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탈전 (2)
한울이 강 할머니와 박준혁에게 앞으로 카페와 직판장 운영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시점.
이동민은 콩물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거 불리려면 한참은 있어야 한다니까. 어여 가서 할 일들 해라.”
이 할머니는 제 밥을 지키는 강아지들처럼 뚫어져라 물에 담긴 서리태를 쳐다보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둘을 보며 주방에서 축객령을 내렸지만, 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가기는커녕, 둘이서 무슨 계획을 짜는 듯 머리를 맞대어 쑥덕거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빨리 불리려면 그 방법도 좋습니다.”
“그렇죠? 우리 회사 공장에서 그렇게 음료를 만드는 걸 봐서···.”
이 할머니는 자신의 말은 들리지 않는지, 머리를 맞댄 채 수군거리는 둘에게 다가가 귀를 가까이했다.
“도대체 뭔 소리를 그렇게 하노?”
물에 담긴 콩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었는지, 이동민과 이대라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펄쩍 뛰며 비명 질렀다.
“으악!”
“으허허-.”
점잖지 못한 비명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흩어지는 두 청년의 모습에 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누가 보면 여기서 뱀이라도 나온 줄 알겠다.”
“예?? 여기 뱀도 나와요?”
뱀이라는 말에 이 대리가 그렇지않아도 움츠린 덩치를 더 움츠리며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아이고. 시끄라바라. 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여기서 뱀이 왜 나오노! 뱀이! 저기 안 보이나! 퍼런 거!”
몸을 움츠리다 못해 목까지 없어진 이 대리의 모습을 보며 ‘지가 자라도 아니고. 몸만 컸네.’라고 중얼거린 이 할머니는 손을 뻗어 주방 입구 바로 옆에 걸려있는 파란색 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파란 불빛을 뿜어내는 기기 밑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기기의 브랜드가 쓰여있었다.
[KESCO]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생관리를 잘한다는 업체의 브랜드였다.
할머니의 손을 따라 눈알을 굴린 두 겁쟁이는 그제야 움츠렸던 몸을 풀고 괜히 그새 구겨진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후···. 케스코라면 믿을만하죠.”
“아시죠. 할머니? 저는 이분이 소리를 질러서 같이 지른 것뿐입니다.”
이동민은 자신이 놀란 이유는 바로 뱀이 무서워서가 아닌, 이 대리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 저도···. 할머니께서 장난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리액션을 조금···. 크흠.”
이 대리는 이동민의 말에 옷을 툭툭 털던 손을 멈칫하더니 헛기침을 연신 하며 놀란 척을 했다고 중얼거렸다.
뱀이라는 단어 하나에 야단법석을 떨던 이들의 태세전환에 이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다시 한번 주방 입구를 가리켰다.
“주방에서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밖에 가서 일 봐라. 할 거 없으면 직판장 가서 좀 도와주던가. 올려놓으면 팔 리고 해서 허리가 휜다 카드라.”
이곳은 너희들이 도와줄 게 없으니, 빨리 나가라는 축객령. 간접화법이 아닌 직설화법이라 더 없이 뜻을 이해하기 쉬웠으나, 덩치 둘은 마치 할머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동문서답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희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입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여태까지 쌓아온 실험 경력과···.”
“...제가 회사 현장을 구르며 쌓아온 데이터를 토대를 합쳤더니···.”
“콩물을 차가운 물에 담가서 불리는 것보다는!”
“미지근한 물에서 불리는 것이 더 빠른 속도로 콩을 불릴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대리가 할머니의 왼쪽 편에서서 말을 시작하자, 이동민이 할머니의 오른편에서 말을 이었다.
쿵짝쿵짝.
만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둘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티키타카가 잘 맞았다.
“뭔 말을 하나 했더니···.”
