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사람들(2)
“어? 그게 무슨 질문이니, 아라야?”
‘예약이 다 되어있고, 아주 먼 곳에 있는데,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걸 최대한 빨리 먹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라니.
아라의 매니저는 담당 아티스트의 질문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 그대로지? 진짜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예약제라 먹을 수가 없어! 배달도 안 된대! 직접 가서 기다려도 예약이 안 되면 살 수도 없대! 어떻게 먹을 방법이 없을까?]
“어? 어···. 그게···.”
도대체 어떤 걸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음식에 대한 아라의 열망은 진심인 것 같았다. 핸드폰을 타고 그 열망이 흘러나오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괜찮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아라 탓에 매니저는 우선 아무 말이다 내뱉었다.
“그 가게 주인이 되면 되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대답이지만,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이것처럼 더 명쾌한 해답은 없을 터. 하지만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 것 같아 다음 옵션을 생각할 때였다.
[오. 그거 좋은 방법인데? 아 근데, 이번에는 안돼. 벌써 주인이 있거든.]
“좋은···. 방법이라고? 주인은 또 누군데?”
아무렇게나 뱉은 말을 아라가 이처럼 진지하게 받아드릴 줄 예상하지 못했던 매니저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담당 아티스트를 이렇게까지 흔드는 음식의 주인에 대한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산골 마을 이장님이랑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아아. 왜 거기 신비농장 사장님!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분이 주인인 것 같아. 사랑방의.]
미화리 산골 마을 카페 게시글들을 조합한 결과 주인은 신비농장 주 같다는 아라의 말에 매니저는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후. 그 사람이라면···. 돈으로 산다고 해도 안 팔 것 같은데? 이미 돈 많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제가 알기로 신비 농장의 농장주라는 남자가 하루에 버는 액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데에 매니저는 아라의 최측근이라 소장할 수 있었던 숫자 100번대 1집 앨범을 걸 수도 있었다.
[그렇지. 그래서 그 방법은 탈락.]
아라 또한 매니저의 말에 동의했다.
“선착순으로 작물들 팔리는 속도 보면···. 어후. 스토어 등급 보니까 벌써 빅파워더구먼.”
[그게 뭔데?]
“나도 잘은 모르는데, 뭐. 엄청나게 잘 파는 판매자?”
[아아. 그렇지. 그럴만하지. 그러니까, 사는 건 안 돼. 그럼 대안은?]
“대안? 대안이라···.”
바로 대안을 요청하는 아라에 매니저는 머리를 굴렸다.
“글쎄. 주식 상장한 회사라면 대주주가 되어서 콧김 좀 뿜으면서 제품 정도는 요청할 수 있겠지? 근데···. 카페라면, 그런 것도 안될 테고···.”
하지만 상대는 회사가 아닌, 개인 사업자. 주식은 말도 안 되는 옵션이었기에, 매니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려 애를 썼다.
그때였다.
“실장님, 회의요.”
팀원이 가까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회의를 알리며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얼른 끊고 회의에 참여하라는 독촉이었다.
“어어. 알았어. 아라야, 내가 지금 급한 회의가 있어서. 나중에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 줄게. 힘들겠지만, 오늘 식사는 꼭! 냉장고에 있는 도시락 먹어야 해! 알겠지?”
뚝.
빠르게 할 말을 끝낸 매니저는, 앞에서 시계를 연신 보고 있는 팀원에게 말했다.
“고마워, 아주. 덕분에 살았어. 하하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
같은 시각.
“오? 주주? 괜찮은 생각인데?”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라는 매니저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는 개인 사업자라 주주가 되기 힘들 거라 했지만, 상장이 되지 않았더라도 투자는 할 수 있다.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생각을 정리한 아라는 인터넷에 ‘투자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투자 회사를 통해 투자 의사를 말하거나, 조언을 받은 뒤 진행···? 이건 아니지. 다음. 주식 통장을 만들어서···. 아니. 이것도 아니지.”
하지만 인터넷에는 하나같이 투자 회사나 주식을 통해 지분을 획득하는 방법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인터넷은 여태까지 해결책을 주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터라, 아라는 잠시 고민하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
같은 시각.
신비 농장 사무실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따르릉
"네. 카페, 사랑방입니다. 아. 그 한과 건은 아직 저희가 인터넷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서···. 네. 홍보도 괜찮습니다. 지금도 충분해서···."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 전화를 받은 박준혁은 홍보를 해주겠다는 통화 상대방의 말에 펜을 집어 들다 다시 내려놓으며 익숙하게 상대방의 '무료홍보' 제의를 거절했다.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까지 마친 박준혁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뉘며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오늘도 문의 전화 폭발이네요."
박준혁은 기지개를 켜며 시간을 흘끗 확인했다. 4시 12분. 평상시라면 벌써 퇴근했을 시간.
보통 오전에 포장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는 고객들의 문의 처리 후 다음날 보낼 주문 건의 송장 프린트를 마친 뒤 3시에 오는 택배 기사님을 도와 출고를 끝내면 그날 업무는 끝이나 빠르면 3시 30분. 늦어도 4시에는 퇴근할 수 있었다.
"벌써 4시가 넘었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퇴근하자. 수고했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하는 박준혁의 모습에 전화선을 뽑고 퇴근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했다. 이따 보자."
"옛썰! 이따 마을 회관에서 뵙겠습니다! 참, 오늘은 갈비찜 할 거라고 좀 빨리 오라고 하셨습니다!"
