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소문 (1)
-뚝. 뚝.
어찌나 꽉 쥐었는지 이동민이 쥔 행주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하이고. 준혁이 야가 정신이 없어가 까묵었나 보네. 지 선배가 여 있는 줄. 자자. 저 테이블에 앉아라. 내가 뭐라도 좀 줄테니까.”
망연하게 입구를 바라보며 서 있는 이동민을 가까운 테이블에 앉힌 강 할머니는, 가방을 대신 받아주고는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정신이 아득한 듯 머리를 짚고 있는 이동민의 앞에 앉아 위로를 전했다.
“준혁이 쟤가 제가 뭘 시키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편이라.”
“...”
안타깝게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 할머니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적응이 될 때까지는 같이 있어 주는 것이 보통일 텐데. 나는 후배에게 순식간에 버림받고 생각이 많아진 이동민의 앞에 앉아 아까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가게 내부를 살펴보았다.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감?”
점심시간부터 커피와 차를 내리기로 한 할머니 한 분이 꽃분이 할머니 옆에서 기계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응. 맞어. 잘 기억하네. 저기 윙윙거리는 기계에 불 들어오면, 잔 두 개가 겹쳐진 걸 누르고, 이렇게 포터 필터로 툭 튀어나온 걸 눌러.”
-위이잉-.
버튼에 따라 원두양이 정해진 자동 그라인더에서 갈린 원두가 포터 필터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있제? 원두 누르는 거. 이걸로 포터 필터 여기를 가볍게 탁탁 친 다음에, 이렇게 여 고무판에 대고 꾹 누르면···.”
-탁탁탁.
“...자 봤제? 이렇게 골고루 평평하게 나오면 끝이다. 끝. 자 이제 네가 해봐라.”
꽃분이 할머니는 틀리더라도, 지적하지 않고 어떻게 하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손수 시범을 보여주었다.
-위이잉.
-탁탁탁.
-우우웅.
꽃분이 할머니가 가르쳐준 걸 신중히 따라 한 할머니는, 시도 한 번 만에 고른 에스프레소를 뽑아내었다.
“아이고. 잘하네! 저번에도 잘하더니, 오픈 하고 처음이라 떨었나 보네!”
“아이고. 말도 마라.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가. 다들 내 보는 줄 알고 손이 벌벌 떨리더라니께.”
“봐도 뭐. 우리가 신경 쓸게 뭐 있노. 아, 우리가 잘해서 보는 갑다. 하고 당당하게 있으면 된다.”
“근데 선생은 왜 안 보이노?”
“어? 아까 한울이가 그러는데, 직판장 쪽에 있다드라.”
“와?”
“내사 모르지.”
여기서 할머니들이 말하는 선생은 심 할아버지였다.
카페의 인테리어가 거의 마무리 될 때쯤, 나는 커피 머신을 들이고 카페 일을 도와주겠다는 어르신들을 모아 강의를 하기 위해 외부 강사를 초빙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심 할아버지께서 커피에 일가견이 있어 모든 커피 관련된 것들은 심 할아버지가 교육을 끝낸 상태였다.
“그 양반은 삽질은 젤로 못하면서, 우째 기계 관련된 거는 다 잘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네. 내는 이따가 모카 포트? 거기에다가 커피 내리는 법 좀 다시 배울라고. 거기에 내린 커피가 나는 맛있더라고. 소금이랑 크림 내가 만들어서 줬는데, 믹스 커피 저리 가라 드라.”
“아. 맞나? 믹스커피는 또 내가 영감한테 배워가지고 잘 탄다. 함 무 볼래? 내가 탄 거 마셔보면 그 평이 또 달라질구로?”
“그래. 나야 좋제.”
심 할아버지는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뽑는 방법 뿐만이 아니라, 모카 포트, 핸드드립, 그리고 더치 커피를 뽑는 법까지 다 알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심 할아버지네 창고에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제외한 나머지 장비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어 카페를 오픈 하기 전까지 어르신들의 연습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역시나. 우리 동네에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만물상이셨다.
“어떻노? 맛 좋제?”
“이야. 내사 카페에 사람들이 올린 후기만 봐서 커피 믹스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노 했는데. 진짜 맛있네.”
