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탈전 (1)
그렇다. 아직까지 카페 ‘사랑방’은 정식 오픈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직판장도 마찬가지.
“그랬었죠. 가오픈 기간. 너무 손님들이 많아서 가오픈 기간인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박준혁이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가오픈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시범 운영 기간이라 너무 양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재 카페 ‘사랑방’과 직판장 홍보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이다. 미화리 인터넷카페에도, 신비농장 온라인 스토어에서도 카페와 직판장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오직 정보라고는 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체험농장 체험자들의 입소문뿐이었다.
“글나? 근데 니 말대로 시범인데도 이러면 진짜 오픈하면 어떻게 감당하노? 그때는 막 광고도 할 거 아니가? 지금도 사람들 많은데 지금보다 더 많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강 할머니는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표정과는 정반대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당연히?”
“감당 못 하죠.”
“뭐라꼬?”
“예?”
당연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대답을 원했던 건지 내 말에 강 할머니와 박준혁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 뭐라는 소리고.”
강 할머니는 한술 더 떠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야 어디 아픈 거 아니가?”
요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해 진 게 분명하다며, 박준혁에게 얼른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넵 알겠습니다!”
박준혁은 그런 할머니의 말에 경례까지 붙이며 나를 향해 다가왔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죠.”
나는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으며 현재까지 가오픈을 통해 쌓은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씩 설명했다.
“우선 가오픈 기간 동안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오픈 첫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은 전부 조기 마감했죠?”
“그렇지.”
강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나의 물음에 박준혁에게 눈짓을 보내다 말고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바로 내 말에 집중하는 할머니와 박준혁의 모습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바로 둘째 날. 3시 조기 마감. 셋째 날 2시 조기 마감. 그리고 오늘. 1시가 되기도 전에 조기 마감.”
셋째 날밖에 되지 않았는데, 홍보도 하지 않은 카페의 한과 세트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완판 시간이 빨라졌다.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가 수량을 더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박준혁이 손가락을 꼽으며 내가 할 말을 대신 이어서 했다.
“그러게요. 그럼 단순히 계산만 해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판매가 빨라진다면, 가오픈 기간이 끝날 때쯤이면···.”
“시작하자마자 끝이지.”
끄덕.
내 말에 박준혁이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야노?”
강 할머니는 시작하자마자 판매가 종료될 거라는 말에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걱정 어린 투로 말했다. 그럼 어떡하냐는 강 할머니의 말에 나는 며칠 동안 카페 상황을 보며 계획했던 바를 말했다.
“그래서, 예약제로 받으려고 합니다.”
“예약제?”
“선착순이 아니고요?”
예약제로 운영을 하겠다는 내 말에 강 할머니와 박준혁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반문했다.
“어. 예약제. 선착순으로 하게 되면, 사람들이 몰릴지도 모르고. 왔는데 허탕 치고 가면 기분도 좋지 않을 것이고. 신비농장은 온라인이라 괜찮지만, 여긴 오프라인이니까.”
예약제는 마을 사람들과 이곳을 찾을 손님들 두 그룹 모두 서로 만족할 방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걸 피할 수 있고, 손님들은 가뜩이나 깊은 산골까지 와서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게 되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기기도 하니까요.”
내 말에 깨닫는 바가 있는지, 박준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용한 마을에 사람들이 많아져 활기가 돌고, 마을 경제가 활성화 되는 건 좋지만, 아직까지 우리 마을에는 카페와 직판장, 그리고 김 할아버지의 체험농장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하기사. 예약제로 하면 우리야 편하지. 만들어야 할 양이 정해지면, 그것만 만들면 되니까. 지금처럼 머리 빠지게 얼마나 만들어야 할지 고민 안 해도 되고.”
“그렇습니다. 예약제로 하게 되면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는 그 수량만큼만 만드시고 퇴근하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이요.”
지금은 카페를 오픈한지 초반이라 할머니들이 의욕을 가지고 한과 생산량을 계속해서 늘리려고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할머니 두 분이 만드시는 양도 그렇거니와,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 두 분 모두 한과를 만드는 일 말고도 챙겨야 할 식구들이 있으니까.
강 할머니의 경우에는 벌써 2명으로 늘어난 하숙생들을 챙겨야 했고, 꽃분이 할머니는 장 이장님을 챙기는 동시에, 요즘 들어 거의 우리 마을에서 산다고 해도 무방한 손녀까지 챙겨야 했다.
“글나? 그럼 아침에 다 만들면 바로 퇴근해도 되는 기네?”
“그렇죠.”
“그래? 그럼 내사 좋지.”
역시. 조기 퇴근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로망임이 분명했다. 조금 전만 해도 오는 사람들을 위해 한과를 더 만들어야 한다던 강 할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조기 퇴근이 가능하다는 내 말에 두 손바닥을 짝 치시며 좋아하셨다.
“그럼, 예약인원 수는 몇 명이나···?”
“시간마다 10팀. 최대 2인 예약으로.”
