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사람들(4)
꽃분이 할머니가 자리에 앉자,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오던 장 이장님과 이동민도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래. 함 얘기해 봐라. 이게 다 뭐꼬?”
모두가 자리에 앉자, 심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일단 여기 스크린을 보시면···.”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나는 장 이장님이 꽃분이 할머니를 찾으러 간 새에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져온 USB를 연결해 업체 내역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야. 뭐가 많기도 하네. 저게 다 회사가?”
“...저게 뭔데?”
커다란 스크린에 빽빽하게 띄워진 목록에 장 이장님과 꽃분이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나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이 회사 리스트는 장 이장님이 프로그램에서 저희 사랑방 다식을 노출 시킨 후 사랑방 한과를 직접 유통하거나 혹은 아예 생산부터 판매까지 하고 싶다며 연락 온 업체들입니다.”
사실 다른 회사에서 우리 물건을 대신 판매를 해 주겠다고 연락이 온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비농장 상품들에 대한 거의 찬양에 가까운 리뷰가 올라온 뒤, 신비농장의 작물을 자신들이 대신 판매해 주겠다는 업체들의 전화를 수백 통 받은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신비농장 스토어 레벨이 높아져 전화가 뜸해지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태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방송에 몇 초 나오지도 않았는데 연락이 오드나?”
“그 몇 초가 굉장히 임팩트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식을 먹는 장면이 얼마 노출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나 연락이 많이 왔냐며 강 할머니가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유통을 통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몇 초가 뭔가. 스치듯 로고가 지나가도 0.1초 단위로 캡처해 해당 제품을 알아내는 능력자들이 유통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야. 이게 뭐라꼬. 기분 좋네. 그만큼 사람들이 우리 한과를 먹고 싶어 한다는 거 맞제?”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할머니들의 의견이 궁금해서요.”
“으잉? 우리 의견? 뭔 의견? 꽃분이 니는 아나?”
“...글쎄? 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의견을 묻는 내 말에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 두 분 모두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크린에 띄워진 리스트와 한과, 그리고 자신들에게 무슨 연관성이 있어 의견이 필요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좀 더 생산과 유통에 관해 설명하려 할 때였다.
“아이고. 답답아. 그걸 모르나? 어? 생산을 좀 더 해서! 전국으로 유통하면 어떻겠냐는 그 소리지!”
심 할아버지가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핵심을 짚어 설명했다.
“전국으로···?”
심 할아버지의 설명에 강 할머니는 저 말이 맞냐는 눈빛을 보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네. 일단 저기 리스트 된 업체들 모두 생산을 좀 더 해서 자신들이 가진 유통망으로 뿌리길 원합니다.”
업체들의 제안은 간단했다. 자신들의 유통망은 전국구이니, 물건만 달라고. 혹시 제품 생산량이 모자란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식품공장에서 OEM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전국으로 뿌리면 금방 부자 되겠네! 축하한다!”
내 설명을 들은 심 할아버지는 전국구가 된 걸 축하한다며 두 손을 들어 손뼉을 쳤다.
“다 좋은데···. 한울아, 지금 카페 손님들도 예약 안 하면 못 사 먹는데···. 전국에 뿌리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겠나?”
하지만 신난 심 할아버지와는 달리, 꽃분이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현재 자신과 강 할머니 두 명의 인력으로는 전국 유통망을 커버하기에는 절대 무리라는 의견이었다.
“아니, 생산도 대신 해 주겠다는 회사도 저리 많구만 뭐가 고민이고!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좋제!”
심 할아버지는 꽃분이 할머니의 말에 생산량이 고민이라면, 생산 공장이 있는 회사와 계약을 하면 되지 않겠냐며,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아우성이었다.
“모르면 가만있어라. 이게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면 이 맛이 안 난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한과 중에 우리가 만든 거 맹키로 맛 나는 거 봤나? 모름지기 약과는 꿀이 속까지 꽉 차서, 씹으면 쫀득쫀득하면서 바로 입안에서 사르르 사라져야 하는데···. 시중에 파는 거는 뭐 겉에만 버스스하니 꿀에 담근 티도 안 나고. 씹으면 기름 맛만 나고, 텁텁해가지고, 목 뒤로 넘기기도 힘들다 아니가.”
“뭐. 그건 그렇지.”
“그래서 안된다고. 한 과라는 게 먹기에는 쉬워도 만드는 데 정성이랑 품이 많이 들어간다.”
“글나?”
강 할머니의 말에 ‘공장으로 가즈아!’를 외치던 심 할아버지가 외치던 걸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제. 원래 한과뿐만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맛있어 지는 거라. 공장에서 돌려서 맛있었으면, 요리사가 왜 있겠노. 전부 레토르트 먹겠제.”
“아아. 하기사. 냉동만두 저번에 누가 줘가 먹었었는데, 니맛내맛도 없더라고. 자기네 집에 많다면서 내한테 줬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네.”
“그거는 니가 그냥 이상한 만두를 받은 거고. 요즘에 얼마나 맛있는 만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러나?”
강 할머니의 말에 핸드폰으로 ‘얇은 피 만두’따위를 검색하는 심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장 이장님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더니 무심하게 툭, 말했다.
“암만 잘 나와봐라. 우리 집 만두가 제일 맛있지.”
“맞제. 니네 집 만두가 진짜 맛있제. 그래서 만두 언제 만들건대?”
"우리 집에 만두 맡겨놨나!"
