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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29화 (129/163)

미화리로 집결 (1)

어디서든 긴장하지 않던 사람도 긴장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무서운 경험을 한다던지, 간절하게 바라던 것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던지, 혹은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라든지 등등.

그런 면에서 면접은 사람이 긴장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모은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임과 동시에, 자신을 평가하려는 결정권자 앞에서 스스로의 좋은 점을 필사적으로 어필해야 하니까 말이다. 결정권자들의 수는 왜 그렇게 많고, 다들 왜 눈을 홉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목이 죄이고, 손이 차가워지며 하얗게 질리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가령, 지금 내 앞에 있는 면접자들처럼.

"안녕하세요. 오시는데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나는 익숙하게 맞은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얼어붙은 면접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대한 친절하고 무해한 인사하며 웃어 보이자, 얼어붙었던 면접장 공기가 조금 녹는 게 느껴졌다.

"아, 안 힘들었다. 아니, 요."

아마도?

"하하. 말씀 편하시게 하시면 됩니다."

녹긴 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녹지 않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더욱 활짝 웃어 보였다. 면접을 빠르게 시작한 덕분에 아직 점심 전임에도 이 팀이 거의 마지막 팀이다.

면접자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이제 미성년자 티를 벗어 아직 앳된 얼굴을 한 20대부터, 나와 같은 30대, 40대, 등등.

하지만 우대조건을 '60대 이상'으로 해서 그런지 확실히 절대다수는 60대였다.

지금도 앞에 있는 5명 모두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그, 그래···. 요."

말을 편하게 하라는 내 말에 더듬거렸던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에 놓인 분홍색 보자기를 꽉 쥔 손에 어찌나 힘을 주셨는지,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드릴 텐데, 편안하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어. 아니, 예.”

분명 5명의 면접자 중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더듬거리면서도 내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어르신의 모습에 나는 지원서를 확인했다.

“정옥순 님?”

“예? 예!”

“아이고. 뭔 긴장을 그렇게 하는교. 안 잡아먹는다. 편안하게 하이소.”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의자에서 화들짝 놀래는 정옥순 할머니의 모습을 본 강 할머니가 지원서를 찾던 손을 들어 휘저으며 말했다.

“예···.”

어쩐지 더 겁을 먹은듯한 정옥순 할머니의 반응에 옆을 본 나는, 고개를 숙여 강 할머니에게 작게 말했다.

“저기, 할머니, 안경 좀···.”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눈만 들어 참가자를 훑어보는 모습이 병아리들을 노리는 매의 형상과 비슷했다.

가까이 있는 지원서와 멀리 있는 참가자들을 동시에 보기 위해 강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눈만 들어 참가자들을 보고 있었던 것.

돋보기를 보지 않은 맨눈으로 면접자들을 볼 때는 집중을 위해서인지 미간을 찌푸린 채였는데, 그 모습이 아주 매서웠다.

“아. 맞다. 미안.”

강 할머니의 포스 넘치는 모습에 면접장이 몇 번 얼어붙었던 터라, 할머니는 내 말에 서둘러 눈을 비볐다.

“자,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너무 긴장해 있으니까, 우리 먼저 소개를 해볼게요. 일단 내는 강순자라고 합니다. 이 공장의 공장장이지요.”

순한 말투로 자기소개를 마친 강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눈웃음 사이로 보이는 할머니의 재촉에 나는 오케이 사인을 그리며 앞을 보았다.

“저는 이곳, 사랑방의 소유주이자, 투자자인 김한울입니다.”

“여기 사장이다.”

투자자라는 내 말에 강 할머니가 보충 설명했다.

“어이쿠. 사장님이 엄청 젊네. 잘 부탁 드립니데이.”

이래서 사장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장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참가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눈빛으로 꽃분이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사랑방 제품 품질관리를 담당할 유꽃분이라고 합니다.”

내 도움 요청을 알아차린 꽃분이 할머니는 차분히 자기소개하며 참가자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지금 소개했듯이, 만약에 여러분들이 뽑히면, 내랑 저 꽃분이 품질 책임이랑 계속 일을 할 테니까, 내가 질문을 먼저 해볼게요. 자기소개는 여기 지원서에 다 적혀 있으니까 패스하고···.”

꽃분이 할머니의 자기소개가 끝남과 동시에 강 할머니가 안경을 고쳐 썼다.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에 있는 지원서에 눈을 고정한 강 할머니의 첫 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

“다들 지병은 뭐가 있는교?”

*

끔뻑끔뻑.

예상치 못한 첫 질문에 지원자들은 대답 대신 눈만 껌뻑였다.

당황스럽기도 할 터. 세상에 면접에서 지병 유무를 묻는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일 테니 말이다. 사실 이 첫 번째 질문은 할머니들과 내가 의논하여 결정한 질문이었다. 대부분 지원자의 나이대가 꽤 많았기에, 이 확인작업은 꼭 필요한 절차였다.

물론 추후 합격자들은 모두 건강검진을 할 예정이었지만, 미리미리 알아 나쁠 건 없었다.

“편안하게 대답하면 됩니다. 지병을 묻는 거는 혹시나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묻는 거지, 이걸로 뭐 사람 떨어뜨리고 안 할 거니까, 편안하게, 편안하게 말해보소.”

지병 유무를 묻는 건 어디까지나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니까.

어차피 나이를 먹으면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며, 자신도 허리가 고질병이라며 강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강 할머니의 지병 고백에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던 참가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 내는···. 아, 내 이름은 이숙자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이숙자.

