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2화 (112/163)

잘 하는것과 좋아하는 것 (2)

쭉쭉박사.

응원하는 팀마다 쭉쭉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아. 할머니···. 그건 좀···.”

어디에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별명을 들은 박준혁은 고개를 푹 숙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와? 니도 동의한 거 아니었나?”

그런 박준혁의 모습에 강 할머니는 모른 척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반문했다. 어떻게 봐도 놀리는 모양새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만 힐끗 들어 강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한 박준혁은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할머니도 아시잖아요···.”

“뭐를?”

“그때는 제가 취해서···.”

“원래 취했을 때 진심이 나온다고 하제.”

이렇듯 강 할머니가 박준혁을 놀리고, 박준혁이 그 놀림에 아무 소리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주사 때문.

박준혁의 예상이 매번 틀리던 날들이 몇 차례 지난 후. 마을 사람들은 그의 예상과 매일 반대로 예상하기 시작했다. 박준혁이 응원하는 반대편을 응원하면 항상 이겼달까. 하지만 아무리 똥촉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 번씩은 맞을 때가 있는 법.

‘절 믿으십쇼! 어르신들! 제가 바로 이 시대에 척척박사! 제가 대학원에 있을 때 말입니다···!’

처음으로 박준혁이 응원하던 팀이 그의 장담처럼 스코어를 올리며 승리를 코앞에 뒀을 때였다. 박준혁은 연거푸 짠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 문제는 기쁨에 취한 나머지 자신이 마시고 있는 술이 어떤 술인지도 모르고 마셨다는 것.

‘준혁이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이가? 저저 장 이장 가지고 온 담금주 아이가? 도수 엄청날낀데?’

‘뭐 어떻노. 괘안타. 장 이장 술이 도수가 높긴 해도 뒷맛이 깔끔 타.’

‘근데 점마 아까 막걸리 먹지 않았나?’

‘맥주도 먹던 거 같던데···.’

‘으잉? 아까 내랑은 고량주 마셨는데?’

‘...’

평소보다 과할 만큼 기분이 업되어 있는 준혁을 재롱부리는 손주처럼 흐뭇하게 웃으며 보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흐려졌다.

‘으흐흐! 할아버지! 제가 학교에서 배운 묘-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소주 멋있게 마시는 방법!’

꼴꼴꼴.

좌라락!

하지만 이미 취할 대로 취해 기분이 하늘까지 솟아있는 박준혁을 말릴 방법은 없었다. 그저 혼자 멋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소주잔에 술을 따른 뒤, 볼에 굴려 원샷하고는 ‘크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박수를 짝짝 쳤을 뿐.

‘야야. 쟈 좀 말려봐라. 이러다 큰일 난다.’

보다 못한 꽃분이 할머니는 그런 박준혁을 방관자의 입장으로 보고 있는 나에게 와 너라도 좀 말려보라고 하셨지만, 글쎄.

‘숙취는 없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아마 찹쌀이에게 부탁하면 숙취 없이 한 번에 깰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대포를 쏘거나, 그 귀가 아픈 노래를 부르거나. 만약 찹쌀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낌새를 보이면 노을과 함께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으하하! 할아버지! 왜 그렇게 가만히 있으세요! 뭐가 그리 다운돼있어? 뭐가 문제야 세이 썸띵!’

박준혁의 주사는 고공행진을 하다못해 까딱하면 인사불성이 될 지경까지 올라가 있었다.

‘오메. 이게 통하네?’

박준혁에게 시달리다 못한 할아버지가 근처에 있던 베개와 자신의 겉옷, 그리고 모자로 허수아비 비스무리한걸 만들어 박준혁의 앞에 두고 튀었는데, 그 허수아비를 보고 박준혁은 왜 그렇게 다운되어있냐고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아하! 그렇죠! 음주에는 가무가 필요하죠! 제가 또! 그 가무를 잘한다 아닙니까!’

가무를 보여준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박준혁은 비장한 표정으로 술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숨을 내뱉고는 깨발랄하게 몸을 흔들며 ‘가무’를 시행했다.

‘아, 술! 아, 술! 아, 술이 들어간다! 쭉! 쭉! 쭉! 쭉! 쭉!’

한번 가무에 시동이 걸린 박준혁은 거침없었다.

