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6화 (116/163)

함께, 또 같이 (2)

장 이장은 상체를 쭉 뺀 채 자신을 도와준다고 하는 양재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폭포 얘기를 할 때만 해도 시큰둥하더니 갑자기 저러는게 영문을 모르겠다.

“오야. 고맙다.”

그래도 도와준다면서 응원하니 장 이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실력! 오로지 실력만이 중요합니다!”

양재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인사하는 장 이장을 보며 결연한 투로 말했다.

“실력···?”

“네! 제가 너튜브로 본 바에 의하면, 어르신의 실력은 최고입니다! 아마 최종 라운드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장 이장의 너튜브 채널 영상을 보며 실력을 파악한 양재성은 자신했다. 영상대로만 한다면 오늘 오디션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사실 영상은 조작할 수 있었다. 에코를 더 넣어 성량을 원래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 수도 있고, 톤도 매만질 수 있다. 그렇기에 너튜브에서 잘 나가는 보컬치고 TV와 같은 영상매체에 나와 유명해진 사람들이 몇 없다.

TV는 있는 수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송출함으로.

“그, 글나?”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 이장의 영상은 달랐다.

그저 핸드폰 기본 카메라로 찍어 올린 것 같은 초창기 영상부터 전문가가 붙은 최근의 영상까지 같은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목소리와 노래. 최근 들어 전문적인 마이크를 썼는지, 보다 선명하게 들리긴 했지만, 본질적인 건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까, 장 이장의 노래 실력은 아마 영상과 같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자자.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심호흡 이렇게. 후후하!”

“후, 후, 하?”

“그렇죠! 다시 한번 후후하!”

“후후하!”

장 이장은 점점 흰자위가 더 많이 보이는 눈을 한 양재성을 따라 호흡을 내뱉었다. 따라 하지 않으면 꿈에서 볼까 무서운 얼굴이었다.

“좋았어요!”

반면 양재성은 자신을 따라 심호흡을 하며 점점 안정되는 장 이장의 호흡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내밀었다.

“이대로, 합격까지 가는 겁니다! 아자아자!”

예의 바른 청년의 이미지와 더불어 어르신과 친해진 후 떨어질 콩고물을 기대하며 양재성은 눈을 반짝이며 두 팔을 번쩍 들고 힘차게 소리 질렀다.

아주 힘찬 그 목소리에 장 이장 또한 어색하게 두 팔을 들며 외쳤다.

“아자아자···!”

**

양재성의 등쌀에 못 이겨 ‘아자아자!’를 10번 정도 했을까.

“참가자 1207번님, 여기서 잠시 대기 하실게요.”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지옥의 ‘아자아자!’에서 벗어난 장 이장은 대기실에서 나와 오디션장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예? 예.”

다이아몬드 모양의 빨간 쿠션이 덧대지어 있는 문은 육중해 보였다. 간혹 웅얼거리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장 이장의 심장은 쿵 하고 떨어졌다.

“후···. 괜찮다. 할 수 있다.”

이 나이 먹고 뭘 이렇게 떠는지. 쓸데없이 떠는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라 장 이장은 심호흡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떨어지면 안 된다. 아까 그 치 눈이 이상한 거 못 봤나?”

장 이장은 자신에게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니 대기실을 벗어나기 전까지 응원한답시고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 응원을 빙자한 외침을 했던 양재성의 희번뜩했던 눈동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흐익!”

꿈에서라도 볼까 무서운 눈동자였다.

“안된다. 그건 안돼!”

꿈에서 꽃분이가 나오면 모를까. 오늘 처음 본 청년이 나온다면 정말이지, 끔찍할 것 같았다. 긴장을 떨쳐내기 위해 몸을 한번 부르르 떤 장 이장은 두 손으로 제 뺨을 착착 때렸다.

“그래! 할 수 있다! 아. 그래! 그게 있었지!”

뺨을 때렸더니 볼이 얼얼해지며 신경이 분산되더니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주었던 홍경우가 핸드폰을 다시 건네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르신, 이따 오디션장 들어가기 전에 꼭 한번 보세요.’

진동으로 바꾸면서 하도 메시지 알림이 떠 내용을 살짝 보게 됐다는 홍경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낯선 환경과 내가 자격이 될까에 대한 생각으로 둘러싸여 미처 메시지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커다란 카메라가 자신을 찍어대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크흠. 어디 보자···. 뭔 놈의 메시지가 이렇게 많노! 그러니까 그렇게 울려댔지!”

핸드폰을 조작해 깨톡 창으로 들어가니 읽지 않은 메시지가 무려 127개였다. 거기다 모든 메시지의 출처는 바로 마을 단톡방.

마을 사람들이 채 50명이 되지 않는데···. 이 정도면 한 사람당 못해도 두 마디씩은 했다는 소리였다.

“뭘 그렇게 할 말들이 많아가···. 어디 보자···.”

말도 안 되는 메시지 수에 ‘내도 없는데 도대체 뭔 얘기가 그렇게 재밌길래 이리 많노···.’라며 툴툴거리던 장 이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제일 첫 번째 메시지를 조용히 소리 내 읽다 말고 목이 메는지 ‘으음’ 했다.

첫 번째 메시지의 주인공은 한울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사진)

아마도 장 이장을 대기실로 들여보내 준 뒤 찍은 사진인 듯, 사진에는 꽃분이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건물을 바라보며 선 등은, 살짝 굽어 있었다.

