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02화 (102/163)

무슨 일인데? (2)

[그럼···. 저 하루만 과장님 시골로 놀러 가도 되겠습니까?]

“응? 뭐라고?”

나는 축 처진 음성으로 내가 있는 시골로 방문하고 싶다는 이 대리의 말에 나는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저,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신세 지겠습니다!]

“어엉?”

하지만 내가 들은 건 잘 못 들었던 게 아니었다.

[제가 진짜, 과장님 퇴사하시고 나서 얼마나 회사를 뛰쳐나오고 싶었는지 아십니까! 저 더는 못 버티겠습니다. 남자답게! 저도! 귀농하겠습니다!]

“...”

아하.

이제 알겠다.

이 대리 얘는 지금 스트레스로 머리가 조금 이상해 진 게 분명했다. 하기사. 내가 퇴사 한 뒤에도, 매일같이 문자로 ‘과장님!!! 컴붸에에에엑!!!’ 내지는 ‘저도 때려치웁니다!!!’ 혹은 ‘과장님···. 그곳은 편안하신가요?’ 따위를 하루가 멀다고 보냈으니.

요즘에는 좀 뜸하다 싶었더니 이렇게 원기옥을 터트리려고 기를 모으고 있었나 보다.

[저 진짜 공기처럼 쥐 죽은 듯이! 있는데 없는 듯!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니면서 과장님 생활에 절대! 방해되지 않도록! 아? 얘가 언제 여기 왔다 갔지? 할 정도로 조용히 있다 가겠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이 대리의 별명은 곰이었다. 둔하고 아둔해서 곰이 아니라, 진짜 덩치가 곰만 해서 곰. 키도 거의 190cm이 된다고 들었는데, 그런 덩치가 어떻게 공기처럼 있으려고.

“됐다. 공기처럼은 무슨. 언제 올 건데?”

회사를 다닐 때 내가 어떻게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던 이 대리였다. 본성도 착해 서 팀장의 비리에 누구보다도 울분을 토했던 팀원이기도 했다. 매번 전표를 자신에게 처리하라고 했던 서 팀장의 전표를 내가 대신 처리해 준 뒤로부터는 완전 나에게 충성을 하기도 했었고. 그런 전 팀원을 위해서 하룻밤 정도는 당연히 방을 내어 줄 수 있다.

아무래도 번아웃이 온 것 모양인데, 얼마나 갈 시골이 없으면 퇴사한 상사인 나에게까지 전화했겠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저, 정말입니까? 저 정말 가도 되는 겁니까?]

“어. 내가 지키지도 못할 말 하는 거 봤냐. 언제든지 와.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머니까 되도록이면 하루 말고 이틀 이상은 일정 잡고 와라. 왔다 갔다 하다가 퍼진다.”

[괜찮습니다! 과장님! 제가 또 체력 빼면 시체 아니겠습니까! 어딘지 알려만 주십셔!]

특수부대 출신 아니랄까 봐, 아주 파이팅이 넘쳐난다. 하긴, 모두가 야근으로 죽어갈 때 혼자만 쌩쌩했던 사람이니. 저 자신감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어···. 여기가 어디냐면, 미화리 산골 마을이라고 쳐봐. 나올 거야.”

[미화리···. 산골 마을... 어? 떴다. 근데, 과장님. 이게 뭡니까?]

“뭐가?”

[원래 길이 이렇게 구불거립니까? 과장님 자연인 찍고 계신 거 아니시죠?]

난 또.

뭐 때문에 저라나 했더니.

“산골 마을이 괜히 산골 마을이겠냐. 굽이굽이 산길이 있으니 산골 마을이지. 그래도 걱정 말아. 아기들 데리고 학부모들도 잘 오니까.”

카페 게시글에 보면 운전 할 때 조심하라는 글이 넘쳐나긴 했지만, 글쎄. 어릴 때부터 이곳을 왔다 갔다 한 나는 이 정도쯤이야.

길이 조금 가파르고, 물음표 마크처럼 S자의 구불구불한 구간이 많긴 하지만, 운전하기엔 안전했다. 원래 이런 곳에서 더욱 안전운전을 하기 마련이니까. 곳곳에 펜스가 쳐 있어 과속하지 않는 이상은 사고가 날 일이 없었다.

