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7화 (117/163)

함께, 또 같이 (3)

-주이소. 주이소. 주이소~

장 이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스피커에서 송출되어 오디션장 안을 휩쓸었다.

“오메. 이 뭐꼬?”

장 이장은 메아리처럼 돌아온 목소리에 턱을 집어넣고는 마이크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것 참. 생긴 건 우리 마을회관 마이크랑 똑같이 생겨서 음량이 어마어마하네.

여느 시골이 그렇듯. 마을회관 방송용 마이크나 스피커는 그렇게 좋지 않다. 애초에 좋은 모델을 쓰지도 않거니와, 대부분 오랫동안 써와 노래방 마이크보다 품질이 좋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평소 방송을 할 때처럼 말했건만. 조금 목소리를 낮춰야 하나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곳의 마이크와 스피커는 짱짱했다.

“저기, 볼륨 좀 낮추고. 에코 좀 빼줘.”

장 이장이 마이크를 보며 고민에 빠짐과 동시에, 세 명의 심사위원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 피디가 옆에 있는 스태프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나머지 두 심사위원은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어택당한 귀를 잡고 눈썹을 한데 모은 상태였다.

“넵!”

마찬가지로 너무 큰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이 피디의 명령에 재빨리 마이크 볼륨을 조절했다.

“어르신, 한 번 더 아까처럼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피디는 마이크 조절 확인 후, 멀뚱히 무대에 서서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던 장 이장에게 말했다.

"아까, 전처럼···?"

"네. 어르신."

이 PD의 말에 장 이장은 아까와는 달리 마이크를 조심스럽게 들고 말했다.

"내는 미화리 산골 마을에서 온 장승택이라 합니다."

조금 전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였다.

"오케이. 좋습니다. 어르신, 볼륨 조절해 놨으니까 아까처럼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조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이즈 없이 깔끔한 소리를 확인한 이 PD가 스태프에게 이 선을 계속 유지하라는 사인을 주며 말했다.

"참. 어르신, 노래 부르기에 앞서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참석하셨는지 간단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PD의 질문은 모든 참가자에게 공통으로 물은 질문이었다.

실력이 기본이라고는 했지만, 스토리는 매력이 될 수 있다.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기가 막힌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면, 대중들에게 지지받기가 아주 쉬워진다. 이미 그런 예시들도 아주 많은 만큼,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보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저마다 가진 스토리를 알 필요성이 있었다.

특히 지금 같은 오디션 장소는 참가자의 시작점과 같아 이때 듣는 것만큼 진솔한 스토리는 없다. 방송은 하면 할수록 늘게 되는 거니까.

"어떻게 참석했느냐고요? 내 아는 PD가 참석하라고 해서 참석했지요?"

이 PD의 말에 장 이장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건 왜 물어보냐는 어투였다.

"...네."

이 PD는 예상치 못한 장 이장의 답변에 메인 카메라를 흘끗 보았다. 카메라 뒤로 촬영 감독의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헬프.

아무래도 미화리 산골 마을을 촬영하며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장 이장에게 모진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이 PD는 옆에 있는 두 트로트 가수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했다간, 장 이장의 첫 시작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메인 PD인 자신에게 더 관심이 쏠리게 생겼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 제목으로 뜨겠지.

'희대의 PD 저격수 등장!'

'산전수전 다 겪은 PD도 이 사람 앞에서는 당황해한다?!'

오디션 특성상 참가자들에게 가야 할 관심이 PD에게로 가게 된다면 그것만큼 아찔 한 게 없을 터였다.

"음···. 그럼 제가 질문드릴게요. 연세가 꽤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경연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부분들이 있을 텐데, 경연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 피디의 헬프 요청에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심사위원이 펜을 빙빙 돌리며 질문했다.

여자의 질문은 적절했다. 아무리 우승은 혼자 한다고 하지만, 경연은 달랐다. 중간중간 팀 미션도 있을뿐더러, 팀 미션을 위한 합숙도 불사하는 것이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의 풍조였다.

그뿐인가. 녹화 시간 또한 살인적이었다. 한 두 시간 녹화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녹화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피디 또한 이 점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60대 할아버지가 아닌 미화리 산골 마을의 이장이었다. 장 이장은 여자의 질문에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체력···. 은 걱정 안 해도 됩니더."

"새벽까지 촬영 할 때도 있는데요?"

정말로 체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 이장의 말에 여자 심사위원이 다시 반문했지만, 장 이장은 단호했다.

"예.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체력은 걱정 마이소."

정말이지 장 이장은 체력 면에서 자신이 있었다. 산골 마을 이장을 맡게 된 이유도 바로 동네에서 가장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장은 마을을 위해 이리저리 뛰며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주변에서 하나같이 체력이 최고인 장 이장을 추천했더랬다.

"...2시간이요? 어쩌다가···."

예상하지도 못한 수면시간에 여자 심사위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반문했다.

2시간이라니. 자신도 행사 시즌 일 때는 잠도 줄여가며 이동을 한다지만, 그래도 차에서든 어디에서든 최대한 잠을 많이 자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체력은 급격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수에게 생명인 목소리 또한 쉽게 가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란 듯한 심사위원의 목소리에 빙긋 웃은 장 이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먹고 살기 바빠가···. 뭐, 그리 됐심더."

"혹시 지금도요?"

