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01화 (101/163)

무슨 일인데? (1)

카페 사랑방 가 오픈 당일.

미화리 산골 마을 공식 카페에는 김 할아버지네 체험 농장이나, 신비농장 스토어 작물들의 후기가 아닌 다른 글이 올라왔다.

<제목: 정이 넘치는 카페 사랑방을 아시나요?>

그건 바로 미화리 산골 마을의 유일한 카페, 사랑방에 관련된 게시글.

<여기저기서 추천들을 너무 많이 해주셔서 저도 오늘 친한 아이 친구 엄마랑 산골 마을 체험 농장을 다녀왔거든요. 처음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갔는데 웬걸요. 매일매일 사람들이 다녀가는 농장 맞나요? 가지마다 과실들이 알알이 열려있어서 아이도 계속 신기해하면서 수확했네요. (참고로 여기 카페 후기 적으신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따면서 먹는 건 마음껏 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농약도 안 치신 거라고 해서 저 거짓말 안 하고 체험하면서만 혼자 1kg 정도 먹은 것 같아요ㅎㅎ)...(중략)···. 근데 잼을 만들면서 믹스커피가 맛있다는 글을 본 것 같아서 믹스커피를 찾았는데, 사장님께서 바쁘셔서 이제 간이매점을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세요 ㅠㅠ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찍부터 애들 챙겨서 장거리 운전하느라 카페인이 필요로 했는데 너무 아쉬운 거 있죠. 그래서 얼른 체험 농장에서 나가서 카페부터 들리자 마음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조금만 걸어가면 카페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중략)

세상에. 여러분, 여기 카페 꼭 가보세요. 솔직히 말하면 저만 아는 시크릿 장소로 알고 싶은데, 조금만 시간 지나면 바로 소문이 퍼질 것 같아서, 제가 제일 먼저 후기 쓰려고요!

일단, 카페라고는 하지만, ‘한옥 카페’ 혹은 ‘전통카페’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려 보여요. 카페 자체가 마당이 넓은 한옥인데,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등이 걸려있어서 너무 예쁜데! 들어가면 더 예쁩니다. 여러분.

연못도 있고, 잔디는 어떻게 그렇게 땜빵 난 곳 없이 파릇파릇한지. 그냥 억센 잔디 아니고, 보들보들한 금잔디라 우리 아가가 뛰어놀다 넘어져도 괜찮겠더라고요···.>

“와···. 이분 과거가 궁금해지는걸?”

나는 중간중간 스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날 줄 모르는 후기 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도 잘 찍으시고···.”

설명 중간중간에 사진을 넣어 가독성과 더불어 이곳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각적 정보도 더했는데, 사진의 퀄러티가 전문가급이었다.

“파워 블로거? 이런 거 하시는 건 아니겠지?”

글의 내용을 보아하니 이 할머니와 아이가 장성하면, 우리 마을같이 조용하고, 포근한 곳으로 와 여생을 살고 싶다고 했던 사람 같은데···. 그분은 분명 직장 생활을 한다고 했다. 하긴. 직장 생활을 한다고 해서 블로그를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으니.

“그다음은···.”

글쓴이에 대한 유추를 포기한 나는, 중간쯤 읽은 글의 커서를 다시금 내리기 시작했다.

<... 처음에 일하시는 분이라고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분들밖에 없어서 불안했는데(나중에 서빙 하시는 분은 보니까 40대 정도 되어 보이더라고요.)>

“어이쿠.”

나는 커서를 내리다 말고, 서빙 하는 사람의 나이를 예상한 문장에서 커서를 멈추고,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쉬고 말았다. ‘서빙을 하시는 40대 종업원’의 정체는 바로 이동민.

사실 나도 처음 그의 나이를 들었을 때 놀라긴 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과는 달랐다.

“아직 그분은 여기 가입 안 했지?”

되도록이면 다른 게시글이 많이 올라올 때까지 이 카페의 유무를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준혁이보다 3살 많다고 했을 때 놀라긴 했으니까.”

