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리로 집결 (3)
[아니, 팀장님! 저희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귀청이 떨어질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나는 핸드폰을 멀찍이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팀장님···?”
한때 팀장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퇴사할 때는 과장으로 퇴사를 했었던 만큼, 팀장보다는 과장으로 불렸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팀장이라니. 궁금했다.
낮술 마신 건 아니겠지?
[아, 팀장님이 아니라 과장님! 서 팀장 욕을 하도 하다 보니 팀장이란 소리가 입에 붙어서···.]
“...”
팀장 욕을 하면서 팀장이라는 호칭을 쓰다니.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을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서 팀장에 관한 얘기를 할 거면 우선은 호칭부터 팀장과 연관되지 않는 단어 사용부터 하라는 조언을 해 줄 때였다.
[그보다 과장님! 아주 섭섭합니다! 말투도 너무 차가우신 거 아닙니까?]
이 대리는 너무 무뚝뚝한 게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사내놈에게 다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끊는다?”
[안됩니다!]
“그럼 본론. 서리태는 보낸 지 얼마 안됐으니까 이건 아닌 거 같고. 왜, 서팀장이 또 난리 쳐?”
[서 팀장이 지랄···. 크흠. 하는 건 매일! 매시! 매분! 매초! 입니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제가 전화 드린 이유는!]
전화를 끊는다는 말에 그제서야 흥분을 멈춘 이 대리는 서 팀장의 욕을 짧게 하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나는 핸드폰 음량을 최소로 줄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아니 어떻게 저희한테 말도 안 할 수 있으십니까? 제가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아시면서!]
“...?”
뭘 말하지 않았다는 걸까.
나는 이 대리의 말에 잠시 기억을 헤집었다.
내가 이 대리에게 말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아니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내가 이 대리에게 전달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적은 없다.
애초에 회사도 나온 마당에, 서리태 말고는 할 말도 별로 없었다. 그럼 도대체 무얼 노래를 불렀다는 말일까.
“아. 그거.”
노래를 불렀다고 할만한 것이 하나 떠올랐다.
[네. 그거요!]
이 대리는 어쩜 그걸 잊을 수가 있냐며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게 제자리 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연락하려고 핸드폰 들었는데 이 대리 전화가 온 거야. 그리고 뛰지 마. 거기 무너지면 어쩌려고. 그 건물이 이 대리보다 나이가 많을걸?”
[예에? 그건 빨리 말씀해 주셔야죠!]
나는 ‘이 나이에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목 졸린 킹콩 같은 목소리로 비명을 내지른 이 대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원래 흥분한 킹콩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어?”
[예? 어떻게 알긴요! 제가 일과 중 하나가 미화리 검색하는 거라는 걸 모르셨습니까?]
몰랐다. 그런 게 일과일 줄이야.
[...제가 요즘 바빠서 잠깐 검색을 못 한 사이에 이런 중요한 일이 진행되다니···. 팀장님, 저 가겠습니다.]
“어딜 가?”
[어디긴요! 사랑방 공장이죠! 저도, 생산직 하겠습니다!]
드디어 미친 걸까.
저 솥뚜껑 같은 손을 가지고 생산직을 하겠다니. 아니, 그보다 멀쩡한 회사에 다니는 주제에 갑자기 생산직은 웬 말인가.
“생산직 무시하는 건 아니지, 이 대리?”
[무시라뇨! 저 요리 잘합니다! 힘도 세고요! 식품공장이면 포대 옮길 것도 많을 텐데, 제가 다 하겠습니다!]
서울에 멀쩡한 직장을 두고 이곳에서 생산직 자리를 노린다는 이 대리의 말에 콧방귀를 뀌던 나는, 포대 자루를 옮긴다는 그의 말에 혹했다.
“그래···?”
식품공장이라고 하면 다들 별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식품공장처럼 잡다하게 힘든 곳이 없었다.
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제품의 원재료를 기계에 넣는 건 직원들의 몫이었다.
원재료 무게는 또 왜 그렇게 무거운지. 신입 시절 회사 공장에 갔다가 멋모르고 도와주겠다 나서다, 밀가루 포대를 하루종일 나르고 며칠 동안 뻗은 경험이 있는 만큼, 공장일의 힘듦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네! 뭐든 시켜만 주십쇼! 여기서 탈출만 할 수 있다면!]
