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4화 (114/163)

잘 하는것과 좋아하는 것 (4)

“어후. 저야 주시면 감사하죠.”

다식을 더 준다는 소리에 임승훈은 얼른 손을 내밀며 반색했다.

“아니, 피디님.”

임승훈의 옆에 있던 스태프는 다시 한번 눈치를 주며 그를 제지했다.

“에이. 괜찮아요. 이거 한번 먹어봐요. 다른 참가자들한테도 다 주시네요.”

하지만 이미 그리웠던 다식의 맛을 본 임승훈은 그런 스태프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한국 최장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이 각 지역의 특산물을 가져와 MC에게 주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예시까지 들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작진과 아는 사이로 보이는 장 이장을 경계 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것도 잠시. 인자한 얼굴로 간식을 권하는 장 이장과 그 모습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한 참가자들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다식을 건네받았다.

“오···!”

“뭐지? 나 방금 뭐 먹은 거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식을 까먹던 참가자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머.”

임승훈을 말리던 스태프까지 다식을 먹은 후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감탄했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간식을 좋아하는 모습에 긴장을 완전히 푼 장 이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깨톡!

“으어헉!”

또다시 우렁차게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에 장 이장은 조건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고는 헐레벌떡 다식을 나눠주느라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허둥지둥 꺼냈다. 아니, 꺼내려 했다.

“아이고. 이게 또 와이라노···.”

미화리에 있는 모든 반짝이는 다 쏟아 부은듯한 자켓과는 달리 바지는 장 이장이 애용하는 깔끔한 검정 바지였다. 주머니가 깊어 많은 걸 보관할 수 있을뿐더러, 스판끼가 있어 움직일 때 이것처럼 편한 바지가 없었다.

이 바지를 여러 사람한테 홍보도 하고, 집에도 똑같은 바지를 여러 개 구비해 둘 만큼 애정하는 바지였지만, 지금 만큼은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평소에는 깊다고 좋아했던 주머니가 이렇게 자신을 곤란하게 할 줄이야. 주머니의 꺾어진 부분에 꽉 낀 건지 우렁찬 알림음을 울리는 핸드폰은 호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늙으면 나가 죽어야지.”

어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장 이장은 어디선가 들었던,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때였다.

“에이.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자. 심호흡하시고. 침착하게.”

장 이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이 있던 참가자 한 명이 두 손을 들어 장 이장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까 전 카메라 앞에서 이 경연을 위해 쌍꺼풀 수술까지 했다는 사람이었다.

“많이 긴장하셨어요? 저도 많이 긴장했어요.”

이 경연에 목숨을 걸었다며 뚝딱거리던 청년도 합세하며 말했다. 긴장했냐고 묻는 어투가 로봇 같았다.

“...”

갑작스러운 두 청년의 관심에 장 이장은 당황하던 걸 멈추고 눈만 껌뻑거렸다.

이것이 바로 임자가 말하던 ‘사람은 일단 맥이라’인 것인가. 분명 메시지 알림음이 울리는 상황은 아까와 같았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역시···. 마누라 말은 듣는 게 최고네···.”

장 이장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려는 청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누라 최고’라고.

**

“하하! 그러셨군요!”

이 경연을 위해 쌍꺼풀 수술까지 마다하지 않은 참가자, 홍경우는 카메라를 연신 흘낏거리며 앞에 앉은 어르신의 말에 동조했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저기 피디님이랑 아는 사이이신 거 같은데···.”

사실 홍경우는 처음 입구로 들어오는 장 이장의 모습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화려한 자켓과 달리 움츠러든 어깨와 구석으로 피하듯 도망치는 모습은 신경을 머지않아 이곳에서 볼 수 없을 거라 쉽게 예상이 되었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아예 경쟁 상대로조차 생각하지 않았었다. 피디가 헐레벌떡 대기실을 나가려는 장 이장을 아는 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아. 그건 말이제···. 우리 마을에 촬영한다고 며칠 묵어서 그때 알았제.”

장 이장은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 평화를 되찾아준 홍경우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촬영···? 마을? 설마 방송이요?”

촬영이라니.

설마 앞에 있는 어르신의 정체가 사실은 자신이 모르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일까? 홍경우가 혹시라도 자신이 실례되는 짓을 하지 않았는지 복기할 때였다.

“아아! 어디서 뵀었나 했더니! 거기서 봤었네요! ‘멧돼지와 함께 춤을!’ 맞죠?”

간발의 차이로 장 이장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홍경우의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듣던 양재성이 재빨리 핸드폰으로 검색하더니 불쑥,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멧···. 뭐?”

이 경연에 목숨을 걸었다는 양재성이 던진 정보를 들은 홍경우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귀도 후비는 게 잘못 들어도 한참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영상 봤나? 근데 그게 나인 줄은 잘 모를 것인데?”

장 이장이 어떻게 알았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멧돼지와 함께 춤을 췄다는 말인가? 홍경우는 순간 자신을 속이기 위한 제작진들의 고도의 몰래카메라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1차 통과도 못 한 지원자에게 몰래카메라까지 할 한가한 제작진은 없을 터였다. 그럼 멧돼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는 것이 진짜라는 건데···.

역시. 피디와 친분이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 홍경우는 어느새 어르신 옆에 붙어 앉은 양재성을 힐끗 째려보며 자리를 옮겼다.

‘방송은 이슈! 이슈 메이커가 방송 분량을 차지하는 법!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이슈 소용돌이 한가운데 몸을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방송에서 살아남을 결심을 하며.

**

장 이장은 모르는 홍경우와 양재성의 치열한 신경전도 잠시.

“어흑. 그래서 제가···. 흡.”

