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사람들(3)
“당연히 맛있었죠.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강 할머니에게 나는 박준혁과 마찬가지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그럼 됐다. 요즘 일이 바쁜 것 같더구먼. 많이 먹어야 된다. 알제? 일 바쁘다고 밥 거르면 안 돼. 한번 지나간 끼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말이다.”
“네. 할머니.”
나는 강 할머니의 애정어린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활짝 웃어 보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잔소리. 어릴 때 나는 아침잠이 많아 아침밥을 먹길 힘들어했었다.
‘할머니 나 늦었어!’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 한술이라도 떠먹고 가라!’
‘남긴 밥은 나중에 죽어서 다 먹어야 된다며! 학교 갔다 와서 먹을게! 다녀오겠습니다!’
항상 빠듯하게 일어나 등교를 준비하기 바빴던 나는, 할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려준 밥을 뒤로하고 집을 나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복에 겹다 못해, 넘치는 시절이었다.
‘자자. 아 해라. 아. 옳지.’
얼굴만 대충 씻고 책가방을 챙긴 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다급한 인사를 할 때면, 할머니는 황급히 내 뒤를 따라와 내 입에 한 입 거리를 넣어주곤 했었다.
‘니 이럴 줄 알고 할미가 만들어놨다 아이가. 버스 타고 가면서 먹어라. 알았제?’
‘버스에서 먹으면 안 되는데···.’
‘뭐라카노! 몰래 먹어야지! 그 정도는 할 수있제?’
‘알았어. 고마워 할머니.’
어느 날은 한입 크기의 주먹밥. 어떤 날은 속을 꽉 채워 김밥처럼 말아 한입 크기로 썬 샌드위치. 내가 좋아하는 생선을 가득 넣어 만든 동그란 할머니 표 어묵.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베이컨 치즈 김치말이, 등등.
할머니가 만든 베이컨 치즈 김치말이에는 일반 김치가 아닌 잘 익은 물김치가 들어갔는데, 새콤하면서도 아삭한 물김치가 자칫 베이컨과 치즈로 인해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중화시켜주어 끊임없이 들어가는 한입 아침 중 하나였다.
‘내가 니 아침 맥인다고 허리가 휜다. 허리가 휘어!’
할머니는 내가 등교 시간에 쫓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할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하셨지만, 매일같이 한입 아침 메뉴를 바꾸곤 했다. 혹여나 내가 질려 잘 먹지 않을까를 걱정해서였다.
‘안 먹어도 괜찮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 새로운 반찬을 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아침을 챙겨 먹지 않은 손주를 위해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것은 분명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을 그냥 먹은 적이 없었으니···.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갈 수 있다면, 딱밤을 한대 거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떽! 할미가 한번 지나간 끼니는 다시는 못 챙겨 먹었다고 했제?’
‘점심에 두 끼 먹으면···.’
‘그거는 그냥 점심을 많이 먹은 기고! 아침이 아니지!’
‘...’
지금 내 키가 180cm가 넘는 건 모두 다 할머니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할머니는 내 끼니에 진심이었다.
‘지나간 끼니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에 추억을 떠올렸던 나는, 강 할머니를 향해 믿음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요. 언제나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에는 정령들 때문이라도 끼니를 거를 수가 없었다. 주말에 조금 늦잠을 자려고 하면, 셋이서 내 머리맡에 앉아 내가 깨어날 때까지 빤히 쳐다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보통은 셋의 시선을 느끼고 일어나곤 하는데, 하루는 장난기가 발동해 끝까지 눈을 감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과연 내가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했다.
‘호에···. 안 일어난다. 어디 아픈 거 아니냐?’
‘그럼 내가 노래를···! 꽤액!’
‘컁! 조용히 해라! 그건 안된다!’
‘킁. 인간들은 피곤하면 많이 잔다고 했다. 오늘은 간다.’
