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86화 (86/163)

리모델링 (2)

“자, 다 됐다. 한번 잡솨봐.”

탁.

아무것도 없는 식탁에 방금 막 데쳐 찬물에 헹궈진 엉게만 덩그러니 놓였다.

“컁···?”

아무리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온통 초록빛인 접시에 싱크대 위에서 식탁으로 달려온 노을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이건 그냥 풀이다. 꽈악!”

찹쌀은 뒤뚱뒤뚱 걸어와 엉게 잎 끄트머리를 노란 부리로 조금 씹더니, 날개를 퍼덕거렸다.

“...킁!”

포동은···.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나를 등지고 돌아앉았다.

후웅-.

그러고는 식탁에 얌전히 있는 핸드폰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나는 정령들의 시위에 웃음을 삼키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자, 노을이는 고개 그만 갸웃거리고, 찹쌀이도 깃털 날리니까 날갯짓 그만. 포동이는 핸드폰 내려놔.”

정말이지. 우리 정령들은 먹는데 진심이었다.

“자, 여기 한번 찍어 먹어봐. 분명 더 달라고 할거다.”

하지만 정령들은 내 장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기사. 엉게의 생김새는 그렇게 입맛을 돋우지 않았다. 삐죽삐죽한 이파리에, 그보다 더 삐죽삐죽한 가시를 잔뜩 품고 있는 줄기. 순이라 연하긴 하지만, 온몸으로 ‘나를 먹으면 다칠 거다!’를 외치는 걸 선뜻 먹기가 힘들 수도 있다.

“흠···. 싫다면 할 수 없지. 이건 내가 다 먹는 수밖에. 잠시만 기다려. 삼겹살 금방 구워줄 테니까.”

하지만 정령들이 먹지 않는다고 하면, 나야 땡큐였다. 엉게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직 이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으니까. 거기다 생김새는 이래도 엉게는 생김새와 전혀 다른 맛을 지니고 있었다. 왜, 복어도 삐죽삐죽한 가시를 빳빳이 세워 자신을 먹으면, 위험해질 거라는 경고를 하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의 손을 거쳐 조리되면 입에서 살살 녹지 않나.

“스읍-.”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였다. 중간에 놓았던 접시를 내 앞으로 당긴 나는, 검지만 한 줄기를 가진 엉게 하나를 손으로 집었다.

“그럼 다른 요리하기 전에 어디 한번 먹어볼까···? 아차차. 이걸 빠뜨렸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항상 엉게를 데친 후 간장에 찍어 먹고는 하셨다. 그것도 그냥 간장이 아닌, 참기름과 깨를 넣은.

-쪼르륵.

“참기름은 요정도 만.”

엉게용 간장에 들어가는 참기름의 양은, 간장 종지에 간장을 넣었을 때 기준으로 한 티스푼 정도. 고소함을 더 느끼고 싶다면, 양을 좀 더 넣어도 되지만, 나는 참깨를 왕창 넣어 먹는 걸 좋아해 이 정도면 딱 좋았다.

“참깨는, 많이!”

참기름을 간장의 표면을 살짝 가릴 정도로만 넣었다면, 깨는 모두 가릴 정도로.

“흠. 냄새 좋고.”

그렇지 않아도 고소한 향을 뽐내는 참기름을 넣고 그 위에 절구로 빻은 참깨를 넣으니, 고소한 향은 극대화되어 주방을 가득 메웠다.

“호에에···!”

노을은 참기름을 부을 때부터 코를 찡긋거리더니, 빻은 깨를 넣자, 코를 벌렁거리며 머리를 점점 내 쪽으로 기울였다.

“진짜 그럼 먹어볼까?”

-푹.

엉게는 줄기에 여러 개 붙은 잎들을 하나씩 편 뒤, 밥을 올려 간장소스와 함께 즐겨도 좋지만, 나는 밥을 다 먹고도 엉게만 단독으로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좋아했다.

-아삭아삭.

“음. 그래. 이 맛이야.”

참기름과 참깨를 섞은 간장에 찍은 엉게를 입안에 넣자, 엉게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부드러운 잎과 약간의 단단함을 가진 줄기. 줄기의 단단함은 두릅과 비슷했다.

“두릅보다는 엉게지.”

엉게도 다른 말로는 개두릅이라 불리긴 하지만, 두릅과 엉게의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맛도 엄연히 달랐다. 일례로 나는 두릅은 그 특유의 향과 식감 때문에 먹지 못하지만, 개두릅인 엉게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잘 먹는다. 없어서 못 먹을 정도.

