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3화 (113/163)

잘 하는것과 좋아하는 것 (3)

“으허억!”

사람들로 가득한 대기실에 장 이장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깨똑!

“으허!”

메시지 알림음에 맞춰 펄쩍 뛰는 노인의 모습에 입구 쪽 벽에 카메라 팀과 함께 있던 임승훈은 카메라를 담당하고 있는 스태프에게 조용히 물었다.

“찍고 있죠?”

끄덕.

스태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임승훈도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건 아니니까.

작은 대기실에는 고정 카메라 있는 게 고작이었다. 아직 방송 출연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참가자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원자들만이 모여있는 곳이라 사실 저와 같은 스태프도 필요 없었다. 평소 상황이라면 그저 고정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시간이 되면 들어와 지원자들을 인솔하면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임승훈도 이곳에 있으라는 자신의 사수, 박경배의 말에 의문을 표했었다.

익숙한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고. 미안. 미안합니데이.”

우렁차게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구석에서 펄쩍 뛰어오른 인물은 임승훈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크흠. 그 영상의 주인공은 내다!’

바로 ‘멧돼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상으로 자신을 야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미화리 산골 마을의 장 이장님.

‘어?’

조금 전,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익숙한 얼굴에 임승훈은 저도 모르게 반가움이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장 이장님이라면 들을 수 있는 크기의 소리로.

‘...’

하지만 장 이장님은 임승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먼저 온 참가자들을 슬쩍 보나 싶더니 바로 구석으로 가 몸을 움츠렸다.

‘...?’

임승훈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장 이장님의 모습과는 다른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을에서는 카메라가 어색하긴 해도, 자신감이 넘치시던 분이 어쩐지 주눅이 들어 보였다.

하기사. 익숙한 곳에서 맞이하는 낯섦과 낯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낯섦은 다르니 조금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른 스탭들이 어떻게든 튀어 보려 하는 지원자들을 주목할 때에도 임승훈은 장 이장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경쟁자들의 모습에 박수를 치고, 고개를 숙이다 손을 보고 눈을 질끈 감을 때까지. 모두.

**

갑작스러운 소란에 참가자들이 연습을 하다말고 장 이장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아이고. 아이고.”

-깨똑!

-깨똑!

-깨똑!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울리는 알림음에 장 이장은 핸드폰을 든 손을 몸과 최대한 멀리 거기를 벌려놓고는 필사적으로 알림음을 줄이려 했다.

“아이고. 한울이가 가르쳐 줬는데···. 아이고.”

핸드폰을 조작하는 방법은 이미 한울과 박준혁이 하는 ‘하루 마스터! 쉬운 핸드폰 사용법’ 시간에 배운 바 있었다. 매일 한가지씩, 핸드폰 사용방법 중 하나를 마스터 하는 그 수업은 핸드폰이라고 하면 그저 들고 다니는 전화기 정도로만 알고 있던 노인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와 생각이 안나노!”

하지만 분명 첫 번째 시간에 배웠던 핸드폰 음량조절 방법은 어찌 된 영문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깨똑!

놀람과 미안함, 그리고 긴장감으로 땀이 흥건한 손바닥은 핸드폰을 떨어뜨리지 않고 잡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떻게든 한 손을 번갈아 가며 바지에 문질러 제대로 잡아 보려 했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은 지치지도 않고 울려댔다.

“...”

설상가상, 농사일을 할 때도 들을 수 있도록 볼륨을 최대치로 설정해 놓아 다양한 목소리로 가득했던 대기실은 그게 언제였냐는 듯, 핸드폰 알림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다시 널뛰기 시작한 심장은 일제히 자신에게로 주목된 시선을 견디지 못했다.

“미안합니데이. 얼른 해결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연습하이소.”

조금 말랐던 손바닥은 이내 땀으로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장 이장은,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어찌할 줄 몰라하며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괜히 노인네가 젊은 사람들이 꿈을 펼치는 곳에 와서 방해를 하고있는 건 아닌지. 놀라 쪼그라든 마음은, 대기실 앞에서 가까스로 만든 작은 용기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어르신, 노래. 부르셔야죠.’

마을 촬영 때 친해졌던 메인 피디라는 양반이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라는 소리를 할 때 자세히 묻지 않았던 것이 제 실수였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는 줄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것을. 저를 초대하길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끼리 모여 경쟁을 하나 했건만.

-깨똑!

분명 배웠는데도 그 간단한 음량 줄이기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제자리에서 우왕좌왕하던 장 이장은, 돌연 고개를 들더니 입구로 돌진했다.

“어어? 어디 가시려고요?”

어딜 봐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장 이장의 모습에 임승훈이 손을 뻗으며 말렸다.

“어어?”

장 이장은 자신을 향해 불쑥 뻗어지는 손을 보고 깜짝 놀라다, 그 손의 주인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임에 또 한 번 놀라더니, 같이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좀 있으면 이장님 부를 건데···. 어디 가시려고요?”

임승훈은 이제야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은 장 이장을 향해 싱긋 웃으며 곧 있을 일정을 알려주었다.

“내를... 아나···? 아아아!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어가 이제야 알아봤네. 잘 지냈나?”

싱긋 웃는 임승훈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장 이장은 손뼉을 치며 아는 체 했다.

아는 척을 하긴 했지만, 사실 장 이장은 임승훈을 정확히 어디서 본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익숙한 얼굴이라 일단 안부를 물었을 뿐.

