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데? (3)
“우리 임자는, 한울이가 키운 작물 먹고 병이 나았어야?”
장 이장님의 비밀스러운 말에 이 대리는 이번에야말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야유했다.
“에이-! 어르신들, 제가 지금 서울 촌놈이라고 무시하시는 거죠? 저도 그런 것까지는 안 속습니다.”
하지만 애처가인 장 이장님은 이 대리의 야유에 펄쩍 뛰며 정색했다.
“엄머? 야가 무슨 소리하노! 우리 임자가 어? 우리 한울이가 키운 작물 먹고 나았다 이 말이여! 우리 임자가 산 증인인데 니가 지금 우리 임자를 의심하는겨?”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닌데? 의심하는 거 맞는데?”
“아니, 당연히 작물 먹고 병이 나았다는 건···. 무슨 과장님 농장이 신비농장도 아니고···.”
장 이장님의 위협적인 눈 부라림에도 이 대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서 팀장이 난리를 칠 때마다 영혼 없는 눈으로 멍하게 서서 점심 식사 메뉴나 생각하던 사람다웠다.
장 이장님의 위협도 서 팀장 때처럼 멍하게 받아치는 이 대리를 보며 이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는겨? 한울아, 이 사람 진짜 니랑 같이 일했던 사람 맞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 대리를 본 장 이장님은, 어떻게 네가 운영하는 신비농장을 모를 수가 있냐며 눈으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나는 그런 장 이장님의 눈빛을 받으며 웃었다.
“예? 당연히 맞죠! 이장님, 과장님께서 회사 다니실 때 제가 오른팔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에이스의 오른팔!”
의미심장한 장 이장님의 눈빛과 그런 이장님의 눈빛을 받으며 실실 웃는 나를 번갈아 보며 이번에는 이 대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퍽퍽 치며 오른팔을 걷어 올려 자신의 근육을 보여줬다. 도대체 일할 때 오른팔이랑 근육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리는 진지했다.
“아따마. 근육 한번 실하네. 근데 그거를 우리는 뭐라고 부르는 줄 아나?”
이 대리가 보디빌더처럼 근육을 짜내는 모습을 보며 심 할아버지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뭐라고 하는데요? 진정한 사나이의 근육?”
“뭐라카노! 자신감도 대단하다. 그걸 우리는 물 근육이라칸다!”
“예?”
나름대로 스스로를 운동인 이라 부를 만큼 자신의 근육에 자신 있었던 이 대리는 심 할아버지의 물 근육이라는 말에 제대로 격침을 당한 듯 반박도 못한 채 입을 뻐금거렸다.
그 틈을 타 옆에서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장 이장님이 맞장구를 쳤다.
“맞지. 저런 근육으로 밭 갈기 시키잖아? 내 장담하건대 30분도 안 돼서 밭에 대자로 뻗을 것이다. 흘흘흘.”
“아니거든요! 내기하실래요?”
“내기? 아이고. 내야 좋지. 뭐로 내기할래?”
아주 신이 나셨다.
마을에 젊은 청년만 나타나면 그렇게들 좋으신지 친한 척을 하며 쿡쿡 찔러보시는데, 장난기가 그득그득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애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가만두었다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공방에 고래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당장이라도 장 이장님과 함께 내기하러 밭으로 달려갈 것 같은 이 대리와 장 이장을 이쯤에서 말리기로 했다.
“내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우리 밭에 부터 가자. 체험 농사하고 싶다며? 오늘 배송할 거 작업은 다 했고. 내일 배송할 거 준비해야 하니까. 작업하면서 먹고 싶은 먹어봐 아주.”
“예? 정말입니까? 저는 콜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체험 농장을 시켜준다는 소리에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 대리. 그런 이 대리의 모습을 보며 장 이장님과 심 할아버지는 혀를 쯔쯔 차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한울이가 회사에서 고생이 아주 많았겠어.”
“저렇게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애를 데리고 일을 어떻게 있을꼬. 그러니까 우리 한울이가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그 모양이 돼서 여기로 내려온 기제.”
“그려. 천 번 만 번 잘 한 거제. 어이구. 둔탱이가 저런 둔탱이가 없네.”
어떻게 신비농장의 주인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냐고, 두 할아버지는 이 대리에게 답이 없다는 눈빛을 보내다 이내 나에게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런 어르신들께 괜찮다는 눈빛을 보낸 후, 체험 농장이라는 소리에 흥분하기 시작하는 이 대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자. 가보자고.”