이 할머니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콩을 빨리 불릴 방법 따위를 제게 알려주는 양옆의 덤앤더머의 모습에, 말을 쥐뿔만큼도 듣지 않는 천둥벌거숭이를 마주한 부모처럼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가.”
하지만 이 할머니의 그 한마디는 너무 조용한 나머지 모든 신경이 콩물에 쏠려있는 이들에게는 잘 전해지지 않았다.
“할머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다행히 대학원에서 눈칫밥을 몇 년 먹은 이동민이 교수님의 기분을 살피던 촉을 발휘해 할머니의 말을 캐치해 고개를 숙이며 다시금 물었다.
계속되는 둘의 사오정 빙의에 이 할머니의 참을성이 폭파되려는 순간.
“...이동민 씨한테······.”
주방 커튼 사이로 자신의 이름을 들은 이동민의 귀가 쫑긋거렸고.
“...콩물.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한 잔씩 드린다고 말씀드려.”
콩물이라는 말에 이동민의 눈이 전에 없을 만큼 커졌다. 순식간에 끊겨서 들리는 단어들을 매칭해 뜻을 파악한 이동민은, 이 할머니가 그렇게 가리키던 주방과 홀을 나누던 커튼을 젖히고 외쳤다.
“코, 콩물! 저! 합니다! 계속합니다!”
**
계속합니다- 다- 다-.
주방을 뛰쳐나온 이동민의 울림통은 컸다. 어찌나 컸는지 홀을 가득 채운 손님들의 대화 소리와 부드럽게 흐르는 음악 소리를 다 먹어버릴 정도.
“거참. 목청 한번 대차게 크네.”
귀신이라도 지나간 듯, 일순간 조용해진 홀에 강 할머니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어머. 여기서 일하는 게 그렇게 좋나 보네.”
“그러게 말이야. 하긴. 나 같아도 집만 가까우면 아르바이트 하고 싶네. 힐링도 하고, 맛있는 한과도 먼저 먹고. 호호호.”
“사장님, 아르바이트 분이 너무 하고 싶어 하시는데, 웬만하면 계속 써주세요.”
“맞아요. 저희가 자주 와서 많이 팔아드릴게요.”
“어머어머. 그럼 나 매주 내려와야 하는 거야?”
“에이. 나도 면허 있어. 장롱면허긴 한데···. 남편한테 연수받고 오지 뭐!”
“...아냐. 그거 아냐. 넣어둬.”
강 할머니의 말을 시작으로, 대화를 멈추고 무슨 일인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쪽을 살피던 손님들도 웃음을 터트리며 이동민에게 나였어도 그랬을 거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마지막엔 남편에게 연수를 받는다는 맞은편 엄마의 말을 정색하며 말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 넵. 감사합니다.”
이동민은 ‘화이팅’ ‘힘내요’라며 자신을 응원해주는 손님들에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형님, 그렇다고 합니다.”
수첩에서 마지막 줄을 펜으로 슥슥 그은 박준혁이 고개를 들어, 내게 말했다.
“...그래. 이렇게 의욕이 넘치실 줄은 몰랐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콩물을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내민 내 오른손을 놓을 생각은커녕, 열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은은한 광기가 서린 이동민의 눈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이동민과 비슷한 안광을 가진 박준혁이 제 선배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박준혁과 이동민을 번갈아 봤더니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 버렸다. 대학원생들은 다 이런 걸까. 어쨌거나. 의욕적인 건 사장인 나로서는 아주 반길 일임이 틀림없다. 두 눈에 ‘콩물’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것 같은 선후배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붙들고 있는 이동민의 양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네. 최선. 확실하네요.”
**
그날 밤.
오랜만에 미화리 인터넷 카페에 새로운 공지글이 올라왔다.
[제목 : (신장개업) 미화리 사랑방으로 초대합니다.]
작성자는 ‘탈출도비’. 카페의 부매니저인 박준혁이었다.
“카페?”