“그때 마을 촬영 이후로는 처음 뵙네요. 네. 잘 지냈습니다.”

장 이장은 티가 나지 않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임승훈은 이미 이장님이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장님의 ‘아는 척’은 로봇 같았다. 배우로 치면 발연기의 장인. 가뜩이나 긴장한 탓에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데구루루 굴리는데 그걸 알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아! 아아아!”

역시나.

임승훈의 힌트에 장 이장이 손뼉을 크게 치며 깨달음의 소리를 냈다.

“아이고. 잘 지냈나? 그간 고생을 많이 했나 보네. 우리 마을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통통했던 거 같은데···. 아인가? 나이가 드니까 기억력이 영 시원치가 않아 가.”

그러더니 임승훈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네. 빠졌습니다.”

장 이장의 말에 임승훈은 미화리 산골 마을을 촬영할 때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이고. 왜 이렇게 빠싹 꼬랐노? 이거 함 먹어 볼래요?’

‘이것도 좀 무봐라.’

연이은 야근에 찌들어 있는 임승훈을 본 마을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손에 먹을걸 쥐여주었다.

그 결과 정신없이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었다.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잘 먹어야 된다. 체력은 밥심에서 나온다는 말 못 들어봤나? 자. 이거라도 무라.”

장 이장은 마을을 촬영할 때와는 달리 수척해진 임승훈에게 꽃분이가 챙겨준 간식이라도 주기 위해 주머니에서 하나를 꺼내 건네었다.

“어? 이건···.”

임승훈은 장 이장이 건네준 간식 위에 새겨진 전통 문양을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머리 많이 쓰는 사람들한테는 달달한게 최고라 카드라.”

“그렇지 않아도 서울에 오고 나서 가끔 이게 생각나서 사 먹어봤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여기서 보니까 진짜 반갑네요.”

장 이장이 임승훈에게 건네준 건 바로 밤 다식. 말린 밤을 곱게 빻아 꿀과 함께 개어 틀에 찍어내기만 하면 되어 다른 한과보다 비교적 간단히 만들 수 있었다.

“사랑방···?”

임승훈은 포장지를 뜯다 말고 포장지 위에 적힌 멋들어진 필체를 보고는 무심코 읽었다.

“...설마, 할머니들 드디어 브랜드 내신 건가요? 어디서 구매 가능한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번쩍, 고개를 들어 장 이장에게 속사포처럼 질문하기 시작했다.

“피디님.”

임승훈의 옆에 있던 스탭이 촬영을 하고있는 것을 잃어버린 듯, 사적인 것을 대놓고 물어보는 그를 제지하며 눈짓했다.

“아···. 맞다. 너무 반가워서. 제가 진짜 먹고 싶은데 비슷한 게 없어서 엄청 찾아다녔던 거라···.”

임승훈은 스탭의 제지에 산더미처럼 쌓인 질문을 멈추고 조용히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장 이장님의 연락처라면 이미 가지고 있다. 만약 할머니들께서 브랜드를 낸 거라면, 촬영이 끝난 뒤 연락해 정기배송이라도 신청할 생각이었다. 포장을 뜯는 새 입안에 고인 침을 꼴깍 삼킨 임승훈은 조심히 다식을 들어 입에 넣을 때였다.

마을에서 먹었던 간식들이 그리웠다며, 설레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다식을 먹는 임승훈의 모습에 장 이장이 뿌듯하게 말했다.

“브랜드는 무슨. 한울이 갸가 우리 마을에 카페를 열었다 아이가. 사랑방이 카페 이름인데, 한울이가 우리 임자한테 카페 디저트는 무조건 우리 임자가 만든 한과여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서 말이제···. 카페에서 팔리는 것만 만들고 있다. 얼굴도 고와. 음식도 잘 만들어! 우리 임자가 재주가 너무 많아서 문제야.”

팔불출.

내지는 아내 바리기. 아내를 자랑하는 장 이장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었던 게 언제였냐는 듯, 환하게 풀려있었다.

“으음. 그래. 이거지!”

장 이장의 태도가 바뀌었거나 말거나. 임승훈은 입에 넣은 다식을 음미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 어떻게 봐도 ‘맛있어 죽겠다’라는 표정의 임승훈을 본 스탭이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찍부터 이곳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느라 지친 상태에서 포장지를 뜯자마자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달콤함과 임승훈의 먹방은 참기 힘들었다.

“어이쿠. 그쪽 젊은 아가씨도 먹고 싶나 보네. 가만 보자. 우리 임자가 내보고 긴장하지 말라고 이걸 잔뜩 쥐여줬는데···. 이야. 많이도 줬다. 어떻게, 무 볼래요?”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낯을 미화리 마을 최고로 가리는 남편을 위해 싸준 간식.

‘사람은, 먹이면 된답니다. 영감 혼자 먹지 말고, 옆에 사람이 있으면 나눠 먹으면서 낯을 좀 익혀보세요.’

다식을 먹고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올려 흔드는 임승훈을 보자니, 자연스럽게 꽃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뭐 얼마나 만든 기고? 이거 한 100개 되는 거 아니가? 우리 임자 카페에서 일도 하면서. 언제 만든 기고? 힘들제?’

더없이 바쁜 와중에도 낯을 가리는 남편을 챙기겠다고 쉬지 못했을까 걱정하며 묻는 말에 꽃분이는 이름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더랬다.

‘힘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데.’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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