꽃분이 할머니에게 방금 믹스커피를 얼음과 함께 셰이커에 흔들어 준 어르신은 바로 체험 농장 김 할아버지의 아내분 되시는 이명옥 할머니였다.
“내가 남편한테 이거 배우면서 얼마나 쿠사리를 들었는데. 당연히 맛있어야제. 내가 이제는 우리 마을에서 커피 믹스 제일 잘 탄다.”
김 할아버지는 내가 카페를 연다는 말을 하자마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이 할머니를 믹스커피 제조자로 탈바꿈시켜 카페 일을 돕겠다고 단언하셨었다.
체험 농장을 관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손님들이 진짜 매점도 아닌 간이매점에서 커피를 사 마신다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매번 다음 타임 팀들이 잼을 만들러 오기 전 전 팀 손님들을 쫓아내기 위해 진땀이 빠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부터 간이매점은 다 없앤기가?”
“어. 간이매점 천막 쳤던 것도 다 없애버리고. 거기 평상 다 놨다. 그리고 커피 먹고 싶으면 이쪽으로 오라고 안내판도 붙여놨다.”
그래도 아이들 간식 몇 개는 놓아둘 줄 알았는데 싹 다 치워버렸을 줄이야. 어지간히 손님들에게 시달리신 모양.
간이매점을 없앴다는 소리에 꽃분이 할머니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며 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글나? 첫 타임 손님이 몇신데?”
“이제 슬슬 잼 만들기도 끝나 갈거로? 한 10분 있으면 끝나겠네.”
10분.
체험 농장이 끝나고, 그곳 손님들이 이곳으로 바로 온다고 가정했을 때 걸리는 시간 길게 잡아 5분. 넉넉히 15분 뒤면 이곳에 낯선 사람들이 닥칠 거라는 소식을 이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톤으로 말했다.
느긋한 표정의 이 할머니와는 달리, 꽃분이 할머니는 우아하게 커피 믹스를 마시다 벌떡 일어나 머릿수건을 꽉 쪼매며 말했다.
“우야꼬. 그럼 진짜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좀 있으면 온다는 소리 아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커피 잘 마셨다이. 니는 거기 커피 레시피 잘 외우고 있어라. 내는 주방에 가서 디저트 남은 거랑 차 남은 게 얼마나 있는지 보고 있을 테니까.”
“어? 어. 알았다.”
꽃분이 할머니가 서둘러 주방에 들어가고,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는지 이 할머니도 자리에서 일어나 레시피가 적힌 코팅지를 들어 열심히 외우기 시작했다.
“따뜻한 카페라테···. 찬 우유 170mL를 저 쇠 주전자에 넣고, 거품을 낸 후에···. 거품을 우째 냈드라...?”
제일 기본적인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건너뛰고, 카페라테를 보던 이 할머니가 스테인리스 거품 컵을 들고 이리저리 보는 모습에 내가 여차하면 일어나 도움을 주려 할 때였다.
“자. 오래 기다렸제? 준혁이 선배? 이거 먹고 마음을 가라 앉히 봐라. 좀 있으면 갸 다시 여 올 거다. 어차피 하숙은 우리 집에서 할 거 아니가? 내가 가야지 다 정해진다. 조금만 있어봐라. 알았제?”
주방에서 한과 한 상과 함께 곡물 차를 내온 강 할머니가 트레이를 이동민 앞에 두고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던 이동민은 그런 할머니의 손길에 고개를 들어 감사를 표한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그럼 됐다. 그거는 이 할미가 사는 거니까, 먹고 어떤지 평만 해주면 된다. 알겠제?”