박준혁보다 3살 많다고 해봤자, 아직 20대였다. 하지만 그 얼굴은···. 대학원이 얼마나 악독한 곳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한과에 대한 반응이 좋은데?”

<...차도 차지만, 여기 오신 분들은 꼭! 저희처럼 ‘한과 한 상’ 시켜 드시길 바라요. 저희도 처음에는 약과랑 유과 말고는 한과 이름들이 생소해서 안 먹으려고 했는데, 포스기 할머니의 추천으로 여기 또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해서 시켰는데···! 세상에. 여태까지 제가 먹던 한과는 한과가 아니었어요. 저희는 아이가 하도 그때 먹었던 한과 노래를 불러서 남편이랑 같이 다음 주에 한 번 더 가기로 했답니다. 참, 믹스커피! 꼭 아이스로 해서 테이크아웃해 가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바리스타 할머니께서 셰이커로 흔들어서 주시는데, 천상의 맛입니다.>

┗ 여기 저도 어제 가봤어요! 어제가 가오픈 첫날이라고 해서 어수선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그래요!

┗ 어머. 전 바로 전주에 갔었는데. 그때는 없더니. 어제 오픈 한 건가 봐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아이가 체험 농장 또 가고 싶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꼭 가보겠습니다. 정보 감사해요!

┗ 아···. 저만 알고 싶었던 곳인데···. 내일부터는 경쟁 장난 아니겠군요···. 제발 제 주악만 좀 남겨주세요.

┗┗ 주악이 제일 맛있는 거군요!

┗┗┗ 아악! 요놈에 손!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악은 제 최애고, 저희 애의 최애는 약과였습니다.

┗ 저는 벌써 포장해 왔지롱요! 냉동실에 두고 아이 칭찬 할 때 하나씩 꺼내서 주는데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허허. 애가 달라졌더라.”

폭발적으로 달린 댓글을 쭉 읽던 나는 한과 하나에 아이가 달라졌다는 대목에서 커서를 멈추고 헛웃음을 들이켰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도 같은 증상을 가진 정령 3마리가 활개를 치고 있었기 때문.

“한울! 나 방금 김가네 농장이랑 박준혁네 연구실! 그리고 우리 농장에 가서 식물들한테 잘 크라고 노래 불러 주고 왔다! 잘했냐 컁?”

일단은, 우리 노을이 부터.

“꽈아아악! 사랑방 앞마당 연못이랑 우물물을 더 깨끗하고! 맛있게 만들었다! 이제 거기서 하는 음식들은 우리 집처럼 다 맛있어 질 거다! 나 잘했냐? 아니다! 인간은 밖에 나갔다 오면 힘이 든다고 그랬다. 내가 노래를 불러 주겠다. 꽤개객개개개개개객! 꽥! 꽥! 꽥!”

날개를 파닥닥거리며 내 곁으로 와 헤드뱅잉을 하는 노을이.

“킁. 오다 주웠다.”

시크하게 느릿느릿 곁으로 와 내 곁에 이름 모를 산과일을 놓고 그대로 내 앞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하는 포동이까지.

“일단, 노을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고마워. 힘들었지?”

“아니다 컁! 나는 그 갈색 약과만 한입 더 먹었으면···.”

“찹쌀이도 고마워. 어휴. 피로가 확 가셨네. 연못이랑 우물물 그렇게 신경 쓸 줄을 미처 몰랐네.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아니다 꽉! 나는 나를 닮은 하얗고 포슬한 것들이 달린 유과를 한입···.”

“어이구. 우리 포동이 다 컸네. 나한테 먹을 걸 주고 말이야. 요즘 안 나는 과일인데···. 고마워.”

“킁! 오다 주웠을 뿐이다! 하지만 고마우면 찹쌀 경단같이 생긴 주악 한 입만···.”

노을이는 약과를 위해. 찹쌀은 유과를 위해. 포동은 주악을 위해 이렇게 정기적인 농사일 이외의 일들을 찾아 한 다음 내게 보고했다.

