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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94화 (94/163)

가오픈 (5)

“와우···.”

주말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스마트폰 교육 중이라고 하니 지민이 설마 했는데 진짜냐는 듯 입을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걸 할 수 있나 싶었는데, 한울이랑 준혁이 설명 따라서 하니까 어째어째 해지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내 영양제는 내가 시켜 묵는다 아이가! 이게 억수로 쉽드라고. 이렇게 인터넷을 켜가! 요기 하트로 들어가! 그리고 구매만 클릭하면! 봐봐라. 바로 구매 완료다 안카나.”

지민의 감탄에 강 할머니는 그간 당신이 배워온 걸 증명해 주겠다며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준혁이 즐겨찾기로 설정해 준 영양제를 몇 번의 터치로 구매해 보였다.

“와···. 진짜 대단하세요! 저희 엄마도 맨날 저한테 시키시는데···. 그럼 지금도 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와? 니네 할미도 진짜 데리고 올라꼬?”

“네. 되기만 한다면요. 어차피 저야 맨날 여기 와야 하는 데다가, 주말에 하더라도 저녁 먹기 전에 한다니까 괜찮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럼 우리야 언제든지 환영이지. 원래 맨날 보던 사람들만 보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람이 가끔 들어오면 환기도 되고 좋아. 안그나? 한울아?”

강 할머니는 지민의 생각이 기특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눈짓했다. 어서 허락하라는 말이었다.

“네. 어르신들만 동의하신다면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새로 오신 분을 가르치게 되면 시간이 좀···.”

마을회관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을 전부 수용하고도 널찍한 사이즈라 새로운 사람 몇 명이 더 추가된다고 해서 좁아 지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라면 지금도 스크린에 띄워 전체적으로 시범을 보인 뒤, 개인 연습을 시키며 개별적으로 헤매는 분들을 봐주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늘면 늘수록 진도는 느려지는 게 당연할 테니까.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럼 나도 도울게!”

“그래. 그러면 충분할 거다. 우리도 새로운 사람들 오면 이제 가르쳐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지민이 손을 번쩍 들며 선생을 자처한 것. 게다가 강 할머니까지. 뒤쪽에서 한참 반죽을 하고 계시던 꽃분이 할머니까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상관없죠.”

선생은 많을수록 좋고, 강 할머니의 말처럼 어르신들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자신이 습득한 바들을 더욱 완벽히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도 그렇지 않은가. 정말로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라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보일 거라고 말이다.

“오케이. 그럼 오늘부터 우리 할머니 모시고 올게. 시간 알려줘. 언제 가지 오면 돼?”

“5시. 한 시간 정도 할 거야.”

“오케이. 엄마한테 바로 연락해야겠다. 참, 혹시···. 어르신들 배우시는데, 얼마나 걸려? 우리 할머니 연습용 스마트폰은 내가 예전에 쓰던 거 그냥 드리면 되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다들 진도 저만큼 나갔는데 혼자 아무것도 모르면 의욕 상실인 거.”

지민이 얘도 보면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정성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떡집 장사를 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별이 뜨면 귀가했기에 그럴 것이다. 나나 지민이나 유년 시절 내내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니까. 나는 혹시라도 다른 어르신들의 실력에 치여 자신의 할머니가 기가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과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르신들은 알려드리면 금방금방 따라 하셔···.”

어르신들은 급발전하는 IT 기기들에 적응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가 대부분이다. 물론 개중에는 아날로그가 좋다며 문명을 거부하는 분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어르신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가 더 많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해 드리면, 잘 이해하시고 잘 따라 하시더라고.”

“맞다 맞다. 우리가 또 가르쳐 주면 다 잘 따라 한다 아이가? 근데 이놈에 머리가 굳어가 한 번 만에 기억이 내 맘처럼 안되드라고? 근데 이게 내만 그런 게 아니고. 원래 나이 들면 이리된다.”

