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00화 (100/163)

입 소문 (3)

“무조건 콜입니다!”

승민 엄마는 구석 테이블에서 들리는 화이팅 넘치는 목소리에 규빈 엄마를 보며 살풋 웃었다.

“어머. 씩씩한 것 좀 봐. 우리 승민이도 저렇게 씩씩해야 하는데···.”

“왜요. 승민이 씩씩하구먼.”

“아후. 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애가 숫기가 없어 숫기가. 처음 보는 사람들만 보면 숨기 바쁘다니까.”

“그래도 아까 체험 농장에서는 딸기도 잘 따고, 잼도 잘 만들던데요? 우리 규빈이랑도 잘 놀고.”

“그건 규빈이랑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서 그렇지. 그렇지? 규빈아?”

한숨을 폭 내쉬며, 내향적인 성격인 제 아들을 걱정하던 승민 엄마는, 안쪽 소파 의자에서 승민과 함께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잘 놀고 있는 규빈이를 보며 말했다.

“네? 네! 맞아요! 규빈이 승민이랑 친해요!”

규빈은 아줌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오구오구. 그랬어요. 예뻐라.”

아이의 웃음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승민 엄마도 한숨을 쉬었던 게 언제였냐는 듯, 방긋거리는 규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웃었다.

규빈이만 쓰다듬어주는 엄마에게 제 머리도 쓰다듬어 달라는 승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주문하신 음료와 한과 나왔습니다.”

통로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핸드폰 페이를 도와주었던 청년이, 트레이를 끌고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어머!”

주문한 디저트와 음료를 가져다주는 흔치 않은 카페 서비스에 감사를 표하던 승민 엄마는, 트레이 위에 올려진 다과를 보고 탄성을 터트렸다.

“어머. 어쩜. 너무 예쁘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 트레이에서 테이블에 옮기기 전에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규빈 엄마조차 트레이 위에 올려진 다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트레이를 끌고 온 이동민에게 부탁했다.

“네. 얼마든지요.”

이동민이 끌고 온 트레이는 금색으로 칠해진 곡선이 고풍스러운 트레이였는데, 트레이를 지지하는 기둥을 제외하고는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그 위에 놓인 다기들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그릇들이 너무 예뻐요.”

그릇들은 또 어떠한가.

카페라테가 담긴 잔은 찻잔과 세트로 앤티크 샵에서 공수해 와 마치 프랑스 왕실에서 사용했을 법한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고, 커피가 아닌 전통 차들이 담긴 잔은 도기로, 마을에 있는 도자기 명인에게서 가져온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었다. 특히나 한과 한 상은 나무를 정성스럽게 깎아 옻을 칠해 진한 빛을 품고 있었는데, 그 진한 옻 빛이 그 위에 담긴 한과들을 더욱 고급스럽게 비춰주고 있었다.

“어머. 이 잔은···! 내가 구하려고 그렇게 사방팔방 알아보고 다녀도 못 구했던 건데···! 이 귀한 거에 커피를 줘? 이 도자기는 또 뭐지?”

나는 멀리서 들리는 손님들의 감탄사에 피식 웃었다. 잔은, 읍내에 골동품 방에서 아주 저렴한 값을 치르고 샀는데 그렇게 귀한 것일 줄은 맹세코 몰랐다.

“세트로 한 오천 원 줬나···.”

그리고 손님들이 그렇게 고오한 빛깔이 영롱하다고 감탄하는 도기 잔 또한 그렇다. 마을에 산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옆으로 조그마한 샛길이 있는데, 그곳에서 도자기를 굽는 명인이 계신다. 외부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보고 명인이니, 작품을 만드는 선생님이시니 하지만. 우리 마을 사람 중에서는 그저 도자기를 잘 굽는, 한과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나조차 어릴 때 놀 것이 없으면 도자기 굽는 할아버지의 작업실로 가서 진흙을 만지며 놀았으니. 참고로 도자기 할아버지는 일찍이 서까래를 샌딩해 주신 할아버지와 같이 와 한과 한 상을 3세트나 잡주시고 강 할머니에게 쫓겨나셨다.