“호, 호에에···?”

“꽈악···?”

“츄릅.”

식탁 위에는 데친 엉게밖에 없기에, 정령들은 때아닌 나의 먹방을 보게 되었다.

“풀떼기가 사라지고 있다!”

“소, 속도가 빠르다! 꽉!”

“꿀꺽.”

풀만은 먹지 않겠다던 정령들은, 빠른 속도로 엉게를 먹어치우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새 포동은 접시 가까이 다가와 침을 꼴깍이며 내 입으로 들어가는 엉게를 보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의 먹방을 보는 정령들의 모습에 나는 슬쩍 물었다.

“포동이 한번 먹어볼래?”

아무리 엉게를 좋아한다고 해도, 혼자 먹으면 그 맛이 반감 되는 법. 게다가 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나. 엉게도 거진 정령들이 땄으니, 아무리 거절했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더 물어보는 게 맞다.

“킁! 주라!”

내 물음에 포동은 가슴팍에 꼭 모아쥐고 있던 손을 활짝 펴 내게로 뻗었다.

“오케이. 노을이랑 찹쌀이는?”

포동의 손에 간장소스를 찍은 엉게를 들려준 나는, 고개를 돌려 포동의 입만 바라보는 둘을 향해 물었다.

“...꿀꺽.”

포동의 입으로 들어가는 엉게에 정신이 팔린 둘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듯했다.

챱챱챱.

포동이 엉게를 입안에 넣어 씹기 시작했다. 엉게를 씹으면 씹을수록 포동의 눈은 커졌고, 그런 포동의 모습을 보는 노을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맛있냐?”

나의 먹방에 이어 포동의 먹방을 보게 된 노을은 침을 꼴깍 삼키며 포동에게 엉게의 맛을 물었다.

“...”

하지만 포동 또한 입안에 있는 엉게에 정신이 모두 팔렸는지, 노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포동의 저작운동이 빨라지고, 호동의 손은 엉게 쪽으로 뻗기 시작했다.

덥석.

포동의 손이 엉게 접시에 닿음과 동시에, 포동은 양손에 엉게를 쥐고는 신중하게 엉게를 간장소스에 찍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컁?”

“...?”

나무늘보에 빙의한 것처럼 천천히 엉게를 간장소스에 빠뜨렸다 뺀 포동은, 입에 남아있는 엉게를 꿀꺽 삼키자마자, 두 손에 들려있는 엉게를 한 번에 입안에 넣었다.

“꽈악! 한울! 나도 먹어보고 싶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듯, 거의 무아지경으로 엉게를 흡입하고 있는 포동의 모습에 찹쌀은 급하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컁! 나도 잊지 마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포동의 모습에 노을 또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엉게를 손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건 풀떼기가 아니다 꽈악!”

“킁!”

먹지 않겠다고 했을 때가 언제였냐는 듯, 정령들은 전투적으로 엉게를 먹고는 만족감을 나타내냈다.

“더 따러 가자! 컁!”

그리고 노을은 엉게를 더 따러 가자는 말을 하다못해, 엄나무를 우리 집으로 가져오자는 의견까지 냈다.

“하하. 맛있지?”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입맛을 찹찹 다시는 정령들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었다.

역시. 엉게를 못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먹은 뒤에는 계속 찾게 된다는 할머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

정령들에게 생소한 ‘엉게’라는 나물을 알려주고, 그 맛을 알게 해 준 다음 날.

“이야. 김한울. 요새 얼굴에 광이 나는데?”

오랜만에 지민이 내 집을 방문했다.

“광은 무슨. 무슨 일인데?”

평소 알바생을 보내 박준혁에게서 호박을 받아가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이렇게 집까지 행차했는지 모를 영문이었다.

“얘는. 무슨 일이긴. 니가 하도 얼굴이 안 보여 주니까 내가 이렇게라도 와서 살아있나 체크를 하는 하는 거 아니냐.”

아주 누가 들으면 지민의 말이 사실인 줄 알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동창 중 가장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지민이였다.

“너 어디 아프냐?”

가뜩이나 요즘 장사가 잘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더니.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 아프거나. 둘 중 하나일 터.

“...너는 내가 아픈 거로 보이냐?”

아픈 것도 아니고, 저 밖에 있는 트럭에 실린 호박을 보니 호박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럼 얘가 이렇게 찾아올 리가 없는데···.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올 이유라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럼 뭐, 너 나 좋아하냐?”

