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88화 (88/163)

모집 (1)

"아마, 우리 어르신들이 사람 대하는 건 너보다 더 잘하실걸?"

"어? 설마 그럴 리가."

어르신들이 더 잘했으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라는 내 말에 지민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나중에 보면 알겠지."

이미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 봤자, 입만 아프다.

"그래. 네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겠지. 그럼 그건 나중에 보는 거로하고. 일단은 뭐가 필요한지 한번 보자."

장담 어린 내 말에 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지민의 앞에 서서 건물의 지붕은 기와고, 벽은 황토로 전통적인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단 하나. 홀로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문을 열었다.

-드륵, 끼이익.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긴 하였지만, 문명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 같은 문은 덜커덩거리며 힘겹게 열렸다.

"우와."

집 안에 들어선 지민이 내부를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여기 햇살 장난 아닌데?"

"어. 나도 그거 보고 바로 결정했지. 겨울에도 따뜻할 것 같지 않냐?"

"그러게. 지금도 사람이 안 사는데 엄청 따뜻하네. 좋다. 근데 엄청 깨끗하다?"

"철거했으니까. 철거 전에 얼마나 지저분했는지는···. 말을 말자."

지민의 말처럼 지금 내부는 정령들의 도움으로 깔끔하다 못해, 깨끗하지만 그전에는 문을 열기만 하면 햇살에 비친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일단, 철거 다 했으니까 철거비용은 안 들겠네. 벽 부술 거야?"

"아니. 그냥 문만 다 떼어내고 룸은 그대로 둘 거야. 바닥 평탄화만 시킬까 싶음."

"바닥 평탄화야 뭐···. 그럼 포크레인 하나 들어오겠네. 작은 포크레인 들어와서 부수면 금방이야. 300만 원 정도면 이 건물이랑 앞에 건물 다 할 수 있을 거 같네."

확실히. 한번 해본 짬밥이 있다고. 지민은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 화장실은 다시 만들 거지? 이야. 저 옥색 변기는 뭐냐. 진짜 나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 본 후로는 처음 본다."

"어. 지금 화장실 크기가 쓸데없이 너무 커서 사이즈 줄이려고. 가게 화장실이 클 필요는 없으니까."

"어. 맞아. 크면 공간만 많이 차지하지. 화장실 크기 줄이고 접객 공간 늘리면 되겠네."

"그렇지."

다행히 화장실이 집의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사이즈 조정을 하더라도, 현재 벽 부분만 조금 허무는 것으로 해결이 될 듯했다.

"아직 타일 같은 거 안 골랐지? 컨셉은 생각해 봤어?"

"어. 아직. 아까까지 도면 그리고 있었으니까. 전체적으로 기와 감성을 살려서 한옥 느낌으로 만들려고. 대신 화장실은 엔틱하게."

"그렇지. 밖에는 옛날 느낌 나더라도 화장실은 현대적이어야지. 그럼 내가 준 자료 중에 제일 타일이라고 있거든? 거기 가 봐. 가격은 좀 비싼데 네가 원하는 디자인은 다 있을 거야. 결제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하면 내가 우리 아빠 통해서 네고 시켜줄게. 거기 우리 아빠 친구분이 하시는 곳이거든."

"오케이."

그렇지 않아도 도면을 대충 그린 뒤, 인테리어 업체에 연락을 하려고 했었다. 아무리 행사용 부스를 만든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진짜 집 용 인테리어를 한 건 아니었기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일단 화장실 바꾼다고 했으니까, 설비 사장님 불러야 할 테고···. 전기는 당연히 사업자용으로 바꿔야 할 테고···. 아. 맞다. 너 어떤 기계 들일지 대충이라도 리스트업해놔. 표 같이 만들어서 기계 사이즈랑 전력 써서 주면 전기 사장님이 알아서 증설해 주실 거야."

그런 면에서 지민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조그만 시골에서 아무리 인테리어 업체를 쓰더라도,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대로 나오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민이 한 방식인 반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된다면, 현장 작업자들과 소통하며 내가 그렸던 청사진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오케이."

나는 지민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은 내부를 보며 또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보며 도끼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는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지민을 쫓아낼 때 썼던 말투를 그대로 재연하기 시작했다.

"어허. 내가 이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냥 듣기만 해? 얼른 핸드폰에 적기라도 하지 못할까!"

두 발을 벌리고,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짐짓 엄숙해 보이는 척을 하는 지민의 모습은 카리스마는커녕,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이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얼굴은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행동이 그렇다는 말이다.

"뭐야? 웃어?"

나도 모르게 풉 하는 웃음소리를 내자, 지민은 허리에 올렸던 손을 내려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크흠. 아니? 어후. 여기에 아직 먼지가 많나 봐. 사레가 계속 걸리네. 크흠."

아직까지 지민의 투어가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괜히 손으로 얼굴 주변을 휘저었다.

"하여튼. 핑계는. 아무튼, 적어놔. 다음에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거니까."

딴 척하는 내 모습을 본 지민은 이번만 넘어가 준다는 듯, 눈 흘기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 필기하고 있는데?"

하지만 나는 지민의 말과 달리 이미 지민이 집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그녀의 모든 말을 기록 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손에 들려있는 필기도구가 하나도 없는데!"

지민은 내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내 위아래를 살피며 말했다. 필기도구가 없으니, 필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혼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지민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켜 보여주었다.

"아무리 아날로그가 좋다고 하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건 좀 알고 계시는 게 어떨까요?"

"...? 이게 뭔데? 어어어···?"

갑자기 들이 밀어진 눈앞의 핸드폰을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지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늘어나는 글자를 보며 놀라 하다, 자동으로 써진 글자가 자신의 말했던 거란 걸 깨닫고는 경악했다.

