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리로 집결 (2)
처음으로 면접관으로 면접자들을 만나본 소감을 말해보라면,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이거 힘드네요.”
힘들다고.
“그러게 말이다. 이거 면접 심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보고 나서 골라내는 건 더 힘드네.”
“그래도 뽑는 인원이 많아서 다행이다.”
최종 합격자를 선정하기 위해 사무실에 모인 강 할머니와 꽃분이 할머니는 이미 뻗은 지 오래.
동그랗게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지난 며칠 동안 본 면접자들의 지원서가 쌓여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처음에 잘 뽑아 놓으면 나중에 수월하니까, 힘내보죠. 이것 좀 더 드시겠어요?”
“어. 그거 좋드라. 마시면 힘이나! 희한해. 나는 가득 좀 따라줘.”
집에서 가지고 온 보온병을 들어 보이자, 거의 이마를 테이블에 박고 있던 강 할머니가 손만 쭉 뻗어 컵을 내밀었다.
“내도···.”
슬며시 내밀어지는 꽃분이 할머니 컵에도 보온병에 들은 음료를 가득 따른 후, 나는 보온병을 통째로 들고 마셨다.
“크으. 좋다. 역시 마시고 나니까 힘이 나네. 이거 뭐로 만든 거고?.”
“그러니까. 맛은 매실 맛 같은데, 좀 달라서 뭔지 모르겠다. 재료가 뭔지 알려줄 수 있나?”
음료를 원샷한 할머니들은 빈 잔을 높이 들어 기울이며 물었다. 잔을 탈탈 털었지만, 더이상 없는 음료에 입맛을 쩝, 하고 다신 할머니들은 내가 든 보온병과 빈 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매실 맞습니다.”
“진짜?”
자신이 예상한 재료로 만든 매실이 맞다는 대답을 들은 꽃분이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며, 진짜냐고 재차 물었다.
“그럼 이 향은 뭐지? 매실이라기에는 향이 너무 좋아서 아닌 줄 알았는데···. 아, 뭐 섞은 거네. 맞제?”
매실만으로는 이 향이 나지 않는다며 꽃분이 할머니가 뭘 섞은 게 분명하다고 확실했다.
“그게 말이죠···.”
사실, 이 매실차가 특별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을이 키웠기 때문.
숲속 깊이 위치한 매화밭은 노을의 놀이터였다.
‘컁! 이것 봐라! ’
TV에 나오는 매실 엑기스를 보며 침을 꼴딱거리던 노을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매화밭은, 현재 경작하고 있는 밭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컁! 어떠냐? 이 정도면 다 만들 수 있냐?’
노을의 밭이라 명명해 준 이후로, 노을은 심심할 때면 총총거리며 매화밭으로 가 뒹굴거리다 포동이와 같이 매실을 수확해 와 부엌에 가득 쌓아놓곤 했다.
그러고는 싱크대 안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산처럼 쌓인 매실 옆에 뿌듯한 포즈로 앉아서 나를 부르는 것이다.
‘매실은 맛없다! 나는 방울토마토 절임! 매실장아찌! 매실차! 가 좋다! 컁!’
매실 자체는 맛이 없지만, 내가 매실로 만든 음식들은 너무 맛있다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쑤시개를 꺼내는 게 일상이었다. 저렇게 먹고 싶다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데, 누가 거절할 수 있으랴.
매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쑤시개로 일일이 꼭지를 따고, 껍질에 빼곡한 솜털 같은 하얀 털을 제거해 주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했다.
보통의 방법으로 한다면, 손도 많이 갈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대부분 사람들은 날을 잡고 작업하지만, 나는 달랐다.
‘컁! 나도 도와주겠다!’
매실을 손질 하기 위해 매실 한 알을 손에 쥐고, 반대 손에 쥔 이쑤시개를 이용해 매실 꼭지를 톡톡 따자, 옆에서 뚫어져라 내가 하는 모습을 보던 노을이 솜방망이 같은 앞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들고 꼭지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둘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찹쌀이 합류한다.
