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집 (3)
지원자들이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와 공장 대기실을 구경하고 있을 무렵.
공장 안에 마련된 면접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다.
“원래 면접 몇 시부터 보기로 했제?”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치고 곧 있을 면접에 들어올 지원자들의 지원서를 검토하던 강 할머니가 지원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9시요.”
나도 마찬가지로 지원서에 눈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지금이 몇신데?”
“8시일걸요?”
조금 전 면접에 올 지원자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사러 간 박준혁이 마트에서 돌아와 바깥의 상황을 알려주었을 때가 8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방금 박준혁이 사람들을 바깥 상황을 정리하러 나갔으니, 아무리 많이 지났다고 해봤자, 8시 전후 일 것이다.
“8시? 요즘에는 약속 시각보다 1시간씩 일찍 오는 게 유행이가?”
내 대답을 통해, 저 밖에 있는 지원자들이 최소 면접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 왔다는 걸 유추해 낸 강 할머니는 지원서를 보던 걸 멈추고 눈을 들어 반대편에 있는 입구를 쳐다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황당함이 묻어나오는 강 할머니의 말에 꽃분이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다들 일하고 싶나 거지예.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가 다 힘들다고 하든데...”
“하기사. 내 요전번에 뭐 사러 마트 갔다가 상추 요만큼 포장해놓고 몇천 원 적혀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가. 우리는 그래도 농사지어서 야채 같은 건 나눠 먹는다지만, 사 먹는 사람들은 손 떨리겠다 싶었다니까.”
“전기세도 그렇고.”
“맞다. 전기세가 예전의 두 배가 나오더라. 어떻게, 한울아, 니는 괜찮나?”
지원자들의 이른 방문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할머니들의 대화는 물가 상승까지 이어지더니, 결국엔 나에 대한 걱정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네. 괜찮습니다. 저 농장주잖습니까.”
나는 양옆에서 나를 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할머니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싱긋 웃어 보였다.
미소짓는 내 모습을 본 강 할머니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한 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쳤다.
“맞네. 농장도 있고, 카페도 있고. 이제는 공장까지 있는 사장님인 걸 내가 깜빡깜빡한다. 우리 중에서 제일 부자일 건데 쓸데없는 걱정 했다. 꽃분아, 우리는 마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해서 한울이한테 뽀나쓰나 많이 받아야겠다.”
뽀-를 길게 발음한 강 할머니는 고개를 쑥 내밀어 내 옆에 있는 꽃분이 할머니를 보며 익살스럽게 인상을 찡그렸다. 얼른 입을 보태라는 신호였다
뚫어질 것 같은 강 할머니의 시선에 지원서에서 눈을 뗀 꽃분이 할머니는, 차분히 웃으며 제 의견을 말했다.
“뭐, 내는 지금도 충분히 좋아서 괜찮다···.”
꽃분이 할머니다운 답변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말을 마친 꽃분이 할머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지원서를 보았다.
어떻게 보더라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꽃분이 할머니의 모습에 강 할머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떡 벌리더니,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참···. 내가, 니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니 준혁이 일부러 밖에 보냈제? 준혁이 갸가 이런 건 잘하거든. 협상의 귀재라.”
‘어이구. 어이구!’ 하며 박준혁을 찾던 강 할머니가 돌연 타깃을 나에게로 돌리나 싶더니, 준혁이에 대한 자랑을 시작했다.
협상의 귀재라니. 매번 강 할머니의 입에서 준혁에 대해서라면 밥통을 거덜 내는 먹깨비라던지, 방안에 온갖 것들을 널브러뜨려 놔 돼지우리에서 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는 박한 평가만을 들어왔기에, 신기했다.
“준혁이가요?”
“어. 얼마나 설득을 잘하는 줄 아나? 평소에는 애가 맹해가지고,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구는데, 밥 먹을 때만은 박사다 박사.”
