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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90화 (90/163)

가오픈 (1)

강 할머니의 주최로 이루어진 마을 회관에서의 일명, 한과에 미친 마을 사람들의 광기’ 회의가 끝나고 한 달 후.

“이야. 그 집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노!”

“내가 알던 그 집 맞나?”

인테리어를 하는데 대략 2주 정도 들 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 달리 여러 명의 어르신이 인테리어에 참여해 예상보다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만약 어르신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한 달 안에도 끝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말도 마라. 이 집에 여태까지 구들장 있었던 거 아나? 그거 깨부수고 메꾸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마을 회관에서 대충 내가 산 집의 목적을 들은 어르신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 같이 집으로 달려왔었다.

‘카페랑 직판장 할 거라고? 니 옛날 집에 대해서는 좀 아나?’

그건 바로 내가 어르신들의 질문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해서였다.

‘암만 김가가 그 집 상태가 괜찮다고 해도, 속에는 완전 옛날식이라 니가 생각하는 대로 못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서 어떤지 함 봐줄게.’

‘네. 그럼 저야 감사하죠.’

나는 옛날집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를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오메. 이 구들장을 내가 언제 보고 안 봤나? 진짜 오래간만이네. 일단 이거 다 걷어내고, 불 때는데 막아야겠다.’

구들장. 일명, 온돌. 열선을 깔아 보일러로 온도를 조절하는 지금의 방식과 달리, 직접 나무로 불을 때 방 온도를 높이는 방식.

‘다···. 부숴요?’

‘고롬. 부숴야지 층고도 높아지고 좋다. 있어봤자 공간만 차지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걸 만다꼬 굳이 가지고 있노. 이참에 없애야지. 뭐, 니 구들장 카페 하려는 거 아니제?’

당연히 기와와 서까래만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현대식으로 꾸밀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저었고, 그 길로 구들장은 어르신들의 곡괭이 질로 깨졌다.

“서까래 시꺼먼 건 또 어떻고! 한울이가 주방에 있는 서까래 꺼멓다고 다 치워버리고 간다고 해가 내가 뜯어말렸다 아이가.”

구들장에 이어 서까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 중 하나였다.

‘이쪽이 예전에 부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은 불에 탄 흔적이 없는데 여기만 서까래가 검게 불타서요. 저거 제거하고 새 걸로 교체하면 다른 지붕에 무리가 갈까요?’

세월의 색은 입었지만, 그래도 나무색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서까래들과는 달리, 홀로 유독 검은색을 띠고 있는 서까래를 보며 질문했었더랬다.

‘서까래를 교체한다고.? 야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 기고! 저거는 샌딩만 하면 싹 깨끗해진다! 불탄 거였으면 숯검정이 되가 벌써 폭삭 내려앉았지 저렇게 튼튼하게 안 있는다.’

‘샌딩이요?’

‘어. 저 꺼믄게 전부 다 그을음 때문이라 안카나. 옛날에는 전부 다 장작 떼워가지고 밥했으니까, 천장이랑 벽이랑 다 씨꺼맸다.’

‘아···.’

‘그리고 이런 오래된 한옥에 서까래 같은 거는 교체 할라 케도 없다. 있어도 억수로 비싸고.’

어르신들의 말을 전부 옳았다. 확실히 옛 가옥에 관련된 지식은 몸소 체험한 부분이었는지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가리키면 척하면 척이었다.

“서까래 꺼멓게 그슬린 건 그냥 샌딩하고 니스칠하면 되는데. 식겁했겠네.”

“하모. 그래서 우리가 한울이 여 딱 앉히가지고, 하나씩 다 설명했다 아이가.”

거기다 어르신들은 도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집 용도 변경은 했나? 안 했으면 내 아는 건축사 알려줄 테니까 거 가서 해라. 여가 그래도 마을에서는 젤 큰 길옆에 있는기라 장사해도 될끼다.’

‘맞네. 용도 변경해야 하네. 불법 증축 물 같은 건 없으니까 바로 통과될끼다. 니 건축사한테 신청하면 내한테 연락해라. 내가 군청에 전화해 놓을 테니까는.’

인테리어를 도와주신 건 물론이거니와, 인테리어 외의 서류 작업 부분까지도 인맥을 이용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었다.

