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20화 (120/163)

모이는 사람들(1)

떠들썩했던 마을 회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참여하고 싶다 컁!”

어깨에 앉은 노을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말했다.

“그리고 이용권을 내가 받는 거다 컁!”

노을이 말하는 이용권은 바로 강 할머니가 장 이장님의 홍보를 위해 꽃분이 할머니와 같이 내놓은 혜택이었다.

‘제일 많은 사람한테 문자 보낸 사람한테는! 사랑방 무제한 이용권 준다! 기한은 6개월!’

혜택은 바로 날이 가면 갈수록 구하기도, 먹기도 힘들어지는 사랑방 전통 과자 6개월 자유이용권이었다.

물론 해당인만 사용할 수 있고, 하루에 메뉴 3개까지밖에 안 되는 제한이 있었지만,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경쟁이 붙은 요즘 이것만큼 또 매력적인 혜택은 없었다.

“아쉬워서 어떡하냐 노을아?”

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가져오는 한과 세트를 찹쌀, 그리고 포동과 함께 3조각씩 나눠 먹는 것도 좋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라며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내 볼에 턱 놓고 동의를 요구하는 노을의 머리를 슬슬 긁어 주며 아쉽지 않냐고 물었다.

“괜찮다! 컁!”

하지만 노을은 예상과 달리 괜찮다며 가슴 털을 한껏 부풀렸다.

“나는 위대하고 마음이 넓은 노을이다! 컁!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한울한테만 특별히 말해주겠다!”

“응? 비밀? 그게 뭔데?”

여태껏 비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던 노을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노을의 쪽으로 기울였다.

“히힛! 그건 말이다!”

궁금함을 감추지 않는 내 모습에 노을이 즐거운 듯 키득거릴 때였다.

“꽈악! 아쉬운 듯 먹어야 더 오래, 많이 먹을 수 있다!”

내 머리 위에서 둥지를 틀고 있던 찹쌀이 벌떡 일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호, 호에?”

예상치 못한 찹쌀의 인터셉트에 노을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할 말을 빼앗긴 노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노을이 내 머리 위를 향해 고개를 들고 컁! 하고 외쳤다.

“컁! 찹쌀! 결투다!”

“꽈악?”

노을의 결투 신청에 찹쌀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노을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캬하항!”

노을은 내 어깨를 디딤판 삼아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꾸엑!”

고개를 갸웃거리던 찹쌀은 그 날렵한 몸짓을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고는 내 머리 위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호에? 컁! 한울!”

미처 추락할 줄 몰랐는지 노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읏차. 괜찮아 노을아.”

“꾸엑.”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인해 찹쌀의 추락을 예상하던 나는 익숙하게 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찹쌀을 받아 안았다.

“킁. 한울, 그럼 나는 가겠다. 내일 보자.”

일련의 상황을 옆에서 보던 포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졌더니 콧김을 내뿜으며 산으로 몸을 틀었다.

“그래. 잘자 포동아.”

“컁! 잘 자라!”

“꽈악! 좋은 꿈 꿔라!”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

**

“뭐 재밌는 거 없나?”

넓다 못해, 광활하다고 말해도 아무 이상 없을 정도의 거실 안. 마찬가지로 침대라 해도 무방한 크림색 패브릭 소파에 몸을 비스듬하게 뉜 여자가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특가!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오늘은 경기 남양주의···.

정말 오랜만의 쉬는 날이라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콕 처박혀 쉬려고 했건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좀이 쑤셔 죽을 것 같았다.

이게 바로 직업병이라고 하는 것일까?

“뭐···. 음악 프로그램이라도 볼까?”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채널의 반은 홈쇼핑 아니면 보험 광고, 혹은 정말 오래된 대하 드라마 따위가 나와 흥미를 잃은 여자는 반쯤 포기한 듯, 본업을 위한 스터디를 결정하고 채널을 다시 돌릴 때였다.

[오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TV 속에서 어떤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을 뱉어냈다.

“...뭐지?”

꿀꺽.

너무 맛있게 입안에 든 무언가를 열심히 씹어대는 남자의 모습에 여자는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직업을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던 생각은 안드로이드로 날려 보낸 지 오래였다.

-지잉

꼴깍거리며 TV 안에 남자가 먹는 것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할 때였다. 저 멀리 던져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더니,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어.”

상체를 대충 쭉 뻗어 전화를 받은 여자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체 대답했다.

[아라야. 전화를 받을 때는, 최소한 인사는 해 주지 않겠니?]

여자의 정체는 박준혁이 좋아해 마다하지 않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자 솔로 가수, 아라였다.

“어. 오빠. 안녕.”

수화기 너머로 전화 예절을 가르치는 매니저에게 아라는 그가 바라는 인사를 해주었다.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된 채였다.

[...뭐야? 너 지금 뭐 먹고 있는 거 아니지??]

영혼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라의 성의 없는 대꾸에 매니저가 합리적인 추론을 했다.

“아니?”

오늘 하루 쉬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아라는 활동 중인 상태였다. 가수라면, 특히나 여자 가수라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식단관리를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해야 하는 시기.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남자를 보며 ‘먹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지,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않은 아라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가 아닌데···. 그럼 지금 뭐 하고 있는데?]

하지만 현재 매니저는 아라가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있는 사람 중 하나. 당당하기 그지없는 아라의 목소리에도 의심을 놓지 않았다.

“쳇. 이래서 눈치 빠른 매니저는···. 그래도 아직 안 먹었어. 그냥 보고만 있어.”

아라는 귀신같이 자신이 음식에 넋을 놓을 때마다 잡아내는 매니저의 날카로움에 입술을 툭 하니 내밀었다.

