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89화 (89/163)

모집 (2)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강 할머니는 거침없었다.

“자자. 다들 바쁜 거 같으니까네, 빨리 끝낸다. 내가 말하는데 해당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라. 자, 빨리 말한 거니까 단디 들어라.”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집중하라고 통보한 강 할머니는, 마이크를 다시 고쳐잡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쳐 빠른 속도로 읽기 시작했다.

“커피 만들 줄 아는 사람, 커피 만들고 싶은 사람, 장사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해보고 싶은 사람, 서비스직에서 일해본 사람, 일하고 싶은 사람, 낯선 사람들이랑 얘기 잘하는 사람, 청소 잘하는 사람!”

마치 비디오를 2배속 시켜놓은 속도로 종이에 써진 글을 삽시간에 모두 읽은 강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손을 든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뭐, 뭐라꼬?”

하지만 안타깝게도 랩처럼 빠른 강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귀에 손을 올릴 뿐.

“일단은···. 군청에서 뭐 만드는 행사는 아닌가 보다. 처음에 커피 뭐 어쩌고 하던 거 같은데···. 맞나?”

혼란스러움이 마을회관을 가득 메운 가운데, 김 할아버지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하이고. 다들 바쁘다 캐서 내가 빨리 말해줬구먼. 그걸 다 못 듣나? 내가 한 번 더 읽어 줄테니까 잘 들어봐라. 자, 커피···.”

김 할아버지를 포함,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에 강 할머니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종이를 다시 들어 올렸다.

“호호. 언니, 잠시만.”

하지만 강 할머니의 2차 랩은 옆에 있던 꽃분이 할머니에 의해 제지되었다.

“와? 니가 읽을라꼬?”

강 할머니는 살풋 웃으며 자신을 옆으로 슬쩍 미는 꽃분이 할머니의 모습에 순순히 밀리며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끄덕끄덕.

꽃분이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강 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가져와 조용히 확인 후,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다들 바쁘시지예? 근데 우리 마을에 좀 변화가 있을 것 같아가. 사람을 좀 구할라고예.”

강 할머니 대신 발표자가 된 꽃분이 할머니는 우선 차분한 어투로 마을 사람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 변화? 무슨 변화?”

꽃분이 할머니의 설명에 맨 앞줄에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기사. 마을의 변화라고 해봤자 마을 방송 스피커를 바꾸거나, 새로운 마을 공용 트랙터를 들이거나, 수로를 다시 파는 것 등이었지. 이렇게 사람을 모집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변화라는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앞줄 할머니의 질문에 꽃분이 할머니는 찬찬히 변화의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변화라니까 당황스럽지예? 근데 좋은 변화라. 우리 한울이가 집 산 거 다 알고있지예?”

“고롬! 저짝에있는 크기만 크고, 다 쓰러져가는 집 샀담서? 장 이장은 뭔 생각으로 아한테 그 집을 추천해 준 기고?”

시골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하면, 이런 것이다. 별다른 변화 없이 항상 비슷한 일들만 일어나는 터라,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일이 생기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모두가 그 일을 알게 되었다.

꽃분이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어떻게 그런 집을 내게 넘기냐는 질문을 한 앞줄 할머니에게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뭐꼬? 다 안 쓰러져간다. 이야. 내가 어제 구경가 봤는데, 마당에 이렇게 햇빛이 쫙 들어오는데 쥑이드라.”

저 뒤쪽에 앉아있던 김 할아버지가 그건 내가 잘 안다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으잉? 진짜가? 거기 사람 안 산 지가 억수로 오래돼서 그럴 리가 없을 낀데?”

“시간 나면 한번 가봐라. 내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래서 장 이장 욕하다가 칭찬 좀 해줬지.”

확실히 집이 낡긴 했지만, 그간 사람들이 생각했던 정도의 폐가는 아니었다며. 김 할아버지는 장 이장님을 옹호했다.

“그래? 그 정도가? 내도 한번 가봐야겠네. 맨날 지나다니면서 밖에서만 봤지. 안은 볼 생각도 못 했으니까는. 근데 거기서 뭐 할끼가? 사람은 와?”

커다란 마당과 기억자로 배치된 건물, 그리고 맑은 연못을 팔을 휘두르며 설명하는 김 할아버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줄의 할머니가 질문했다.

“그건 우리 한울이가 설명하는 게 더 정확할 거 같네예. 한울아, 부탁한데이?”

*

“...그래서, 카페와 직판장을 지을 생각입니다.”

꽃분이 할머니의 부탁에 마이크를 거머쥔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설명했다.

“카페? 카페가 거기서 되겠나?”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중간쯤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네. 수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체험 농장을 오는 손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홈페이지를 보고 작물을 구입하기 위해 종종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서요.”

“맞네. 요새 우리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많이 늘긴 했제. 전부 다 김가네 농장에 체험 가기에는 좀 많다 싶었는데···. 작물을 구입하려고 온 줄은 몰랐네.”

“네. 무작정 찾아오긴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김 할아버지네 농장 매점에 두고 팔긴 했는데, 점점 손님이 늘어나서 방법이 필요하더라고요.”

내 설명에 할아버지는 그것까지는 몰랐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면, 김 할아버지는 그런 그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말했다.

