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픈 (3)
“저 구름 떡집 사장님이···! 미친것 같습니다!”
달달 거리는 손을 뻗어 지민이 있는 곳으로 가리킨 박준혁은, 누가 볼세라 얼른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준혁의 설명은 현재 그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쟤가 원래 좀 미쳐있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겉모습만 멀쩡하지, 속 안은 누구보다 더 알 수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찬 지민이라 말이지.
“아. 원래···.”
손님들을 대할 때나 어르신들을 대할 때나 정상인의 가면을 뒤집어쓰지, 보통은 지민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내 말에 박준혁은 요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의 저 모습이 평소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준혁의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질 때 즈음. 지민은 다시 한번 준혁을 불렀다.
“준혁아! 좀 도와달라니까!”
가오픈 중이라 망정이지. 가게 안을 가득 메우는 지민의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게 분명했다. 고막에 직격으로 강타한 지민의 목소리에 귀를 비빈 나는, 다시금 두려운 기색이 가득한 박준혁을 힐끗 보고는 여상한 투로 지민에게 말했다.
“나랑 얘기 중이다. 혼자 하고 있어 봐.”
“아. 오케이. 빨랑 해. 지금 굉장히 중요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지민의 대답에 나는 박준혁을 보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를테면,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할까.
“오오···.”
간단히 지민의 재촉을 뿌리친 내 모습에 박준혁이 감동한 눈빛을 보내왔다.
“감탄할 필요는 없어. 애가 좀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착해.”
비록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크고, 여자 같은 겉모습과 달리 속은 화끈한 남성성이 더 크다고 하더라도. 지민의 심성은 착했다. 지금 저렇게 찍고 있는 것도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 싶어서일 테다. 그러니 혼자 짝사랑 하고 있는 동창의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이미지를 조금은 회생시켜줘야 하지 않겠다.
“뭐,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내 말에 박준혁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아, 나중에 잘 되면 밥 한번 사라. 내가 이렇게 너의 평판을 올려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단다. 박준혁에게 지민에 대한 오해를 어느 정도 푼 나는, 구겨지지 않게 파일에 넣어온 메뉴가 프린트된 종이를 꺼냈다.
“자, 그럼 체크해 볼까? 일단 메뉴 뽑아왔으니까, 체크해 보자고. 할머니 주방에 계시나?”
“네. 아까 형님한테 인사한 후로는 계속 주방에 계세요.”
“오케이. 한번 가보자.”
메뉴에는 음료만 18가지. 디저트 메뉴는 8가지나 있었는데,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가오픈을 하면서 메뉴를 쳐낼 생각이었다.
“할머니, 힘드시진 않으세요?”
계산대가 있는 작업대와 이어진 주방의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외부보다 더 후끈한 공기가 쑥하고 밀려들었다.
“어후. 너무 더운 거 같은데요? 에어컨 좀 트시지.”
후끈거리는 온도에 나는 주방에 비치해놓은 에어컨의 리모컨을 찾았다.
“뭔소리고? 우리는 이 온도가 딱 좋다. 너무 추우면 안 돼. 손 곱는다.”
하지만 열심히 작업하고 있던 할머니들에 의해 나는 에어컨을 틀려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오자마자 에어컨 틀려고 했는데, 온도가 딱 좋다고 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맞다. 원래 우리처럼 나이 들면 좀 덥다 싶은 게 좋은 거다. 아까도 준혁이 쟈가 너무 더워해가지고 내 보냈다 아이가. 자, 한울아. 이거 함 맛 좀 봐라.”
내 손에 들린 에어컨 리모컨을 빼앗았든 강 할머니는, 냉동실에서 하얀 종이 포일에 싸인 무언가를 잘라 내게 내밀었다.
“음?”
강 할머니가 건네주는 무언가를 엉겁결에 받아먹은 나는, 순식간에 퍼지는 달콤함과 그 뒤를 잇는 향긋함에 눈을 크게 떴다.
