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집 (2)
“이거 뭐꼬?”
리어카 할머니는 무언가 쓰인 하얀 종이로 뒤덮인 입구를 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매번 가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폐지를 주우러 올 때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다녀, 가게 입구와는 정말 오랜만에 마주한 참이었다.
“역시. 할머니 모르실 줄 알았다니까요. 이거 며칠 전부터 붙여놨는데, 꼭 지원해 보세요. 저희 어머니가 구인광고 붙이라고 먼저 말씀하신 공장인데, 사장이 젊어서 그런지, 복지도 좋고, 월급도 괜찮나 봐요.”
“복지도 좋고, 월급도 좋은 곳에서 왜 나 같은 사람을 뽑겠노.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잘 안 뽑지 않나?”
리어카 할머니는, 짬뽕집 며느리의 설명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모습이었다.
“어머. 할머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기 모집 조건을 보시면···.”
어깨가 축 처져 문에 가득 붙어 눈만 들어 올리면 볼 수 있는 구인광고조차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리어카 할머니의 모습에, 짬뽕집 며느리는 일부러 몸짓을 크게 하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보세요! 여기! 우대 조건, ‘60세 이상, 한식 전문가.’. 할머니 60세 이상이시고, 한식도 잘 만드시잖아요.”
“에이. 설마. 노인네들을 누가 우대를 한다고···.”
“아잇, 할머니. 여기 보시라니까요. 저 거짓말 안 해요.”
세상 어디 그런 우대 조건이 있냐고 고개를 살래살래 젓던 할머니는, 짬뽕집 며느리의 호들갑에 못 이겨 그녀가 손가락으로 콕 집은 곳을 보았다.
“진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곳에는 과연 짬뽕집 며느리가 말한 것처럼 ‘60세 이상 우대’라고 적혀있었다.
“세상에, 이런 회사도 있네···.”
“그럼요. 당연히 있죠. 제가 살짝 들어보니까, 한과 아시죠? 한국 전통 과자. 약과 같은 거요. 그걸 만들 공장이 될 건가 봐요. 기계로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 공정이 많이 들어갈 거라 한과에 대해 좀 아시는 어르신들이 오시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이어지는 짬뽕집 며느리의 설명에 리어카 할머니가 반색했다. 한과를 잘 아는 60대 이상 노인이라면···.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슬금슬금 올라온 탓이었다.
“네. 그래서 요즘 할머니들 난리세요. 지원서를 내야 하는데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여기 오셔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아요.”
짬뽕집 며느리는 벌써 전화로 스카웃을 받은 어르신들도 많다는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들은 바로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으니, 이제야 자신감을 조금 가지기 시작하는 할머니에게 벌써부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나도 좀 부탁해도 되나? 내가 이런 건 처음 해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에 리어카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지원서 작성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였다.
할머니의 부탁에 짬뽕집 며느리는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안에 들어가서 천천히 같이해요 할머니. 아, 점심은 드셨어요? 아직이시죠? 마침 저희도 먹으려고 했는데. 같이 드세요. 오늘 볶음밥이 환상이래요.”
웃으며 할머니의 등 뒤에 손을 올리고 짬뽕집 안으로 안내하는 그녀의 모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폐지 줍는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할머니의 얼굴은 설렘으로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생기 어린 모습을 본 짬뽕집 며느리는 다시금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왜인지 오늘 점심은 아주 맛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며칠 후.
영업을 마친 카페 사랑방 홀에는 사랑방과 신비농장 직원 모두가 지원서가 가득 쌓인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모여앉았다.
“오메. 뭐가 이리 많노. 우리 동네에 일할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나?”
얇은 돋보기를 코에 걸친 강 할머니가 제 앞에 쌓인 지원서를 노려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전부 다 홍보를 잘 해주신 덕분이죠.”
“아니, 나는 일할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고 전화 돌린 건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으면 안 했지.”
