼이익.
그뿐만이랴.
“야! 여기도 깔끔하다! 오메. 벽지까지 다 뜯어냈네.”
먼지가 자욱했던 집 안도 청소업체가 다녀간 것처럼 깨끗하게 그지없었다.
“이게···. 뭔···.”
집안의 물건들은 어떻게 한울 혼자 치웠다고 치더라도, 초배지까지 말끔하게 제거된 깨끗한 벽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았다.
“이야. 이렇게 치워놓으니까 집 괜찮네. 인테리어만 제대로 하면 볼만하겠네. 장 이장, 아까 내가 한 말 취소다. 잘 소개해줬다!”
“아니, 그게, 그게 말이제···.”
장 이장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네가 생각하는 그 폐가가 맞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깔끔하다 못해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현 상태가 설명되지 않았다.
“업체를 불렀나···.”
“어? 뭐라꼬?”
어딜 봐도 혼자, 그것도 그 짧은 시간 이내에 나올 수 없는 결과물에 장 이장은 잠시 전문업체를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업체를 불렀다면, 트럭에 쓰레기가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았을 터였다. 업체에서 가져가 처리했겠지.
“잠깐만 있어봐라. 내 한울이랑 통화 좀 하고.”
그래도 혹시 몰라 장 이장은 핸드폰을 들어 한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됐든, 한울이 야는 난 놈이 틀림없네.”
짧은 시간 내에 폐가였던 곳을 환골탈태해 놓은 한울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
“네. 네. 이장님, 감사합니다.”
한울은 새로 산 집 뒷마당에서 따온 엉게를 다듬으며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그래. 나중에라도 뭐 필요하면 말해라. 들어가라.]
“네. 이장님도 들어가세요.”
끄덕. 핸드폰 너머 장 이장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한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귀 옆에 둥둥 떠 있던 핸드폰이 저절로 날아가 깨끗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포동아 땡큐.”
내가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핸드폰을 띄워준 건 바로 포동이었다. 평소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포동이가 유일하게 빨라지는 공간인 부엌의 효과였다.
“음식을 만드는 데만 집중해라! 킁!”
“그래. 고마워.”
내가 주방에서 요리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포동은 요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조수를 자처하곤 했다. 엉게를 다듬던 손을 뻗어 진지한 표정으로 내 주변을 살피는 포동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려 할 때였다.
“컁! 물이 끓기 시작했다!”
싱크대 위에 올라가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물이 가득한 냄비를 주시하던 노을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케이. 나이스 타이밍! 잠시만.”
포동이 핸드폰을 대신 들어준 덕에 엉게 손질은 모두 끝났다.
“꽈악···. 진짜 이걸 먹을 수 있는 거냐?”
“그럼.”
“나뭇가지는 맛이 없다···. 꽈악···.”
손질을 마친 엉게를 들고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자, 끓고 있는 냄비의 물을 제공한 찹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괜찮아 찹쌀아. 이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순이라.”
엄나무 순이라고도 불리는 엉게는 단어 그대로 엄나무의 순이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 봄이 오면 귀신같이 고개를 빼꼼히 내놓는다. 그렇게 고개를 내민 순은 말랑하기도 하지만, 보기만 해도 딱딱하고 갈색 나뭇가지 색 대신, 연한 녹색을 띄고 있다.
“가시가 뾰족뾰족하다 꽈악!”
연한 녹색을 띄지 않는 엉게는 먹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물’이나 ‘쌈 채소’로 먹지 않는다. 할머니께 들은 바로는 나뭇가지는 건강에 좋아 술이나 약재로 쓰인다고 했다. 특히나 관절염에 특효라 관절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한약에는 이것이 꼭 들어간다고 하셨다.
“자, 여기 만져봐 봐. 아프지 않지?”
엄나무 나뭇가지의 특징을 꼽자면 뾰족한 가시라 할 수 있겠다. 나뭇가지에는 장미 가시보다 최소 10배는 더 크고 딱딱한 가시가 빽빽했는데, 이 가시는 어릴 적 내게 좋은 놀이 도구 중 하나였다. 가시를 나뭇가지에서 분리하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부분은 평평해 그곳에 침을 묻히고 코끝에 턱 하니 붙이면 나는 코뿔소가 되곤 했었다.
‘할머니! 나 코뿔소!’
코끝에 가시 하나 붙여놓고 무슨 코뿔소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할머니는 내가 코뿔소가 될 때마다 크게 반응해 주셨다.
‘어이쿠! 코뿔소다! 우리 한울이 어디 갔지? 코뿔소가 우리 한울이 잡아간 거 아니가? 안 되는데? 우짜지?’
‘할머니! 내가 한울이야!’
‘오늘 한울이가 좋아하는 약과 해줄라꼬 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됐네.’
‘아니야! 할머니 봐봐! 나 코뿔소 아니야!’
내가 코뿔소가 되어 등장할 때면 할머니는 꼭 제자리에서 한번 펄쩍 뛴 뒤, 간식을 주곤 하셨다.
“꽈악?”
어린 시절 엉게와 관련된 할머니와의 기억을 회상하던 나는, 가시가 있긴 하지만, 아프기는커녕 손가락이 가는 방향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가시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울음소리를 내뱉는 찹쌀의 모습에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도 가시는 가시···!”
찹쌀은 아무리 여려도 가시는 가시인 만큼 어떻게 먹을 수 있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찹쌀이 내가 장담하건대, 한번 맛보면 봄에 이것만 찾게 될걸?”
엉게를 봄에만 찾게 될 이유는, 엉게를 나물로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막 순이 나와 야들한 상태의 엉게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순이 너무 어려도 양이 적어 맛을 온전히 음미하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조금 더 크기를 기다리다간, 자칫 시기를 놓쳐 그해 엉게는 먹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엉게를 매년 찾는다는 건, 다름 아닌 엉게의 맛 때문이었다.
엉게의 그 향긋한 맛이 그리워 겨울이면 할머니와 함께 손꼽아 기다렸던 엉게 나물. 맛있는 건 자고로 나누어 먹어야 더 맛있다고 했었나. 나는 물에 살짝 데친 엉게를 그릇에 담아 식탁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다 됐다. 한번 잡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