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93화 (93/163)

가오픈 (4)

내가 강 할머니의 의뭉스러운 미소를 보며 오소소 돋는 소름을 애써 떨쳐 낼 무렵.

“할머니! 가져왔어요!”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업대와 주방을 가리는 커튼이 열리고, 현재 내 앞에 있는 트레이와 완벽히 똑같은 한과가 담긴 트레이를 든 지민이 나타났다.

“아···. 제가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이 사장님이 너무 빠르셔서···.”

지민의 뒤를 박준혁이 터덜거리며 따라 들어와 입을 삐죽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삐진 게 분명했다. 분명 박준혁은 강 할머니의 말에 자신이 가지고 오려고 했을 것이고, 지민은 박준혁을 도와주기 위해 이미 트레이의 위치를 알고 있는 만큼 박준혁보다 먼저 달려가 낚아채 왔을 터였다. 그러니 박준혁이 장난감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저렇게 축 쳐져 있을 테고.

“누가 가오면 어떻노. 둘 다 내 가져오려고 한 게 중요한 기제. 둘 다 고맙다이? 자자. 그러면 함 무봐라. 여기. 일단 차랑 같이 한번 무봐라. 여가 대추차. 감잎차, 배꽃 차, 쌍화차, 그리고 곡물 차. 꽃차는 블렌딩이 아직 안 끝나가. 그건 낸중에 만들어 지면 또 줄게. 일단 야들이랑 한과랑 같이 무봐라.”

강 할머니는 언제 준비하셨는지 오묘한 빛깔이 섞인 도자기에 차를 담아 내밀었다.

특별히 아까부터 덥다고 어필한 박준혁에게 내민 차에는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었다. 얼음을 본 박준혁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곧장 손을 뻗어 들이켰다.

“우와···.”

곡물 차를 단숨에 들이킨 박준혁은 잔을 내려놓고 별다른 평 없이 그 옆에 있는 감잎차로 손을 뻗어 다시 한번 단숨에 들이켰다.

“우와···.”

“뭐야? 왜 자꾸 ‘우와’야?”

무슨 술을 마시듯 계속해서 원샷 후 감탄사만 내뱉는 박준혁의 모습에 지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몫으로 놓인 찻잔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오···!”

하지만 지민의 반응 또한 박준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와’와 ‘오’라니. 카페와 직판장을 오픈하기 전 소개 영상을 찍어 우리 마을 너튜브 채널에 올릴 계획을 하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쟤네 둘은 출연시키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쟤네 둘을 가지고 먹방 영상을 찍는다면, 사람들이 답답해 미칠 것이다. 맛도, 식감도 하다못해 ‘맛있다’든지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같은 기본적인 표현도 해주지 않는데···. 누가···. 음···? 문뜩, 어쩌면 사람들이 이 답답함 때문에 더 궁금해서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도대체 맛이 어떻길래? 답답해서 원. 할머니, 제가 맛보고 말씀드릴게요.”

나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10년이 넘게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연예인의 맛 표현도 지민이나 박준혁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사람들은 답답해하면서도 재밌어한다. 그리고 찾아본다. 도대체 저 맛이 어떻길래 하며. 나도 시청자들과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내 몫의 곡물 차를 들이켰다.

“이야. 이 곡물 차 너무 맛있는데요? 뭔가 고소하면서도, 달큼하고···. 달큼한데 이 단맛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고 전체적으로 입안을 기분 좋게 채워주는 느낌? 이거 대박인데요? 이것만 음료로 만들어서 유통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곡물 차를 한 모금 머금자, 부드러운 맛이 입안을 싹 돌았다. 시중에 파는 곡물 차의 경우 인위적인 단맛이 나거나, 끝 맛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이 곡물 차는 뒷맛까지 여운이 있어 계속해서 마시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흘흘. 그렇게 맛있나? 내 밤새워서 만든 보람이 있네. 자, 이제 차만 마시지 말고. 한과. 그 니네 말로 디저트라고 하는 거. 그거랑도 같이 무봐라. 커피도 좋지만, 전통차랑 마셔보면 또 그 맛이 다른기라.”

곡물 차에 대한 내 평이 마음에 든 듯, 강 할머니는 흡족하게 웃으며 얼른 한과도 먹고 평을 해 보라고 재촉하셨다.

“오오···!”

“어머!”

이미 지민과 박준혁은 정신없이 한과를 먹고 있었지만, 저들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뭐, 강 할머니랑 꽃분이 할머니께서 만든 한과 맛은 이미 검증되었는걸요.”

가게 인테리어를 도와주시고, 가게 직원으로 지원하신 어르신들의 목적은 전부 한과. 오직 한과 하나만 보고 한 손 걷어붙인 어르신들이다. 가오픈을 하기 전, 마지막 점검차 방문했던 어르신들도 한과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에 얼마나 실망을 하시고 돌아가셨는지. 보무도 당당히 들어와 같이 온 친구분들께 자랑을 하다 한과가 없다는 한마디에 어깨가 축 처져 돌아가셨을 정도.

“그래도 함 무봐라. 여태까지 내가 만든 건 그냥 심심풀이 간식으로 먹을 거라고 만든 기고. 이제는 돈 받고 파는 거니까 좀 다르다.”

“아. 정말요?”

확실히. 눈을 내려 트레이 위에 놓여있는 한과를 자세히 보니, 여태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한과와 모양새가 달랐다.

“색이 엄청난데요?”

우선 색이 화려해졌다. 예전에는 하얀색이나 노란색이 다였다면, 지금은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초록색 등 다채로워졌다.

“어. 원래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고 그다음이 입이란다. 눈에 보기에 좋아야 손님들도 좋아하지 않겠나?”