“많으면 좋죠. 잠시만요.”
-지잉
테이블 위에 둔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메시지가 왔음을 띄웠다. 미리 보기를 통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강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식품공장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읍내로 나갔던 당일, 짬뽕집에 들렸다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식품공장을 마친 나는 곧바로 전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업체 사장님을 불러 공장 세팅을 진행했다.
몇 번이나 새로운 제품 세팅을 진행한 적이 있어, 기계 세팅 및 해썹 인증까지 맡겼는데, 공장이 어찌나 잘 관리 되어 있었는지, 내가 계약한 가격을 듣고는 업체 사장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사진]
[사진]
메시지 창을 켜니, 오늘 오후 작업이 모두 끝난다는 업체 사장님의 설명과 함께 조금 달라진 공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여러 장 보였다.
“동민 씨, 구청에서 언제 온다고 했지?”
업체 사장님이 보낸 사진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한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아있는 이동민에게 진행 상황을 물었다.
“오늘 와서 체크하고 간다고 합니다. 우선 위성 상으로 체크했을때 불법 건물이 없어, 내부만 건축 도면과 같으면 시설 검사 후 바로 통과 할 것 같습니다.”
이동민은 사랑방 식품공장 계약 소식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일꾼을 자처했다.
아무리 원래 식품공장으로 승인이 났던 곳이라도,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가면 서류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맡겨달라는 소리와 함께.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이번 주에는 영업등록증이 나오겠네?”
“넵. 그렇습니다.”
영업등록증은 담당 공무원이 와서 시설 확인 후 이상이 없으면 보통 당일이나 그 이튿날 발급이 되는 편이다. 보통 3일이 걸린다고 말하긴 하지만,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지 사업 관련 서류 발급이 빠른 편이었다.
“오케이. 그럼 이번 주까지 지원자들 분류하고, 다음부터 면접 시작하는 거로 합시다.”
해썹 인증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보통 공사 단계부터 해썹 인증 요건에 맞게 시설을 만드는 편. 다행히 계약한 식품공장은 이미 해썹 인증을 받았던 곳이라, 준비가 수월했다.
“그럼 오늘 이거 다 안 봐도 되는 거네?”
이번 주 안에만 서류 검토를 마치면 될 것 같다는 내 말에 강 할머니가 반색했다.
“네. 어차피 인허가받고, 서류 준비해서 해썹 인증 신청하면 한 달 조금 넘게 걸려서, 시간은 충분합니다.”
우리 쪽에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인증기관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다. 보통 한 달에서 넉넉잡아 한 달 반 정도 되어야지 인증기관에서 공장으로 와 심사가 시작된다.
“한 달이 넘게 걸려? 그럼 우야노? 월세는 계속 나가는 거 아이가?”
인증 받는 것만 한 달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조용히 지원서를 한장 한장 넘기고 있던 꽃분이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임대인께서 준비 기간에는 월세를 안 받겠다고 하셔서요.”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바로 건물주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 덕분이었다. 보통 건물 인테리어 기간 –약 2주- 동안은 임대인이 배려해 월세를 받지 않는다. 어쨌거나 인테리어를 마쳐야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테리어 기간은 임대인의 배려지, 의무가 아니므로 꼭 이 기간을 임차인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계약한 생산공장과 그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창고는 월세 30만 원이라고 하면 민망할 정도로 컸는데, 하지만 그조차도 건물주 할머니의 통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아, 맞다. 준비 기간 얼마나 주면 되나?’
공장계약의 끝마무리가 다 되었을 때 즈음, 건물주 할머니는 도장을 찍으려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나에게 물었다.
‘네?’
‘아니 준비 기간 있어야 할 거 아니가. 지난번에 계약 한 사람한테 준비 기간 2주 준다고 하니까 입에 거품을 물던데. 많이 필요 하제?’
‘괜찮습니다. 월세도 너무 싸게 해주셔서 상관없습니다.’