“아···.”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비료 판매 시작 후, 이제는 충분히 강 할머니 집에서 나와 따로 살 수 있는 돈을 벌었음에도 계속해서 하숙하는 이유가 할머니의 음식 때문이란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내가 요즘 준혁이 갸 배 나오는 것 같아서 밥을 두 공기까지만 줬거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나?”
“뭐라 그랬는데요?”
“자기는 밥심으로 일하는데, 밥 두 공기만 먹으면 일하다가 쓰러진단다. 그래서 내가 그 뱃살 빠지는 거 보고 더 준다고 했더니, 뱃살이 힘에 원천이라고 절대 안 된단다. 그라면서 천하 장사들 이름을 줄줄 말하는데, 내도 모르게 밥을 더 주고 있더라고. 그렇게 웃을 게 아니라니까. 진짜다.”
박준혁의 건강을 염려해 식사량을 줄이려는 강 할머니와 평소 할머니의 말이라면 가타부타 말없이 우선하고 보던 준혁의 밥을 지키기 위한 항쟁이 상상되어 조금 웃었더니, 할머니가 진지한 얼굴로 검지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그 틈사이로 박준혁이 얼굴이 나왔다. 역시 양반은 못 된다.
“밖에 준비 다 됐습니다. 첫 타임부터 점심 타임 지원자들까지 다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박준혁이 종이를 든 팔을 추가로 들이밀며 말했다.
팔랑거리는 종이 위로 노란색 형광펜 자국들이 보였다.
“그럼 좀 빨리 시작해도 되겠는데? 어떠세요?”
박준혁의 말에 고개를 돌려 할머니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어. 나는 괜찮다.”
마지막 서류를 손에서 놓은 꽃분이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도 괜찮다. 백번 이 종이 쪼가리 보는 것보다 사람 한번 만나는 게 훨씬 낫지. 어여 불러라.”
지원 서류를 보다 만 강 할머니도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 번째 조부터 부탁한다.”
그렇게 사랑방 한과 공장 면접은 원래 시간보다 50분 이르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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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긴장을 푸는 데는 수다만큼 효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첫 번째 면접 조가 들어간 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곳으로 모이더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차가 뭔 차고? 억수로 맛있네.”
“과자도 맛있다.”
“원래 있던 공장이라고 해서 좀 낡을 줄 알았는데, 깔끔하네.”
물론 긴장을 풀기 위한 대화였기에, 내용은 가지각색이었다. 대화라기보다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뱉고 있다는 게 더 정확했다. 대화의 장을 빙자한 긴장 풀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직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손가락만 쥐어뜯는 사람도 있었다.
“...후.”
다른 지원자들의 대화를 듣던 리어카 할머니, 정옥순은 가만히 고개를 내려 무릎 위에 놓은 분홍색 보자기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입맛이 맞아야 할 것인데.”
보자기 안에는 짬뽕집 며느리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약밥이 들어있었다. 짬뽕집 며느리의 도움으로 사랑방 공장 생산직에 지원한 정옥순은, 1차 서류 통과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면접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면접자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면접이란 무엇인가?’, ‘면접에는 어떤 준비를 해 가야 할까?’ 등등.
여태껏 살면서 면접이라곤 본 적이 없었기에, 정옥순의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나 면접 생각만 했으면, 꿈에서 면접을 볼 정도였다.
“뭘 그리 꼭 쥐고 있는교?”
분홍색 보자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금 피어오르는 걱정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이 불쑥 시야에 등장했다.
“...?”
따뜻한 차가 들어있는 듯, 맑은 갈색 물이 찰랑거리는 종이컵을 든 손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니, 화사한 빨간 꽃이 가득 핀 옷을 입은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손 떨어지겠네.”
“어이구. 이리 주소.”