‘...쭉! 쭉! 쭉! 쭉! 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아 탈골됐잖아!’

큰 몸을 휘청거리며 할아버지의 모자와 겉옷을 뒤집어쓴 베개를 향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어깨가 탈골되었다는 춤을 추었다.

‘.....쭉쭉?’

‘탈골?’

‘저게 뭔······.’

‘미칬네...’

사지를 펄럭거리며 최선을 다해 ‘어? 아직도 다운돼있으십니까? 하···. 그럼 다른 거! 제가 오늘 책임지고 흥을 올려보겠습니다! 아 비트 주세요!’ 베개의 텐션을 올리려고 하는 박준혁의 모습에 어르신들은 말리기 위해 다가가다 질색을 하며 혀를 끌끌 차며 뒤로 물러설 정도.

‘내가~ 누구! 아! 교수님도 인정한! 아! 척! 척! 박! 사!’

하지만 한번 흥이 오른 박준혁은 텐션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척척박사는 무슨. 쭉쭉박사라 캐라. 아까 뭐 술이 쭉쭉? 그거 잘하드만.’

‘우리 손주가 이번에 쟈가 나온 대학교에 간다고 하던데···. 말려야 되나···.’

어르신들의 입에서 걱정과 염려가 나올 때쯤.

‘어? 어어어어? 야야야! 쭉쭉박사 맞다! 역전이다! 역전!’

TV를 통해 박준혁이 응원하던 팀이 상대편에 역전을 당하는 장면이 보였다.

‘....예?’

무슨 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가무 실력을 보여주던 박준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비며 TV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어···.’

TV 앞에 도착한 박준혁은 TV가 헤어졌다 만난 연인이라도 되는 마냥 한참을 쓰다듬더니, ‘이건 꿈이 분명해···.’라는 말고 함께 그 앞에서 쓰러졌다.

‘엄마야. 이거 뭐꼬? 준혁아!’

TV에 뺨을 댄 채로 주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박준혁의 모습에 꽃분이 할머니가 놀라 나를 불렀지만, 준혁은 할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멀쩡했다.

‘크어어엉! 푸흐흐흐.’

‘그냥 잠들었네.’

‘치우자.’

우렁찬 코골이를 하며 손을 TV에 붙인 박준혁에게 어르신들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고, 그 길로 술자리는 끝이 났다.

“으윽.”

강 할머니의 말에 박준혁은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푸드덕거렸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흑역사에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박준혁의 모습에 강 할머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제 적당히 마시라?”

**

경기도에 위치한 방송국 제작 스튜디오.

“아아아-!!”

“허락하소서-!!”

“붙어라~! 붙어라! 붙어있어라~”

화려한 옷차림의 오디션 사람들로 가득 찬 대기실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의식하지 하지 않고 각자 준비한 노래를 연습하는 참가자들에 의해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후···.”

“이장님. 화이팅 입니다.”

“파이팅!”

제작진의 배려로 대기실 앞까지 장 이장님과 함께 올 수 있었던 나와 꽃분이 할머니는 대기실 입구 앞에서 이장님을 향해 작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 그래. 고맙다.”

화이팅을 외치자, 오디션 장소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얼굴색을 바꾸던 장 이장의 얼굴은 더 없을 만큼 새하얗게 변했다.

“만다꼬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습니까. 평소 하던 대로만 하소.”

긴장을 풀라고 화이팅을 했음에도 풀기는 커녕, 더 심해진 장 이장님의 모습에 꽃분이 할머니가 손을 잡고 토닥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이장님의 정신은 반쯤 저 우주 어디론 가로 가버린 듯, 꽃분이 할머니의 내조도 통하지 않았다.

“이장님, 그냥 너튜브 영상 찍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메인 카메라, 그러니까. 저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가 할아버지 손녀가 들고 있는 카메라라고 생각하시고. 나머지는 다 호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국, 꽃분이 할머니의 토닥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 이장님의 모습을 보다 못한 나도 옆에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내, 내는 호박 안 키우는데···.”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사 오자마자 ‘호박떡, 호박떡’ 노래를 부르시길래 당연히 호박을 키우고 있을 줄 알았건만. 내 불찰이었다.