"뭐, 뭐야. 이런 거 처음 봐!"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내가 보여준 건 바로 말을 하면 자동으로 타이핑이 되는 앱의 화면이었다. 근래 나온 앱이었는데, 녹음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자동으로 텍스트화 해주어, 필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주 유용했다.

"앱이냐?"

"어.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다른 거 할 말 있으면 해. 시간 간다."

"어. 근데 거의 다 했어. 원래 반 셀프 인테리어 할 때 제일 힘든 게 사장님들끼리 스케줄 정리하는 건데···. 어차피 그 목록에 있는 공사 사장님들끼리 다 아시는 분들이라, 네가 단톡방을 하나 만들면, 알아서 스케줄 조정 하실 거야."

"오. 땡큐."

"자. 나를 찬양하거라. 이 어리석은 중생아. 나 없었으면 진짜 오래 걸렸을걸?"

지민은 자신이 처음 고향으로 내려와 구름떡집을 차렸을 때는 맨땅에 헤딩했었다며,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 행운인 줄 알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인정. 나중에 카페 오픈하면, 음료 1잔 공짜로 줄게.”

“어? 한잔? 야. 장난하냐···?”

노하우를 알려줬는데, 돌아오는 게 음료 한잔뿐이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지민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어지는 내 말에 반응할 지민의 반응이 눈앞이 훤했던 터라, 날카로운 눈을 해봤자 전혀 타격이 없었다. 나는 혼자 씩씩거리는 지민의 앞에 검지를 좌우로 까딱이며 말했다.

“성질 급하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음료 1잔 공짜에다가, 준혁이가 좋아하는 타입 알려주기. 어때?”

“콜.”

자신 있는 내 눈빛에 어디 한번 해보라는 투로 나를 보던 지민은, 박준혁의 이상형을 알아내 주겠다는 내 말에 불만이 가득 차 보였던 포즈를 풀며 말했다.

“콜. 그럼 그런 거로 알고. 간다.”

반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데 있어 꼭 고려해야 할 것들도 모두 들었겠다, 지민도 해결했겠다.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결한 나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손을 흔들었다.

“엉? 이러고? 계약서라도 쓰고 가!”

어느새 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는 따뜻한 빛으로 마을을 가득 감싸 안고 있었다. 온몸으로 따스한 노을빛을 받은 나는, 뒤에서 전자계약이라도 하자며 핸드폰을 든 팔을 팔랑팔랑 흔드는 지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믿어라. 중생아. 내가 언제 말해놓고 안 지킨 적 있었냐?”

“아니?”

“그럼 믿고 기다려. 그럼 이만, 나는 바빠서.”

구두 계약으로 충분하지. 혹시나 계약서가 누군가에게 들킬 경우, 일어난 후 폭풍에 대해 진정 모르는 것일까. 괜히 사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민은 꿋꿋했다.

“야···! 어디 가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기 사인 한 번만 하고 가! 야!”

뒤에서는 지민이 계속 사인을 하려며 핸드폰을 들고 방방 뛰고 있었지만, 나는 깔끔히 무시한 채, 강 할머니 댁을 향해 보폭을 크게 내디뎠다.

**

마을 회관 안.

마을 방송한 지 10분도 넘지 않았건만, 이미 마을 회관 안은 마을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뭔데? 또 누가 불렀고?”

“으잉? 뭐꼬 오늘 강 씨 니가 우리 불렀나?”

“쟈가 우얀 일이고?”

“내사 모르제. 옆에는 꽃분이 아이가? 도대체 무슨 조합이지?”

“아아. 뭔지 알겠다. 군에서 또 뭐 참여하라는 거 아이가?”

“뭐 또 행사겠제. 야야. 별로 중요한 거 아니면 퍼뜩 공지해라. 또 뭐 만들면 되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모임과 동시에 옆 사람과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특히나 제일 앞줄에 앉은 할머니들의 대화 소리는 마을 회관 안이라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아마도 부녀회장인 강 할머니를 통해 군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이 관련된 공지를 예상했는지, 앞줄 할머니들의 대화를 들을 뒷줄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급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 솥에 불붙이고 왔다. 퍼뜩 무슨 일인지 말해봐라.”

“내도 우리 개똥이 죽 쑤다 왔다. 지금 갸 소리 안 들리나? 이거 내 부르는 거다.”

솥에 물을 받아왔다는 할머니부터, 소의 여물을 만들다가 왔다는 할아버지 등등. 참고로 여기서 개똥이는 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시는 송아지였다.

-음머어어-!

과연. 쇠죽을 끓이다 왔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마을 회관의 벽을 뚫고 아직은 앳된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툭툭.

얼른 공지를 듣고 다시 자신이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주민들을 보던 강 할머니가 마이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쪽 손으로 헤드를 톡톡 두드렸다.

“자자.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 하나둘. 잘 들립니까?”

간단히 마이크 테스트를 마친 강 할머니가 한쪽 손을 앞으로 뻗으며 웅성거리는 주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들이마실 때였다.

삐이이익-!

돌연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리가 마을 회관 안을 가득 채웠다. 귀 고만을 뚫을 것같이 날카로운 스피커 소음의 효과는 굉장했다.

“오메! 이게 뭔 소리고!”

“귀 고막 떨어진다.!”

“어우 씨! 놀라라!”

고개를 서로에게로 돌린 채 앞을 등지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를 단번에 앞으로 돌리게 만든 것.

“오?”

단번에 자신에게 쏠린 이목을 확인한 강 할머니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집중을 했었어야지. 자, 그럼 이제 내가 오늘 이렇게 다 부른 이유를 알려줘야제. 그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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