원래라면 벌써 일어나야 할 시간이 지나자, 노을은 걱정하였고, 찹쌀은 노래를 불러준다고 하였으며, 포동이는 특유의 킁!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정말로 산으로 돌아갔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컁! 그럼 우리도 오랜만에 산으로 가자!’
‘꽈악···.’
포동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노을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이내 노을과 찹쌀의 기척도 사라졌다.
‘갔나?’
나는 정령들의 기척이 사라지고도 속으로 60초를 센 뒤에야 한쪽 눈을 가늘게 떠 주변을 확인했다.
‘진짜 갔네.’
분명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라며 요란하게 깨울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방 안에는 정령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 이게 뭐야? 진짜······. 녀석들···.’
대신 침대 옆 협탁에는 산에서 따온 열매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아침을 챙겨 준 것이었다.
“글나? 그래도 혼자 있으면 밥해 먹기 귀찮을 때가 많지 않나? 그러면 우리 집에 온나. 어차피 우리 집에는 먹깨비들이 많아가, 밥 많다.”
“에? 할머니? 저희 먹깨비입니까?”
먹깨비라는 말에 사랑방 테이블을 치우듯, 박준혁보다 2배는 빠른 속도로 상을 닦던 이동민이 고개를 벌떡 들어 물었다.
“그럼! 한 끼에 밥을 맨날 5인분씩 하는데도 모자란다고 밥 더 달라꼬 새끼 새 맹키로 입을 쩍쩍 벌리는데 그게 먹깨비지. 뭐꼬?”
혼자 있었을 때는 1인분만 해도 그다음 밥때까지 밥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지금은 쌀독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며 강 할머니가 혀를 내둘렀다.
“그건···. 그럼 오늘부터 양을 좀 줄여보겠습니다!”
돌아서면 음식이 없어진다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이동민이 반성하듯,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뭐라카노? 됐다! 아직까지 성장기인갑다하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많이 무라.”
고개를 푹 순인 박준혁이 작은 소리로 ‘너무 오랜만에 먹은 따뜻한 집밥이라···.’라고 중얼거리자, 강 할머니가 큰소리로 헛소리 하지 말라고 호통쳤다.
“그러기엔 지금 제 나이가···.”
이동민은 성장기라는 소리에 눈을 끔뻑이며 제 성장판은 애초에 닫힌 지가 오래이며, 아무리 남자라도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성장이 멈출 확률이 99%이니, 자신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그럴 확률이 없다고 말했다.
“뭐라꼬? 지금 누구 앞에서 나이 자랑하노?”
하지만 상대는 강 할머니.
나이를 운운하자마자, 할머니는 눈에 힘을 주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말입니다.”
이동민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수습하려 허둥지둥하였다. 눈을 굴려 박준혁에게 SOS 신호를 보냈지만, 준혁이는 도와주기는커녕 행주를 붙잡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런 박준혁의 모습에서 절대 후배가 자신을 돕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이동민의 안색이 흐려질 때쯤.
“저기. 할머니.”
나는 한옆에 놓아둔 클리어 파일을 들고 강 할머니를 불렀다.
“어. 한울아, 왜?”
이동민을 노려보던 강 할머니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할머니의 눈빛을 정통으로 받고 있던 이동민은 격한 몸짓으로 나에게 감사를 표하더니 벌떡 일어나 바람처럼 부엌으로 사라졌다.
삼십육계 줄행랑. 할머니를 상대로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 말실수를 조금 했지만, 이동민은 우리 사랑방의 꼭 필요한 직원이었다. 무릇 사장이라면 직원의 도움 요청을 무시하지 않아야 하는 법.
이동민이 안전하게 대피한 걸 확인한 나는 클리어 파일에서 종이를 꺼내 강 할머니에게 건넸다.
“...? 이기 뭔데? ‘사랑방 한과 유통 제안 업체 리스트’?”
엉겁결에 A4용지를 받은 강 할머니가 종이를 몸에서 멀찍이 떨어뜨려 가장 위에 있는 제목을 읽으며 물었다.
“어디 보자···. 이야. 이거 다 회사 이름 같은데 맞제?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거 맞나?”