“짜식들. 알았어. 한입이 뭐야. 줄려면 다 줘야지. 자. 하나씩 먹어”

카페 게시글 댓글의 주인공은 조금씩 아이들에게 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침마다 사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강 할머니가 나의 것이라고 한 박스씩 챙겨주시기 때문.

매일 이걸 다 어떻게 먹느냐고 놀래긴 하시지만, 그 놀라움 뒤에는 뿌듯함이 서려 있어 안 받아 오기도 뭐 했다. 덕분에 우리 정령들은 이렇게 매일 달콤함을 즐기지만.

“캬웅! 어떻게 이건 매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냐!”

노을은 비닐을 벗겨준 약과를 두 손으로 야무지게 잡고 먹으며 컁컁거렸다.

“꽈아악! 내 정령생을 통틀어 제일 잘한 일이 한울이를 따라온 일어다!”

얼씨구. 유과 덕분에 찹쌀의 잘한 일 1순위에 내가 올라가다니. 아주 감계 무량한 일이다. 찹쌀은 어처구니없는 내 표정에도 불구하고 부리로 조금씩 유과를 베어 물며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꼬리를 내렸다.

“난, 다 맛있다. 킁. 한울이가 만들어준 것도. 이것도.”

꼬리를 팔랑거리고, 날개를 팔락거리며 한과의 맛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노을이와 찹쌀과 달리, 포동은 내 엉덩이 옆에 여느 때처럼 퍼질러 앉아 안정적인 자세로 주악을 베어 물며 말했다.

“호에···?”

“꽈악···?”

아무렇지 않게 말한 포동의 말에 뒤통수라도 맞은 듯, 노을과 찹쌀을 열심히 한과를 먹다 말고, ‘휙’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개를 돌려 포동을 바라보았다.

포동은 둘이 자신을 쳐다보던지 말든지. ‘킁... 이 쫄깃함은 이 떡이 더 나을지도.’라며 자신의 손에 있는 주악에 집중했을 뿐이었다.

“컁! 아니다! 나도 한울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

입을 벌려 한입 앙 베어 물려던 약과를 한쪽 손에 쥐고 내게로 오도도 달려온 노을이 다른 한쪽 손으로 내 옷깃을 쥐며 말했다.

“꽈악! 나도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한울이 해준 콘수프도 꽈악!”

찹쌀까지 유과를 입에 물고 뒤뚱뒤뚱 내 곁으로 오더니 결백을 주장했다.

그렁그렁.

혹여라도 내 마음이 상할까 와다다 달려와 나를 올려다보는 정령의 눈가는 눈물이라도 흘릴 듯 촉촉했다.

“당연히 알지. 얼른 먹어. 잘했으니까 주는 간식이야.”

“호에···! 알았다! 고맙다!”

“꽈악! 나는 그런 의미에서 노래를···!”

“컁! 조용해랏!”

귀여운 두 정령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며 오해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자, 그제야 둘은 투덕거리며 다시금 한과를 행복한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지이잉.

“으응? 이 대리?”

불현듯 울리는 진동 소리에 테이블 곁에 두었던 핸드폰을 들자,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어. 웬일이야. 이 대리?”

이 대리는 내가 전 직장을 다닐 때 내가 이끌던 팀에 속했던 팀원 중 한 명이었다. 서 팀장이 법인카드로 마구 개인적인 것들을 긁어대는 걸 대신 결재 서류를 만들어 회계팀에 올리던.

퇴사 직후, 내가 맡은 일들의 인수인계를 끝내고 나서는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던 터라, 이 대리의 연락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 과장님······!]

“어. 그래. 내가 이제 과장은 아니지만···. 무슨 일인데?”

[과장님, 진짜 다시 회사로 돌아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회사로 돌아올 생각이라니.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는 사업만 해도 벌써 3개다.

메인 사업인 신비농장 스토어.

유통 역할을 하는 신비농장 스토어 & Co.

그리고 카페 사랑방과 직판장까지.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마을 사람들과 일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갈 마음 따위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없어.”

그래서 말했다. 전혀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그랬더니 이 대리가 수화기 너머로 다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 하루만 과장님 시골로 놀러 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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