아이를 위한 체험농장 신청을 성공하고, 후기에 적힌 팁을 따라 미화리 카페에 가입한 여자는, 팁 글들을 정독하다 다른 글을 보다 공지를 발견하고는 클릭했다.
“카페를 예약하고 가야 한다고.?”
공지 내용은 카페와 직판장의 정식 오픈 일자와 더불어 카페 이용 방법에 대해 나와 있었다.
“돈을···. 안 벌 생각인가?”
하지만 보통 카페와는 다른 운영시간과 이용방법을 읽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페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딱 5시간만 한다고 한다. 이유는 어두울 때 산길을 운전하기 힘들 수가 있으므로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작은 매장을 하나 운영하는 여자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와···. 배짱부릴만하네.”
하지만 그런 여자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기 위해 대충 스크롤을 내리다 보게 된 사진으로 인해 바뀌었다.
사진은 따스한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카페를 배경으로 한 한과 사진과 작물들의 신선함이 사진으로도 느껴질 만큼 파릇한 직판장의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르신들이 운영하시는 곳인가 보네···.”
여자는 뿌리가 굵은 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온 얼굴로 웃는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여 사진을 보는 사람까지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 사진이었다.
“한번 나도 신청해 볼까?”
예약까지 해서 카페를 갈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던 여자는, 보기만 해도 보드라운 잔디가 깔린 마당과 깨끗한 물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는 연못의 사진까지 보고는 다시 스크롤을 올려 방금전만해도 관심없이 지나갔던 예약 방법에 대해 정독하기 시작했다.
“방법. 전화 선착순. 9시에 전화가 열리고, 그 전에 전화하더라도 받지 않는다···. 한 달에 총 두 번 예약을 받는다. 잠깐, 이러면 전화 연결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건가?”
에이.
사진에 홀려 조금 번거롭더라도 예약을 할까 했던 마음이 다소 복잡한 예약 방법을 보고는 푸쉬쉬 사라졌다.
“그래. 애 챙겨서 체험농장하고, 잼 만들기도 바쁘다. 깜깜해지면 운전 위험할까 봐 4시에 카페를 닫겠다는 동네에서 오래 있을 필요가 없지. 됐다 됐어. 시간 되면 예약 필요 없는 직판장에나 한번 가보지 뭐.”
드르륵.
순식간에 일정을 세운 여자는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마우스 휠을 내렸다.
“잉? 이게 뭐야?”
그저 카페 예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간단히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아무리 공지 게시글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일반 게시글과 비교했을 때 댓글 수와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여기 가입한 사람들이 다 단 거 아니야? 어디 한번 보자···.”
100개가 넘는 댓글 수에 여자는 콧등에 내려온 안경을 고쳐 쓰고 댓글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근데···. 댓글의 반응들이 여자가 생각했던 것과 결이 조금은 달랐다.
┗ 드디어! 정식 오픈이네요! 여태까지 참은 나 소리 질러!!
┗ 어머어머어머!!! 저기서 찍은 사진만 백만 장인데! 이제 카페에 올려도 되는 거죠?
┗ 아아······. 저만 알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렇게 또 소문나면 저는 어떻게 가나요···. 지금도 한과 세트 경쟁률 헬인데...더 헬이 된다면···. 오우 노우! 그럼 전, 정식 오픈이 되기 전까지 계속 갑니다!
┗┗집이 가까우신가 보다! 너무 부러워요!
┗┗┗저 혹시 한과 세트 구하실 수 있으면 택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선물 받아서 한번 먹었다가 검색을 타고 찾아낸 건데···. 너무 멉니다 ㅠㅠ 스토어 판매는 계획 없으신가요?
“오오? 반응이 이 정도면···.”
온갖 칭찬과 주접이 난무한 댓글들을 천천히 읽던 여자는 핸드폰 스케줄러를 켜 다가오는 4월 1일, 8시 30분에 알람을 맞추며 말했다.
“해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