“그럼 11시부터 4시까지만 운영하니까···. 총 50팀, 100명이네요?”
박준혁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계산을 끝내고는 ‘100명···.’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일단 기본적으로 한과세트 100개가 기본. 포장용으로 50개 더. 총 150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장에서 먹을 손님 100명을 위한 100세트와 포장용으로 쓸 50세트. 포장용은 매장에서 한과 세트를 먹은 팀 한정, 팀당 한 세트씩만 포장 구매가 가능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혹여나 개수가 부담될까 강 할머니의 표정을 살폈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150세트? 그건 껌이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200개 정도 만들었는데. 150개 정도야. 우리도 먹어야 하니까, 넉넉하게 200개 정도 만들면 되겠네.”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추가분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강 할머니가 먼저 마을 사람분을 말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마 정령들에게 이제부터 한과를 매일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랫동안 정령들의 축 처진 모습을 봐야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강 할머니에게 ‘제 것도 예약이요!’라고 외친 박준혁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구체적인 예약 방법을 물었다.
“이야. 그럼 예약 경쟁률 박 터지겠는데요? 예약은 어떻게 받으실 생각이세요? 역시나, 인터넷?”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는다면, 예약 전용 사이트를 당장 만들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는 박준혁에게 나는 손을 뻗어 앉히며 말했다.
“어떻게 받긴. 전화지.”
“예? 전화요?”
예약을 전화로 받겠다는 내 말에 박준혁은 상상도 못 한 방법이었는지, 앉은자리에서 입을 떡 벌렸고. 강 할머니는 좋은 생각이라며 다시 한번 손뼉을 짝짝 쳤다.
“전화가 좋제. 우리 마을 늙은이들이야 니네들이 핸드폰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줘서 이제는 잘 쓰지만, 다른 노인네들은 힘들구로? 전화로 예약받으면 젊은 사람이건, 나이 든 사람들이건 다 쉽게 할 수 있을 거다. 잘 생각했다. 한울아.”
강 할머니는 말을 마치며,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의 말대로 전화라면 전 연령대가 쉽게 접할 수도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혹시나 모를 암표 예방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과를 예약하는데 암표를 생각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예약제를 시행하는 맛집의 예약을 매크로를 돌려 한 다음, 되파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전화 예약이라고 해서 그런 행위를 100% 모두 막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인터넷 예약을 하는 그것보다는 훨씬 확률이 줄 것은 당연.
하지만 미소짓는 강 할머니와 달리, 박준혁은 전화 예약이라는 소리에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와···. 그런데 지금, 이 추세면···. 전화 예약 받는 것도 장난 아니게 힘들 텐데···. 될까요? 형님?”
박준혁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전화를 계속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전화 예약은 한 달에 1일과 15일에 딱 두 차례. 각각 50팀씩 받을 예정이다. 예약용 전화는 따로 회선을 만들 예정이고, 예약 50팀이 다 차면 그 전화는 끌거야.”
“오오. 그럼 확실히. 전화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없겠네요. 근데 전화를 아예 꺼버리면, 예약한 손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예약을 변경하거나 취소해야 할 경우는요?”
전화로 예약을 받는데 그 전화를 꺼버리면 예약 손님은 어떤 통로로 연락을 할 수 있냐는 질문.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예약 후 변경이나 취소는 문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할 생각이야. 그러니까, 예약을 받는 전화는 핸드폰이 되겠지.”
“아···! 그럼 되겠네요. 그럼, 아예 워크인 손님은 안 받을 건가요?”
어느새 박준혁은 앞치마에 넣어둔 수첩을 꺼내 내가 한 말들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내 말을 토대로 바로 공지를 작성할 모양. 나는 박준혁의 노트를 슬쩍 본 다음, 공지를 작성할 때 추가로 필요한 사항들을 읊었다.
“워크인 손님은 당연히 받지만, 한과 세트 구매 불가능. 대신 직판장에서 구매하거나 김 할아버지 농장체험에서 가지고 온 것들에 한해 섭취 가능. 혹시라도 한과 세트가 남으면 구매할 수 있지만, 그건 공지에 쓰지 말고···.”
나는 공지에 적어야 할 사항들을 모두 말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펜과 수첩을 다시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박준혁을 보며 말했다.
“공지는, 되도록이면 이번 주 금요일 전까지는 부탁해.”
이번 주 일요일이면 가오픈 기간이 끝난다. 슬슬 본격적으로 홍보를 해야 할 시간.
“오늘 바로 올릴 수도 있는데···.”
“그럼 더 좋고.”
“넵!”
어차피 미리 만들어놓은 카페와 직판장용 공지 서식이 있어, 문구만 입력하면 바로 공지를 올릴 수 있다는 박준혁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나는, 마지막으로 카페 ‘사랑방’의 유일한 알바생이자, 준혁의 선배인 이동민이 들어가 있는 주방을 향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그리고, 이동민 씨한테 계속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할 마음이 있냐고 물어보고······. 만약 있다면, 콩물.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한 잔씩 드린다고 말씀드려.”
주방에 있는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