“네 알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강 할머니는 기운을 차린 이동민의 어깨를 한 번 더 툭툭 쳐 주곤, 꽃분이 할머니의 부름에 주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 할머니가 주방으로 돌아가는 걸 물끄러미 보던 이동민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저기, 혹시 사장님, 제가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영상을 찍어 달라니. 이 사람, 사실은 대학원생이 아니라 너튜브였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박준혁이 벌써 신분증명을 확실히 하긴 했다. 예상치 못한 요청에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이동민은 설명이 부족했다며 영상을 찍으려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강 할머니께서 평가해 달라고 하셔서. 지금 바쁘신 거 같은데, 이따 기다렸다가 말씀을 드리면 현재 제가 느꼈던 맛에 대한 표현을 100%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 그러니까, 영상을 찍는 이유가 너튜브에 올리려는 목적이 아니고, 강 할머니가 부탁한 걸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와우. 나는 박준혁이 왜 이동민을 보고 교수님의 입맛을 유일하게 맞춘 대학원생이라고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 그 교수는 이동민의 이런 아웃풋에 익숙해져, 다른 학생들의 ‘보통’적인 아웃풋을 못 마땅하다고 느꼈을지도.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각도로 찍어 드리면 될까요?”
“어떤가도 상관없습니다. 제 표정만 잘 나오면요.”
역시나. 지민이 나에게 사진을 요청할 때마다 강조하는 45도 얼짱 각도는 아예 생각에도 없는 듯한 이동민의 태도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트를 세었다.
3 2 1.
-딩.
둔중한 알림 소리가 나며 카메라가 동영상을 찍는 소리가 테이블 위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카메라 위치를 확인한 이동민은 우선 곡물 차가 든 잔을 들어 마른 목을 축였다.
-꿀꺽. 꿀꺽.
몇 모금만 마시고 잔을 내릴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이동민은 거의 곡물 차를 원샷하고 있었다.
-탁.
드디어 곡물 찻잔이 트레이에 내려졌다.
당연히 잔에는 내용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곡물 차를 마실 때보다 표정이 다채로워진 이동민은 입가를 훔치며 엄지를 내어 보였다.
“와. 제가 살면서 마신 곡물로 만든 차 중에서 제일 맛있었습니다. 이 차를 마시러 매일 이곳에 오고 싶을 만큼 말입니다!”
차에 카페인 성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동민의 텐션이 묘하게 높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동민은 이번에는 손을 뻗어 노란 사과 모양을 한 주악을 집어 들었다.
“어···. 이건 제가 처음 보는 음식인데, 혹시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주악이라고. 찹쌀을 기름에 튀긴 도넛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확실히. 어르신들은 할머니들의 한과에 익숙해 어떤 걸 내놓아도, 이름을 묻는 법은 없었다. 집으로 가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가 만든 한과에 대한 특징과 설명을 메뉴판에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우와-!”
이동민의 입에서 지금까지의 점잖았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탄성이 튀어나왔다.
“...?”
핸드폰을 고쳐 들고, 이동민의 표정을 클로즈업하자, 그는 무아지경으로 주악을 꼭꼭 씹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진짜 너튜브의 먹방 너튜브라도 된 듯, 속사포처럼 평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찹쌀 도넛 같은데, 찹쌀 도넛이 아닌. 찹쌀 도넛보다 더 부드러운데, 또 쫄깃하면서도 기름 맛은 하나도 안 나고. 고소함이 미쳤네요. 씹으면 씹을수록 과일 향도 나면서 침샘을 자극하는데 죽입니다.”
흡사 래퍼 같았다. 계속해서 주악을 음미하며 말을 뱉어내는데, 그중에 숨을 쉴 틈은 있나 걱정이 될 정도.
“예상보다 너무 맛있는데요? 그럼 다음 걸 먹어보겠습니다. 이거 너무 기대가 돼서···.”
주악을 다 삼키고도 오랫동안 주악에 대한 찬양을 마친 이동민이, 손까지 비비면서 매의 눈으로 다음으로 먹을 한과를 고를 때였다.
-디디링~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맑은 풍경 소리가 울리고.
“어머. 여기 안은 더 예쁘다. 그치 규빈아?”
“어! 엄마 여기서 맛있는 냄새나! 나 디저트 사죠!”
“우와아아아! 경복궁이다!”
“승민아, 여긴 경복궁이 아니고, 그냥 한옥 카페야.”
아이들 특유의 재잘거림을 동반한 그룹이 사랑방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럼, 메뉴가 뭐가 있는지 볼까?”
가 오픈 첫날.
김 할아버지네 체험 농장에서 첫 번째 단체 손님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