퇴근 알림에 박준혁은 잽싸게 의자 등받이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핸드폰을 챙겨 들고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오. 갈비찜 좋지. 6시쯤 가면 되나?"
"넵!"
"오케이. 그럼 이따 보는 거로."
"네. 이따 뵙겠습니다!"
-탁.
먼저 퇴근한 박준혁을 배웅한 나는 다시 고개를 노트북 화면으로 돌린 뒤 쓰던 문서를 마무리 지었다.
-지이잉.
마지막으로 엔터를 치자, 가로로 길쭉한 책상 맨 끝에 있는 프린트에 불이 켜지더니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A4용지를 뱉어냈다.
"...이 정도 크기면 됐겠지."
상체를 쭉 뻗어 프린트된 결과물을 잡아 든 나는, 한 손으로 프린트물을 확인하며 노트북 전원을 끄고, 뚜껑을 덮은 후, 사무실 키를 챙겨 들었다.
"뭐, 안되면 스크린에 띄워 드리면 되겠지."
한 줄에 열 글자가 겨우 들어갈 만큼 폰트 크기를 크게 해 출력된 프린트물에는, 회사명과 지역, 전화번호, 그리고 회사별로의 제안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긴 하지만···. 확실히. 방송이 홍보에는 최고네."
장 이장님이 나눠준 한과를 출연진들과 제작진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간 다음 날. 나는 사랑방 예약전용으로 쓰던 전화번호를 신비농장 사무실에 연결했다.
사랑방을 운영하기로 계획 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오류 난 곳 없이 모두 잘 프린트된 걸 확인한 나는 프린트물을 잘 펼쳐 홀더에 넣고, 조금 전 박준혁이 나간 출입문으로 향했다.
**
오후 5시 반.
"왔나? 거 앉아라."
정령들에게 한 상 가득 차려주고 서둘러 마을 회관으로 왔더니 상 위에 수저를 놓고 계시던 강 할머니가 반겨주었다.
"할머니, 주세요. 제가 할게요."
"그럴래? 그럼 내는 니한테 이거 넘겨주고 부엌에 좀 가야겠다."
"네. 다녀오세요."
"좀만 있어봐라. 거의 다 완성됐다."
오늘도 카페는 풀부킹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또 오셔서 이렇게 갈비찜을 만드시고 계시는지···. 부엌으로 향하는 강 할머니의 발걸음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부엌과 입구에 달린 발 뒤로 여러 명의 어르신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시골에는 동이 트기 전부터 일과를 시작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하루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연세가 드셨는데도 부지런하시냐 물었더니,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몰라? 평생 이렇게 살았더니 그냥 자동이 되던데? 하루 좀 늦게 자려고 해도 등이 배기가 못산다.'
몇십 년 동안 같은 루틴으로 살아온 탓에 이제는 움직이지 않으면 온몸이 쑤신다고. 어릴 때는 그런 어르신의 말에 '쉬는 게 뭐가 어렵다고···.'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만 하더라도 식품회사에서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내려와 쉬기는커녕, 식품에 관련된 사업을 계속해서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차르륵.
"형님 오셨습니까!"
주방 안을 보며 챙겨온 프린트물을 떠올리고 있으나, 주방 입구에 걸린 발이 갈라지며 박준혁이 나왔다.
"어. 왔냐."
"네! 방금 갈비찜 먹고 왔는데, 진짜 최곱니다! 최고!"
갈비찜을 얼마나 집어 먹었는지, 입 주변이 기름기로 가득했다.
"할머니들 손에서 양념이 나오는 걸까요?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이곳 어르신들 음식은 감히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죠!"
"네 생각에도 그렇지?"
끄덕끄덕.
내 물음에 박준혁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나. 내 생각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맛은 널리 알려야 하는데 말이죠!"
끄덕끄덕.
박준혁의 주장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한 시간 뒤.
"아이고. 억수로 잘 먹었다."
상마다 그득그득 올려졌던 갈비찜은 제 뼈만 남기고 마을 사람들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이래서 평생 우리 마을을 못 벗어난다 아이가. 갈비찜을 밖에 나가서 먹으려면 이가 아파서 못 먹는데, 여기서는 그냥 마 씹을 것도 없이 살살 녹는다. 녹아."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의 복지 중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코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렇게 마을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잔치처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곤 하는데, 음식 재료는 우리 마을 사람이라면 한 달에 한 번씩 내는 계통장에서 충당되었다. 이 계통장이 만들어진 지가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더 놀라운 건 어느 정도 금액이 모인 후에는 그저 통장에 넣어놓지 않고, 일부분을 굴려 지금은 실제 마을 사람들이 넣은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 현재는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우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입에서 살살 녹지. 다 먹었으면 이거나 좀 깎아보소."
연신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우리 마을 음식 최고!'라고 외치자, 주방에서 과일을 내오던 강 할머니가 들고 있던 쟁반을 건넸다.
"오오. 벌써 참외가 나오나? 주소. 내가 또 참외를 잘 깍지!""
과일 쟁반을 넘긴 할머니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창 상을 정리하던 나와 박준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니들은 잘 먹었나?"
"네! 오늘도 최고였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박준혁은 할머니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쌍 따봉을 내밀었다.
"그래. 그럼 됐다. 한울이 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본 강 할머니는 이내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기다렸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