**
“우와아. 이게 다 과장님 사과나무입니까?”
이 대리는 앞에 펼쳐진 밭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밭에는 나무가 열을 맞추어 길게 심겨 있었는데, 나뭇가지 알알이 초록색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의 나무들은 사과나무가 아닌 매실나무였다.
“사과라니. 매실.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냄새가 다를 텐데? 열매를 보면 솜털처럼 하얗게 나 있잖아? 사과는 그런 게 없지”
“아아. 저는 사과가 아직 덜 자라서 이런 줄 알았습니다. 제가 오리지널 서울 촌놈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초록색 매실을 보고 막 열매가 맺힌 사과 인줄 알았다고 한 이 대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컁! 나 저런 인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안다! 티비에서 봤다!]
그런 이 대리의 모습에 내 어깨 위에 꼬리를 살랑이며 앉아있던 노을이 컁컁거렸다.
지금 앞에 있는 매실 밭은 방송에 출연할 당시 멧돼지가 연예인들과 함께 간 밭이었다. 내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대부분 땅이 그렇듯이 이 밭 또한 산 중턱에 있어 촬영 후에 별다른 계획이 없었는데, 노을이 TV를 보다 말고 매실 액기스가 뭐냐고 묻는 통에 매실 밭으로 탈바꿈한 밭이었다.
고로, 이 밭의 담당은 노을이다.
“뭐라고 부르는데?”
나는 매실 밭은 처음 본다며 나무들이 심겨 있는 밭을 운동화 발로 들어가 이 나무 저 나무를 살펴보는 이 대리를 보며 노을에게 물었다.
[히힛! 바보라고 한다 바보!]
“풉.”
[내가 맞췄냐? 역시 나는 위대하고 똑똑한 노을이다!]
이 대리를 명명하는 노을의 말에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노을은 살랑살랑 돌리던 꼬리를 더욱 힘차게 돌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크크. 그래그래.”
매일같이 찹쌀과 함께 TV를 보며 인간 사회에 대해 습득을 하지만, 무엇인가 항상 애매하게 습득하는 노을과 찹쌀 덕에 웃음이 항상 끊이지 않았다.
“과장님,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저도 같이 웃읍시다! 하하하!”
어느 정도 매실 밭 투어를 마쳤는지, 이 대리는 매실 나뭇잎이 붙은 와이셔츠를 툭툭 털며 물었다.
나는 내 어깨 위에서 ‘바보다 바보!’라며 요령껏 배를 잡고 뒹구는 노을의 모습을 힐끗 보며 말했다.
“아, 산에서 내려온 동물을 봤는데, 그게 좀 웃기네.”
“네? 동물이요? 다람쥐였습니까? 아니면 너구리?? 개구리? 저도 동물을 참 좋아하는데 말입죠!”
오랜만에 천장을 뚫을 것 같은 이 대리의 텐션에 나는 귀를 비비며 들고 있던 장화를 건넸다.
“다람쥐고, 개구리고, 여기서 일하다 보면 종종 보게 될 거야. 일단, 이 장화로 갈아신어라. 지금 신고 있는 하얀 운동화 버리려면 계속 신고 있고.”
“아닙니다! 이 운동화를 제가 어떻게 구했는지 아십니까?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오픈런을 못해서···. 크읍... 아는 사이트 알람 다 걸고 겨우 하나 샀다는 거 아닙니까! 이걸 버리다니. 말도 안 되죠. 밑창 보강도 다 해놨는데! 장화 이리 주십시오. 바로 신겠습니다.”
“그래. 신어라. 얼른.”
그저 그런 하얀색 운동화인 줄로만 알았건만. 하얀 운동화에 비료 섞인 흙물이 들면 지우기가 힘들어져 장화를 건넨 결과가 신발에 대한 끊임없는 예찬일 줄 상상도 못 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어릴 때 이런 장화를 신고 싶었는데 말이죠. 혹시 밀짚모자도 있습니까? 제 여자친구가 여기서 더 노안이 되면 차버린다고···.”
“옜다.”
선크림을 바르긴 했지만, 여자친구의 경고도 있거니와, 농부라면 파란 장화와 밀짚모자가 아니겠냐며 열변을 토하는 이 대리에게 나는 목에 걸고 있던 밀짚모자를 건네주었다. 아주 열부 나셨다.
