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집 (1)
“네???”
갑작스러운 건물주 할머니의 말에 내 입에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까부터 뭘 그리 놀라노. 여기 있으면 들리는 게 많거든.”
놀란 내 모습을 보며 흘흘 웃은 건물주 할머니가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할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지금 주변만 둘러보아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여기 짬뽕 하나요!”
“그거 들었어? 저 밑의 마을에 말이여···.”
음식을 주문한 뒤에 어김없이 들리는 말들. 아니, 소식과 정보들. 크지 않은 식당 안에서 옆 사람의 대화는 조금만 귀를 기울인다면 쉽게 들리는 것들 중 하나였다.
“이제 알겠나?”
내 시선이 식당 안을 한 바퀴 돌자, 어느새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식품 공장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식품 공장을 보고 온건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하루가 뭔가. 이곳에 오기 직전, 부동산을 들렀다 온 것인데···. 소문이 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알긴. 내 귀는 어디에나 있거든. 읍사무소 갔다가 부동산 들르고 왔제?”
“...”
이쯤이면 의심이 간다.
“니 지금 내가 사람 붙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제?”
“,,,”
뜨끔.
사실 건물주 할머니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나이쯤 되면, 다 안다. 사람들 생각하는 건 빤하거든.”
정말로 내 표정만 보고 생각을 읽어내는 건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건물주 할머니는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술술 내놨다.
“대단하십니다.”
짝짝.
초능력 같은 할머니의 능력에 나는 짬뽕을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박수 칠 수밖에 없었다.
“대단까지는... 뭐, 놀리는 건 이쯤에서 하고. 그래서, 식품 공장 필요하나 안하나?”
“당연히 필요하죠.”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조건은? 뭐가 있으면 되는데?”
“조건이요?”
“그래. 조건. 함 말이나 해봐라. 부동산 얘기 들어보니까 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다고 하던데···. 어떤 식품 공장을 원하는데?”
부동산 사장님과 헤어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부동산에서 들었다니···.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건물주 할머니의 정보력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생각하고 있는 식품 공장에 대해 묘사했다.
“간단합니다. 우선, 저희는 공정의 80% 이상을 수제로 할 거라···.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최소 100평 이상의 넓은 공간과 휴식 시설이 잘되어있는 곳이면 좋겠네요.”
조금 전 부동산에서 보고 온 물건들은 휴식 시설이랄게 없었다. 라커가 들어있는 좁은 공간에서 휴식을 겸하는 게 보통이라고.
“아무래도, 저희 공장에서 근무 하실 분들의 연세가 조금 있을 것 같아서, 주방 시설도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밥이다.
우리 마을에서 일을 할 때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식사뿐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참까지 챙겨주는 게 보통이었다.
‘일은 밥심이지!’
‘밥 제대로 안 챙겨주면 욕먹는다.’
‘암. 다 밥 먹으려고 하는 건데, 밥은 잘 챙겨 줘야제!’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맛있는 밥을 먹으면 싹 잊어버리기 마련.
“구비된 기계는 없어도 되는데···. 휴식 시설과 식당이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기계는 저희 쪽에서 구매할 예정이라서요.”
기계는 솔직히 필요 없었다.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의 말로는 현재 사랑방 주방에서 사용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셨으니.
그 외에 포장 기기는 상의 후에 구매할 예정이었다.
“그래? 그러면 쉽지 50만 원만 도.”
“예?”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뜸 50만 원을 달라는 건물주 할머니의 말에 나는 또다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50만 원이라는 건지. 설마, 소개비를 말하는 것일까?
고개를 쑥 내밀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건물주 할머니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설명했다.
“이미 있는 건물. 그러니까, 원래 식품 만들었었던 곳이면 되는거제? 니가 말한 직원식당 자리 따로 있고, 사무실 자리가 크게 두 개 있었으니까 하나를 휴식공간으로 쓰면 될 거고···. 에어컨은 좀 오래 되긴 했는데, 내가 어제 가서 작동해봤더니 잘되더라. 그러니까···. 에어컨은 옵션이라 이 말이제! 원래 과자 공장이어서 공장 안에도 널찍하고. 과자 만들 때 쓰던 기계도 있고···. 그건 필요없으면 떼서 고물로 팔던지. 어떻노? 이정도면 충분하제? 50만 원만 도.”
내가 말한 조건들을 손가락으로 꼽던 할머니는, 다시 다섯 손가락을 쫙 펴며 ‘이 정도면 니가 찾던 곳 맞제?’ 했다.
“네에?”
설마···. 그 50만 원이 공장 월세를 말한 거였다고?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함은 물론이거니와, 에어컨 설치 등 추가적인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그런데 50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니.
“공장이, 50만 원이요?”
방금 부동산과 공장을 돌았을 때만 해도 내가 원하는 평수라면, 월세가 100만 원 이상이었다. 사실 100만 원도 제일 저렴한, 정말 방치된 공장 가격이었다.
“젊은 총각이 벌써 귀가 먹으면 우짜노. 맞다. 50만 원.”
그런데 50만 원이라니. 설마 주당 가격을 말씀하신 걸까?
“50만 원이면, 주당 금액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직까지 주당 세를 받는다는 곳은 보지 못했지만, 혹시 모른다. 이해가 가지 않는 가격에 거듭 묻자, 건물주 할머니가 미간을 잠시 찌푸리더니,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주당 세를 받는 곳도 있나? 아아. 비싸서 그러나? 그럼 월 30! 내가 많이 봐줬다.”