으으.

상상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는 기분에, 나는 말을 뱉어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야! 미쳤냐? 아니거든! 으악! 상상하기도 싫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건 지민도 마찬가지인지, 질색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하긴, 어릴 때부터 산이고 개울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던 불알친구를 상대로 연애 감정을 품기엔 너무 서로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어. 취소.”

나는 한쪽 손을 들어 막말했다는 시인을 하고는, 지민이 오기 전부터 붙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어. 아니 근데 너는, 도대체 그 종이에 뭐가 있길래 사람을 쳐다도 안 보냐?”

마찬가지로 한쪽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시늉을 한 지민은, ‘취소’라는 말을 하고 바로 시선을 돌린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바쁘니까 별일 없으면 가라.”

하지만 지민은 내가 내린 축객령이 들리지 않다는 듯,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지민의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당에 깔린 자갈들이 자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도대체 뭔데?”

스윽.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멈추고, 종이 위로 그늘이 생겼다. 그림자를 피해 종이를 들고 빙글, 뒤로 돌자, 내가 돈 만큼 졸졸 따라온 그림자가 물었다.

“...도면···?”

“...”

혼자 묻고 대답하며 자문자답의 진수를 보이는 그림자를 나는 꿋꿋이 무시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내 무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리를 시작했다.

“무슨 도면인데? 아! 그거야? 이장님이 너 집 샀다고 그러던데!”

아···. 이장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될 사항이라 따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았건만. 내가 집을 샀다는 사실이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닌, 지민에게까지 들어갈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그리고 부수는 것도 네가 혼자 다 했다고 하던데? 이야. 너 언제부터 철거까지 했냐? 전 회사에서 리모델링도 시켰어?”

“...”

한번 시작된 지민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 뭐 만들건대? 집은 여기 있으니까 다시 짓는 건 아닐 테고. 창고?”

“창고로 쓸 거면 연못이 있는 집을 샀겠냐?”

“와. 연못도 있어? 대박.”

아. 괜히 말했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묻는 바람에 집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알려주었다. 저거 연못 있다고 하면, 또 구경하겠다고 할 게 분명한데···.

“어디야? 나도 구경할래!”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지민의 반응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 바쁘다. 넌 안 바쁘냐?”

몇 주 전 어느 연예인의 브이로그에 구름떡집의 호박 주스가 나온 후, 구름떡집의 홈페이지가 다운된 적이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구름떡집의 홈페이지가 다운이 되든 말든 나는 몰랐겠지만, 그날따라 지민이 박준혁에게 도와달라고 헬프를 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업체에 전화하지 않고, 박준혁에게 연락했냐는 질문에 대한 지민의 대답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왜 박준혁한테 연락했냐고? 대학원생이었잖아.’

‘....’

‘주말이라 업체에서 전화는 안 받지······. 대학원생은 코끼리도 냉장고에 넣는대!’

처음 그 답을 듣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정말 홈페이지 에러를 해결해낸 박준혁의 모습에 지민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 안 바빠! 바빠도 거기는 볼 시간 있어. 아직 준혁이도 못 봤다던데? 어차피 준혁이 보여 줄 거잖아. 안 그래?”

얼씨구? 언제부터 박준혁을 이름으로만 불렀다고. 지민을 이곳에서 내쫓을 방법이 떠오른 나는, 도면에서 시선을 돌려 지민을 보며 한쪽 입꼬리만 씩 올리며 물었다.

“너네 연애하냐?”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댔으니, 이렇게 엮으면 치를 떨며 나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지민은 놀림에 길길이 날뛰지 않았다.

“...”

날뛰기는커녕, 입을 조가비처럼 입을 꾹 닫았다. 분명 이쯤이면 고함이 들려야 정상이건만, 고함 대신 지민의 얼굴이 사과 마당 빨개지기 시작했다.

“뭐야? 그건, 아니지?”

나는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불안한 생각을 애써 부정해 보았지만, 지민은 내 질문에 고개를 흔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세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려는 모습을 포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대문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가!”

자고로, 가족의 연애를 눈앞에서 보는 건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고 했다. 그 말이 가족 같은 직원에게도 해당할 줄이야. 둘의 연애를 상상한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느낌에, 나는 연신 어깨를 털며 아직도 마당에 서 있는 지민을 향해 다시 한번 더 축객령을 내렸다.

“훠이훠이! 썩 물러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