“어떻노? 맛있제?”
“이거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엿은 엿인데, 기존 먹던 엿이 그저 달콤한 풍미가 있었다면, 방금 엿은 거기에다 향을 좀 더 가미한 느낌이었다. 물론 역한 향이 아닌, 입안에서 굴리면 굴릴수록 더 굴리고 싶은. 동시에 입안에 있는 엿이 얼른 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입안에 들어있는 엿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나는 말 대신,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후. 그럼 됐다. 니도 처음 먹어본다카는거면 성공이다. 아나. 니네들도 함 무 봐라.”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실된 내 엄지손가락을 본 강 할머니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네모나게 생긴 하얀 종이 포일을 조금 깐 뒤, 사탕 크기만큼 잘라 박준혁과 지민에게 건넸다.
“우, 우와···!”
“헐. 이거 새로운 레시피죠?”
엿을 입안에 넣어 굴리기 시작한 둘의 표정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내 표정보다 훨씬 더 경악에 찬 모습이었다.
“흘흘흘. 젊은 아들 3명한테 통과 받았으니까는 이건 됐네. 통과!”
한마디 감탄사를 내뱉은 둘은, 조금 전의 나처럼 입안의 엿을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거 조청으로만 만든 거 아니죠?”
강 할머니께서 만드는 엿은 하얗고 반으로 똑 부러트리면 숭숭 구멍이 뚫려있는 일반 엿이 아니다. 하얀 엿은 엿기름을 졸이고 졸여 만들어진 걸쭉한 갈색의 끈적한 액체를 먹기 쉽도록 쭉쭉 편 상태의 엿이다. 공기층이 군데군데 있어 녹여 먹기는 쉽지만, 늘어난 탓에 그 맛이 갱엿(늘리기 전의 엿)처럼 깊지는 않다.
“뭐라카노? 당연히 엿기름 졸여서 만든 거제. 어떻노? 먹기에는 딱딱하지 않나?”
보통 갱엿이 시중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그 딱딱함 때문이다. 정말로 굳은 갱엿은 무기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그 경도가 무시무시했다.
“그러게요. 방금 주신 엿은 입에 들어오자마자 사르르 녹았는데···. 딱딱함도 없이···.”
그래서 보통 갱엿은 덩어리진 걸 망치로 깨부숴 작은 조각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어 조금씩 녹여 먹는 것이 보통.하지만 강 할머니가 건네준 엿은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부드럽게 녹으며 입안을 즐겁게 했다.
“그거는 비밀! 이게 다 내 노하우 인기라. 아. 한가지는 알려줄게. 어차피 뭐로 만들었는지 써야 한다메? 여기에는 몸에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갔다. 그 뭐냐, 음료 메뉴에 있는 잎 차? 그것도 향 좋은 거로 좀 넣고, 노인네들 엿 씹어 먹다가 이빨 빠지지 말라고 우유도 집어넣고···. 대추 조린 물도 살짝 넣었다.”
“네?”
일반적으로 엿에 들어가지 않는 재료들을 손을 꼽으며 말하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할머니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내 모습에 씩 웃으며 말했다.
“와. 전통 과자라고 해서 업그레이드되지 말라는 법 있나.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법들도 원조가 아닐 수도 있다. 누가 먼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방법이 있나. 지금처럼 인터넷에 다 기록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긴 몰라도, 계속 발전되어 온 게 우리가 먹고 있는 한과 일 거다.”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이든 조금씩은 바뀌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를 이어 똑같은 레시피로 만든다고 해도, 토질이 다르고 공기가 달라졌는데 100%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과를 그렇게 좋아하시던 우리 할머니는 매일 사과를 먹으며 중얼거리시곤 했다. ‘요즘 사과는 영 맛이 옛날과 달라.’ 옛날 노지에서 재배한 사과들은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있었지만, 지금 사과들은 새콤함보다는 인공적인 달콤함이 강해 아쉽다고. 하지만 사과의 맛 변화도 어찌 보면 변해가는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 바뀐 것일지도.