“그걸 왜 모르노? 내는 무조건 찬성이다. 농장 체험 손님들 챙기기도 바빠죽겠는데, 우리 집으로 와서 뭐 좀 살 수 없냐고 물어서 힘들어 죽겠다. 내는 찬성! 니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노. 우리 마누라가 믹스커피 잘 탄다. 내가 비법을 다 전수해 줬다 아이가.”

간이매점에서 농작물을 팔기 시작했더니 체험 농장을 마친 사람들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김 할아버지는 카페와 직판장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설명을 안 해줬는데 모를 수도 있지! 내사 농사하느라 맨날 밭에 있는데 얘기도 안 한 거를 어찌 아나! 크흠. 하기사. 카페가 생기면 내사 좋제. 아메리카노 마시러 읍내까지 안 가도 되고. 내는 농사도 해야 하고, 커피도 못 타서 카페는 못 도와주는데, 직판장은 도와줄 수 있다.”

김 할아버지의 핀잔에 입을 삐죽인 할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직판장 판매에 자원했다.

“직판장 판매···. 노상태.”

뾱.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커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뒤에 서 있던 강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크흠. 내가 다 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내는 조금만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다.”

노 할아버지는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적히는 자신의 이름이 부담스러운지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고용 형태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소 한 시간 단위로 고용할 생각이라서요.”

“고용?”

“네. 제 개인 사업장이 될 텐데 당연히 고용해야죠.”

노 할아버지의 작물들 또한 ‘신비농장’ 스토어를 통해 팔리고 있었기에, 아마 무료 봉사라고 생각하신 모양. 하지만 매출이 있는데, 지출이 없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네. 이미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께서는 디저트 담당으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그으래?”

카페에서 음료만 팔아도 되긴 하지만, 체험 농장을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엄마와 아이들로 구성되어있는 만큼, 달콤한 디저트를 함께 판매한다면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일 터였다. 하여, 나는 지민과 일별 후 바로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를 만나 계약을 한 참이었다. 오늘 주민 회의도 그 연장선이고.

“네.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의 전통 과자는 항상 팔고 싶어서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사실 시중에서 팔고 있는 전통 과자들은 대량 생산 탓에 그 맛이 진짜 전통 과자들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유통되는 유과의 경우 속이 하얗지만, 진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유과의 속은 노랗다. 직접 만든 조청을 듬뿍 먹였기 때문이다. 튀밥이 있는 겉 부분에만 설탕을 묻혀 만든 유과는 퍼석거려 ‘이게 무슨 맛이야?’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청이 가득 들어 노란빛을 띠는 유과는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을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다···.

“진짜가? 오매. 뭐뭐 파는데? 약과랑 유과는 당연히 팔 것이고. 강정도 파나?”

진짜 한과를 먹어본 사람들은 한과가 맛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다만 노 할아버지처럼 반색할 뿐.

“강정은 무슨. 일단은 내랑 꽃분이랑 유과랑 약과 하나씩만 맡아서 만들끼다. 안 그래도 손 많이 가는데, 강정을 언제 만들고 앉았노? 그자?”

팔기만 한다면 매일 사 먹을 기세인 노 할아버지의 반응에 강 할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꽃분이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강정은, 우리가 일이 좀 익숙해지면 찬찬히 만들어 보든지 해볼게요.”

꽃분이 할머니는 강 할머니의 핀잔에 풀이 죽은 노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꽃분이 할머니의 위로에 노 할아버지는 숙였던 고개를 휙 들며 외쳤다.

“그라믄 됐다! 한울아. 내는 하루에 3시간 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한테는 한과 하나씩 줄 거제? 내는 돈 안 줘도 된다. 한과 먹으러 가는 김에 봐주지 뭐.”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가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한과들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만점인 간식이었다. 기름지다는 오인을 받는 약과는 사실 전혀 느끼하지 않다. 달콤함은 물론이거니와 느끼함과 거리가 먼 쫀득함과 고소함까지 가지고 있는 전통약과는 한번 먹으면 계속해서 생각날 정도로 그 맛이 아주 뛰어났다. 유과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침이 고이는지 계속해서 입맛을 다시는 노 할아버지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할머니들을 보았다.

절레절레.

강 할머니는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고, 꽃분이 할머니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들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눈을 반짝거리는 노 할아버지를 보았다.

“죄송하지만, 한과는 사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가게에 계시면, 일하시는 분들 먼저 사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상하건대, 할머니들이 정통적인 방법으로 만드시는 한과는 한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지금 우리 농장의 작물을 선착순으로 순식간에 동나는 것처럼, 동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당 하나씩 정도는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정도일 것이다.

일하면서 일하는 곳의 제품들을 먹는 낙이 없으면 능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니.

“그래? 하기사.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하던 건데 살 수 있게 하는 게 어디고! 내 무조건 한다. 명단에 내 이름 올리도.”

다행히 노 할아버지는 내 제안에 만족했다. 그리고는 밭일을 마치자마자 직판장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노 할아버지의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눈치를 보며 재던 마을 사람들의 손이 우후죽순 들리기 시작했다.

“내도! 내 커피 내릴 줄 안다!”

“내는 드립 할 줄 안다! 자격증도 있다!”

“우리 집 보여줄까? 우리 집에서는 파리가 미끄러진다! 넘 깨끗해가!”

우리는 이후, 이날은 ‘한과에 미친 마을 사람들의 광기’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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