“그럼 저 이제부터 무얼 하면 됩니까?”
파란 장화,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밀짚모자까지 장착한 이 대리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할 일을 물었다.
보통 휴가를 내고 시골로 오는 거라면, 힐링한다고 어디 고즈넉한 정자 같은 곳에 드러누워 있길 마련인데. 하여튼 이 대리는 예나 지금이나 특이했다.
“저 노란 바케스에 매실 두통만 다 채우면 오늘 작업은 끝.”
“그런데 말입니다. 과장님.”
의욕적으로 장갑을 끼던 이 대리는 노란색 바케스와 나무에 달린 초록색 매실을 번갈아 보더니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저건···. 먹을 수 없는 거죠?”
“...”
초록 매실을 보고도 군침을 삼키는 사람이 있다니. 참. 이걸 보고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며 연신 목울대를 꿀렁거리는 이 대리에게 말했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도 돼. 아, 배탈은 날 수 있으니 적당히.”
**
넓디넓은 매실 밭 안.
두 마리의 짐승, 아니 한 사람과 한 정령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라라라라!!”
[아뵤오오오오!!]
그건 바로 내기에 목숨을 건 이 대리와 그 내기를 승부로 받아들인 노을이었다.
“살살 하지. 그러다 나중에 근육통 온다.”
나는 왜인지 이 대리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여, 말렸지만,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과장님! 제가 또 몸 쓰는 내기에서 아직까지 져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 하신 거 무르시는 거 아닙니다! 제가 이기면 콩물! 꼭 주셔야 하는 겁니다!”
“그래. 잘 해봐.”
내기의 발단은 이러했다.
가지에 아롱아롱 달린 매실을 본격적으로 따기 전, 나는 가지를 다치게 하지 않고 매실을 따는 방법을 이 대리에게 알려주었는데, 이 대리는 진지하게 그 방법을 들으면서도, 걱정스러운 어투로 이렇게 물었었다.
‘근데 이 많은 매실이 다 팔리나요? 이거 다 못 팔면 여기 들어가는 인건비라든지···. 제가 농사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잠깐 생각만 해도 손해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제가 회사에 가서 청매실 이용한 제품 개발 기획서 좀 넣어 볼까요?’
뭘 그렇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나 했더니. 혹여나 매실이 다 팔리지 않아 내가 손해를 볼까 걱정을 하는 거였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박장대소를 터트릴만한 이 대리의 걱정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비농장. 그거 내꺼야.’
‘뭐, 신비농장이면 다 팔 수 있죠. 저희 회사에서도 신비농장 작물을 혹시 살 수 있을까 계속 시도해 보긴 하고 있는데···. 예? 신비농장이 과장 임 것이라고요?’
‘어.’
‘어, 어, 어, 어떻게!’
팽나무 밑에서 어르신들이 그렇게 말할 때도 믿지 않더니. 내가 말하니까 믿는 모양새가 아직까지도 나를 상사로 생각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 그럼 그···. 전설의 콩물도···. 사실···. 인가요?’
‘전설의 콩물?’
‘먹기만 하면···. 머리털이 다시 난다는···!’
전설의 콩물이라니. 박준혁이 또 무슨 짓을 했길래 이 대리까지 콩물의 존재를 아는지. 분명 아직까지 서리태는 스토어에 판매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동민이 말하는 콩물도, 지금 이 대리가 말하는 콩물도 모두 박준혁이 퍼트린 것이 분명했다.
‘뭐, 그런 게 있긴 하지.’
‘지, 진짜입니까? 과장님···! 오 마이 구세주···!’
나는 생각보다 너무 놀라는 이 대리의 반응에 장난을 조금 치기로 했다.
‘콩물, 그거 귀한 건데 말이지.’
‘얼마입니까! 제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전 재산까지는 필요 없고.’
‘없고?’
‘나보다 이 바케스를 빨리 채우면 줄게. 얼마든지.’
그건 바로 매실을 이 노란 바케스에 나보다 더 빨리 채우면 콩물을 주기적으로 주기로 한 것. 가뜩이나 노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이 대리는 단번에 내기를 승낙했고.
“으랴랴랴랴!! 콩물은 제 겁니다! 으하하하!”
[호에에에! 내가 이길 거다! 나는 위대한 정령 노을이니까! 캬항!!]
지금 이렇게 사람과 정령의 승부가 펼쳐지게 된 것.
승부의 결과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