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1화 (111/163)

잘 하는것과 좋아하는 것 (1)

“네. 사랑방입니다. 네네. 지금 남은 시간대가 7일 오전 11시밖에 없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7일 오전 11시. 예약 완료됐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후 12시.

“끝! 끝났습니다!”

두 시간 만에 15일 치의 예약이 완료되었다.

“고생했다. 오늘은 둘 다 쉬어.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 테니.”

나는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전화기와 노트북을 붙들고 있느라 목이 쉬고, 눈이 벌게진 박준혁과 이동민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말했다.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한 모금 홀짝인 이동민은 왜인지 아련한 눈으로 밖을 쳐다보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닙니다. 이쯤은 세미나 준비할 때랑 비교하면···.”

하하.

‘저희 교수님은 보이는 것에 아주 신경을 쓰는 분이셨죠.’라고 말을 흐리는 이동민의 모습에 목은 쉬었지만, 2시간 만에 모든 예약을 처리했다는 성취감에 도취해 있었던 박준혁이 목이 메인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털썩, 테이블에 뻗었다.

“어으···. 세미나···. 생각만 해도 토나옵니다. 선배.”

도대체 세미나가 뭐길래.

알면 알수록 대학원은 왜 사람들이 대학생이 잘못하면 가는 곳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학원에 가면 연구실에서 근사한 하얀색 가운을 입고 연구만 하는 줄 알았더니. 들어보니 연구보다는 잡다한 업무와 교수의 수발을 드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세미나 단어 하나에 정신을 놓는 걸 보면, 세미나는 둘 다 섞인 일일지도.

“가서 쉬어라. 농장 출고 건도 오늘은 석호랑 내가 할 테니까.”

저 상태로는 일하지 못한다. 최고의 효율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이 필요한 법.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업무를 무사히 마친 둘에게는 쉬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아닙니다! 석호가 아직 테트리스를 잘 못 해서···. 제가 가야 합니다!”

하지만 박준혁은 쉬라는 내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반대했다. 아니, 사장이 쉬라는데, 이렇게 거부하며 일을 하겠다고 하는 직원은 박준혁이 처음이었다.

“고생이라뇨? 겨우 이걸로 쉬라고 하시는···.”

아니. 정정한다. 이동민도 포함.

이동민은 박준혁보다 한술 더 떴다.

‘대체 왜?’라는 물음표가 그의 얼굴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선배의 발언에 ‘테트리스는 제가 제일 잘합니다!’ 따위를 외치고 있던 박준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연구실 업무량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암.”

2시간 동안 집중을 흩트리지 않은 체 쉴 새 없이 말하고, 스케줄 정리를 한 것 따위는 교수님이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콧김을 뿜어댔다.

“아이고. 참말로. 이렇게 일을 하고 싶다고 난리인데, 시켜라. 시켜.”

주방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강 할머니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했다.

“맞습니다! 일하지 않는지! 먹지도 말라!”

“일하지 않고 콩물을 먹는 염치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맙소사.

그렇게 일을 하겠다고 우기는 이유가 콩물 때문이라니. 나는 염치가 있는 대신 부끄러움을 어디 갔다 판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콩!”

“물!”

““크로스!!””

콩물 크로스라니. 팔을 얽은 박준혁과 이동민은 서로를 마주 보며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TV 컨텐츠의 영향력이 정령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렇게 미칠 줄이야.

이제는 나를 향해 결연한 눈빛을 보내며 일을 하겠다고 어필하는 그들의 시선을 일별한 나는 뒤를 돌아 꽃분이 할머니를 찾았다.

참고로 현재 카페는 임시운영 기간이 끝난 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꽃분이 할머니가 안 보이시는데요?”

쉬는 기간이라 하더라도 월급이 나오는데 쉴 수 없다며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는 매일 카페로 나와 머리를 맞대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연구하고 계셨다.

“아아. 그치. 오늘 뭐 장 이장 의상 맞추러 읍내 가야 한다고 먼저 갔다.”

“의상이요? 아아. 요즘 이장님 영상 화젯거리이던데. 이제 의상도 본격적으로 맞춰서 하실 생각이신가 보네.”

강 할머니의 대답에 박준혁은 이동민과 크로스했던 팔을 풀며 아는 체했다.

박준혁의 말대로 요즘 장 이장님의 노래 영상은 미화리 너튜브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 중 하나였다. 다른 인기 영상으로는 ‘멧돼지와 함께 춤을’ 등이 있다.

“와 그거 있었잖아. 예전에 뭐 방송국 피디가 연락 와가 프로그램 출연 제의 했다는 거. 프로그램 이름이 뭐랬더라···. 트로트 뭐 어쩌고 그랬는데···.”

강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그그···.’하셨다. 프로그램명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 이미 장 이장님의 손녀를 통해 일정을 알고 있던 나는 할머니 대신 프로그램명을 말했다.

“‘트롯황제’요.”

“어. 맞다. 트롯황제. 거기 오디션이 내일모레란다.”

‘트롯황제’는 우리 미화리 마을에서 예능을 촬영했던 방송사인 MBS가 새롭게 선보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어? 뭐죠? 왜 저는 모르는 이야기가 오는 것 같죠? 장 이장님 오디션이 내일이라고요?”

강 할머니의 말에 박준혁은 짐짓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 이장님의 오디션이라면 마을 사람들의 행사 중 하나인데, 나와 할머니 모두 아는 사실을 자신만 모른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낀 모양.

“야야. 아직 오디션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뭐할라꼬. 니는 할 일도 많은데 쓸데없는데 신경을 쓸라고 하노.”

“그래도 응원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 않는 걸 장 이장도 원하지 않겠나?”

