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0화 (110/163)

쟁탈전 (3)

따스한 햇살과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어느 날. 산새들이 짹짹 울며 자신의 소리를 뽐내어 평화로운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노트북 세팅 완료.”

“핸드폰 충전 완료. 테스트 완료. 엑셀 시트 준비 완료.”

평화로운 바깥과는 대조되는 비장한 공기가 미화리의 유일한 카페 안에 맴돌았다.

“릴렉스. 전화는 한 통씩만 올 거고, 50팀 예약 마감하는 즉시 핸드폰은 끊을 거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동민 씨는 준혁이가 전화 끊으면 예약 일자랑 시간 정리해서 문자 보내고요.”

“네. 알겠습니다.”

“넵!”

블루투스 이어폰을 한쪽 귀에 나누어 낀 이동민과 박준혁은 나를 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고생들 한다. 이것 좀 먹고 해라.”

현재 시각 9시.

오픈 시간인 11시보다 2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카페 사랑방의 직원들은 모두 출근을 한 상태였다.

“오. 감사합니다.”

이동민은 먹으면서 하라며 떡을 가지고 온 강 할머니를 향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 이 떡···.”

그렇지 않아도 조금 입이 심심했다고 얼른 포장된 떡 중 하나를 까 입에 넣는 이동민과는 달리, 박준혁은 떡 포장지에 프린트된 구름 모양의 로고를 보며 아는 체했다.

“어. 맞다. 내일이 진짜 오픈 날이라 지민이 한테 요즘 젊은 사람들 좋아하는 구성으로 알아서 맞춰 달랬더니 어젯밤에 지 할미 데리러 와가 샘플이람서 주고 가드라꼬. 어떻노? 젊은 사람들 입에 맞나?”

가오픈 기간 동안 입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사랑방에 오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젊어졌다. 처음에는 김 할아버지의 체험농장을 왔던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가오픈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대학생들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방문해 한참을 사진을 찍고 갔다. 나중에서야 대학생들의 정체가 장 이장님 손녀의 친구들이란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에 어르신들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네. 정말 맛있는데요? 저희 사랑방에서 판매하는 한과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여태 먹어보았던 떡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맛입니다.”

“글나? 그럼 됐다.”

이동민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강 할머니는 쟁반을 들고 일어나 몸을 돌려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야. 준혁아, 여태까지 이런 걸 혼자 누렸겠다.”

강 할머니의 모습이 주방으로 가는 커튼 뒤로 사라지자, 이동민이 점잖던 모습을 벗어 던지고 박준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으흐흐. 그래서 제가 자퇴를 한 거 아니겠습니까!”

“...나도 좀 빨리 알려주지 그랬냐. 아니면 자퇴를 좀 더 빨리하던가.”

그랬으면 나도 더 빨리 내려왔지 인마, 라고 중얼거린 이동민은 떡이 정말 입에 맞았는지 손을 뻗어서 하나를 더 집었다.

“이게 다 제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덕 아니겠습니까.”

이동민의 투덜거림에 짐짓 어깨를 펴고 능글거리며 받아넘긴 박준혁은, 손에 쥔 떡의 포장지를 벗기며 실실 웃었다.

“어쭈? 지금 웃음이 나오지? 랩실에는 지금도 머리를 싸매고 연구보다 더 많은 잡무를 처리하고 있겠지. 머리카락을 제물로 바쳐서 말이야.”

콩물을 마신 지 4일째. 매일 아침 이동민은 민들레 홀씨 같은 머리카락들이 오늘은 얼마나 굵어졌는지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선배님이 잡무에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형님은 저를 위해 서리태를 재배하셨죠.”

“역시 사장님! 우리 교수님이 사장님의 반의반에 반! 아니, 발톱 때만큼만 닮았으면···.”

그럼 걸음마다 절을 하고 다닐 거라고 이동민이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온순하다가도 교수 얘기만 나오면 성난 치와와처럼 이를 드러내었다. 박준혁에 이어 교수에 대한 분노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이동민을 보자니 이제는 그 교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질 지경.

“준혁아, 이 떡 한 박스 사서 랩실에 보내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저도 생각 안 해본 게 아닌데···. 만약에 교수님이 랩실에 이 떡이 있는걸 아시게 되시면···.”

“아···. 하긴. 이런 거 보냈다가 자칫 교수님 마음에 들면 안 되지. 그럼 우리의 연구시간이 또 줄어드는 거잖아? 고맙다 준혁아. 조금 전까지 너 혼자 이 모든 것들을 누렸을 생각에 비호감도가 –142까지 떨어졌었는데, 반으로 줄었다.”

“예? 반이요? 아니. 들어보세요. 선배님. 여기 구름 떡집 떡이 말입니다. 여기 강 할머니 정도 되니까 개업 떡을 맞춰준다고 하고 이렇게 샘플 떡까지 보내주지. 원래는 온라인 스토어 말고는 판매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리고 구름떡집 온라인 스토어 판매방식 또한 저희 신비농장과 같습니다.”

“미안. 호감도가 300 올랐어. 땡큐 300이다. 역시. 믿고 있었다.”

역시. 어느 곳이나 공동의 적이 있으면 그 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유대관계가 더 깊어지는 모양. 교수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인상을 어디까지 찌푸리던 두 명은, 랩실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듯 스르륵 풀렸다.

“그런데 사장님, 정말 콩물 판매는 할 생각 없으신가요?”

구름떡집의 주문시스템을 듣고 어깨를 떤 이동민은, 랩실에 떡을 보내려던 생각을 바로 접고 고개를 내게 돌리며 물었다.

“네. 없습니다.”

콩물 판매라.

