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도 단김에 (2)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결심했다면, 그 즉시 망설이지 말고 실행하라는 한국인 정서에 딱 맞는 말이었다.
“그럼, 갔다 올게.”
토종 한국인인 나는, 그 말을 바로 적용하려고 한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사무실로 쓰는 별채에서 나와 대문 밖에 세워진 차 운전석에 몸을 실으니, 내 뒤를 따라 나온 박준혁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오냐.”
누가 보면 100% 조폭 무리 중 하나라 오해할만한 장면에 나는 그에 걸맞은 껄렁한 포즈로 박준혁의 배웅에 화답했다.
-부아앙-!
[어서 가자! 컁!]
[꽈아악! 외출이다!]
배기음을 울리며 차가 출발하자, 열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오랜만에 노을과 찹쌀이 신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오랜만에 집을 나와 읍내로 가는 것이 못내 신나는 모양.
“그렇게 좋아?”
“컁! 그렇다! 나는 떡이 좋다!”
“나는 번데기가 좋다 꽈악!”
뭐가 그렇게 신나 그렇게 파다닥 거리나 했더니, 결국엔 먹을 것이다.
요즘 들어 호박떡을 먹지 못했다며 꼬리를 살랑이는 노을이와 내가 유일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인 번데기를 외치며 날개를 퍼덕이는 찹쌀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여 내 얼굴에도 어느새 그들과 같은 미소가 가득 걸렸다.
“...그래. 포동이는?”
“포동이는 아무거나 다 좋다고 했다!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얇은 갈색 과자에 김이 붙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컁!”
“전병 말하는 거지? 오케이. 그것도 넉넉히 사가자. 또 다른 건?”
“호에에? 다른 것도 말해도 되냐? 컁?”
이동 반경이 극히 좁은 포동이를 대신해 포동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말하던 노을은 더 고르라는 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이지. 얼마든지.”
나에게 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간식쯤이야. 마음 같아서는 다른 것도 해주고 싶었지만, 정령들은 간식 말고는 도통 욕심내는 것이 없었다.
“꽈악! 엔플릭스 좋다!”
아, 하나 더 있었다.
프로그램 욕심. 농장에 가고, 닭들을 챙겨주고, 밥 먹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 모두를 거의 TV 앞에 딱 붙어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찹쌀이. 한번은 새벽에 화장실에 간다고 거실로 나갔더니, 시뻘게진 눈을 한 찹쌀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어서 얼마나 놀랐던지.
‘차, 찹쌀아, 뭐해?’
‘쉿! ‘이렇게 하면 너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쒀!‘ 꽈악!’
소리는 나오지 않고, 화면만 움직이는 TV를 보고 뭘 하나 싶었더니···. 찹쌀은 오래전 방영된 드라마를 보며 무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
얼마나 진지하게 대사를 읊는지, 등장인물마다 찹쌀의 목소리 고조가 달라졌었다. 그 와중에 혹여나 다른 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대사를 중얼거리는데, 나는 그날로 바로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OTT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래. 매일 봤던 거 또 보지 말고, 새로운 거 봐. 새로운 거.”
“알았다! 꽉!”
매일 새로운 걸 보면, 볼 게 없어서 대사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건 하지 않을 테지.
“그래. 그럼 내릴까? 도착했다. 다들 시장에 먼저 가 있어. 나는 읍사무소 좀 들렸다 갈 테니까.”
“컁! 알았다!”
“자, 여기 돈 있으니까 뭐 먹었으면, 꼭 놓고. 알았어?”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퍼덕거림이 격해진 노을과 찹쌀을 붙잡고 각각 앞치마에 달린 작은 호주머니에 천 원짜리를 가득 넣어주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 혹시라도 먹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먹은 만큼 꼭 값을 치를 것.
이것이 노을과 찹쌀과 함께 읍내에 나올 때의 규칙이었다.
“꽈악! 걱정 마라! 가자! 찹쌀!”
호주머니 가득 천 원짜리 지폐를 넣은 채 뒤뚱거리며 위풍당당하게 장으로 들어간 든 둘의 모습을 보던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집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그래. 얼른 끝내고 보러 가자.
**
-띵동.
읍사무소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내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어···. 그러니까, 공장을 설립하시겠다고요? 잠시만요. 지금 신비농장 운영하시는 사업자분이시고···. 어? 사랑방 카페?”