강 할머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저 어르신들은 조금 느릴 뿐이다. 지금 우리야 어디서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사회에 노출되어 있지만, 어르신들은 평생 이곳에서 농사만 짓고 살아오셨다. 전자기기라고는 옛날부터 어르신들과 함께한 라디오나 기본적인 가전제품 그리고 플립폰밖에 없는데 급격하게 변하는 걸 어떻게 누군가 가르쳐 주지도 않는 데 따라가겠는가. 오래간만에 나간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점점 더 발전되는 문명에 적응을 못 하고 소외되는 존재가 되는 자신을 탓할 뿐이지.

“에이. 할머니, 그 정도면 진짜 빨리 배우신 거예요. 전 아직도 호미질이 서툽니다. 비료를 그렇게 만들었는데도 그 냄새가 적응이 안 되고요.”

박준혁의 말이 정확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교육도 없이 농사 도구를 쥐여줘봤자 이걸 어떻게 제대로 쓰는지도 모른 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일 거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어르신들은 다르다. 작물들의 이파리만 봐도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 흙이 딱딱한 곳은 어떤 기구로 땅을 파야 하는지 등등. 땅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아이고. 그건 우리가 평생을 땅만 파먹었으니까 당연한 거제.”

“저희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전 유치원생 때부터 목에 스마트폰 걸고 다녔거든요.”

박준혁은 강 할머니가 뛰어다닐 때부터 농사를 해왔듯, 저도 그렇다며 씩 웃어 보였다. 그런 박준혁의 뿌듯한 표정에 강 할머니가 졌다는 듯 손을 살래살래 저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못산다. 진짜. 니도 우리가 스마트폰 이렇게 사용하는 것맹키로 좀만 더 땅이랑 친해지면 우리보다 더 빠삭하게 될끼다. 니 암만 그래도 대학원생 아니었나.”

“그렇긴 하죠.”

“그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니가 다 먹어치운 그 한과 한 상에 대한 평이나 좀 해봐라.”

“어···. 음···. 맛있습니다! 최고!”

강 할머니는 아까와 한치의 변함도 없는 박준혁의 로봇 같은 리액션에 이마를 짚었다.

“니는 글은 그렇게 잘 쓰면서 말을 왜 그리 못하노? 됐다. 맨날 밥 먹으면서도 그러는데 물어본 내가 잘못했지.”

하지만 박준혁은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눈을 반짝였다.

“혹시 글도 괜찮으시면, 글로 작성해서 드릴까요? 그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한과와 전통차 종류별로 아주 상세하게 적어서 제출하겠습니다.”

“아이고···. 두야···.”

당연히 강 할머니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손사래를 치며 중얼거리셨다. ‘저거는 여자 만나면 한 번에 해결되는데···. 빨리 만들어야겠구먼.’이라고. 강 할머니가 계획한 무언가가 뭔지는 몰라도, 나는 박준혁에게 무운을 빌었다. 그게 무엇이든, 잘 살아남길 바라며.

사태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모습의 박준혁의 시선을 일별한 나는, 이곳에서 어서 벗어나기 위해 앞에 있는 한과들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말했다.

“일단, 매작과는 보기에도 예쁘고, 먹었는데 밀가루 향이 나지 않아 좋았습니다. 주악은···. 식감이 미쳤네요. 여기 정과들도 너무 달지는 않은데, 식감이 젤리처럼 쫀득하면서도 과일 본연의 맛을 내서 좋고요. 약과랑 한과는···. 어후. 말해 뭐합니까. 최고입니다.”

과연. 열심히 연구해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강 할머니의 말대로 떡 같은 식감을 가진 주악은 찹쌀 반죽을 어떻게 했는지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붙기보다는 쫀득함만을 선사하곤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기다 매작과에는 밀가루 비율을 줄이고 다른 가루를 넣었다더니, 일반적인 밀가루 튀긴 맛의 매작과와 달리, 마치 아주 정성스럽게 만든 유기농 과자를 먹는 기분이었다. 제철 과일과 뒷산에서 캔 도라지 등을 꿀에 잰 정과 또한 무엇에 절였는지 모르겠지만 설탕의 서걱거림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글나? 다 좋다고 하면 곤란한데···. 뭐 뺄 거 없나?”

내 평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민의 모습까지 확인한 강 할머니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왜요? 할머니? 저 아까 주신 엿이랑 강정도 여기 더 추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줄이다니요!”