저는 마을의 구성원이 아니냐며 콧김을 뿜어내는 박준혁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던 강 할머니는, 응원하겠다는 그의 말에 정색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나도 할머니 말에 찬성.”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동민 또한, 응원한다는 박준혁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강 할머니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 아니. 왜요? 응원은 많은 사람이 할수록 좋은 겁니다!”

박준혁은 자신의 응원을 거부하는 강 할머니와 이동민의 모습에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봐라. 준혁아.”

이동민은 그런 박준혁의 태도가 익숙한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가슴에 손, 올렸습니다.”

박준혁은 불퉁하게 말하며 이동민의 지시에 따랐다. 이동민은 말투가 어쨌든 간에 가슴에 손을 올린 박준혁을 보며 문답을 시작했다.

“그럼 생각해 보자. 지난 월드컵. 한국 경기. 네가 보면 한국이 질 것 같다고 안 보다가 16강 진출하는 건 꼭 봐야 할 것 같다면서 봤다가···. 어떻게 됐지?”

“...졌습니다.”

“그럼, 우리가 교수님 워크숍에 끌려갈 도비 담당 뽑기 배 발 족구 했을 때는?”

“...저희 팀이 졌습니다.”

“그렇지. 졌지. 막내인 박준혁, 네 응원에 맞춰서 실점이 쭉쭉 올라가고. 다 이긴 게임이 듀스까지 가더니 결국 져버렸네? 하. 하. 하.”

“...하하하.”

문답이 진행될수록 박준혁의 불퉁했던 얼굴이 풀어졌다. 풀어졌을 뿐이랴.

“저는! 장 이장님의 우승을 기원하기 위해 오늘부터 응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박준혁은 자신을 흰자가 많아진 눈으로 부라리는 이동민의 모습에 벌떡 일어나더니 응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할머니.”

씨익.

박준혁의 고집을 꺾은 이동민은 안광이 번뜩거리던 눈을 한 번의 깜빡임으로 숨긴 후 강 할머니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응원하는 족족 응원하는 팀을 패배하게 만든 박준혁도 대단했지만, 마치 가면을 바꾸듯 한순간에 표정을 바꾼 이동민은 더 대단했다. 사회생활을 최소 10년 이상을 한 노련한 영업부장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한방에 박준혁의 응원 소리를 조용히 시킨 이동민을 보고 있으려니, 강 할머니가 준혁이 몰래 엄지손가락을 이동민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거기서도 그랬나? 여기서도 몇 번 그랬다. 막 사람을 엄청 현란한 말투로 확률이 어쩌고, 제 감이 어쩌고 하면서 같이 보는 사람들을 홀려대는데, 응원만 하면 지더라. 신기하제.”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놀 거리가 없다. 다들 저녁만 먹고 나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어 더욱 그렇다. 아마 우리 마을 어르신들보다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면 찾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마을 어르신들이 졸린 눈을 부릅뜨고 마을회관에 다 같이 모여 응원을 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나라를 대표하는 누군가의 경기가 있을 때였다.

‘아이고! 아까 비라! 7점! 잠깐만, 저짝은 총 몇 점이고? 그래도 괘안타! 이제 계속 10만 쏘면 되는 거다! 우리나라 화이팅!’

경기가 있을 때면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하곤 하셨다.

그렇게 응원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소소한 놀 거리 또한 생기곤 했다.

‘그래서, 어디가 이길 것 같노?’

‘내는 미국에 한 표. 아무래도 거짝은 최신식 장비를 개발해서 선수들 훈련했을 거 같다. 저기 덩치 봐라.’

대표적인 예로는 내기.

내기에 이기더라도 10원 고스톱처럼 출혈이 큰 내기가 아닌, 이김으로써 잘난 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그 정도의 가벼운 내기.

‘...전 말입니다. 어르신들. 벌써 잊으신 것 같아서 다시 말씀드리는데···. 대학원 출신입니다. 석사! 박사! 척척박사!’

그리고 박준혁은 그 소소한 내기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오! 대학원생!’

‘하기사! 머리가 좋으니까 그 어려운 공부를 해서 그렇게 좋은 비료를 만들었나 보다.’

‘그러면 니는 어데가 이길 것 같노?’

(전) 대학원생이라는 타이틀과 어르신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 박준혁은, 어르신들의 시선이 한 번에 모이는 바로 그때.

‘일본이 이깁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끌어들여 판을 키우곤 했다.

언젠가 왜 그렇게 내기에 열심히 참여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박준혁은 내게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게.’

‘멋이니까요. 훗.’

훗이라는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왜인지 모르게 박준혁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었지만, 잘 참아내었다.

왜냐하면, 조만간 저 당당함이 줄 끊어져 하늘대는 연 같이 펄럭대다 추락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점! 10점! 10점!’

‘할 수 있다! 좀만 더 힘내라!’

제일 많이 맞추는 사람에게 주는 상금은 바로 반건조 오징어.

반건조 오징어 한 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각자가 예상한 결과물이 나오길 기다렸다.

‘7점! 7점! 으아악!’

아무리 내기를 하고 있다지만 겉으로는 모두 한국을 응원하고 있을 때, 홀로 꿋꿋이 미국을 응원하던 박준혁은, 한국이 쏜 마지막 화살의 점수가 10점이라시는 말에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른 뒤, 머리를 양 소매로 싸매었었다. 워낙 움직임이 커 모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를 여러번.

‘아, 맞다. 쟈 맨날 찍는 거마다 틀렸지.’

‘그것도 재주도 재주.’

‘아니제! 이거 재주랑 상관없지.’

‘그럼 뭔대?’

‘이건 바로...’

박준혁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별명이 생겨났다. 그건 바로.

“쭉쭉박사. 그러니까, 장 이장 응원은 나중에. 알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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