전광판에 화살표가 가리키는 자리로 가 식품 공장 설립 조건에 관해 물어봤더니, 나를 힐끗 보고 심드렁한 투로 사업자 번호를 묻더니 저 모양이다.
“이야. 제가 대단하신 분을 못 알아볼 뻔했네요. 하, 제 아내가 사랑방 팬이라. 예약하는 날만 되면 전쟁이라니까요? 눈에 불을 켜고 얼마나 닦달하는지...”
각기 다른 사업자 번호 아래 있는 내 사업명을 확인한 직원은 심드렁했던 표정을 지우곤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 네.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사랑방 예약이 너무 어렵다며 혹시 한과 선물세트라도 따로 팔 생각이 없냐고 묻는 직원에게 나는 우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게 말이죠, 아내가 그렇게 여기저기 자랑을 해대니까, 주변에서 먹고 싶어 하는데, 그게 방법이 없다니까···.”
흘끗.
사랑방 한과를 먹을 방법이 없다며, 이번 달 사랑방 예약 신청을 실패한 아내가 예민해져 있다고 중얼거리며 직원은 내 눈치를 살폈다.
“아. 그러셨군요. 저희 사랑방 한과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식품공장 설립조건을 알아보는 이유가···.”
“아! 한과를 본격적으로 만드시려고!”
“...네. 그렇죠.”
“하이고! 그럼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식품공장의 설립조건을 알아보는 이유가 바로 ‘그’ 한과 생산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 직원은 눈을 반짝이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타다다닥.
직원의 손가락이 타자 위를 날듯이 지나가자, 실내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했다.
-타닥.
하늘에서 쏟아 내리는 소나기처럼 타자 소리가 그치고, 직원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식품공장을 설립하시려면 말입니다···. 일단, 제조 공장 앞에 큰 도로가 있어야 하며, 그곳이 제2종근린생활시설 이어야만 하며, 제2종근린생활시설이 되려면 용도지역을 또 확인을 해야 하는데... 혹시 봐둔 부지가 있으실까요?”
“아뇨. 일단 알아보고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식품공장이 있는 회사에 다녔지만, 공장설립 조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제품 개발을 위한 공장 셋업(Set-up)은 해 봤어도, 어디까지나 이미 만들어진 공장 안의 구조를 조금 변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공장설립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내 말에 직원은 안경을 고쳐 쓰고, 모니터를 노려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 그러면, 일단 토지 거래 하기 전에 용도지역이 제2종근린생활시설이 가능한지 확인하셔야 하고, 상수도랑 하수도도 체크 하셔야 하고, 하수 처리 시설이랑 식품공장이면 해썹(HACCP)인증도 받으셔야 하는데···. 이건 또 해썹 조건이 있으므로 따로 업체랑 확인하셔야 하고···. 어후. 그냥 짓는 것보다 원래 있던 공장을 인수하는 건 어떠실까요?”
설립조건을 설명하던 직원은, 가면 갈수록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공장설립 조건에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는 기존 공장 인수를 권했다.
“일단, 조건 좀 프린트로 받을 수 있을까요?”
“어후. 네. 물론이죠. 제가 볼 때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으면, 원래 있던 건물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게 시간도 단축되고, 머리도 덜 아플 것 같네요.”
“네. 조언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꼭! 공장 빨리 만드셔서 보다 많은 사람이 예약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혹시 공장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쇼.”
“네. 감사합니다.”
직원에게서 프린트를 받아든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린트를 흘끗만 봐도 식품공장을 설립하기 위해서 준수해야 하는 사항은 빼곡했다.
정말이지. 직원의 말대로 원래 있던 공장을 인수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을 정도로.
**
읍사무소를 나온 나는,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시장 곳곳에, 아니. 특정한 섹션에 머물러 있는 노을과 찹쌀을 발견했다.
“뭐 줄까? 총각.”
노을과 찹쌀이 나란히 앉아 배를 톡톡 두드리고 있는 가게 앞으로 가자, 김이 폴폴 나는 찜기를 이리저리 여닫던 주인 할머니가 살갑게 나를 반기며 물었다.
“갈비 만두 하나만 포장해 주세요.”
“좋은 선택이다. 우리 집에는 갈비만 두가 제일 맛있제! 이건 서비스!”
