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4)
박준혁의 선배, 이동민은 박준혁과 신비농장의 사장의 전 직장 동료라는 사람이 카페 안에 소쿠리를 들고 등장 할 때부터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들고 있는 소쿠리에 가득 담긴 서리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건···!’
서리태를 보자마자 이동민은 깨달았다.
저것이 바로 박준혁의 머리털을 풍성하게 만든 콩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찬양을 하면서도 아깝다며 성적서를 위해 단 한 알만 연구실에 보낸 그 서리태! 한번 고집을 부리면 절대 바꾸는 법이 없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콩만은 절대 더 보내 줄 수 없다는 박준혁의 고집 때문에 한 알로 실험을 어찌어찌할 수밖에 없었던.
‘저게 정말로 그 콩이라면···!’
사실 한 알밖에 없는 시료로 제대로 된 결괏값을 도출하기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결괏값의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박준혁의 어거지에 억지로 실험을 돌린 콩의 결괏값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다.
‘이 비율 뭐야? 이게 말이 돼?’
‘기계가 잘못 됐나 보네. 아···. 교수님 아시면 우리보고 또 고치려고 할 텐데···.’
‘신비농장 작물들이 다 이상하게 수치가 높긴 한데, 이건 아니다. 이게 사실이면, 전국의 탈모 환자들, 아니, 전 세계에서 몰려들걸?’
‘그렇지···?’
‘정 의심스러우면 준혁이한테 시료 좀 더 보내 달라고 해서 다시 실험해봐. 이걸로 교수님한테 보고했다가는 아마 그 자리에서 갈릴걸?’
신비농장 작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교수님은 박준혁 보낸 시료들을 실험한 후, 특별한 사항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동기들의 말처럼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괏값을 들고 여기 있는 결과물의 시료가 콩 한 알이라는 걸 말했다가는, 정말로 그 자리에서 갈리다 못해 평생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긴 그렇긴 하지.’
동기들의 조언에 동의한 이동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콩 한 알에 대한 성적서를 세단기에 넣어 버렸다.
‘그렇게 효능이 좋은 거면 신비농장에서 그것만 팔았겠지. 콩만 팔아도 부자···. 아니, 세계적인 재벌이 될 텐데.’
세간에서 하는 말이 있다.
효과가 확실한 다이어트약과 탈모약만 만들기만 하면, 그 사람은 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될 것이라며. 그만큼 다이어트와 탈모약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특히나 탈모에 관한 약은···.
‘당장 나만 하더라도, 아니, 여기 있는 동기만 하더라도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 먹을 테니까.’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탈모약들은 강한 약성으로 인해 부작용도 심할뿐더러, 그나마 남아있는 모근들을 살리기 위해 두피에 맞는 주사는 맞을 때마다 머리가 쪼개지는 느낌에 ‘정말 이걸 평생 맞고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제약과 아픔을 동반하여 머리에 있는 털들을 지키려는 탈모인들에게 그저 특정 식품을 먹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을 튼튼하게 만들고, 나아가 죽은 모근에서도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난다면?
‘말도 안 되는 생각 그만하고 ppt나 만들자.’
만약 그런 게 있었더라면, 만약 이 서리태 콩이 정말로 박준혁의 머리카락을 다시 풍성하게 만든 것이라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힘들게 다른 작물들을 왜 키워서 팔아. 이 서리태만 키워서 팔아도 모자랄 판에.’
하지만 동기 중 한 명이 말한 데로, 신비농장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콩의 ‘ㅋ’자도 보이지 않았다.
‘논문 통과만 되면···.’
매일같이 박준혁이 흥분된 어투로 새싹같이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자신의 두피 사진을 보내왔지만, 그건 콩이 아니라 이 끔찍한 연구실에서 벗어나 스트레스의 강도가 낮아져서였을 가능성이 컸다.
종종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기지 못해 연구실에서 뛰쳐나간 선배들의 머리카락이 연구실 생활을 때려치운 후 눈에 띄게 풍성해지는 것을 목격했으니까.
“얼른 내놔라. 물에 불리구로.”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꾹꾹 눌러놓았던 이동민의 생각은 소쿠리 가득 담겨있는 서리태를 보자마자 봉인이 풀린 것처럼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동기들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사실은 정말로 저 서리태에 관해 연구하고 싶었, 아니, 스스로가 실험체가 되어 마셔보고 싶었다.
‘만약, 공급이 달릴 걸 예상해 세상에 선보이기 전까지 내부적으로 실험 중이었다면?’
“그 물은? 가져왔나?”
“네. 여기 있습니다!”
서리태를 넘김과 동시에 비밀스럽게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이 할머니께 건네는 박준혁의 모습을 보며 이동민은 자신의 가설을 확신했다.
‘저 물도 분명···! 특별한 물이 분명해!’
물이라면, 당장 주방 안 수도꼭지만 들어도 나온다. 수도관을 거쳐 나오는 물이 좀 그렇다면, 바로 저 문밖에만 나가도 우물이 있다. 그런데 ‘그 물’이라니. 이동민은 물통을 손에 들고 이 할머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는 박준혁의 뒤를 홀린 듯이 따라갔다.
**
“콩 불리는데 와 다 따라오나? 계산대는 누가 지키고?”
이 할머니는 새끼오리처럼 저를 따라 줄줄이 주방으로 들어온 박준혁과 이동민, 그리고 이 대리를 향해 축객령을 내렸다.
좁아 죽겠다며 주방과 홀 사이에 쳐진 가림막을 가리키는 이 할머니에게, 이 대리는 자신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재빨리 말했다.
“어···. 제가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아서요! 사실 회사에서 건강음료를 새로 개발하려고 해서 여기저기에서 레퍼런스를 모으는 중입니다.”