준비 기간 한 달은 어떻겠냐며 묻는 건물주 할머니에게 나는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했다. 월세 다섯 달 치를 낸다고 해도 부동산에서 보여준 공장들의 한 달 월세보다 적은 판국에, 더 바라면 그게 도둑놈 심보다.
할머니는 항상 말씀하시곤 했다. ‘공짜 좋아하다간 대머리 된다.’라고.
아직 이 나이에 대머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건물주 할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이 사장 아니었으면, 팽팽 놀고 있었을 곳인데, 해달라는 데로 다 해 줘야지. 암. 니 그거 아나? 건물은 사람이 그 안에 없으면 순식간에 늙어버린다.’
‘...’
건물에는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데, 몇 년 동안 나가지 않던 건물에 들어가는 거니, 오히려 자신이 더 좋은 거라며, 부득불 준비 기간을 제해주겠다며 거듭 준비 기간을 물었다.
‘말 안 하면 6개월 동안 안 받는 수가 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정말 말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협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예상 준비 기간인 1개월을 말했다.
‘1개월···. 그럼 6주. 여가 시골이라 변수가 있을 수 있거든. 쓰읍. 토 달지 말고. 정 월세 내고 싶으면, 월세 아낀 거로 직원들 복지나 더 신경 쓰던지. 할매들 고용 많이 할거라면서? 할매들은 당이 꼭 필요하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월세 아낀 거로 직원들 과자나 잘 챙겨 주라는 건물주 할머니의 말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6주라는 기나긴 준비 시간을 얻게 되었다.
“임대인? 하긴. 그 짬뽕집 할매가 자린고비긴 한데, 쓸 때는 또 화끈하게 쓴다더라. 나중에 우리 오픈하면 과자나 좀 챙겨 주든가 하자.”
임대인이 준비 기간 동안 월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전하자, 강 할머니가 코끝에 내려가 있는 안경을 추켜 올리며 말했다. 그 양반이 자린고비지, 수전노는 아니라며.
“네. 그렇지 않아도 몇 개 챙겨 놨습니다.”
“잘했다. 모자라면 또 말해라? 그런 선물은 미루는 거 아니다. 자, 그래서, 이걸 어떻게 분류하면 되는 건데?”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감사한 마음이 닳기 전에 선물을 하는 게 맞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강 할머니가 손에 쥐고 있던 지원서 한 장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 그건 말이죠···.”
나는 이걸 언제 다 읽어보고 분류시키냐는 강 할머니의 푸념에 가장 쉽고 빠르게 지원서를 분류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
서류 지옥에서 벗어난 그다음 주.
면접이 이뤄지기로 한 사랑방 식품공장 앞 광장에는 아직 첫 면접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탕에 다녀온 리어카 할머니는 자신의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경쟁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조용히 주먹 쥔 손을 펴고 그 안에 작게 접힌 종이를 펴 보았다.
[건강진단결과서]
짬뽕집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사랑방 공장 생산직에 지원하고 바로 보건소로 달려가 발급받은 보건증이었다.
“여기서 일하려면 이게 꼭 있어야 한다 그랬다.”
보건증에 적혀있는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리어카 할머니는 다시금 종이를 작게 접어 주먹을 꼭 쥐었다.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해서 무려 3천 원이나 지출한 만큼, 잊어버리면 안 되었기에.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10분 정도 서 있었을까,
-드르륵
묵직하게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앞에 보이는 건물의 문이 활짝 열렸다.
활짝 열린 건물 안에서 나온 키가 큰 청년은 순식간에 자신에게로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뒷머리를 어색하게 긁적이며 말했다.
“어휴. 다들 일찍 오셨네요. 아직 좀 쌀쌀하죠? 들어오셔서 앉아 계세요. 다과도 좀 드시면서 기다리시면, 금방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청년의 뒤로 따뜻한 빛을 발하는 내부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간식들이 테이블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