“내한테 말하지. 저런 거 잘 고쳐주는 업체 아는데.”

“뭐하러? 내가 하면 되는 구로.”

“으잉? 니 옛날에 내가 뭐 해 달라고 할 때는 허리 아파서 안 된다 카드만, 한울이는 니가 다 샌딩 해 준기가?”

“커, 커흠. 한울이는 애고. 니는 어른 아이가. 그라인더도 집에 있는 놈이 스스로 하면 되지 만다꼬 다른 사람을 시키노.”

그리고 직접 공사에 참여하는 열의까지.

“할아버지, 안 그래도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죠?”

“고생은.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나 때는 말이다? 원래 애들이 뭐 한다카면 어른들이 나서가 다 도와줬다.”

“저···. 30살이 넘었는데···.”

“마! 30살이 애지! 우리 마을에서 제일 나이 어린놈이 니 아니가! 그리고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까 아 맞다! 원래 어른은 결혼해야 진정한 어른이라 하는 거다. 알았나?”

“네···.”

30살은 한참 전에 넘은 나를 보고 아직도 애라고 취급하시며 공사에 직접 참여하시는데, 어떻게 말릴 수도 없었다. 결혼은 해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하시는데, 나는 안다. 결혼하고 나면 애를 낳아야지 진정한 어른이 될 거라는 말을 하실 거란 걸.

“근데 니 그 보낸 건 뭔데! 받고 나서 깜짝 놀랐다 아이가.”

물론 전문업자들보다는 조금 느리긴 하지만, 누구보다 더 꼼꼼하게 당신의 손으로 내 집을 제대로 탈바꿈시켜 주겠다는 어르신들을 말릴 수 없었던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어떻게, 마음에는 드셨어요?”

그건 바로 도와주신 어르신들께 선물을 보내드린 것.

“마음에 안 들게 어딨노! 이 세상에 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는데!”

“뭐라꼬? 금을 보내줬다고? 어데? 무슨 금? 설마···. 니 지금 하고있는 그거가?”

“니는 그걸 이제 봤나? 그렇게 둔해서 세상을 어찌 살라고 그라노! 자, 내가 특별히 보여준다. 자, 함 봐봐라.”

서까래를 하나하나 샌딩질한 후, 서까래 사이사이에 퍼티 칠까지 꼼꼼하게 완성한 어르신은 옆에 있는 친구에게 티셔츠 안에 숨겨져 그 모습을 살짝만 드러내고 있던 금목걸이를 떡하니 꺼냈다.

“오매. 이거 은에 입힌 거 아니제? 이거 순금이가?”

노란빛의 영롱함을 사방으로 뿌려대는 금목걸이의 등장에 옆에 있던 어르신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18k입니다.”

“순금은 영 물러서 안 된다! 우리는 맨날 농사해야 하는데 순금을 우째 목에 걸고 다니노? 니는 애보다 생각이 없노!”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선택한 건 18k 금목걸이. 돈을 드린다고 해도 싫다고 하시고, 재료비만 내라고 하던 어르신들에게 무엇이라도 해 드리고 싶었다.

“오매. 이럴 줄 알았으면 내도 도와줄 걸 그랬네! 내는 낸중에 업자들이 오길래 그 사람들이 한 줄 알았제!”

물론 전기배선이라든지, 설비, 그리고 마감 같은 마무리는 업자들의 손을 거쳐 완성되긴 하였지만, 그것마저 어르신들이 거의 다 완성을 해놔 비용을 얼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갸들도 내가 불렀다.”

업자들도 물론 어르신들의 인맥으로 불러 인터넷에 떠도는 최소견적이라 떠도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다. 업자에게서 나중에 들을 바로 얘기하자면, 진짜 재룟값과 기름값밖에 청구하지 않았다고.

“고기는, 맛있게 드셨나요?”

“하모! 니 고기는 우리한테만 보내준 게 아니라 공사하던 사람들한테까지 보내줬다메? 그 치들이 내한테 전화 와서 칭찬 억수로 하더라. 고맙다. 덕분에 내 면이 살았다.”

싱긋.

어르신은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며, 눈가의 주름이 깊게 들어갈 만큼 눈꼬리를 접으며 웃음을 보였다.