이번에는 잠자코 있던 남자가 마이크를 켜고 물었다. 장 이장은 잠자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요즘에는 서너 시간 정도? 2시간은 젊을 때 얘기지예."

"아아···."

서너 시간이라고 해봤자, 적절한 수면시간에서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2시간이라는 충격적인 시간을 먼저 들었던 심사위원들은 그래도 그게 어디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왜 그렇게 잠을 적게 자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인간에게는 적정 수면시간이라는 게 있었다. 성인 기준으로 평균 8시간 정도.

수면을 통해 사람은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림과 동시에 다음 날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시키는데, 성인 기준으로 8시간은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너무 긴 수면시간도 문제가 있지만, 극도로 짧은 수면시간은 무엇보다 건강에 좋지 않았다.

"젊을 때 살기 바빠가 그랬더니 습관이 돼서···."

뭐가 그렇게 먹고 살기 바빴는지. 장 이장의 젊은 시절은 온통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고. 우리는 망했네.'

흔하다면 흔한 일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아버지는 친척의 부탁에 보증을 섰고, 믿었던 친척은 그대로 잠적.

자연스럽게 친척이 진 어마어마한 빚은 아버지 앞으로 옮겨졌다.

'미안타. 순택아.'

빚을 갚기 위해 아버지는 잠을 줄여가며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지만, 빚을 채 갚기도 전에 과로로 인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걱정 마이소. 제가 갚을게예.'

그때 장 이장의 나이 17살. 깡시골에서 땅만 파먹고 산 탓에 상속 포기 같은 건 몰랐던 어린 시절의 장순택은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잠을 줄여가며 빚을 갚았다.

"...공장도 다니고, 막노동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했지. 요즘 말로 하면 쓰리 잡을 뛰었다고 할 수 있지. 흠흠."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며 10대의 일부분과 20대 전부를 갈아 넣고서야 아버지를 잡아먹고, 남은 가족들까지 옭아매던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사실 내한테 그때는 암흑기, 그 자체였거든예? 근데 내는 그때를 후회를 안 해요. 우리 꽃분이를 그때 만났거든. 운명처럼."

꽃분이와는 공장에서 만났었더랬다.

고막이 윙윙거릴 만큼 큰 기계 소리가 들리던 공장. 윙윙 돌아가는 기계에서 나온 제품을 썩썩 잘라 옆에 있는 통에 넣는 작업은, 언뜻 보면 쉬워 보였지만, 체력을 굉장히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제품들이 가득 찬 통은 웬만한 사람들이 밀어봤자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었다.

'이것도 드실래예?'

배불리 먹는 것도 사치였던 시절. 쉬는 시간, 공장에서 주는 간식을 허겁지겁 먹던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자신 몫의 간식까지 내줬던 사람이 바로 꽃분이였다.

'남자가 그렇게 말라서 어디 힘이나 씁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 쓰러지는 거 보기 싫어서 주는 거니까 오해 마이소.‘

그러니 오해 말라고 했지만, 장 이장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혼인 신고부터 했지!”

외모도 외모였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꽃분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장 이장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꼬셨다. 다행히 빚을 거의 다 갚았을 시기라 혼인 신고 후 작게나마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오···.”

이 피디는 장 이장의 불우했던 과거와 운명 같은 러브 스토리에 감탄했다.

몇십 년 전에는 다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라 요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들이 많았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장 이장의 스토리는 영화 같았다.

“그럼, 여태 가수 할 생각은 하지 않으신 건가요?”

결혼식을 넘어,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장 이장의 스토리에, 옆에 있던 여자 심사위원이 질문했다.

“하모. 애 키우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예. 계속 일만 했지.”

그 질문에 장 이장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노래를 좋아하였고, 언젠가 자신의 노래도 라디오에 울려 퍼질 날을 꿈꾸긴 했었지만, 꿈은 꿈일 뿐.

무턱대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꿈을 좇기엔, 장 이장의 어깨에는 무거운 현실이 항상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럼 노래 들어볼게요.”

현실에 충실했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장 이장의 모습에 이 피디는 질문을 멈추고, 옆에 있는 제작진들에게 손짓했다.

**

몇 달 뒤.

“드디어 오늘이가!”

미화리 산골 마을 마을회관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오래도 걸렸다! 우리 마을 촬영했을 때는 빨리 테레비에 나오더구먼···. 장 이장 긴장하는 거 보기 억수로 힘드네.”

“그러게 말이다! 내는 장순택이 놀리려고 오늘만을 기다렸다! 하하하!”

마을회관 안에는 마을 사람들로 가득했다. 낡디 낡은 TV를 치우고 빔프로젝터를 설치한 스크린 앞에는 네모난 상이 펴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찼다.

“시끄럽다! 내 긴장하는 건 와 볼라꼬? 아니, 애초에 왜 전부 여 와서 같이 볼라는건데?”

스크린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벌써부터 술을 기울이며 껄껄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한 장 이장이 발끈했지만, 아무도 그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되려 한쪽 손으로 옆자리를 팡팡 두들기며 장 이장을 불렀다.

“자,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얼른 일로 온나! 같이 봐야지 재밌제! 하하하!”

“뭐라노···!”

자신을 놀리는데 진심인 친구의 행동에 장 이장이 씩씩대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전 국민 트로트 오디션!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화려한 이펙트가 스크린 가득 퍼지며, 장 이장이 출연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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