‘탈출’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 대리는 필사적이었다.
하긴, 서 팀장같이 무능력한 주제에 실적은 전부 자신의 몫으로 챙기려고 하는 상사 밑에 있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해했다.
“여자친구는?”
하지만 회사 상사 때문에 잘살고 있는 도시를 박차고 이런 깡촌으로 내려오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괜찮습니다! 헤어졌습니다!]
“어···?”
지난번 이곳에 와 피부가 타면 여자친구에게 혼난다고 내 밀짚모자까지 뺏어가던 인간은 누구일까.
분명 그때도 여자친구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헤어졌다니.
[아니, 서 팀장 때문에 데이트를 몇 번 미뤘더니···.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제 잘못입니다.]
풀 죽은 목소리로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를 말하는 이 대리의 말에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익숙한 스토리 아닌가.
“혹시 출장도 갔었던 건 아니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서 팀장 혼자 보내기 불안하다고 위에서 한 명 따라가라는 바람에 제가 연속으로 서 팀장이랑 출장 갔다 왔습니다.]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불과 몇 개월 전의 나와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는 이 대리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 와라. 안 그래도 공장 건으로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참에 와서 좋은 공기도 쐬고, 서리태도 받아가.”
그때의 나는 어땠었나.
출장에 할머니 장례식에 서 팀장의 지랄까지. 정말이지 그때는 서울 생활이 모두다 지긋지긋했었다. 그러니 잠깐 자연이 좋은 곳으로 내려와서 리프레쉬 하는 것도 머리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짜입니까? 진짜 가도 되는거죠? 저 가면 취직시켜주시는 겁니다!]
“아니.”
[네? 왜요? 제가 포대 열심히 옮기겠습니다!]
왜냐니.
“포대 옮길 사람은 다 구했거든. 그리고 조건도 안 물어보고 오겠다는 사람은 영···. 내가 이 대리한테 퇴사는 어떻게 하는 거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아직 회사에 몸을 담았던 시절.
서 팀장 때문에 하루가 멀다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이 대리에게 말했던 것들이 있었다.
첫 번 쌔는 일을 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이는지 파악하기.
한 달에 한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을 한순간에 받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문제였다.
이미 씀씀이가 커졌는데, 언제까지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상 금수저가 아닌 이상 고민해 볼 필요가 없었다.
해서 나는, 퇴사를 외치는 이 대리에게 항상 회사에 다니는 상태에서 플랜B를 찾아보기를 조언했다.
‘플랜B가 확실히 결정되면, 그때부터 퇴사 준비를 해도 늦지 않으니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욱하는 마음에 무작정 사직서를 쓰고 회사를 나온다면, 퇴직자는 큰 확률로 후회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일을 계속하던 사람들은 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퇴사 후 집에서 편안하게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건 길어도 2주간에 질리기 마련.
회사를 그만둔 후 지원서를 돌리며 취업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해도, 퇴사한 순간 나태해지고, 나태함을 깨달은 후에는 꼭 취직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에 눈을 낮추게 된다.
이직은 좀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데 의미가 있다.
기껏 익숙한 곳을 떠나는 탈출을 감행했는데, 탈출한 곳이 이전보다 별로라면, 탈출한 보람이 없지 않겠나.
그러니, 나는 아무리 내가 이 대리를 적임자라 생각했었다 한들, 충동적인 입사 선언은 받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 충고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시골에 살고 싶기도 했고, 새로운 회사 창립 멤버로 들어가면 나중에 주식도 받을 수 있다면서요? 저도 한번 그 성공 신화의 멤버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 플랜B는 과장님입니다!]
“주식?”
[네. 그렇습니다!]
창립멤버가 돼서 나중에 주식을 받겠다니. 포부가 대단했다. 그 정도 각오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이 대리가 언급한 생산직 직원들은 모두 뽑은 상태.
“그럼 와라. 근데 생산직도 아무나 못 해. 특히 이 대리 같은 곰손은 더더욱.”
[생산직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여기만 벗어날 수 있다면요!]