[학부모들이요···? 이런 곳에 학교도 있나요?]

“학교라니. 여기 주민들 90%가 어르신들인데. 학교는 차 타고 30분은 가야 해.”

[그러면 거기에 학부모들은 왜···. 영약이라도 있나요? 막 먹으면 공부 머리가 살아나는 그런 영약.]

참. 이것도 오랜만이다. 이 대리의 헛소리를 듣는 것도. 시골이라고 해서 전부 산삼이나 상황버섯 같은 게 있는 게 아닌데. 참,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대리의 상상력은 대단했다.

“있겠냐? 여기 체험 농장이 있는데, 그거 하려고 오는 거야.”

[아아. 체험 농장이요. 혹시, 저도 할 수 있습니까?]

“이 대리가?”

[네! 저 TV에서 그런 거 볼 때마다 한 번씩 해 보고 싶었습니다! 직접 농장에서 따면서 먹고! 먹고! 따고! 체험하면서 먹는 건 공짜라고 그러던데요?]

아. 맞다. 이 대리와 대화를 하니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대리의 별명인 곰인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식성 때문. 큰 덩치와 키와 걸맞게 식사량도 어마어마했는데, 이 대리의 부사수는 그 양에 놀라 하루 날을 잡고 그의 식사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말했지.

‘과장님, 대리님은 사람이 아니에요.’

부사수의 말에 의하면 이 대리가 먹지 않은 순간은 오직 회의 시간과 화장실을 갈 때뿐이라고. 그 외의 시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입에 물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적당이지. 이 대리 원래 먹는 대로 먹다간 쫓겨난다에 한 표. 아니다. 그냥 와서 우리 농장에서 일해라. 포장만 끝내면, 너 먹고 싶은 대로 먹어봐.”

[과장님 농장이요? 과장님 농장도 있어요?]

“그럼, 내가 농사짓는다고 했는데, 농사짓지. 뭘 하겠냐.”

[과장님이시라면, 거기서도 뭔가 사업을 벌릴 것 같았었는데···!]

뜨끔.

이 대리의 말에 나는 가슴 어딘가가 뜨끔했다.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나의 목표는 안빈낙도 그 자체였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인간은 그 자연 아래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생물 중 그 하나일 뿐인 삶을 살려고 했었는데···. 매일같이 경쟁하며 아득바득 일하던 버릇 어디 안 간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안빈낙도는커녕, 이것저것을 많이 벌려놓기도 벌려놓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 하는 일들은 모든 것들이 행복한 점이 달랐다. 이 대리의 합리적인 예상에 실실거리고 웃을 때였다.

[..왜 그렇잖아요. 과장님이 하시는 사업마다 대박 나서, 저희 회사 주식 상장도 한 거라면서요! 그렇지 않아도 과장님 퇴사하고 나서 거래처에서 얼마나 난리인지···. 저 이번 주에 과장님네로 내려갑니다.]

“이번 주?”

이 대리가 바로 이번 주에 이곳으로 내려오겠다고 선포했다.

[네. 금요일에 반차 쓰고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일요일까지 있어도 될까요?]

어허. 이것 봐라. 하루만 공기처럼 있겠다고 하더니, 마음껏 먹어보라고 하니 이틀을 있겠다고 한다.

“그래.”

하지만 뭐, 원래 농촌에는 이런 큼지막한 덩치가 오면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법. 나는 이곳에 온 이 대리를 본 어르신들의 반응을 예상하면 설핏 웃었다.

**

시간이 지나, 이 대리가 오기로 한 금요일 오후.

마을 어귀 팽나무 밑 평상에는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와따마. 총각, 키가 몇이고?”

“하하. 180 조금 안 넘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팽나무의 중간 가지에 닿을 만큼 커다란 키의 소유자 때문이었다.

“아인데? 야야. 내 이 총각 옆에 서볼 테니까 함 재봐라.”

“오메. 억수로 크다. 니 옆에 가니까 난쟁이 같다 난쟁이. 어이, 심 가야, 저 가서 한번 서 봐라.”