그저 꽃분이 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던 장 이장님은, 말이 끝나자마자 만두를 달라는 제 친구의 말에 벌컥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는 니네 집 만두가 맛있다는 얘기를 한 거제. 이거 원. 마누라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내 마누라 고생시킬 생각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리는 장 이장님의 모습에 심 할아버지는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만두 안 먹은 지도 억수로 오래된 거 같네. 언제 한번 쉬는 날 다 같이 만두나 만들어 먹자."
겁먹은 자라처럼 목을 쑥 넣고 눈치 보는 심 할아버지의 모습에 강 할머니가 혀를 쯧, 하고 차더니 대안을 제시했다.
"진짜가?"
심 할아버지가 고개를 벌떡 들고 거듭 확인하자, 강 할머니는 속고만 살았냐며 다시하번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려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보고 있는 하숙생들에게 물었다.
"그럼 진짜지 가짜가. 우리 집에 먹깨비들이 있어가 내도 혼자는 만들기가 상그럽다. 날 잡아서 다 같이 만들면 최소한 두 끼는 해결 될 거 아이가. 우리 집 먹깨비들도 데리고 와서 만두 빚게 해야지. 니네들 만두는 빚을 줄 아나?"
"맡겨만 주십쇼!"
"...하면 잘할 자신 있습니다!"
하숙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어가는 장기 하숙생, 박준혁은 익숙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옆에서 멀뚱히 눈을 껌뻑거리었던 이동민은 준혁의 말에 질 수 없다는 듯 두 주먹을 쥐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심 씨가 정구지 다지고, 아들이 만두 빚으면 되겠네. 그럼 만두는 우리 쉬는 날 만들기로 하고. 다시 한울이가 말하는 거로 돌아오면···.”
순식간에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며 상황 정리를 마친 강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 제안을 준 회사에는 니가 번거롭겠지만, 미안타고 좀 전해줘라. 우리가 두 명밖에 없어가···. 지금 우리 둘이 만드는 양이 딱 좋다. 재밌고. 그리고 공장은···. 그렇게 하면 우리야 편하긴 하겠지만, 맛이 지금 그 맛이 아니게 될 텐데. 그건 사기 같아서 영 파이다.”
전국구로 자신의 이름을 붙은 한과가 유통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대신 거절해 달라는 말.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강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린 전원을 껐다.
타닥.
스크린이 꺼짐과 동시에, 박준혁이 타이밍 좋게 화면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 꺼뒀던 불을 켰다.
“...”
스크린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자, 옹기종기 앉아 나를 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걔 중,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의 표정이 특히나 선명하게 보였다.
전국적으로 유통하는 건 힘들다는 말은 했지만, 몹내 아쉬운 표정.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릴 적 할머니들이 한과를 손에 쥐여주시며 했던 말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만든 한과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을 구로? 옛날 옛적에 우리 고조할머니가 수라간에서 일했었다, 이 말이다. 저짝도 마찬가지고.’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가 우리 마을에서도 제일 손맛이 좋은 이유는 바로 윗대에 수라간 출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 할머니 대까지는 지역 유지랬다 하던데, 나라에 땅 다 주고 이 산골로 들어왔다더라. 내 죽기 전에는 우리 할머니 손맛을 널리 알리는 게 내 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이 손맛을 우리 마을을 넘어 방방곡곡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말했었다.
내가 어릴 적에 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지만 먹고살기 바빠 여태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야기.
그래서 되물었다.
“만약, 그냥 공장이 아닌, 할머니들의 작업 환경 그대로 맞춰 주는 공장이라면 어떨까요?”
“그래도 맞춰준다고? 그게 뭔 소리고? 지금 사랑방 주방처럼 만들어 준다는 말이가? 그게 무슨 공장이고.”
내 말에 강 할머니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공장에서 기계로 만드는 건 맛이 달라진다고 하셨으니, 할머니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드시되, 포장만 기계화하는 방법은 어떤가 해서요.”
“하기사. 포장하는 시간만 줄어도 좋제. 만드는 거는 내가 자신이 있는데, 그 포장 비닐 벗기는 게 제일 힘들다. 투명한 데다가 얇아서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근데 포장 기계 그거 비싸지 않나? 아직까지는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하다.”
“뭐라카노? 공장에다가 포장 기계 넣는다는 소리 아니가?”
홀을 맡은 이동민이 틈틈이 포장을 도와준다며, 그 비싼 기계는 사지 않아도 된다고 강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자, 옆에 있던 심 할아버지가 핀잔을 주었다.
“...”
“아니, 그렇다고.”
강 할머니의 눈이 가자미가 되자, 심 할아버지가 서둘러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나는 강 할머니의 눈이 더 날카로워지는걸 막기 위해 서둘러 설명을 이어갔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기계는 지금처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대신 인력을 늘리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아까 만두를 인원을 배정한 것처럼 말이죠. 한사람이 모든 걸 하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지만, 과정을 나누어서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기계가 본연의 맛을 내지 못해 망설이신다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할머니들께서는 항상 예약에 실패한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걸 보며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맛 때문에 기계화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할머니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만두 만드는 것처럼이라···.”
아니나 다를까.
지금처럼 수제로 만들되, 인원을 늘리고, 좀 더 생산적인 방법을 얘기하자, 강 할머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같은 눈빛을 하는 꽃분이 할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그거만 얘기가 달라지지. 좀만 기다려봐라. 꽃분아, 연락 돌리자!”
“어. 알았다. 거기로 돌리면 되는거제?”
주어가 빠져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를 순식간에 나눈 강 할머니는,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한울아, 좀만 기다려봐라.”
포스 넘치는 모습으로 내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강 할머니의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두 분 다, 신이 나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