“그래서 도기 그릇이랑 잔은 전부 공짜.”

내가 카페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선포했을 때 제일 먼저 컨셉을 물어보시고는, 그에 어울리는 잔과 그릇들을 만들어 주셨다.

‘할아버지, 작업 많으시지 않으세요? 그냥 인터넷에서 구매해도 되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끼! 이놈아! 이 할아버지가 먹으려고 그런다! 먹으려고! 내가 이거 만들어 주면 니놈이 내가 가면 한과 하나라도 더 주지 않겠냐!’

‘한과는, 강 할머니랑 꽃분이 할머니가···.’

‘모른다 이눔아! 나는 만들어 줄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 도자기 말고는 거기 들어가는 꼴 못 봐! 내가 아주 숨 쉬는 그릇이랑 잔을 만들어 줄테니께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

한과에 눈이 먼 마을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최소한 마을 사람들을 위한 몫은 남겨 둬야 할 정도.

“어머어머어머!!”

이동민이 첫 번째로 서빙한 테이블에서 또다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처음 그릇을 보고 터트렸던 감탄사보다 그 데시벨이 더 높았다.

“엄마! 이거 마이쪄! 더 주세요!”

“나두나두!”

아가들도 엄마의 목소리에 질세라 작은 목소리를 목청껏 내었다.

“어머.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약과는 약과가 아니었네. 어쩜 이렇게 입안에 들어가면 스르륵 녹지?”

“어머. 규빈 엄마. 유과도 좀 먹어봐. 겉은 바삭한데, 속은 쫀득하고, 녹진하고, 고소하고. 최고야 최고.”

“엄마, 이거 쪼꼬릿 쿠키보다 더 마이쪄!”

“엄마, 나 이거 꽃 더 먹어도 돼요?”

엄마들과 아가들이 동시에 한과에 대한 칭찬을 우수수 쏟아놓는 걸 보고, 계산대 쪽으로 눈을 돌리니, 언제부터 나와 있었는지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 두 분이 서로의 손을 꼭 마주 잡고 이제야 긴장된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근데, 한울아, 니가 우리가 만든 한과를 좋아하는 거 아는데, 막 카페면 케이크랑 뭐라카드라, 그, 와플? 그런 것도 좀 해야 하지 않겄나? 사람들이 카페 왔는데 그런 거 없고 영 늙은이 취향인 한과만 짜달있으면 안 오지 않겠나? 니가 우리 월급도 많이 주는데, 내는 손님들 안 오면 불안해서 못 산다.’

내가 처음 한옥 컨셉의 카페를 만들어, 디저트는 오직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의 손을 거친 한과만을 팔 거라는 말에 강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한 말이었다.

‘할머니, 제가 장담합니다. 제 입맛 무시하시는 거예요? 저 이래 봬도 식품 업계에서 날리던 사람이었다고요. 지금 할머니 손주들이 좋아하는 간식들도 제가 만들었고. 소비자 입맛과 트렌드 조사라면 아직도 머릿속에 빽빽이 있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곧 있으면 할머니들 한과 팔아서 집 지을 수 있을걸요? 아니더라도 뭐, 저 돈 많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때 내가 얼마나 할머니들을 달랬는지. 나중에는 돈 많다고 했다가 ‘그 돈은 니가 힘들게 번 게 아니가!’라는 쿠사리만 들었더랬다.

어쨌거나. 할머니들의 안심된 미소를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져 나도 할머니들과 같은 미소를 입에 걸 때였다.

“호호. 그 커피 맛은 좀 어때요?”

커피를 맡은 이 할머니가 조심스레 테이블에 접근하더니 한과에 심취한 엄마들에게 커피의 맛을 물었다.

“아이고. 저 치는 또 언제 저기 갔드노! 요즘 사람들 우리가 막 끼어드는 거 싫어하는데···. 우야노. 지금이라도 가서 잡아 올까?”