생각하지 않았던건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효과가 굉장하다고 느꼈을뿐더러, 정말이지 속알머리가 비었던 박준혁의 머리가 지금처럼 빽빽해 진 건 모두 콩물의 효과였으니까.

“저도 말씀드렸는데, 생각 없으시대요.”

효과가 뛰어난 만큼 많이 팔리긴 할 테지만, 너무 많이 팔려도 문제였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곳,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 중 하나는 시골 특유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어쩌다 보니 일을 벌여 몸이 조금 바빠지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지금까지 벌인 일들은 내가 충분히 소화가 가능한 범위 내였다. 신비농장 운영의 거진 90%는 정령들과 박준혁이 하였고, 카페와 직판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번갈아 가며 도와주고 있다.

너튜브는 장 이장님의 손녀가 촬영과 편집까지 맡아 쑥쑥 크고 있었으며, 인터넷 카페는 어느 정도 괘도에 올려놓자, 카페회원들에 의해 자동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콩물은···. 판도라 상자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콩물은 달랐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약이 아닌 콩물만 마셨는데 머리가 새까맣게 자란다는 소문이 퍼지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내가 그토록 회사에서 치일 때마다 꺼내던 추억이 가득한 이곳, 미화리 산골 마을에 피해가 갈 수 있다.

아니, 피해가 갈 것이다.

같은 서리태인데 왜 신비농장에서 판매되는 서리태만 그렇게 효과가 좋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콩물에 대한 분석이 들어갈 것이고. 나아가 지금 박준혁과 이동민을 보낸 이름 모를 교수처럼 기업 단위로 이 작은 마을로 사람들을 보낼 것이다.

그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샘플을 채취한다며 땅을 팔 것이고, 깨끗한 자연과 고즈넉한 시골의 정취를 즐기러 온 사람들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과 부딪힘이 있을 수 있다.

적당한 돈은 기쁨을 주지만, 준비가 철저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많은 돈은 가끔, 그 주인을 망치는 것을 넘어 그 주위 모든 것들을 망치기도 하니까.

“아···.”

이동민은 짧은 내 말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소리 냈다.

“전 지금 이것만으로도 좋거든요.”

내가 원하는 삶은 자연과 어울려 여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이곳에서 힐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콩물은 지금처럼 알음알음, 지인들에게만 공개할 예정.

물론 예전 박준혁이 내가 미처 말하기도 전 커뮤니티에 올린 것과 같은 사고를 방치하기 위해 콩물을 주기 전, 다짐을 받는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다짐이라 어길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어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박준혁과 이동민, 그리고 이 대리밖에 없으니.

“그럼, 다른 작물로 상품을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콩물에 대한 견해가 같아진 이동민은 ‘하긴 그렇게 되면···. 내가 먹을 게 없어질 수도.’라는 말을 중얼거린 후, 내게 다른 작물에 대한 상품화를 물었다.

“그건···. 일단 예약부터 해결하고 말해보죠.”

9시 58분.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야 할 시간이었다.

**

9시 45분.

한 결은 커피를 내려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평소 주말 기상 시간이 오후 1시임을 생각하면 기록적으로 빠른 기상 시간이었다.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네. 아직 널널해.”

한 결이 주말에 이토록 빨리 일어나게 된 이유는 바로 ‘사케팅’을 위해서였다.

사케팅. 일명 사랑방 티켓팅.

“더 알려지기 전에 가봐야지.”

한결은 며칠 전 집 주변에 있는 디저트 카페를 검색하다 우연히 카페 사랑방을 알게 되었다.

‘후. 이 깡촌에는 어떻게 제대로 된 디저트 가게 하나 없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단숨에 평가절하시킨 한결은 침대에 털썩 누워 친구들에게 톡을 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디저트 카페 아는 사람?]

때마침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대라, 대화방은 디저트 카페에대한 주제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서울디저트카페]

[한옥마을 중간쯤에 있던 디저트 카페 멋있었어!]

[디저트 카페는 종로가 원탑이지.]

[디저트 카페 말고 호텔은 어때? 요즘 봄이라 봄 디저트 판매 시작했거든.]

‘...’

고향 친구들임이 분명한데. 하나같이 서울에 있는 카페를 추천했다.

[서울 말고. 우리 동네.]

설정값을 제대로 주지 못한 벌로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한 한결은 다시금 장소가 적힌 톡을 보냈다.

[에이. 우리 동네에 무슨 디저트 카페야.]

[봄밖에 안 됐는데 더위 먹은 거 아니지?]

하지만 역시나.

장소를 미화리로 좁혔더니 여기저기서 김빠진 반응을 내었다.

‘그래. 여기 뭐가 있겠냐.’

아직까지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은 동네에서 디저트 카페를 꺼낸 자체가 잘못이었다. 한결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친구들이 추천해준 서울의 디저트 카페를 저장이나 하자며 지도에 추가할 때였다.

-지잉

톡이 오는 진동이 울리더니, 그토록 한 결을 찾았던 정보가 올라왔다.

[구름떡집. 전통 떡 아니고, 안을 생크림이랑 팥. 이런 식으로 섞인 떡집. 읍내에 있긴 한데, 주문은 무조건 온라인에서.]

(사진)

떡 보다는 찹쌀떡 같은 모양의 퓨전 떡을 시작으로.

[카페 사랑방. 정말 산골에 있어서 가기는 힘들지만, 신장개업. 소문으로는 한 번 가게 되면 카페를 나오는 순간 그리워 진다고 함.]

오픈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았다는 카페까지.

(사진)

(사진)

앞선 구름떡집과 달리 몇 초의 텀 이후 올려진 카페 사랑방의 사진은···.

‘어머. 너무 예쁘다.’

...단숨에 한결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5, 4, 3, 2, 1. 고우!”

핸드폰 시계가 9시 59분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결의 현란한 손놀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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