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바람(3)
“네. 반갑습니다. 김한울이라고 합니다.”
어라?
이동민은 자신의 인사에 맞인사를 하는 청년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쪽은···?”
분명 신비농장의 사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알고 있었다. 박준혁이 자신의 머리카락이 풍성해지는 사진은 그렇게 많이 보내주었어도, 사장의 사진은 단 한 번도 보내준 적이 없어 막연히 나이가 많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농사를 그렇게 잘한다고 하니, 햇볕에 그을려 까만 피부와 자외선으로 인한 주름, 그리고 밀짚모자 등등.
“으응? 나 말인가? 내는 우리 한울이 옆집 사는 할배.”
그러니까, 지금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나무판에 무엇을 적다 말고 고개를 든 할아버지처럼.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선배, 그쪽은 기계 엄청 잘 다루시는 우리 마을의 기계 손 일인자! 심 할아버지시고, 이쪽이 우리 신비농장 사장님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동안이시라···.”
“네? 제가요?”
나는 내가 동안이라 미처 신비농장의 사장인줄 몰랐다는 박준혁의 선배, 이동민의 말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동안?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하. 우리 형님이 좀 많이 동안 이시긴 하죠? 저도 처음에는 놀랐다니까요? 나이 듣고?”
게다가 박준혁 또한 동안이라는 말을 정정하기는커녕, 한술 더 뜨고 있다. 내가 동안이라니?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안 소리를 듣던 나였다.
“한울이가 우리 마을에 와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농사도 짓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다 보니까 하루하루 젊어 지드라고. 도시 때를 벗은 거지. 암만.”
심 할아버지까지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젊어졌다고 하시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설마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니겠지?
“우리 준혁이도 여 와가 많이 젊어졌잖아. 안 그러나?”
“맞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에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뭐라카노! 여기서 뼈 묻으면 우얄라꼬! 니는 여기 집도 없지 않나!”
“에이. 조금만 있어 보십쇼. 저 여기 집 하나 정도 살 만큼 돈은 모아놨습니다. 하하!”
“진짜가? 그럼 내가 또 장 이장한테 말해가 여기처럼 좋은 집 니한테 소개하라고 해야겠다.”
“오우. 그럼 정말 감사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오야. 내가 니 리모델링 할 때 기계도 다 빌려줄게. 말만 해라.”
“넵!”
박준혁과 심 할아버지의 대화를 들어보니 몰래카메라는 아닌 것 같았다. 누가 몰래카메라에서 집 구매 얘기를 하겠는가. 그나저나. 박준혁이 이곳에 집을 살 생각까지 했다니. 의외였다. 그럼 박준혁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다음 사업을 하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저기,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고용 주시라고요.”
어느새 내 옆으로 자리한 이동민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대학원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착한 선배가 온다고···. 저희 집 작물 실험성적서도 그쪽에서 모두 발행해 줬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검사증들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
“하하. 준혁이가 그랬나요? 네. 검사증은 제가 다 발행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실험 돌리면서 재밌었습니다. 여태까지 저희가 실험 돌리면서 그렇게 영양소가 뛰어난 작물은 처음이었었어요. 하면서 매번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그게 일상이라서요.”
이동민은 자신을 칭찬했다는 박준혁을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민망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동민 씨도 이곳에 온 이유가···?”
박준혁을 처음 만났을 때가 어제처럼 생생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새참을 먹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덥석 잡으며 도비가 되겠다고 했었지. 과연 이동민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아직 이동민의 손에는 박준혁 때처럼 우리 집의 오이는 들려 있지 않은 걸 보니 다른 대사를 치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저기, 강···. 할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네?”
우리 집의 작물을 토대로 실험을 해 보고 싶다고 아니고, 흙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강 할머니라니? 전혀 연관도 없는 사람의 등장에 내가 반문하자, 이동민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더니 내 눈앞에 내밀었다.
“이걸···. 만드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내 눈앞에 내밀어 진 건, 투명한 비닐 쪼가리였다. 안에 내용물이 있었던 것 같은 비닐 쪼가리. 그러니까, 지금은 내용물이 없어 쓰레기에 불과한 그것.
멍하게 노란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그것을 빤히 노려보자, 심 할아버지와 부동산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던 박준혁이 고개를 쭉 빼고 내게 말했다.
“어? 선배님! 다 먹은 걸 보여주시면 어떡해요! 사장님! 그거 강 할머니가 주신 밤 다식 들어 있던 봉투입니다!”
안다. 준혁아.
지금 우리 마을에 이 포장지는 강 할머니가 맛보기용 다식 포장한다고 다 가지고 계시거든.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정보도 적히지 않는 비닐을 들이밀며 강 할머니를 찾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아서 말이다.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박준혁의 말에 이동민이 다시금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박준혁과 다른 의미로 아주 개성 있는 사람이었다.
**
-디디링~
카페 사랑방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얼굴이 사랑방안을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여긴, 시골이 아닌데요? 저희 대학원 앞에 있는 카페보다 훨씬 세련되고, 이거 서울에 있으면 사람들 미어터질 것 같은데요?”
카페 안을 들어오자마자 카페 구석구석을 살피며 감상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바로, 어딘가 이상한 이동민이었다.
“어서오... 뭐꼬?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막 나갔는지, 빈 컵과 접시들이 즐비한 테이블을 정리하던 강 할머니가 자동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다 말고, 내 옆에 서 있는 이동민을 보며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부로 이곳에 발령받은 이동민이라고 합니다.”