당연히 강 할머니는 그런 이 할머니의 모습에 펄쩍 뛰며 당장이라도 이 할머니를 잡아 올 기세였다.

“잠깐만 있어봐라.”

꽃분이 할머니는 그런 강 할머니를 달래며 아직 괜찮은 거 같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옷깃을 잡았다.

“어머, 할머니. 할머니께서 커피 만드신 거예요?”

아이들의 엄마들은 강 할머니의 생각과 달리 이 할머니를 환대했다. 그런 젊은 엄마들의 환대에 할머니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야. 내가 탔지예. 어떻게, 입에는 맞아예?”

“그렇지 않아도 방금 커피 마셔보고 너무 부드러워서 깜짝 놀랐지 뭐에요. 저기, 할머니,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예?”

“제가 살짝 관찰을 해 봤는데, 할머니들께서 주방에도 계시고, 커피도 만드시는 것 같아서···. 혹시 이것들 전부 할머니가 만드신 걸까요?”

무슨 질문을 하나 싶었더니. 이 모든 것들을 만든 사람들이 궁금했던 모양. 이 할머니는 엄마들의 질문을 듣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기 한과랑 차는 저짝에 있는 할머니 둘. 그리고 커피는 나. 참고로 내가 제일로 잘 타는 커피는 믹스커피입니데?”

“어머. 정말요? 호호. 저 그럼 나갈 때 할머니 표 믹스커피 하나 테이크아웃 해 갈게요.”

“테, 테 뭐?”

“아. 가져간다고요.”

“아. 가져간다꼬! 알았으요. 내가 안 까묵고 나중에 챙겨줄게.”

“네. 감사합니다. 근데, 할머니들은 이걸 언제부터 만드실 줄 아신 거예요?”

이 할머니의 믹스커피를 예약한 아이의 엄마는 궁금한 것들이 아주 많아 보였다.

“이거? 한과 만드는 두 사람은 억수로 오래됐지? 근데 여 있는 한과들은 젊은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꼬 연구 좀 했을 거라. 나도 여기서 일할 거라고 커피 만드는 것만 한 달 배웠다.”

아이 엄마와 이야기가 길어지며 이 할머니의 말투는 어느새 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머. 대단하시다. 다른 게 아니라, 저도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애들 다 키우고 이런 곳에 내려와서 카페 하면 좋겠어서요.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나이 들어서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 거 만들면서 소소하게 사람들이랑 살아가고 싶네요.”

“와? 지금은 안되나?”

아이 엄마 둘 모두 같은 바람을 말하자, 이 할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할머니의 물음에 엄마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애들도 키워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해서요.”

“마음만은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흙도 만지게 하면서 애들을 키우고 싶은데···. 그게 마음 같지가 않네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시골 생활. 회색빛 빌딩에 둘러싸여 매캐한 공기를 마시다 보면 절로 시골의 푸르른 들판과 산, 그리고 파란 하늘이 생각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리 시골 자연이 좋다고 하더라도, 시골에는 도시만큼의 인프라나 직장들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체. 우리 아들들도 만날 그런 소리 하드라. 우리때는 그저 애들이란 풀어만 놓으면 산이고 들이고 지들이 뛰어다니면서 커서 그런 걱정은 없었는데···. 요즘 사람들 보면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우리 손주도 다니는 학원만 해도 3개인가? 4개나 다닌다고 그러던데···.”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과를 하나씩 집어 입으로 쬽쬽 빨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준 이 할머니는, 다시금 아이들의 엄마들을 보며 말했다.

“답답하면 한 번씩 와서 콧바람도 좀 쐬고 가. 여긴 우리가 항상 열어놓을 테니까. 뭐, 안 열려있으면 저 우리 마을 어귀에 있는 평상 있제? 거기 있으면 누구라도 나와서 뭐라도 줄겨. 알았제?”

이곳이 당신들의 시골이 되어줄 테니, 언제든지 와서 콧바람을 쐬며 마음을 쉬었다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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