“별말씀을요. 제가 더 감사하죠. 덕분에 공사 하자 없이, 저렴하게 끝냈잖습니까.”

모두 덕분이라며 공을 돌리는 내 말에 어르신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할머니가 그러셨다. 서로서로 돕고 사는 게 이치지만, 도움을 받았을 때는 꼭 그 고마움을 약소하게나마 표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글나? 하하하! 그건 그렇긴 하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더욱 풍족해 질 거라고 하시며. 어릴 적 그 말을 할머니에게 들었을 때는 그 뜻을 몰랐지만, 밝게 웃으시며 나에게 연신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어르신을 보니,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의 웃음소리에, 내 마음도 푸근해졌으므로.

**

-디디딩~

나무로 만든 현판 위에 힘찬 필체로 ‘사랑방’이라고 쓰인 건물의 문을 열자 맑은 풍경소리가 객을 맞이했다.

“어서오이소······. 뭐꼬? 준혁이가? 얼른 와서 도와라.”

손님이 왔음을 알린 풍경소리에, 고풍스러운 무늬를 가진 작업대 뒤에 있던 강 할머니가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입구를 향해 인사를 하다,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익숙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휘저으며 작업대 뒤에 있는 주방을 가리켰다.

“넵! 알겠습니다!”

섭섭할 법도 할 건만, 박준혁은 예상했다는 듯, 바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으며 강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도 왔어요!”

빠릿빠릿하게 앞치마를 입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박준혁의 손에 무언가를 잔뜩 쥐여주던 강 할머니는, 자신을 부르는 다른 사람의 소리에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오메. 이게 누꼬? 지민이도 왔나? 지민이 니는 요 앞에 편안하게 앉아있어라. 할미가 금방 한과 줄게.”

날이 가면 갈수록 무엇을 먹는지 몸이 좋아지는 박준혁의 가려져 있던 지민을 확인한 강 할머니는, 한달음에 작업대에서 달려 나와 지민을 작업대와 가장 가까운 테이블로 안내했다.

“여기. 선물이요. 오픈 축하드려요!”

지민은 강 할머니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으면서 사랑방 내부를 쓱 둘러 보고는,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강 할머니에게 불쑥 내밀었다.

“뭐꼬. 선물은 한울이한테 줘야제. 갸가 여기 사장 아이가. 내는 그냥 여기 직원이다. 직원.”

강 할머니는 주인인 한울이 오면 그때 다시 주라고 했지만, 지민은 한번 내민 손을 물리지 않았다.

“에이. 저 다 알아요. 한울이가 여기 주인은 어르신들이라던데요? 어르신들 없으면 여기도 없다고···.”

“뭐라카노. 갸가 여기를 만들어 줘가 우리도 이 나이 먹고 새로운 일을 해보는 거지. 아무튼, 고맙다. 꽃이 어찌 이렇게 예쁘노? 내사 맨날 길에 핀 민들레나 볼 줄 알았지. 이렇게 솜사탕 같은 꽃들은 처음 본다.”

결국, 지민에게 진 강 할머니는 제품보다 더 큰 꽃바구니를 품에 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가 특별히 시내까지 나가서 픽업해 온 꽃다발이에요. 예쁘죠?”

지민은 꽃다발을 받아들고 소녀처럼 기뻐하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같이 미소를 지었다. 임시개업 날짜를 알게 되자마자 꽃다발을 예약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어. 내가 여태 살아보면서 받은 꽃 중에 젤로 예쁘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이렇게 수다를 떨 게 아니라 니 뭐라도 좀 줘야 하는데. 쪼매만 있어봐라.”

한참을 평소 이 촌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스텔톤의 꽃들로 가득 찬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던 강 할머니는, 화들짝 놀래며 꽃다발을 다시 지민에게 안겨주고는 몸을 돌려 작업대로 향했다.

“이거 먹으면서 쪼매만 기다리고 있어봐라.”

“네. 감사합니다.”

엉겁결에 비닐에 싸인 무언가를 한 손 가득 받은 지민은 바빠 보이는 강 할머니의 뒤를 보다 고개를 내려 박준혁 또한 주방을 들어가기 전 잔뜩 받은 것 같은 무언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우와···. 이거 되게 오랜만이네.”

-쓰읍.

그러고는 입맛을 다지며 침을 꿀떡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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