이동민은 예의는 바른지, 할머니의 목소리에 카페 내부를 살피던 걸 멈추고 강 할머니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발령? 아아. 혹시 준혁이 선배?”
“네! 맞습니다. 혹시···. 어르신이 강 할머니?”
“어. 그래. 맞다. 내가 강 할머니이긴 한데, 와?”
강 할머니는 어째서 자네가 나를 알고 있냐는 눈빛을 했지만, 이동민은 강 할머니의 대답을 듣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인을 찾은 강아지 마냥 기뻐하며 강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손에 쥐어진 행주를 빼앗아 들며 말했다.
“여긴 제가 치우겠습니다.”
“으잉?”
순식간에 행주를 빼앗긴 강 할머니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냐는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으쓱.
나도 그 속을 몰랐기에, 어깨만을 으쓱거리며 박준혁의 옆으로 가 물었다.
“네 선배, 왜 저러는지 아느냐?”
저쪽에서 들리지 않게 조용히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선배가 하는 걸 보며 지민에게서 받은 강정 접시를 해치우던 박준혁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아. 저건 보통입니다. 저 선배 특기가 수발 들기라서요.”
“수발들기···?”
예상치도 못한 특기를 들어 다시금 묻자, 박준혁이 추가 설명을 하였다.
“저희 교수님 수발 담당. 저희 랩실에서 유일하게 교수님의 심부름을 완벽히 처리하고, 교수님의 기분을 맞춰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분이 저 선배님이십니다.”
“오···.”
박준혁에게서 교수에 대한 말을 워낙 많이 들어온 터라 나에게 교수의 이미지는 안하무인, 또는 스트레스 메이커, 하트 브레이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교수가 예민하고도 섬세한 모든 것들을 맞춰주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왜 이곳에···?
“그 정도면 교수님이 여기 못 오게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여기 왔대?”
내가 가진 질문을 박준혁의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박준혁이 강정을 먹는 모습을 보던 지민이 물었다.
“아. 그거요. 그건···. 제 탓입니다.”
“어? 네 탓? 왜?”
“제가 머리 나는 거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놀리고, 나중에는 그만두겠다고 한데다, 신비농장 알바 뽑을 때 자소서는 다 받아놓고 탈락 통보했으니까요?”
“그게 왜?”
참···. 미운 짓을 많이도 했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교수님이 저분을 놔 줄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내 짧은 생각은 뒤이은 박준혁의 설명에 바로 바뀌었다.
“음···. 그렇게 되고 저 선배가 실험실에서 좀 놓은 것 같더라고요. 다른 분께 들어보니까 제2의 박준혁이 되었다고···.”
“제2의 박준혁이라고 하면? 그···. 맑은 눈의 광인?”
“하핫···. 네.”
종종 박준혁의 대학원생 시절 교수님을 괴롭혔던 일화를 들었던 나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소리에 모든 게 한 번에 이해가 갔다.
“그래. 그렇게라도 나왔으면 잘 된 거 맞지?”
“아마도요? 저 만나자마자 죽이려고 하긴 했지만, 밤 다식 하나 먹고 진정될 걸 보니 아직은 정상인 같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미치면 말이죠, 새벽에 일어나서 히죽거리면서 웃고 다니기 시작하는 게 1단계인데···.”
대학원생이 미친 후에 하는 짓은 듣고 싶지 않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좀비가 생각나기 때문. 어떻게든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같아 안쓰럽달까. 히죽거리면서 웃는 다는 건,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방어기제가 분명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박준혁을 통해 피로회복에 좋은 과일들을 한 박스 보내주든지 해야지. 아무리 박준혁이 나왔더라고 하더라도, 박준혁이 이렇게 잡음 없이 잘 탈출할 수 있던 배경에는 그곳에 있는 선배들의 노고도 컸을 것이니까.
“됐다. 그런 건 듣고 싶지 않으니까 넣어둬. 그보다, 오늘 주문 건 우리 집 앞에 내놨으니까 이따 택배 기사님 오면 같이 잘 실어들이고.”
본격적으로 대학원생의 비루한 삶을 설명하려는 박준혁에게 손짓한 나는, 이곳에 오기 전, 포동이의 도움으로 옮긴 상품들의 포장을 부탁했다.
“네? 그걸 사장님이 혼자 다 옮기셨어요? 같이 옮기시지!”
“괜찮아. 운동 삼아 옮긴 거니까. 나중에 석호 오면 같이 해. 오케이?”
“넵! 알겠습니다. 그럼, 할머니! 저는 이따 집에서 뵐게요!”
“어? 준혁이 가는 거?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온 김에 오늘치 호박은 제가 가져가기로 해서. 할머니, 그럼 제가 내일 호박즙 가져와 볼게요! 내일 봬요!”
“오냐. 잘 가거라.”
순식간에 카페를 나가는 박준혁과 지민을 배웅하며 강 할머니는 살풋 웃으셨다.
“어···?”
뒤에서 털썩하고 행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엄마야. 준혁이 야는 가더라도 지 선배를 데리고 가야제. 우짜노.”
행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뒤로 고개를 돌리니, 아직 배낭도 내려놓지 않은 채 테이블을 닦던 이동민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박준혁이 박차고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꽈아악.
이동민의 손에 쥐어진 행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