하나, 둘, 셋.
아무리 세어 봐도 할머니가 펼친 손가락은 3개였다.
“월 30만 원···.”
주도 아닌, 월에 30만 원이라니.
믿기지 않은 금액에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30만 원이면 진짜 거저다! 다른 어디를 가봐라 이 컨디션에 이 가격이 있는지! 이게 다 직거래라서 그렇다. 직거래라서.”
최소 월 200만 원을 생각했으니, 30만 원이면 약 7배나 저렴한 가격.
“왜? 너무 싸니까 못 믿겠나? 젊은 사람이 꼼꼼하네. 그래. 다 확인해야지. 그래서! 내가 사진을 가지고 있지.”
믿기지 않은 금액에 가만히 있으려니, 눈앞에 핸드폰이 쑥 내밀어 졌다.
“자. 니가 함 봐봐라. 오늘 아침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이다.”
내밀어진 핸드폰 화면에는 건물 내부로 보이는 사진이 한가득 있었다.
“...”
나는 말 없이 핸드폰을 받아 한 장씩 넘겼다.
모든 설비가 완비된 주방. 먼지가 조금 쌓였지만, 주방 앞에 있는 온전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큼지막한 사무실.
“어떻노? 바로 보러 가고 싶제?”
한참을 사진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맞은편에서 할머니의 기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좋네요.”
공장 사진을 모두 본 나는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공장 알아볼 거라는 건 언제 아시고···.”
부동산에 다녀온 것을 아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방금 보여준 사진이 오늘 아침에 찍었던 거라고 하면, 최소한 오늘 아침부터 내가 식품 공장을 알아보고 다닐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궁금했다.
“어떻게 알기는.”
내 물음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은 할머니는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더니,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제저녁부터 동네 할매란 할매들이 다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데, 모르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아무튼, 공장 계약 할 거제? 혹시 구인 광고할 거면 여기 종이 붙여놔라. 내가 특별히 가게 문 앞에 붙여놔 줄게. 니네 동네 노인네들이랑 달라서, 여기는 핸드폰 잘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천지삐까리이니까네. 알았제?”
“네···.”
공장은 물론이고, 구인 광고까지 한큐에 해결해 준 건물주 할머니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월 30만 원짜리 공장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나.
**
한울이 식품 공장 계약을 마친 며칠 뒤.
-끼이익.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짬뽕집 앞에 낡은 리어카가 세워졌다.
착착.
짬뽕집을 찾은 손님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요령 좋게 쓰레기가 쌓인 쪽으로 리어카를 세운 리어카의 주인은, 익숙하게 박스가 쌓인 곳으로 가 박스를 하나씩 자신이 리어카 옮겨 실었다.
-딸랑.
“할매, 이것 좀 드세요.”
짬뽕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박스를 모두 옮겨 싣고 허리를 펴던 할머니의 앞에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가 내밀어졌다.
“아이고. 이런 거 안 줘도 되는데···. 고맙네.”
요구르트를 내민 짬뽕집 며느리의 모습에 리어카 할머니는 손가락 장갑을 낀 손을 허벅지에 문지른 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야쿠르트를 받아 들었다.
“어후. 별말씀을요. 저번에 주신 약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할머니.”
“그래요? 그럼 내가 다음에 또 해줄게.”
짬뽕집 며느리의 말에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 먹던 할머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매번 자신을 위해 박스를 모아 주는 짬뽕집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 고민 끝에 약밥을 해주었는데, 맛있었다니 다행이었다.
약밥을 해주고 나면 며칠 동안은 반찬이 조금 부실해지겠지만, 괜찮았다. 아직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가져다준 김치가 조금 남아있다.
“아휴. 괜찮아요. 그보다 할머니, 요즘 폐지값 많이 내렸다는데···. 괜찮으세요?”
“...아직까지는···.”
괜찮냐는 질문에 리어카 할머니는 조금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다행히 제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 데다, 날이 따뜻해져 몇 주 전부터 연탄 사용량을 많이 줄인 덕이었다.
“아직까지 일자리 센터에서는 연락 없고요?”
“아니. 경쟁이 심한가···. 아직 없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짬뽕집 며느리는 매일 리어카를 끌며 박스를 줍고 다니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이런저런 정보를 주곤 했는데, 그중 가장 기대했던 노인 일자리센터에서는 몇 달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시골에는 전부 저 같은 노인들이 천지였으니. 당연한 결과 일지도.
“괜찮다. 아직까지 내 한 몸 건사하는데 문제없다.”
시골이 괜히 시골인가.
요즘 젊은 사람들도 일이 없어 가까운 도시로, 서울로 가는 마당에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많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일 테다.
하지만 시골이라 좋은 점도 있었다.
“여기서도 도와주고···. 여기저기서 반찬도 많이 가져다준다.”
노인네 혼자 산다고 들여다 봐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에이. 그래도 밖에서 이렇게 일하시는 것보다는, 안에서 일 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아, 맞다! 할머니, 혹시 여기 가보시겠어요?”
괜찮다는 리어카 할머니의 말에 입을 한일(一)자로 다물며 고개를 젓던 짬뽕집 며느리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주먹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치더니, 할머니를 데리고 가게 정문 앞으로 갔다.
“이거요! 여기 한번 지원해 보세요! 할머니 음식 솜씨가 좋으니, 되실 거에요!”
“이게···. 뭐꼬?”
짬뽕집 며느리가 가리킨 정문에는 [원조 해산물 짬뽕]이라는 문구 대신, 하얀색 종이가 도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