이미 제 수중에 있는 모든 한과를 클리어한 지민은 자신이 여태 먹은 것 중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우리는 이거 아침에 후딱 그날 팔 것만 만들고 밭에 갈라 캤지.”

“네? 할머니! 여기서 일하시고 밭에를 또 가신다니요! 절대 반대입니다.”

지민은 밭을 매러 가야 해서 한과 종류를 줄여야 한다는 강 할머니의 말에 결사반대를 외쳤다. 콧김까지 뿜는 걸 보니 열받은 황소가 따로 없다.

“그럼 우야노? 있는 밭을 놀리나?”

하지만 강 할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예전처럼 밭을 경작할 수는 없어도, 가족들이 먹을 농작물들은 손수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음···. 그럼 알바생을 고용하시는 건···.”

“아이고. 코딱지만 한 밭에다가 무슨 알바생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구먼.”

그 작은 밭에 무슨 알바생이냐며 강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안다. 그 코딱지만 한 밭이 100평은 될 거란 걸. 분명히 이 퀄러티의 한과와 전통차라면, 머지않아 입소문이 퍼져 생산량을 늘려야 할 게 분명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두고, 추후 내가 알바생을 더 고용해 일손을 보탤 생각을 할 때였다.

“어···. 할머니, 혹시 무료 알바생이면 어떠신지?”

똑같은 표현 덕에 할머니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고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박준혁이 슬며시 손을 들고 말했다.

“뭐? 무료 알바생? 그런 게 어딨노? 농촌 일이 얼마나 힘든데.”

갑작스러운 무료 알바생 제안에 강 할머니는 오히려 그런 건 없다며 사기꾼이 분명하다고. 그런 사람들이랑 놀지 말라며 박준혁을 단속하셨다.

“어? 설마···. 그때 그분들?”

하지만 박준혁이 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네. 선배들이 요즘에도 연락이 많이 와서. 교수님이 저 없어지고 나서 히스테리가 다시 심해졌다나 뭐라나. 요즘 들어 구해 달라고 난리서요.”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박준혁이 이곳에 눌러앉겠다고 선포하자마자 득달같이 울렸던 전화들. 하루가 멀다고 추노를 하겠다고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오메. 준혁이 선배들이라면 그 서울에 있는 대학원생들 말하는 기가?”

“네. 저보다 훨씬 경력도 많고, 농작물에 대한 지식도 빠삭해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쪽에 교수님이 한 명 더 보낼 거라고 하더라고요.”

박준혁과 같은 학교 출신의 선배들이 우리 마을로 올 예정이라는 소리에 알바생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강 할머니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예 농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박준혁처럼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진 서울 사람이라는 소식에 솔깃하신 모양.

“언제?”

“어···. 그게 어제 전화 받았을 때 들은 거니까, 아마 몇 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나? 그라믄 나도 환영이지. 근데 학생들도 느그 그 교수가 보낸 거면 한울이네 농장에 가려고 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내 강 할머니는 교수가 보낸 거라는 말에 기대를 접었다. 하기사, 박준혁이 처음 우리 마을로 온 이유도 바로 우리 밭의 오이 때문이었으니까. 박준혁은 할머니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신비농장 것은 아무리 연구해도 이상하다고, 신비농장에서 팔고 있는 다른 집 작물들도 다 구매해봤나 봐요. 그래서 이번엔 신비농장이 아닌 다른 농장으로 갈 것 같습니다. 신비농장엔 노예를 한번 빼앗겼다고 안 보낸다고 했다나···. 뭐, 그렇게 됐습니다.”

“진짜가?”

“네.”

“그럼 언제 오는지 연락 오면 꼭 내한테 말해라. 내가 방 싹 다 치워놓을게.”

어떤 밭이든 미화리 산골 마을에 있는 밭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을 거라는 박준혁의 말에 강 할머니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자세한 일정을 물을 때였다.

-지잉.

“네. 잠시만요. 안 그래도 지금 전화 오네요. 여보세요?”

마치 듣고 있었다는 듯, 박준혁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고, 몇 주가 걸릴 거라던 박준혁의 예상과는 달리.

“예? 지금 마을 입구라고요?”

그들은 이미 이곳에 도착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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