상황판단을 위해 종이컵과 그녀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자, 바로 팔이 빠지는 시늉을 하는 탓에 정옥순은 반사적으로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거머쥠과 동시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종이컵을 들어 내용물을 한 모금 넘기자, 앞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생각보다 공장이 멀어서 오는데 식겁했다 아이가. 그짝은 올 때 안 힘들었나?”
“아···.”
혼자 사는 데다, 하루종일 폐지를 줍고 돌아다니느라 말할 곳이라곤 종이상자를 제공해 주는 가게 직원들, 혹은 매일같이 가는 고물상 사장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폐지를 제공해 주어 ‘고맙습니다.’ 혹은 고물상 사장과 실랑이 하느라 ‘무게가 1kg는 더 나갈 거다!’ 따위의 반복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게 직원도, 고물상 사장도 아닌 사람의 질문에 정옥순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장이 멀었나?’
아니요.
‘올 때 힘이 들었나?’
아니요.
폐지를 줍기 위해서는 하루종일 마을 곳곳을 이 잡듯이 돌아다녀야 한다. 평소보다 폐지의 양이 부족할 때는, 범위를 더 넓힌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니는 거리에 비하면···. 그저 보다가 하나만을 머리에 이고 오면 되는 공장은, 아주 가까웠다.
생각을 정리한 정옥순은 제 앞에 서서 답을 기다리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안 힘들었다. 이 정도는 가깝지.”
“내는 걸어오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체력이 좋나 보네. 평소에 운동 많이 하나 보네? 하기사. 내도 병원에서 항상 운동하라고 하는데, 그게 실천하기가 어렵더라고. 그래서 집에서 그냥 있느니 나와서 움직이면서 돈도 벌면 좋을 거 같아서 와봤는데, 오는데 너무 힘든 거라. 근데 이 차를 마셨더니 뜨뜻해서 그런가? 무릎 시큰거리던 게 좀 낫더라고. 맛 괜찮제?”
빨간 꽃으로 가득한 옷을 입은 여자는 말이 많았다.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보면 좋을 건만. 그래도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맛 좋은 차까지 준 사람이었다.
“체력은 잘 모르겠고, 운동은 따로 하는 거 없다. 맛은 좋네.”
순식간에 다다다 쏟아진 말에 담겼던 질문들을 더듬어 천천히 대답한 정옥순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종이컵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확실히 맛이 좋았다.
“운동을 따로 안 한다고?”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는지, 맞은편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운동도 안 하는데 어떻게 안 힘든 데? 좋은 거 챙겨 먹나? 비법 좀 알려도.”
“비법···?”
크게 뜬 눈을 몇 번 끔뻑거리던 여자는, 말끝을 흐리는 정옥순의 모습에서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무언가 큰 비밀이라도 알려달라는 듯한 여자의 모습에 정옥순은 당황했다.
갑자기 자리를 좁히는 것도 그렇지만, 저렇게 자신에게만 살짝 알려달라며 귀에 손까지 댔는데 비법이라고 알려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게 일상인데, 이걸 비법이라고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별히 챙겨 먹는 거나, 매일 하는 거 뭐 있나?”
하지만, 여자는 정옥순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해서 비법을 알려달라 재촉했다. 사실을 말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말을 지어낼 수도 없어 난감함을 느낄 때였다.
“다음 분들, 준비해 주세요.”
정옥순의 곤란함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이곳으로 안내했던 청년이 종이를 보며 다음 면접자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다음 순서로 들어갈 면접자들을 호명하는 그를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여태 사람들과의 대화가 적었던 이유도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옥순은 간절히 바랐다.
제발 이 외향의 끝을 달리는 여자와 떨어지게 해달라고.
그리고 얼마 후.
“...정옥순 님?”
청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네!”
정옥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음 지원자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칫 곤란할뻔한 상황을 운으로 이겨낸 점이 기꺼웠다.
그렇게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이숙자 님?”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이 호명됨과 동시에-
“예!”
정옥순이 조금 전에 있던 자리에서 또다시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