“커흠. 나는 되았어. 엊그제부터 무릎이 시려서 원.”

“웃기고 앉았네. 사랑방 가서 약과 먹을 거라고 아침부터 뛰어가는 거 내가 다 봤다!”

이 대리의 옆에 서서 키를 재 본 뒤, 심 할아버지에게도 권하는 장 이장님과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이 대리까지.

“이 대리 왔어?”

나는 덩치는 산만 해서 어르신들에게 대꾸도 못 하고 꿈쩍도 못 하는 이 대리를 불렀다.

“어! 과장님! 오랜···. 만입니다?”

멀리서부터 자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괴롭힘을 당하던 강아지가 주인을 발견한 것처럼 펄쩍 뛰며 나를 반기던 이 대리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만입니다?’는 또 무슨 인사법이래? 내가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생긴 신조어라도 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과장님이 맞긴 하는데···.”

회사에 다닐 시절, 신조어를 잘 몰랐던 나를 놀리던 주범인 이 대리에게 장난삼아 툭툭 쳤지만, 이 대리는 아직까지 심각했다.

“도대체 무가 문제야? 오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혼자 비 맞은 땡중처럼 중얼거리는 이 대리에게 재차 묻자, 그는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다.

“과장님, 피부과 다니세요?”

“뭐 인마?”

*

이 대리의 요지는 이러했다.

분명 얼굴의 생김새는 자신이 알던 내가 맞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피부가 자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서 그랬다고 한다.

“분명히···. 과장님 배는 맨날 이렇게 나와 있었고, 피부도 푸석푸석한 데다가···. 머리숱도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장님 눈이 이렇게 초롱초롱하지 않았다고요! 맨날 시뻘게져서 사우론 저리가라였는데···!”

“너 바로 짐 싸서 서울로 다시 가고 싶냐?”

아무리 야근에 찌들어 지금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어도, 사람을 무슨 어물전 망둥어에서 환골탈태한 사람처럼 보는 건 조금 많이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옆에 있던 어르신들은 아닌 모양.

“아이고. 총각이 우리 한울이랑 같이 일을 해서 야를 잘 아네. 야가 처음에 회사 그만두고 여 왔을 때 말이제? 딱 총각이 말한 그대로였어. 수염도 덥수룩하고. 무슨 나는 서울이 아니라 오지에서 몇 년 구르다 온줄 알았다니께?”

“그라긴 하지. 근데 여 와서 농사 시작하면서, 아 피부가 맨들맨들해 지더니, 똥배도 쑥! 하고 들어가고 머리숱도 수북하고! 딱! 봐도 얼굴에서 빛이 안 나나!”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 몰랐는데. 어르신들의 말에 내게 핀잔을 듣고 움츠러들어 있던 이 대리는 다시금 기운을 차리고 어르신들과의 대화에 끼기 시작했다.

“헐? 그럼 과장님 여기 와서 저렇게 되신 거라고요?”

“암만. 쟈가 농사를 얼마나 잘 하는 줄 아나? 쟈 농장에 나온 거는 우리가 키운 것보다 크기가 두 배는 커! 두 배!”

“에이. 그건 거짓말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 두배라는 심 할아버지의 말에 이 대리리는 못 믿겠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음머? 총각이 내 말을 못 믿네? 자. 함 봐봐 봐. 내가 총각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도 하나같이 못 믿어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 뒀다 아이가.”

심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해 자신의 사진첩에 들어있는 할아버지와 내 작물이 나란히 있는 사진을 이 대리에게 보여주었다.

“헐?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사진도 보여줬는데 진짜냐고 물어보면 우야노! 안그나 장 이장?”

심 할아버지는 쉽사리 믿지 못하는 이 대리의 모습에 가슴을 퍽퍽 치며 장 이장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이고. 크기가 문제가. 효능이 더 문제지. 효능이.”

심 할아버지에게 보여줘도 뭘 한참 잘 못 보여줬다고 말한 장 이장님은,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 대리에게 말했다.

“우리 임자는, 한울이가 키운 작물 먹고 병이 나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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