정말 어떤 직책이든 상관없다고 하는 걸 보니 진심으로 그곳에서 나오고 싶은 모양. 하지만 생산 공장에 갔다만 하면 사고를 쳐댔던 이 대리에게 생산직을 승낙할 수는 없었다.
“잘 하는 게 따로 있는데 생산직은 무슨. 세일즈마케팅 팀장 시켜 줄테니까 생산 공장에는 얼씬할 생각도 하지 말고 우리 사랑방 한과 홍보나 맡아.”
[네? 티, 팀장이요? 네! 당장 가겠습니다!]
서 팀장이 영수증을 매번 이 대리에게 맡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타고난 사교성 덕분에 모든 바이어들과 친하기때문. PB(Private Brand)도 하지만, PB보다는 OEM 매출이 훨씬 컸기에, 인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회사에서는 바이어들과 친하게 지내는 이 대리에게 그 직급에서는 이례적으로 법인카드를 쥐여줄 정도였다. 대리 직책에 법인카드를 받는 건 꽤나 드문 일이었지만, 직원들도 납득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왜 이 대리한테는 법인카드를 주면서 저는 안줍니까!’
바로 이 대리가 법인카드를 받았을 때는 같은 대리 직급이었던, 서 팀장.
일 잘하고 있는 사람이 받은 법인카드를 두고는 불공평하다느니, 차별이라느니 난리를 치더니.
본인은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러고는 승진한 뒤부터 같이 일했던 직원들에게 군림하기 시작하기 했으니, 감히 내로남불의 최고봉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래도 나올 때 나처럼 바로 나오지 말고.”
나야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고, 다시는 회사에 다니지 않을 작정으로 질렀던 거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업계는 좁고, 사람들의 입은 가볍다.
“깔끔하게 나올 수 있는 거, 괜히 안 좋은 소리 들을 필요 없어.”
골탕 먹이겠답시고 깽판을 치고 나와봤자, 사장의 아들인 서 팀장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같이 일하던 동료 직원들만 죽어 나갈 뿐이지.
[역시···. 그래야 하는 건가요···.]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근데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다 같이 같은 날에 그만두는 정도면···. 빅엿은 몰라도, 그냥 엿은 줄 수 있겠지.”
**
디밍 조명만 흐릿하게 밝혀진 복도.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정도의 조명이 있는 곳에서 한 남자가 핸드폰을 양손으로 잡고 연신 고개를 숙여대고 있었다.
“네!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곧 뵙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인사해대는 남자는 바로 한울과 통화 중인 이 대리.
서 팀장의 괴롭힘 탓에 요즈음 미화리 카페를 확인하지 못했던 그는, 오랜만에 들어간 카페에서 카페 사랑방의 공장이 생기고, 직원 모집까지 한다는 글을 보고는 바로 사무실에서 복도로 튀어와 영원한 자신의 상사이자, 이제는 제 머리카락의 수호신이신 김한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릭.
“예쓰!”
상대방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핸드폰을 귀에서 떼놓지 않던 이 대리는, 한울이 전화를 끊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고 작은 소리로 승리의 한호성을 냈다. 아무도 없긴 하지만 1층부터 쭉 이어진 복도라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였다.
“후. 드디어 탈출이다!”
격렬한 몸짓을 끝낸 이 대리는 숨을 골랐다.
누구보다 능력 있고, 항상 최전선에서 팀원들에게 날아오는 서 팀장의 지랄을 든든하게 막아주던 수호신님이 이 구질구질한 현세를 떠나고 난 뒤 얼마나 삶이 피폐해졌던가.
이곳에 자신만을 두고 간 수호신님을 잠시 원망한 순간도 있었지만, 역시 신은 달랐다.
“믿습니다!”
이 대리는 현세를 떠나고 나서도 억울함에 고통받는 자신을 버리지 않은 한울에게 믿음을 표했다.
“전부 다 같은 날 관두면 엿을 먹인다고 하셨지···.”
믿을 수 있는 과장님에서 수호신의 위치까지 오른 한울의 말은 있으시나 다름없었다.
신의 계시를 곱씹은 이 대리는 더없이 활활 타오르는 눈을 한 채 말했다.
“그래. 어디한번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