【장 이장! 화이팅! 잘해라! 통과 못 하면 니는 평생 놀림거리 될 줄 알아라! 니 마누라가 저렇게 기도도 하는데 붙어야제! 암!】

장 이장은 자신과 동갑인 창식의 메시지에 다시 한번 사진을 보았다. 과연 완전 정면이 아닌, 살짝 틀어서 찍은 사진에는 꽃분이가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창식의 말대로 기도를 하는 것이리라. 여태 자신이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해왔듯이.

“크흡.”

자신의 아내인 꽃분이만 생각하면 불쑥 온몸의 수분이 눈으로 몰렸다.

다른 생각. 다른 생각.

잠시 후면 저 육중한 문을 열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울음 따위는 사치였다. 목이 메 노래를 잘못 불렀다간, TV에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벌써 찡해지는 코끝을 혼내듯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한번 쓴 장 이장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가슴속에 새긴 뒤,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장순택.】

【오면 거하게 마시자! 내가 특별히 아껴둔 담금주 딴다!】

【우리 장 이장! 가서 무대 뿌사뿌라!】

“뿌시긴 뭘 뿌시노.”

무대를 부쉈다가 잡혀갈 일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메시지에 장 이장은 픽 웃었다.

어느새 입꼬리를 올린 장 이장은 메시지를 쭉쭉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응원으로 주류를 이루던 메시지는 1등의 상금은 얼마인지. 2등은 왜 상금이 없는지. 잔치를 열려면 1등을 해야겠다는 소리가 주를 이뤘다.

“참···. 아직 뭐 시작도 안 했는데 다들 김칫국부터 마시노.”

아직 첫 오디션도 전인데 다들 상금부터 얘기하는 게 참. 어디 성격 급한 걸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 우리 마을이 1등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메시지를 읽고 있자니 육중한 문을 볼 때마다 뛰던 가슴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 빨간 불 들어온 카메라, 저에요! 나머지는 호박!】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토끼 이모티콘과 함께 손녀가 보낸 메시지를 읽은 장순택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다 호박이다.!”

**

그 시각. 문 너머.

“요즘엔 다들 노래를 잘하네.”

앞선 참가자에게 합격을 준 심사위원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계속해서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피디님?”

심사위원은 총 3명.

이번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메인 피디인 이박복과 트로트계의 잔뼈가 굵은 가수 2명이었다.

“우리 애들이 그만큼 잘 거른 것도 있죠. 상금을 좀 높게 책정했더니 지원자들이 좀 많았어야죠. 아무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힘내 봅시다.”

이 피디는 이번 경연 프로그램을 위해 참가자를 3가지 방법으로 모집했다.

첫 번째는 홈페이지 공고를 통한 공개모집.

두 번째는 트로트 회사로부터의 추천.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스태프들의 노동.

SNS와 너튜브, 방송 등을 이 잡듯이 뒤져 프로그램에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추려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이 오디션이었다. 공개모집을 통해 받은 음성파일로 거른 지원자들과 회사로부터 추천받은 예비 가수들. 그리고 벌써 팬덤까지 있는 유명 방송인들까지. 고르고 고른 만큼 실력이 모두 평균 이상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백미는 악마의 편집을 통한 반전과 드라마라고 하지만, 이 피디는 그 무엇보다 중요 한 게 바로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이 있어야, 편집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도 극적이 되는 거지. 실력도 없는 사람을 아무리 만들라고 해봐야, 힘만 들 뿐.

그런 면에서 이번 참가자는 이 피디가 직접 연락해 제의한 만큼 기대하고 있는 참가자 중 하나였다.

“1207 참가자님, 들어오세요.”

이 피디가 눈짓하자, 참가자들의 순서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던 스태프가 무전기에 대고 다음 참가자를 호출했다.

-끼익.

무대 왼쪽에 위치한 육중한 문이 열리며 초로의 신사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저기 표시된 곳에 서시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피디는 어색한지 들어오자마자 두리번거리는 장 이장에게 핀 조명이 비추고 있는 무대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안내했다.

“예예.”

이 피디는 자신이 추천한 참가자의 등장에 활짝 웃었지만, 불행하게도 장 이장은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무대를 밝히는 핀 조명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 마이크 쓰시면 됩니다.”

장 이장이 무대 중앙에 서자,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스태프가 까만색 무선 마이크를 들고 와 넘겨주었다.

“아이고. 고마워요.”

-툭툭.

장 이장은 선이 없다는 걸 제외하고는 마을회관에 있는 마이크와 비슷하게 생긴 마이크를 잡아 들고는 습관처럼 마이크 헤드를 손으로 툭툭치고는 말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이런 까만 마이크는 테스트를 해주는 것이 국룰이다.

“풉.”

앞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듯했지만, 장 이장에게는 상관없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핀 조명은 매우 밝았다.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밝은 만큼 따뜻한 핀 조명은 마을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로도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한 긴장을 떨쳐내게 해주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굳었던 어깨가 풀렸다.

마이크가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한 장 이장은 가만히 자켓을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몸을 똑바로 하고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화리 산골 마을에서 온 6학년 7반, 장순택이라고 합니다.”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올리며 자기소개를 마친 장 이장은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나는 불빛을 찾아냈다.

눈에 뵈는 것이 없으면 용감해지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핀 조명과 빨간 불빛 덕분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 장 이장은 그 어느 때 보다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할 노래는, ‘어느 한 신사의 이야기’입니다. 반주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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