“아이고. 고생 많이 했네. 많이 힘들었제?”

“힘들, 힘들!! 으허허헝!”

“뚝 해라! 뭔 머스마가 이렇게 눈물이 많노. 마.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울었으면 고추 떼간다 할끼다. 그치라.”

대기실 안은 때아닌 위로의 장이 되어있었다.

‘계속해서 찍어주세요. 놓치지 말고.’

‘옙!’

장 이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참가자는 홍경우와 양재성 2명에서 6명이 추가되어 8명이 되어있었다. 장 이장을 포함하여 도합 아홉. 총 10명의 참가자가 있던 대기실에 1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장 이장의 옆에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한 명이 오디션장으로 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9명 모두 장 이장의 옆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 이 위로의 장에 참여 하고 있을 터였다.

“크흡. 저는 노래 부르고 와서 좀 울어도 괜찮습니다!”

뚝 그치라는 장 이장의 말에 훌쩍거리던 홍경우는 찔끔 흐르던 눈물을 닦다 말고 자신의 눈물에 대해 변호했다.

“그래. 그래. 울어라. 맘껏 울어라.”

장 이장은 그런 홍경우의 등을 손을 뻗어 어색하게 두드려 주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양재성과 함께 그가 핸드폰으로 재생시킨 영상을 추억에 잠겨 보고 있을 때.

‘이걸, 아니. 이 복덩이라는 멧돼지가 진짜라고요? CG가 아니고?’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나 싶더니 한 덩치를 자랑하는 홍경우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하모. 우리 복덩이가 내를 방송에 타게 했다 아이가. 아니지. 순서로 따지면 우리 복덩이 주인이 한울이니까 한울이가 내를 방송을 타게 한 거지!’

CG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문맥상 가짜가 아니냐는 의미를 파악한 장 이장은 고개를 저으며 ‘진짜’라고 강조했다.

정말 그뿐이었다.

진짜 멧돼지와 함께 밭을 갈았으며, 그로 인해 방송에 출연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멧돼지가···. 방송을 출연하게···.’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방송 출연 계기를 듣게 된 홍경우가 충격을 받았는지, 혼잣말을 하고부터였다.

‘...?’

누구라도 큰 덩치가 머리 위에서 ‘누구는 멧돼지가 방송에 출연도 시켜주는데···. 나는, 나는···.’이라며 자기비하를 하기 시작하면 불안하기 마련.

‘음···. 어르신, 자리를 좀 옮길까요?’

양재성은 그런 홍경우의 모습에 슬그머니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 옮기기를 제안했지만, 장 이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다. 야가 뭔 일이 있나 보네. 내를 도와줬으니, 내도 함 들어줘야지.’

자신을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도울 차례라고 장 이장은 생각했었다.

‘뭐 때문에 그라노? 정신 좀 차리고 얘기를 좀 해봐라.’

흔들리는 눈동자로 ‘어르신은 멧돼지가 방송을 출연시켜줬는데···. 나는 왜?’ 따위를 중얼거리는 홍경우를 자리에 앉히며 물었더랬다.

‘어르신, 제가 말입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홍경우는 무언갈 내려놓은 사람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는 나빠서 공부는 못하는데, 노래는 곧잘 불렀거든요. 주변에서 가수 한번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금방 뜰 거라고. 근데 제가 지금 트로트 가수 생활한 지도 16년이 넘습니다. TV 출연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요.’

딱한 사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드문 사연은 아니었다.

“제가, 그래서, 지금, 막노동을, 하고, 와서···.”

홍경우를 필두로 한 명씩 와서 자신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지금 말하고 있는 참가자 또한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새벽에는 막노동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느라 24시간이 모자란 사람이었으니.

“그래. 괜찮다. 다 괜찮아 질끼다.”

왜 하나같이 다 자신에게 와 사연들을 줄줄 내뱉는지는 모르겠지만, 장 이장은 최선을 다해 한 명 한 명에게 위로를 건넸다.

“...크흡. 진짜일까요?”

다 큰 사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지만, 얼마나 가슴속에 쌓인 것이 많으면 이러나 싶기도 했다.

“진짜지. 자자. 이거 하나 더 먹고, 힘내라. 니 합격도 했다면서 화면에 눈 팅팅 부어서 나올끼가?”

“히익! 그건 안 되죠! 감사합니다!”

장 이장이 준 다식을 손에 쥔 참가자는 그건 안될 말이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벌떡 일어나 얼음찜질이라도 해야겠다며 대기실 밖으로 사라졌다.

“뭔···. 노래도 아직 하나도 못 불렀는데 진이 이리 빠지나.”

방금 대기실을 빠져나간 참가자가 마지막이었다. 16년을 무명 가수로 생활하고 있는 홍경우부터, 무대라면 관객이 한 명이 있어도 어디든 갔다는 참가자, 병상에 있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기 위해 참가했다는 참가자,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집을 박차고 나와 10년째 돌아가지 못한다는 참가자 등등.

짧은 시간 동안 9명의 사연을 들은 장 이장은 눈을 감고 등받이 뒤로 고개를 젖히며 중얼거렸다.

“안 힘든 삶이 어딨노. 맞다. 다 각자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제.”

부디 저 젊은 청년들이 짊어진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기 전에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길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시간이 지나면, 그럴 때도 있었지 하겠지마는···. 그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그러니, 그 힘을 좀 더 빨리 가질 수 있기를. 장 이장은 눈을 감은 김에 양손을 마주 잡고 이름 모를 신에게 빌었다.

그때였다.

“저기···.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어르신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오디션을 보고 돌아온 뒤, 끊임없이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깨를 토닥이는 장 이장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홍경우가 조심히 다가서더니 물었다.

어르신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