나이 66살로, 지원자 중 비교적 나이가 적은 편에 속했다.

“가끔씩 무릎이 아프긴 한데, 찜질하고 파스 바르면 퍼뜩 괜찮아지는 편입니다.”

“무릎은 앉아서 일하면 괜찮지. 안 그러나 한울아?”

“그렇죠. 무릎은 뭐, 저도 가끔씩 아픕니다.”

신비농장을 운영한 이유로는 아프지 않아서 텀이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다닐 적에는 비만 오면 무릎이 뭔가. 온몸이 다 쑤셨다.

-타닥.

노트북에 켜진 엑셀 파일에서 이숙자 이름을 찾은 나는, 지병 칸에 ‘무릎’이라고 적고 고개를 들어 다른 지원자들을 보았다.

“어···. 저는 허리가 가끔씩···.”

“내는 단백뇨가 조금···.”

“...나는 팔꿈치.”

디스크와 단백뇨, 그리고 팔꿈치.

나와 눈이 마주친 지원자들이 말한 지병을 타이핑한 나는, 아직까지 대답을 하지 않은 마지막 지원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분홍색 보자기를 끌어안고 있던 지원자였다. 이곳에 들어와 제일 처음 말문을 열었던 지원자인 만큼, 다른 지원자들보다 빨리 대답을 할 줄 알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만 달싹거렸다.

“음···. 정옥순 님? 혹시 곤란하시면 나중에 따로 말씀해 주세요.”

지병 중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곤란한 종류의 것도 당연히 있을 테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정옥순 지원자의 지병 칸에 하이픈을 입력할 때였다

대답을 망설이던 어르신이 손을 번쩍 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다! 내 말 할 수 있습니더···. 그···. 안 아픈 데를 찾는 게 빨라가···. 어딜 어떻게 먼저 말하면 될까 생각 중이었심더.”

“예···? 아, 네.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대답을 머뭇거린 이유가 지병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픈 곳이 너무 많아서라니.

어쩐지 아연 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강 할머니를 쳐다보자-

“...”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은 강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짓고 있었다.

**

“...처음 임금은 미리 안내해 드린 것처럼 나갈 예정이고요, 첫 3개월 동안은 수습 기간이라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실습할 예정입니다. 저희 공장에서 앞으로 맛의 균일화와 통일화를 제일 중요시 할 예정이어서요. 수습 3개월 동안은 월급의 80%만 지급되니 참고해 주시고···.”

아. 망했구나.

정옥순은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기 전 합격하면 받을 임금과 절차 등을 알려주는 한울의 모습을 보며 직감했다.

자신은 떨어졌다는걸.

“뭔 아픈 데가 그렇게 많았나? 내는 아까 여까지 오는데 별로 안 힘들었다고 해서 건강한 줄 알았더니만, 괜찮은기가?”

짬뽕집 며느리가 얼마나 열심히 도와준 면접인데···.

면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제 말에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이던 짬뽕집 며느리를 떠올린 정옥순은 고개를 떨구었다.

볼 낯이 없었다.

“어? 와이라노? 어디 안 좋나?”

무릎만 가끔씩 아프다는 이숙자가 옆에서 종알거리며 물었지만, 탈락을 확신한 정옥순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 진짜 다 외웠는데···.”

“뭐라카노? 뭘 외웠는데?”

면접의 기본은 자기소개라는 짬뽕집 며느리의 조언에 1분짜리, 3분짜리, 5분짜리 총 3가지 버전의 자기소개를 적어 달달 외웠다.

자다가도 툭 치면 일어나 자동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긴장해도 입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다 끝났네.”

자기소개를 시키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는 통에 준비한 보람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왜 바른 데로 다 말하가지고···.”

“아까부터 혼자 뭐라 꿍얼거리노?”

지병이 있냐는 첫 번째 질문부터 한가지씩만 말하는 다른 참가자와 달리 ‘온 삭신이 쑤신다.’라고 말해버린 정옥순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후회를 해봤자 이미 기차는 떠나버렸는데 무슨 소용이겠는가.

“좋은 경험이었다고 치자.”

이곳이 안되었으니, 자신은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삐걱거리는 리어커를 다시 끌고, 폐지를 찾아다니는···.

“...매년 회사에서 기본적인 건강검진 지원해 드리고, 업무는 오후 4시까지입니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제공해 드릴 예정이며···.”

하지만 정옥순의 생각은 한울의 말에 멈추었다.

“아침, 점심 둘 다···?”

매일 끼니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정옥순에게 4시까지밖에 일을 하지 않는데 거기다가 밥까지 두 끼나 챙겨준다니.

“...자, 그럼 질문받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나, 나요!”

안내를 끝내고 질문을 받겠다는 말에 정옥순은 손을 번쩍 들었다.

조금 전 어깨까지 축 처져 아무 힘이 없어보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질문을 받아달라는 지원자의 적극적인 모습에 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울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옥순은 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소중하게 들고 있던 분홍색 보자기를 번쩍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이, 이걸 좀 먹고 판단 해 주시면 안될렵니까?”

“...?”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분홍색 보자기에 면접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냥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기엔 준비해온 것이 아까웠다.

정옥순은 아직까지도 멀뚱멀뚱하게 저만 쳐다보고 있는 면접관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분홍색 보자기를 펼쳐 보이며,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함 무 보소. 안 먹으면 후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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