“오. 방금 할머니 좀 멋있었습니다! 끊임없는 개발 정신! 저도 오늘 연구실로 가서 기존 생산되는 비료를 더 업그레이드시킬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 할머니의 말이 이과생인 박준혁을 자극한듯했다. 하지만 강 할머니는 그런 박준혁의 모습에 콧방귀를 팽하고 뀌었다.
“아이고. 무신 업그레이드고. 니 방이나 치우고 말해라. 사람은 자고로 앉은자리가 어떤지 보면 안다고···. 니는 그렇게 따지면 딱 돼지다. 돼지.”
혀까지 쯔쯔 차는 걸 보아하니, 보지 않아도 준혁의 방 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 저는 방 청소 잘하는데~”
눈치 없는 지민이 강 할머니의 핀잔에 축 처져 있는 박준혁을 힐끗 보며 말했다. 청소문제로 혼나는 사람 앞에서 갑자기 청소 어필을 하는 지민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지민의 의도는 이어지는 말에서 밝혀졌다.
“할머니, 제가 언제 한번 할머니 집에 들러서 청소 좀 해 드릴까요?”
얼씨구.
우렁각시라도 시키면 할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지민의 모습에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지민아. 그거 아니다.
스스로는 청소를 잘한다는 어필이 박준혁에게 먹힐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지민의 행동은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숙맥처럼 같았다.
아니, 도대체 기죽어있는 사람의 고민거리를 냅다 쑤셔 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민의 행동을 수습하기 위해 내가 대화 주제를 돌리려 할 때였다.
“아이고. 됐다마. 아가씨는 이거나 묵고 평가 해주이소. 우리 집 청소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는.”
청소에 자신 있다고 손을 불끈 쥔 지민의 의욕 있는 모습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던 강 할머니가 이내 뭔가 눈치 챈 듯,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우와. 다시 봤지만 진짜 인별 사진 감이네요. 이 한과들. 한과 맞죠?”
“어. 이게 바로 한과 한 상이다. 근데, 니 내가 한과를 언제 줬는데 아직도 안 먹었나? 퍼뜩 들고 와서 같이 함 무봐라.”
“히히. 그게 너무 예뻐서 그만···. 아니, 카페를 너무 예쁘게 만들어놔서 이 각도로 찍어도, 저 각도로 찍어도 그림인데···!”
지민의 말대로 색이 짙은 나무 다기에 소담히 담겨있는 한과는 색으로 한번, 그리고 그 모양으로 한 번 더 보는 이를 즐기게 했다.
“아이고마. 알았다. 알았어. 준혁아 얼른 가서 그 예쁘기 그지없다는 한과 한 상 좀 가져와 보그라.”
이렇게 찍어도, 저렇게 찍어도 예쁜 한과라 차마 먹을 수 없다는 지민의 말에 못 말린다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은 강 할머니가 준혁에게 손짓했다.
“네!”
박준혁은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익숙한 모습으로 주방을 박차고 나갔다.
“엥? 제가 찍었으니까 제가 가져올게요. 잠시만! 준혁! 스탑!”
당연히 지민은 그 뒤를 쫓아갔다.
“좋을 때다. 그체?”
두 사람이 주방에서 사라지자, 강 할머니는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 나이에 맞지 않는,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강 할머니가 장난을 치지 않아서 그렇지, 왕년에 할머니의 장난에 울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하하.”
불길한 예감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민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준혁은 내 직원. 직원은 사장이 챙겨야 하는 것이 맞다.
“아이고. 뭘 그리 걱정하노. 내 별 장난 안 친다. 흐흐흐.”
강 할머니는 염려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 모습에 어깨를 툭툭 치며 안심을 시키려 했지만···.
낮은 할머니의 웃음소리에 내 팔에는 그만 소름으로 인한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