개소리였다. 건강음료를 개발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음료 개발은 회사가 설립된 후로도 꾸준히 하는 것이었다. 회사 식품개발팀에는 각종 음료에 대한 레시피가 넘쳐났다. 그러니 레퍼런스를 모은다는 말은 거짓.
사실 이 대리는 언젠가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커뮤니티를 분석하다 신기루처럼 올라왔다 사라진 ‘신비농장 서리태 후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신비농장 서리태 콩물 30일 기록]
이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시작된 게시물은, 도입 문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일자와 사진으로만 나열되어 있었다.
‘신비농장? 나도 한번 마셔볼까···.’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리는 신비농장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별다른 코멘트 없이 숱이 많아지는 사진만이 있는 게시글에 저도 모르게 신비농장의 서리태를 찾으며 신비농장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정작 찾던 서리태는 결국 찾지 못했지만, 상품마다 1,000개가 넘는 댓글과 전부 선착순 구매라는 희한한 판매방법은 식품 회사에 재직해 있는 이 대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었다.
‘신비농장 주가 과장님이실 줄은···.’
여태까지 신비농장 선착순 구매에서 성공해 본 적이 없던 이 대리는 전에 없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리태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구매 실패를 하며 아쉬운 마음에 후기들을 정독한 탓도 있었지만, 조금 전 서리태를 따며 박준혁과 대화를 하던 와중 커뮤니티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게시글의 주인공이 바로 그라는 걸 알게 된 탓이었다.
‘헐. 그거 보셨어요? 그때 홍보하려고 올렸었는데, 사장님이 서리태는 안 팔 거라고 내리라고 하셔서 바로 내렸죠. 조회 수가 별로 없었는데···. 그 중 한 명이셨다니. 참, 세상은 좁네요.’
게시글의 주인공이 박준혁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이 대리는 질문 폭격을 던졌고, 박준혁은 이 대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머리를 찍은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장님이 이거 저한테만 주셨는데. 운이 좋으시네요.’
이미 머리가 풍성하다 못해 빽빽한 박준혁은 마치 부처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 대리에게 사장님의 선택을 받아 축하한다고 말했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이 대리는 박준혁의 그 말을 들은 즉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 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콩물을 먹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이 주방에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대리가 절대 나갈 생각이 없음을 알리며 가열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저, 저는! 연구를 위해서! 그러니까, 콩물을 불리기 위한 시간을 기록하고, 얼만큼의 양의 콩과 물을 사용하여 콩물이 만들어지는지···! 콩을 갈 때의 물의 온도와 가는 방식 등등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두르고 있던 앞치마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든 이동민이 결연한 표정으로 이 할머니에게 자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대학원생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니 원래 여기 준혁이처럼 연구하려고 왔었지.”
“네! 맞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동민이 이곳에 온 뒤로 계속 카페 일을 도와 대학원생이었던걸 잊고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주방에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콩물 만드는데 뭐 특별한 게 있다고. 뭘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럼 한울이랑 같이 일했다는 덩치랑 동민이만 남아서 보그라.”
“네! 감사합니다!”
“네. 열심히 적겠습니다.”
이 할머니의 허락에 주방 안에 있던 두 남자는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할머니, 저는요?”
저만 쏙 빼놓고 주방에 남으라고 하는 이 할머니의 결정에 박준혁이 다시금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아이고마. 니까지있으면 정신 사나워서 안 된다. 그리고 니가 언제부터 만드는 걸 봤다고. 니는 가서 계산대나 봐라! 지금 한울이만 밖에 있는 거 아이가! 사장이 일하고 있는데 우째 밑에 사람이 놀고 있노! 어서 안 가나?”
하지만 박준혁의 투정을 통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쫓겨났을 뿐.
*
“준혁이랑 한울이 니가 여 와있노? 동민이는?”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페로 돌아온 강 할머니가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나와 박준혁을 보며 물었다.
“할머니···!”
강 할머니를 본 박준혁은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할머니에게 쪼르르 다가가 제가 당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뭐, 당연한 거 아이가? 주방이 얼마나 넓다고 니까지 있을 필요가 있나? 됐다. 한과는 얼마나 남았나?”
하지만 강 할머니는 박준혁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곤, 앞치마를 입으며 할 일을 체크했다.
“...한과 세트 없어요.”
너무도 시크한 강 할머니의 모습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라고 꿍얼거린 박준혁은 댓발이 된 입으로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뭐라꼬? 이제 1시인데? 벌씨로 다 팔렸나?”
“네. 제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12시 조금 넘었을 때도 품절이었으니까, 오전에 다 팔린 것 같습니다.”
“오메. 어제도 문 닫기 전에 다 팔려서 오늘은 좀 더 만들었구먼. 도대체 얼마나 더 만들어야 되는기가?”
강 할머니는 오전 중에 다 팔린 것 같다는 박준혁의 말에 앞치마 끈을 묶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빨리 팔리면 좋은 거 아니에요? 사장님이 강 할머니랑 꽃분이 할머니는 만든 거만 다 팔리면 퇴근하라고 하셨잖아요.”
박준혁은 그게 왜 고민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강 할머니는 그런 박준혁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래도 꼴랑 4시까지밖에 안 하는데. 여까지 온 사람들한테는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겠나. 사람들이 물만 마시는 하마도 아니고. 마실 때는 뭐라도 씹어 먹을게 있어야제.”
멀리서 여기까지 온 손님들한테 그냥 음료만 먹일 수는 없다며, 내일은 오늘의 두 배를 만들겠다고 앞치마를 질끈 묶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아직 가오픈 기간입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