‘꽈악? 그게 뭐냐? 씻을 거냐? 내가 씻어 주겠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나, 매일같이 요리를 할 때마다 내 옆에서 구경하던 우리 집 정령들은 이제 재료 손질 방법은 대충 감으로 때려 맞추곤 했다.
‘꽈아아악-!’
‘...’
찹쌀은 정확히 물대포를 쏘아 매실을 매끈하게 만들고, 옆에서 포동한 배를 바닥에 깔고 간식을 먹던 포동이 분류하는 것이다.
매실 요리는 대부분이 매실장아찌에서 시작되기에, 내가 할이라곤 포동이 알아서 매실을 채워준 통에 적당량의 설탕을 붓고 뚜껑을 닫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왜 매실만 썼는데 특별한 향이 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농장에서 나온 매실이라서요.”
매실이 우리 농장 출신이라고.
“아아. 그래서.”
이미 우리 신비농장에서 나오는 작물들의 품질은 유명했기다. 시중에서 파는 같은 종류의 작물을 비교했을 때, 그 향과 맛이 비교가 안 된다고.
직접 신비 농자 표 방울토마토를 먹고 효과를 체험한 꽃분이 할머니는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니 매실도 키우나? 얼마나 키우는데? 나도 좀 살 수 있나? 진즉 알았으면 요번에 매실 담글 때 니한테서 살 걸 그랬네. 언제부터 키웠노? 매실나무 있으면 매화꽃도 참 예쁠 텐데 못 봤네. 많이 키우나?”
신비농장 작물 목록을 꿰고 있던 강 할머니는 매실의 출처를 알게 되자마자 질문 폭탄을 던졌다.
“키운 지는 좀 됐고, 밭이 산속에 있어서 보기 힘들었을 겁니다. 나무 그루 수는 꽤 돼서, 다음번에 매화꽃 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매실은 우리 집에 많아서, 가면서 매실액 1병씩 드릴게요.”
“어이고.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도 준다면 내 고맙게 받지!”
이미 우리 집에는 정령들과 함께 만든 매실장아찌가 한가득이니, 할머니들께 몇 병 드린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랑방 한과를 책임지시는 분들이 아닌가. 거기다가 공장이 가동되면 전국에서 돈을 벌어올 제품을 만드는 책임자셨다. 아마 노을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면, 더 주라고 할 게 분명했다.
작물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게 노을의 목표니 말이다.
“그럼 조금만 더 힘내서 얼른 끝내 볼까요?”
매실장아찌를 주겠다는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할머니들을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지원서를 들어 보였다.
마지막 지원서에 적힌 이름은 바로 정옥순.
“언제 나오나 했더니. 드디어 나왔네. 참, 그 약밥, 진짜 여기서 만들끼가?”
시원한 매실차를 마시고 다시 쌩쌩해진 강 할머니가 지원서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물었다.
“약밥은 그때 말했던 대로, 레시피 받으면 로열티 드리려고 합니다.”
“맞나.”
꽃분이 할머니가 말하는 약밥은 바로 첫 면접날 정옥순 지원자가 우리에게 내민 것이었다.
‘이, 이걸 좀 먹고 판단 해 주시면 안될렵니까?’
면접이 마무리될 무렵, 떨리는 목소리로 불쑥 내민 약밥.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있던 약밥은 견과류가 별로 들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옥순 지원자의 말대로 먹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 했을 만큼 그 맛이 뛰어났다.
“일도 하게 할 거제? 내 알아보니까, 그치 진짜 열심히 살던 사람이더라. 온 만신이 아플 만한 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 폐지 모은단다. 하루를 빠진 적이 없다고 그러더라.”
“맞다. 약밥 만든 거 보니까 음식도 잘 만들 것 같고. 괜찮겠더라.”
약밥 판매에 대한 로열티 지급에 대해서만 언급하자, 할머니들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지원자가 말한 지병이 합격에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한듯했다.