강 할머니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카페를 열어 할머니들의 한과를 좀 더 알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던 터라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한과를 업그레이드 시킬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맞아요! 사진 찍는데 색감도 너무 예쁘게 나왔어요!”

색감뿐만이 아니었다. 지민은 비주얼에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할머니들이 만드신 한과를 꾸준히 먹었던 나는 평소 할머니들이 만든 한과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거···. 매작과 맞나요?”

그건 바로 모양. 일반적으로 매작과(梅雀菓)는 보통 타래 모양 같다고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과 같다고도 한다. 이 모양은 얇게 반죽한 반죽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후, 반을 접어 칼집을 내 그 틈 사이로 반죽을 집어넣어 꼬아야 나온다.

“와? 니가 맨날 보던 매작과가 아니라서 신기하나?”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매작과는 혹시나 해 매작과이냐고 강 할머니에게 여쭈어봤을 만큼 내가 어릴 적부터 먹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보통 매작과는 네모나게 생겨서 중간만 꼬아진 모양 아닌가요?”

“야야. 장사하는데 어떻게 하나씩 꼬고 앉았노. 그리고 할미들이 눈이 나빠가꼬, 일일이 모양을 반듯하게 낼 수도 없다.”

“아···. 그런데 이 모양이 더 내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네모난 모양에 칼집을 내어 꼰 일반적인 매작과와는 달리, 내 눈앞에 있는 매작과는 꽃의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분홍색,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 꽃잎도 한 겹이 아니라, 2겹의 꽃잎이 입체적으로 서 있어 보기만 해서는 이쪽이 일반적인 매작과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있어 보였다.

걱정스러운 내 질문에 강 할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작업대 한구석에서 안이 보이는 플라스틱 상자를 꺼냈다.

“자, 봐라. 요즘 세상에 누가 그 꽃잎 하나하나를 칼로 조각하고 있겠노. 그 매작과가 만들기가 훨씬 더 쉽다. 요고랑 요고로 팍팍팍! 찍기만 하면 끝이다!”

“예?”

강 할머니가 상자 안에서 꺼내 내 눈앞에 내민 건 바로 과자 틀. 아니, 이젠 매작과 틀이라고 해야 할까. 각각 크기가 다른 꽃 모양 틀이었다.

“제가 주문해 드렸습니다!”

당당하게 틀을 내미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정신없이 다과를 즐기던 박준혁이 고개를 벌떡 들고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우리 준혁이. 귀가 참 밝다. 맞다. 내가 아직 막 찾아가지고 인터넷 쇼핑하는 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우리 준혁이한테 부탁 좀 했지. 그래도 저 모양은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거다.”

“오. 할머니, 인터넷도 할 줄 아세요?”

틀을 박준혁이 시켰다는 말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지민은 매작과의 새로운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 적용했다는 강 할머니의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암만! 내를 뭐로 보는 기고! 내 핸드폰도 스마트폰이다.! 데이터 무한!”

“우와···. 우리 할머니는 플립폰쓰시던데...”

스마트폰에 이어 무려 데이터 무한제 요금을 아는 강 할머니에 지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지민의 표정에 할머니는 턱을 치켜들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 동네에서 플립폰 쓰면 구닥다리라는 소리 듣는다. 처음에 좀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적응되니까 세상 편하더구먼. 애들이 와 그렇게 핸드폰을 그치로 끼고 사나 했더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겠다니까.”

“이야. 배우셨어요? 어디서요? 군청인가? 저희 할머니께도 알려드리려고요.”

자신의 할머니께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신청해 드려야겠다는 지민의 말에 강 할머니의 기세는 더욱 올라갔다.

“군청은 무슨. 여기서 거까지 갈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오늘 배운 것도 내일이면 까먹어버리는 우리가 무슨 수로 배우노. 맨날 옆에서 가르쳐준 한울이랑 준혁이 덕분이지.”

“예에?”

지민은 강 할머니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랄 만도 하제. 모든 마을에 우리 한울이나 준혁이 같은 착한 애들이 없으니까네. 쟤들이 이제는 우리도 최신기기들이랑 친해져야 한다고 매일 저녁 먹기 전에 마을 회관에서 하나씩 가르쳐준 거라.”

“진짜로?”

지민은 강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맞습니다. 이게 다 한울이 형님이 계획 한 거라는 말이죠.”

“니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민의 물음에 박준혁은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공을 나에게로 돌렸다.

“아니, 뭐···.”

사실 어르신들을 위한 스마트폰 교육은 이곳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언제 한번 꼭 시간을 내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였다.

‘우리 손주는 핸드폰만 붙잡고 있더라고.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처음에는 뭐라 뭐라 설명해 줬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제.’

‘손녀가 할머니보고 톡 좀 하라던데, 그게 무슨 소리고?’

‘아이고마. 요즘 햄버거 먹고 싶어서 큰맘 먹고 시내 가도 못 사 먹는다. 주문을 사람이 안 받고 뭐 등치만 이따 시만 한 기계가 주문을 받데? 일하는 젊은이들한테 주문 할라꼬 해도 바빠 보이가···.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가 아이가.’

여러 방면으로 내가 이곳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어르신들에게 보답해 드릴 게 없나 하던 중 들었던 고충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IT 세상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아랫세대와 멀어지는 어르신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터? 얼마나 했는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해줬어? 알았으면 우리 할머니도 내가 매일 여기 모셔다드릴걸!”

“두 달 정도 됐나? 우리 마을 카페 만들 때부터? 안 알려준 건···. 니가 말을 안 했으니까?”

“헐. 두 달 동안? 설마 매일매일?”

생각보다 긴 기간이었을까. 지민은 내 대답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설마라는 지민의 말에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자신의 몫의 트레이를 모두 끝낸 박준혁이 씨익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네. 주말도 빠짐없이! 매일매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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