강 할머니가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어리둥절해 하자, 할머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심 할아버지가 고개를 내밀어 종이를 보고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설명을 필요로 하는 눈이었다.
하지만 아직 설명을 들어야 할 당사자 중 한 명이 자리하지 않았기에,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했다.
“네. 맞습니다. 꽃분이 할머니 오시면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으잉? 우리 임자는 왜? 뭔 일 있나?”
양해를 구함과 동시에 강 할머니와 같이 사랑방 한과를 담당하고 있는 꽃분이 할머니를 찾자,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들어온 장 이장님이 귀를 쫑긋 세우며 말했다.
요즘 장 이장님은 최종 결선을 앞두고 세트장이 있는 경기도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늘 경연은 잘하고 왔나? 얼굴 반질반질한 거 보니까 붙었구먼. 그럼 됐다.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니 떨어지면 큰일 나는 거 알제? 얼굴에만 신경 쓰지 말고! 노래에 더 신경을 쓰라고! 알겠나?”
심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장 이장님을 향해 묻더니, 조명에 반사되어 빛을 산란해내는 자켓을 보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정확히 말하자면, 번쩍거리는 자켓 덕분에 환해 보이는 장 이장님의 얼굴을 보고 혀를 찬 거지만.
심 할아버지는 요즘 경연을 거듭할수록 멀끔해지는 장 이장님의 모습이 어색한 듯, 매번 장 이장님이 저렇게 방송용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적응이 안 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내가 요즘 잘 생겨지긴했지. 방송국가면 어? 딱! 분도 발라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근데 이것도 본판이 어느 정도 돼야 그러지···. 심가 니는 이렇게 해봤자 개뿔도 없을끼다.”
하지만 심 할아버지의 투덜거림은 장 이장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장 이장님은 자신의 외모를 보며 투덜거리는 심 할아버지를 놀려대곤 했다.
“어데서 남자가 화장을 하노!”
“걱정 마라. 니 화장 시켜줄 사람은 없을테니까네. 그리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본판은 뭐다? 변하지 않는다. 고로 심가 니는 죽었다 깨어나야 혀. 하하하!”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말을 꺼냈다가 장 이장님에게 본전도 찾지 못한 심 할아버지가 역으로 놀림을 받을 때였다.
“둘 다 시끄럽다.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라.”
내가 준 종이를 묵묵히 읽고 있던 강 할머니의 조용한 목소리가 소란스러움을 가로질렀다.
뚝.
큰 소리로 말한 것도 아닌데, 강 할머니의 말 한마디는, 심 할아버지와 장 이장님이 투덕거림을 한 번에 멈출 만큼 무거웠다.
“암. 조용히 해야지.”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제?”
“...”
강 할머니의 말에 투덕거림을 멈춘 두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앉으려고 했다.
“뭘 앉고 그러노. 둘 중 한 명은 얼른 부엌에 가가 꽃분이 불러온나.”
“어? 알았다! 내가 퍼뜩 갔다 올게! 암. 내 마누라 부르러 내가 가야지. 누가 가겠노. 금방 갔다 올게!”
서 있는 김에 누구든 주방으로 가 꽃분이 할머니를 불러오라는 강 할머니의 지시에 장 이장님은 반쯤 구부렸던 무릎을 펴고 재빨리 주방으로 향했다.
“내, 내는 앉아도 되제?”
주방으로 사라지는 장 이장님을 부러운 눈으로 보던 심 할아버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었다.
“왜 앉는 걸 내한테 묻노? 어. 왔나? 앉아봐라. 한울이가 우리한테 할 얘기가 있단다.”
심 할아버지의 질문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강 할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장 이장님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는 꽃분이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와···. 차별 봐라. 차별 반대다! 반대!”
단번에 표정을 바꾸는 강 할머니의 모습에 심 할아버지가 억울함을 표했지만, 할머니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뭔데? 사랑방 관계자들 다 모였으니까 함 얘기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