“할머니. 잠깐만 여기 계세요. 제가 얼른 밖에 가서 청심환이라도 하나 사 오겠습니다.”

멍하니 서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는 장 이장님의 모습에 내가 청심환을 사 오겠다며 몸을 돌릴 때였다.

“후···. 됐다. 걱정 마라. 내, 내가 이래 봐도 시, 실전에 강한 사람이다!”

멍하니 서 있던 장 이장님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가나 싶더니 많이 떨리지만, 단단한 소리로 말하며 자신의 손을 쥐고 있던 꽃분이 할머니의 손을 한번 꼭 쥐었다 놓았다.

“괜찮겠습니까?”

꽃분이 할머니는 자신의 손을 놓은 장 이장님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이장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할 수 있다! 한울아, 저 빨간색 불 들어온 카메라만 보면 된다는 거제?”

거기다 주먹을 꽉 쥐며 입구부터 따라온 카메라를 쳐다보기까지.

“네.”

결연한 얼굴의 장 이장님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아직도 염려되는 눈빛으로 장 이장님을 바라보시는 꽃분이 할머니를 모시고 오디션장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장 이장님이 오롯이 설 차례였다.

**

대기실 안.

아내와 한울이에게 큰 소리를 뻥뻥 치고 대기실로 들어온 장 이장은 구석 자리로 가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아직까지 저 많은 카메라와 일거수일투족 자신을 따라다니는 눈들을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웅크려봤자 이곳에 있는 참가자들의 의상에 붙은 반짝이를 모두 붙인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반짝이가 붙여진 재킷 때문에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머리를 풀숲에 숨긴 꿩처럼 장 이장은 구석 자리에서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뱉으며 참가자들이 연습하는 걸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들 젊네. 젊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전부 젊디젊었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청년부터 아무리 많이 봐도 30대 같은 청년들까지.

“내 나이대는 우째 한 명도 없는 것 같노.”

한 명이라도 같은 나이대의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카메라를 의식하며 대화하는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장 이장이 중얼거릴 때였다.

“아하하. 저는, 이 경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하!하! 저도요! 전 이곳에 나오려고 쌍꺼풀 수술도 하고 왔습니다! 아직 부었죠? 하하하!”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참가자 둘이 카메라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야. 쌍꺼풀은 우리 나이대나 하던디. 저 젊은 청년이 아주 독하게 마음을 먹었나 보네.”

옆 마을 차 이장이 몇 년 전 눈꺼풀이 처진다고 쌍꺼풀을 하고 왔더랬다. 비싼 돈을 주고 했다며 자랑을 했지만, 장 이장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그저 눈이 좀 더 부담스러워졌다는 정도?

“요즘 젊은 애들은 진짜 대단하네···.”

짝짝짝.

아직까지 붉은색 멍이 비치는 쌍꺼풀을 카메라에 한껏 들이미는 쌍꺼풀 청년의 모습에 장 이장은 작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나?”

정말로 이곳에 자신이 있어도 되는지에 대해.

“참···.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이런 생각 안 할 텐데. 늙긴 늙었나 보네.”

하나같이 주름이 보이지 않은 얼굴들. 주름이라고 해봤자 웃을 때 살짝 잡히는 눈주름밖에 보이지 않은 참가자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 이장은, 무심코 고개를 아래로 내리다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손을 보고는 숨을 잠시 멈추었다.

햇볕에 탄 손은, 까맣기도 까맸지만, 무엇보다 쪼글쪼글했다. 주름이 가득하다 못해 마른 논처럼 깊게 패인 주름은 물이 사라진 고랑 같기도 했다. 바싹 마른 겨울의 나뭇가지 같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늙었노.”

장 이장은 작게 중얼거리며, 손뼉을 치느라 폈던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서 젊음을 뽐내는 다른 참가자들을 보았다. 어느새 나이가 무색하게 힘차게 뛰던 심장이 느릿하게 제 속도를 찾았다.

그래. 이게 맞지.

이곳에서 제일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지만, 이 반짝임은 눈앞에 젊은 사람들이 내 뿜는 에너지만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월은 돌릴 수가 없으니.

장 이장은 그렇게 구석에서 고요히 들떴던 심장을 진정시켰다.

ー깨톡!

메시지 알림이 울리기 전까지 말이다.

“으어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