“감사합니다.”
구석에서 ‘갈비만두-!!’라고 외치는 찹쌀의 말대로 갈비만두 한 팩을 포장하자, 주인 할머니께서 서비스라며 갈비 만두 옆, 만두피 안쪽에서 붉은빛을 띠는 만두 하나를 서비스라고 건네주었다.
김치만두였다.
어느새 각각 내 머리와 어깨에 자리 잡은 정령들과 함께 나눠 먹을 요량으로 서비스로 받은 김치만두를 한쪽 손에 들고 가게를 떠나려 하자, 주인 할머니가 나를 붙잡았다.
“에이. 그런 건 여기서 바로 먹어야 맛있다.”
[맞다! 따뜻한 게 진짜 맛있다. 어서 먹어봐라. 컁!]
[김치만두는 조금 맵다···. 꽉.]
정령들은 이미 만두를 먹고 싶은 만큼 먹었는지 주인 할머니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아. 네.”
주인 할머니와 정령들의 재촉에 그 자리에 서서 할머니가 내민 간장에 종지에 만두를 살짝 찍어 먹었다.
“음.”
내 손바닥 반만 한 만두를 크게 베어 물었더니, 얇은 피가 느껴지나 싶더니, 놀라울 만큼 많은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아삭.
입안 가득 퍼진 육즙을 음미하며 내용물을 씹자, 적당히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 김치가 아삭거리며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어떻노? 맛있제?”
순식간에 김치만두 하나를 해치우자, 주인 할머니가 눈을 반짝 이며 물었다.
말해 뭐하나.
“김치만두도 하나 더, 아니, 5개 더 주세요. 갈비만두도 같이요.”
맛있는 건 같이. 모두 함께 먹는 것이 맛있는 법. 나는 주인 할머니께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추가 주문을 하였다.
만둣가게 할머니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 퍼져나갔다.
**
“아이고. 이게 누꼬. 오랜만에 왔네?”
포장한 만두를 차에 둔 나는, 정령들과 함께 읍사무소 직원의 조언대로 부동산을 통해 매물로 나와 있는 식품공장을 몇 군데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하지만 돌아본 공장 매물은 모두 꽝. 원체 매물도 몇 개 나와 있지 않았지만, 그마저 정령들이 결사반대한 탓에, 겉에만 슬쩍 둘러보고 온 게 다였다.
공장 투어를 마친 나는, 마을로 돌아가기 전 장 이장님이 맛집으로 손꼽았던 짬뽕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내사 보면 모르나? 얼굴 빤질빤질 안하나? 피부과 의사가 뭔 주사 맞으면 얼굴 빤질 해 진다 캤는데. 아니면 가서 좀 따져야겠다!”
“아뇨. 아주 반짝이십니다.”
부동산에서 현재 나온 공장 매물은 보여준 게 다라고 해, 적합한 부지를 알아봐 달라 부탁하고 나온 길이라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사장 할머니의 말에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나 때문에 엄한 피부과 의사를 잡는 건 너무 하니 말이다.
“그래? 그럼 됐네. 자, 무라.”
-탁.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건물주 할머니는 주방에서 나온 짬뽕을 가져다주며 광대를 한껏 올렸다.
“어어? 내가 먼저 왔는데? 그거 내꺼 아이가!”
“쓰읍. 괜찮다. 무라.”
어쩐지 너무 빨리 나온 것 같더라니. 나보다 분명 먼저 온 손님의 항의를 들숨 한 번으로 제압한 건물주 할머니는 나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서 먹으라 손짓했다.
“네.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속으로 먼저 온 손님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달한 내가 짬뽕 국물을 한술 떠 입안에 가져가려 할 때였다.
“근데 니는 젊은 아가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노? 듣기로는 하는 것마다 잘 된다고 하더만.”
“예?”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나온 내 이야기에 내 입으로 향하던 숟가락은 공중에서 멈추었다.
“뭘 그리 놀라노? 그럼 이 소리 들으면 더 놀라겠네.”
“...?”
놀라기보다는, 의외라 상황이라 당황한 것뿐인데, 건물주 할머니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니가 찾고 있는 식품공장, 내가 해결해 줄까?”
그리고 이어지는 건물주 할머니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으며 큰 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
진짜로, 놀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