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87화 (87/163)

리모델링 (3)

“야! 아무리 그래도 물러가라니! 내가 무슨 귀신이냐?”

박준혁과 연애하냐는 말에 정곡을 찔린 것처럼 제 자리에 서서 토마토가 되어가고 있던 지민이 발끈했다.

“잘 아시니, 어서 가시지요.”

“아니라고!”

“오? 그럼 너 혼자?”

“...”

오호라. 짝사랑이라. 허허 이것 참. 이렇게 놀릴 거리를 주면 나야 땡큐지. 짝사랑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정곡을 찔렸는지 아무 말이 없어진 지민의 모습에 나는 대문 쪽을 가리키던 손을 움직여 평상을 가리켰다.

“앉아봐. 준혁이 부를 테니까.”

나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혹여라도 내가 놀릴 거라는 걸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아 됐거든? 부르긴 뭘 불러! 나 간다!”

하지만 눈치 빠른 지민은 이미 등을 돌려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라고 할 때는 안가고, 있으라고 하니 간다. 이건 뭐 청개구리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준혁과 함께 집 구경을 하겠다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지민의 모습에 나는 짐짓 안타까운 투로 말했다.

“지금 그 집에 가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멈칫.

대문으로 향하던 지민이 멈춰 섰다. 그렇지. 궁금하면 잠을 못 자는 사람이 그냥 갈 리는 없지. 예나 지금이나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못 보면 비포앤 애프터는 보지 못할지도?”

움찔.

이어지는 내 말에 지민의 어깨가 들썩였다. 동요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뒷모습만으로도 눈에 훤히 보이는 지민의 모습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소리를 키워 다이얼 누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한 뒤, 준혁의 이름을 불렀다.

“어. 준혁아. 이쪽으로 올래? 어? 아니, 지민이가 너 보고 싶다···.”

하나, 둘.

“으악! 으아아악!”

3초를 세기도 전에 지민이 뒤를 돌아 내 핸드폰을 낚아챘다. 3초는 걸릴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일까.

“야. 그거 비싼 거다.”

나는 내 핸드폰을 붙잡고 통화를 종료하려 애를 쓰는 지민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아무리 용을 써봐라. 통화 종료를 할 수가 있나. 용쓰는 지민의 모습을 보며 실실 거리고 있자, 핸드폰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던 지민이 고개를 홱 들었다. 그리고는 복화술을 사용하며 속삭였다.

‘야. 통화 빨리 끊어···!’

당사자인 박준혁도 없는데 복화술을 왜 쓰냐 싶지만, 뭐,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씩 웃으며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원하는 게 뭐야···!’

지민의 내 행동에 씩씩거리며 다시 한번 더 복화술을 사용했다. 확실히.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게 이런 점이랄까. 그저 제스춰 한번 했을 뿐인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견적서랑 실제 비용. 그리고 물품 목록.”

조금 전까지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민은 나보다 이곳에 먼저 내려와 구름떡집을 차린 사장이다. 내 기억 속 현재 구름떡집이 있던 자리에는 낡디 낡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핏 지민이 단톡방에 이야기한 바로는, 인테리어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가 했다고.

“엉?”

예상치 못한 요구였는지, 지민은 복화술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맹한 소리를 내뱉었다.

“엉은 무슨 엉이냐. 말 그대로야. 구름떡집 공사 비용이랑 작업 사장님들 넘겨.”

지민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했다고 했지만, 그 낡았던 건물을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탈바꿈시켰다고 믿기엔 지민의 능력치가 현저히 떨어졌다. 못질도 제대로 못 해 앞집에 있는 아저씨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것만 3번이다. 한번 혼자 했다고 말을 한 만큼, 만약 처음부터 정보를 요구했더라면, 모르는 체했을 확률이 99%.

그렇지 않아도 공사 업체 선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아주 나이스다.

“순순히 넘기면, 니가 예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나는 속으로 박준혁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지민을 향해 다시금 씩 웃어 보였다.

**

“하여튼. 머리 회전은 제일 빨라요.”

핸드폰 사건이 끝난 후. 새로 산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민이 투덜거렸다.

“니가 잘 속는 거지.”

모든 자료를 넘겨받은 후, 박준혁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다는 걸 안 뒤로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와 있던 지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홱 돌아보았다.

“허-! 밖에 나가서 아무한테나 물어봐라. 그 상황에서 안 속을 사람이 있는지!”

“그럼, 네 짝사랑 이야기도 해야 할 텐데 괜찮음?”

“야 이···! 그건···!”

쯔쯔.

나는 제 무덤을 파다 못해 관을 열고 들어가려는 지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그냥 인정해라. 인정할 때도 됐다. 대체 몇 년을 속는 거냐?”

어릴 때부터 지민은 우리 중 가장 잘 속는 아이였다. 어릴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그러는 걸 보면 뇌가 성장하다 만 것도 같지만, 또 일하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하여튼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렇지 않았더라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떡집을 차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이익···! 다음번에는 내가 기필코···!”

“네네. 100만 년은 이르다. 자, 이제 시선 좀 돌려. 도착했다.”

나는 앞은 보지도 않고,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기던 지민을 멈춰 세웠다.

“...복수를···! 어? 뭐야? 여기야?”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할 복수를 꿈꾸던 지민은, 도착했다는 내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 여기.”

“여기서 뭐 하려고?”

“일단 카페랑 직판장정도 생각 중.”

“어어? 여기서? 여기 우리 어릴 때 귀신 놀이 할 때마다 기웃거렸던 폐가였잖아!”