[뭘 보고 있는데? 거기서 뭘 먹고 있던지 시키지 마! 절대 짠 건 안 된다! 배고프면 냉장고에 넣어놓은 도시락 먹어! 내일 새벽부터 촬영 있는데 지금 짠 거 먹으면 붓는다! 알지?]

“...”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유난이었다.

매니저의 말에 냉장고로 시선을 돌렸던 아라는 이내 다시 TV를 보았다. 냉장고에는 지긋지긋한 닭가슴살과 샐러드 도시락이 있었다. 아. 그리고 물도.

[...이번 활동 끝나면 내가 맛집 투어 시켜준다니까? 오빠 믿지?]

“허! 웃기고 있네!”

가만히 매니저의 잔소리를 듣던 아라는 ‘오빠 믿지’라는 말에 반항했다.

“저번 싱글 활동 때도, 지지난번 활동 때도! 데뷔한 직후에도 그 말 했었거든? 레퍼토리를 바꾸던지! 희망을 주질 말든지! 하나만 하시지?”

맛집 투어에 대해서는 굉장히 할 말이 많은 아라였기에, 방언 터지듯, 그간 쌓였던 울분들이 터져 나왔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 키가 168인데 몸무게가 50kg 미만인 게 말이 돼? 심지어 이걸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남들은 보면 치팅데이도 있던데!!”

[아니, 아라야. 그건 말이지···.]

아라의 분노를 예상하지 못했던 매니저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언에 당황해하며 달래보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뭐! 이번에도 회사랑 팬들 탓하기만 해봐! 가만 안 둬!”

회사를 대표해 매일 아라의 식단을 관리하며 잔소리하는 매니저와 달리, 아라의 팬들은 항상 마음대로 먹어도 그녀를 좋아해 주겠다는 말뿐이었다.

캬아악!

데뷔하자마자 인기를 얻고, 탑의 자리에 오른 아라는, 데뷔 후 쉬는 날에도 어딜 혼자 돌아다닌 적이 없던 아라는 마음대로 먹방조차 제재하는 매니저의 말에 성질이 머리끝까지 난 고양이처럼 굴었다. 어딜 가나 알아보는 탓에 스탭들이 없으면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생활을 이어간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만약 아라가 집순이가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집을 뛰쳐나가도 나갔을 기간이었다.

[...그, 아라야? 혹시 TV에서 뭐 먹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매니저가 말리던 걸 멈추고, 태도를 바꿨다. 그래. 사람이 조이기만 하면 뭐든 힘들 터였다. 조금 느슨하게 치팅데이 같은 날도 필요한 게 당연할 터. 매니저는 여태 아라를 조였던 날들을 반성하며 물었다.

자신의 분노에 단번에 태도를 바꾼 매니저의 질문에 분기탱천하여 삐뚤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아라는, 급속도로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게 뭐냐면···. 어? 이장님?”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천천히 남자가 먹고 있던 걸 알아내기 위해 집중하던 아라는,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을 보며 반색했다.

“우와! 오빠! 이장님이야! 이장님!”

[응? 뭐라고?]

화를 냈다가, 가라앉았다가, 이제는 갑자기 신이 나서 ‘이장님!’을 외쳐대는 아라의 감정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매니저가 다시 물었다.

“이장님이라고! 그그! 왜 우리 예능 찍으러 갔던 마을의 이장님!”

[어? 이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천천히 말해볼래?]

“아니, 그게! 내가 지금 TV를 보고 있는데! 여기에 이장님이 있어! 이장님이 뭐 나눠주신다! 어머! 저건가 봐!”

[응···?]

아라의 말에 따르면, 지금 아라가 보고 있는 TV에 예전에 1박 2일 동안 촬영한 예능의 촬영지인 산골 마을의 이장님이 출연했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한가?

[무슨 프로그램인데? 맛집? 근데 거기에 맛집이 있었나?]

“잠깐만 있어 봐.”

장 이장님의 모습을 발견한 아라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갈아끼고, 핸드폰을 들고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미화리 이장님’, ‘미화리 맛집’. 촬영지였던 마을 이름을 떠올리는 건 아주 쉬웠다. 가고 싶었지만, 스케줄 때문에 가지 못해 그때 촬영분을 몇 번이고 돌려봤었다.

깨끗했던 공기와 따스한 햇볕. 그리고 햇볕보다 더 따뜻했던 마을 사람들.

“찾았다!”

그리웠던 기억을 더듬으며 열정적으로 키워드를 집어넣던 아라는 몇 번의 검색 끝에 블러 처리되어있던 포장지와 비슷한 사진을 찾아냈다.

[뭔데?]

“사랑방! 미화리 산골 마을 카페 사랑방 한과야!”

‘미화리 카페 사랑방’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낸 아라는, 해당 키워드로 다시 검색해 미화리 카페를 찾아내고, 예약 링크까지 일사천리로 찾아내었다.

“아아악!”

사랑방 예약 링크로 들어간 아라는 돌연 비명을 지르더니 핸드폰을 두 손에 꼭 쥔 채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왜 그래 아라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담당 가수의 비명에 매니저는 놀란 가슴을 붙잡으며 아라의 안부를 물었지만, 그녀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으으으. 어떻게, 어떻게 예약이 벌써 다 끝났지?”

그리고 왜 난 사랑방이 생긴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지?

검색을 통해 예약 방문만 가능하고, 벌써 한 달 치 스케줄이 예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라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예약 사이트에는 먹음직스러운 메뉴 사진과 설명까지 상세하게 올려져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이건 그때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던 차원이 다른 약과고···. 이건···.”

고개를 발딱 들어 핸드폰 화면에 띄워진 약과 사진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며 이전 기억을 더듬던 아라는, 아직까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오빠, 벌써 예약이 다 되어있고, 아주 먼 곳에 있는데,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걸 최대한 빨리 먹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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