“네. 당연히 합격이죠. 식품공장 생산직 지원에 직접 관련된 음식을 만들어와 선보인다는 것부터가 대단하시더라고요. 체력은 뭐···. 지금 하시는 일보다는 덜 힘들 테니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하지만 합격 조건에 지병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정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면, 다 괜찮았다.
애초에 그런 손맛을 가진 지원자를 떨어뜨릴 생각도 없다. 로열티까지 주는데, 공장에 취업시키는 건 당연했다.
“그래! 니 잘 생각했다. 자, 그럼 이제 다 뽑은 것 같은데 맞제? 자, 이제 얼른 퇴근하자.”
확답을 들은 강 할머니는 시원한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지원서를 합격 석으로 옮겼다.
“네. 들어가세요. 저는 잠깐 남아서 정리 좀 하고 가겠습니다.”
“...? 뭔데? 도와줄게. 같이 가자.”
강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의자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던 꽃분이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같이 퇴근할 것을 종용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노트북으로 몇 가지만 찾아보고 가려고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합격자 선정을 마친 만큼, 합격 여부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지원자들에게 통보를 해야 했다.
“노트북? 아이고. 그럼 우리는 못 도와주는 거네. 그래. 그럼 얼른 끝내고 퇴근해라? 먼저 가 있을게”
남은 작업은 노트북으로 이루어질 거라는 내 말에 꽃분이 할머니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을 외쳤다.
강 할머니는 이미 사무실을 나간 지 오래.
“네. 들어가세요.”
*
-타닥!
“오케이. 끝.”
할머니들을 보낸 뒤, 바로 문자 통보 작업을 시작한 나는, 마지막 문자를 보내는 엔터키를 누르고는 기지개를 쭉 폈다.
“읏차-. 이제 하나만 더 처리하고 집으로 가 볼까?”
-딸칵.
몸을 바로 한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새로운 파일을 띄웠다.
“참,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거야.”
식품회사에서 뛰쳐나왔는데, 식품공장을 차리다니.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면, 제대로 해야지. 어디 보자···. 마케팅이랑 유통 담당자가···.”
새로 연 파일 안에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기록해 놓은 내 인맥이 모두 적혀 있었다.
명함을 받을 때마다 하나하나 입력해 놓던 사람들의 정보가 벌써 100장 가까이 되는 양으로 불어났다.
“일단 미혼인 사람들···.”
신비농장 스토어와 사랑방 카페까지는 박준혁과 나 둘이서 두 사업장을 운영할만했다. 각자 하나씩 메인으로 맡으면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일을 나누면 되니까.
하지만 공장은 달랐다.
규모가 큰 만큼, 생산량은 그저 아르바이트생만으로 다룰 수 있는 류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쓰읍. 이 대리가 이런 데는 딱 적임자란 말이지.”
내 오른팔이자, 서 팀장 때문에 열이 받는다며, 스트레스를 식히려 최근 우리 마을에 방문했던 이 대리.
전 회사가 솔직히 중소 기업이었던 터라, 개개인의 능력치는 아주 출중했다.
왜냐? 중소기업은 매출이 그리 많지 않다. 적은 매출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회사가 가장 쉽게 선택 할 방법으로는 인력절감이 있다.
이 말인즉슨, 전 회사에서 내 팀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1대 다(多). 영업부터 마케팅/홍보, 유통까지 모두 아우르는 어벤져스라 말할 수 있었다.
“다들 미혼이긴 한데···. 이 시골에 오려고 할까···? 아, 오겠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루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걸어 서리태를 요청하는 이 대리만은 무조건 내려올 것 같았다.
“오케이.”
결정을 내린 내가 핸드폰을 들어 이 대리에게 전화를 걸려던 때였다.
-지이잉.
핸드폰에서 갑자기 진동 소리가 울리더니, [이 대리]라는 문구가 떴다.
“어. 나야, 이 대리.”
CCTV라고 달았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반갑게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이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팀장님! 저희한테 어떻게 그러실수가 있습니까?!]
아주 섭섭함이 덕지덕지 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