여기서라니. 정말이지. 장 이장님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지민의 반응에 나는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 놀이하던 폐가는 맞지만, 여긴 더 폐가가 아니란다.

“아니, 왜?”

굳이 서울이 아닌, 이곳까지 내려와 떡집을 연 청년 사장님만큼 지민과는 그래도 말이 통할 줄 알았건만. 말이 통하기는커녕, 지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치켜뜰 뿐이었다. 정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문이 가득한 지민의 눈을 보던 나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 모르겠다는데 어쩌겠나. 설명해 줘야지.

“너 김 할아버지가 체험 농장 하시는 건 알지?”

“어. 알지?”

“그럼, 김 할아버지의 농장이 어딘지는?”

“어. 알아! 지난번에 오픈식 하실 때 와봤어.”

“그래···.”

참···. 이 정도까지 얘기해줬는데도 크게 뜬 눈만 끔뻑거리는 지민의 모습에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모르는 중생은 가르쳐서 인도해야지.

“그럼 문제. 여기서 김 할아버지의 농장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렇게까지 힌트를 주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박준혁을 부를 참이었다. 지민의 말대로 대학원생이었으니, 이 열등생도 어떻게든 우등생으로 만들어 놓겠지.

“그야···. 김 할아버지 농장이 저쪽이니까···. 어라?”

하지만 다행히 지민은 아예 머리가 없는 건 아닌지, 뒤를 돌자마자 보이는 김 할아버지의 체험 농장을 보고 말을 흐렸다.

“이제 알겠냐?”

“..어.”

드디어 내 계획을 이해한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자.”

확실히 파악한 듯, 의문스러운 눈빛이 사라진 지민의 눈을 확인한 나는, 찹쌀의 물대포로 인해 거미줄과 곰팡이를 벗어낸 나무 대문을 밀었다.

끼이익.

경첩에는 미처 기름을 칠하지 못한 나무문이 세월이 담긴 소리를 내며 제 품을 열어주었다.

**

“이야···.”

대문 안으로 들어와 마당에 선 지민이 감탄을 내뱉었다.

“괜찮지?”

“어! 완전! 이제야 알겠네. 왜 이 집을 선택했는지. 폐가 안이 이렇게 깨끗할 줄이야···.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기억 속에 있던 이곳과는 너무 다르다며, 지민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내가 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지민의 기억 속의 폐가와 비슷했다. 거미줄이 사방에 산재해있다. 먼지가 쌓이고, 깨진 것들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이렇게 깨끗한데? 헐. 그럼 진짜 니가 다 치웠다는 거야?”

“뭐,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정령들이 거의 다 치웠지만.

“진짜 너 보면 볼수록 예전 직장에 대해 궁금해진다. 도대체 거기서 뭘 한 거니?”

“뭐하긴. 그냥 보통 중소기업에서 하는 일 했지.”

다 했지. 기획부터 제품 개발, 생산, 마케팅, 판매까지. 아, 중간중간 행사 같은 게 있으면 부스 디자인까지 모두 다 했다.

“아아. 중소기업.”

심드렁한 내 말투에 지민이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나오면 너처럼 다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거구나. 대단한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부하직원들은 뭣 빠지게 돌며 일을 열심히 하지만, 임원. 특히나 직계 가족들 같은 경우에는 내 예전 상사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우리도 똑같았어. 일하는 사람들만 일하고. 안 하는 인간들은 계속 똑같고. 일 잘하는 사람들만 매일 바쁘다니까? 그래서 탈출했잖아.”

나는 지민의 말에 백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서 때려치웠지.”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돌아올 고향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냐? 내가 서울에 있었으면 이렇게 떡집 차릴 생각도 못 했을걸?”

“그렇지.”

서울에서 지금 지민이 운영하는 구름떡집 같은 가게를 운영하려면, 월세만 하더라도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 정도 될 거다. 그것도 1층이 아닌, 2층 기준으로.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집을 둘러보던 지민이 뒤를 돌아 나를 보며 물었다.

“일단 메인 건물을 카페로 만들 생각이야. 옆에 붙어있는 건물은 직판장으로.”

“오. 규모가 크니까 가능하겠네. 마당도 넓으니까 야외테이블까지 만들면 좋겠는데? 근데 누가 다 운영하려고? 너 지금 하는 것만 해도 머리 빠지지 않아?”

지민은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하면서도, 이곳에서 일할 사람을 과연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하였다. 자신도 지금 아르바이트생들을 구하기까지 꽤나 고생했다며. 읍내에서 가게를 하는 자신조차 일하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이 산골까지 누가 오겠느냐는 걱정들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왜? 설마, 벌써 구했어? 어디서?”

걱정 말라는 내 말에 지민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곳의 규모를 보면 필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어디서 그렇게 구했냐고, 그런 곳이 있으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며.

“우리 마을 사람들.”

“어?”

“우리 마을 사람들이라고.”

“어···? 할머니, 할아버지들?”

끄덕끄덕.

지민은 내 대답에 이미 크게 뜬 눈을 더 크게 뜨며 우려를 표했다.

“어···. 어르신들 커피 만드실 수···. 있는 거야?”

카페를 만들 거면, 기본적으로 커피를 내릴 줄 알아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커피를 내릴 줄 아느냐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어르신들, 서비스직 한 번도 해 보시지 않았어···? 손님 접대 가능할까···?”

서비스 직종에 대한 걱정까지. 하지만 나는 지민의 질문에 그저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마, 우리 어르신들이 사람 대하는 건 너보다 더 잘하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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