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2)
강 할머니의 선창에 마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미화리 주민들?”
“사람?”
“뭔데?”
아직 구호는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
“뭐긴 뭐야. 내가 ‘우리는!’ 하면, ‘장 이장 응원단!’ 하면 되지. 크흠.”
강 할머니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돌렸다.
“자자,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 이장인 장순택이! 드디어! 결승에 진출해서다!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한다?”
“응원해야 한다!”
“우와아아!”
그렇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결승에 진출한 장 이장님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이야. 그러믄 드디어 우리도 연예인 볼 수 있는기가?”
“그렇지!”
“아이고 좋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제보다 잿밥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오늘 모인 메인 목적은 응원이었다.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냐?”
“왜긴? 내가 파이널에 누가 나올지 다 알려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언제···? 아.”
사랑방이나 출몰하지, 마을회관에는 외할머니를 픽업 할 때를 제외하고는 출몰하지 않는 구름떡집 사장이 웬일로 왔나 했더니.
“그래서 너도 간다고?”
“당연하지. 짜잔! 할머니가 나 이것도 줬다.”
“뭔데? 야!”
훌렁.
이야기를 하다말고 후드티를 훌렁 벗어버리는 지민의 행태에 서둘러 뒤로 돌았다.
도대체가, 몇 살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마 지금이 빨가벗고 깨발랄하게 온 천지를 뛰어다니던 코찔찔이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얼른 다시 입어라.”
나는 이를 악물며 조용히 말했다.
어릴 때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지금 이 나이에···.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
톡톡.
“...뭔데?”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푸흐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돌아봐라.”
음흉한 웃음소리에 더욱 돌아보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웃을 때마다 매번 사고 친 건 기억하지?”
그건 바로 저런 웃음 후에 ‘무조건’이라고 말할 만큼 생겼던 사고들 때문.
‘한울아! 개미 먹으면 힘세진대! 먹어봐!’
‘으악! 혀 물렸어!’
‘그걸 믿냐? 푸흐흐.’
내지는.
‘내가 TV에서 봤는데! 불붙이고 휴지로 막 덮으면 꺼진대! 신기하지? 해보자!’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야! 넌 남자가 겁이 그렇게 많아서 어떡하냐? 이것 봐봐. 이렇게 불을 붙이면···. 흐흐흐. 잘 타지? 그러면 여기서 휴지를···. 으악!’
뭐, 이런 것들.
전자는 피해자가 나 혼자로 끝났었지만, 후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를 들고 쫓아왔던 큰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손에 닿는 것마다 고장 내기, 주택 옥상에서 슈퍼맨이 될 거라며 뛰어내리기 시도, 등등. 지민이 어릴 적 친 사고는 3박 4일을 얘기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 믿으라고?
“안 속아. 인마.”
“아니라니까!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러니. 그저, 난 할머니가 입고 오라는 단체 티를 안에 입고 왔을 뿐이란다?”
“...?”
분명 발끈 한 거 같았는데. 뜬금없이 목소리를 사근사근하게 바꾸는 지민의 행동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 말투, 뭐냐?”
“호.호.호. 내 말투가 어때서?”
이제는 이를 악물면서까지 이상한 말투를 유지하려고 한다.
“아니, 왜 그러는, 아···.”
우리 마을에서 지민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코흘리개 때부터 이곳에 올 때마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모를 리가.
평소와 너무 다른 지민의 말투에 의아한 나는, 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리다 그 이유를 알아냈다.
풋.
지민이 소름 돋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웃지므르.”
이유는 바로 박준혁.
“야, 그게 먹힐 거라 생각하냐?”
“조용흐르그.”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자신을 놀리는 내 모습에 지민은 이를 꽉 깨물었지만, 나는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진한 비웃음을 입에 걸치며 외쳤다.
“준혁아 이제 왔니? 이쪽.”
그리고 눈으로 말했다.
‘잘해라. 알지? 아직은 내가 더 친하다.’
**
“.,.그래서, 옷은 어떻게 할까?”
“이미 만든 거 있으니까 재활용하면 된다!”
“그건 복댕이 꺼 아니가?”
“복댕이가 장 이장이지! 복댕이 덕분에 어? 인터넷에도 유명해지고! 어? TV에도 나오고! 어? 노래도 부르고! 어? 그래서 스카웃 됐는데! 어? 이 정도면 장 이장은 복댕이를 업어 다녀야 된다! 이 티샤스가! 장 이장한테는 부적이라니까! 맞나 안 맞나?”
“....생각해 보니까 맞네.”
강 할머니의 열변에, ‘핑크색은 싫어요.’를 외치려 목을 빼던 심 할아버지가 몸을 움츠렸다.
“옷이 뜯어지지 않는 이상, 계속 그걸로 입는다! 다들 잘 가지고 있제?”
유일하게 ‘핑크 반대!’를 외치는 심 할아버지를 가뿐히 제압한 강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어. 있제?”
“그, 어딘가에 있을 거다. 내가 장롱 어디에 넣어뒀더라···.”
“할머니! 전 입고 왔어요!”
부리부리한 강 할머니와 눈을 마주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피했지만, 지민은 손을 번쩍 들었다.
“오! 잘했다!”
지민의 핑크색 상의를 확인한 강 할머니가 손뼉을 치더니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로지 장난칠 생각으로 이 더운 날에 상의를 두 개나 입은 지민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저렇게 좋아하시니 뭐···.
“그럼 없는 사람은 어떻게···?”
강 할머니와 지민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까 약과를 나누어준, 정옥순 할머니였다.
“글네! 어차피 새로운 사람 옷도 만들어야 되네! 하기사. 전부 분홍색만 짜달 있으면 이상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새로운 옷을 맞추는 건 어떻노? 내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어델! 내가 여유분이 조금 있다. 그걸로 하면 된다. 앉아라.”
“...”
심 할아버지 추가 1패.
핑크색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에 벌떡 일어났던 할아버지가 강 할머니의 명령에 스르륵 몸을 낮추려 하자.
“근데 분홍색이 이상하다고?”
강 할머니가 질문했다.
“어! 이상하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제? 멀리서 보면 모여있는 돼지 같다! 돼지!”
“...”
심 할아버지 승!
핑크색 돼지들이 몰려있는 것 같다는 할아버지의 주장에 강 할머니는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원래 이 단체복은, 복댕이를 생각하고 만든 것이니까.
“재방송 나올 때마다 을매나 깜짝깜짝 놀래는데! 그 인기 많은 방송에서도 돼지로 나오긴 싫다!”
“...그래도 통일성을 주려면···.”
“그럼 검은색 어떻노! 다들 검은색은 있으니까! 검은색!”
“그럼 껌껌해서 무대에서 못 본다!”
과연 돼지가 될 것인가. 눈에 띄지 않는 응원을 할 것인가.
“그래도 돼지보다 낫다! 어차피 조명 때문에 안보인다 카드라!”
“응원하러 가는데 응원이 안 보이면 어쩌노! 그럴 바엔 돼지가 더 낫다!”
강 할머니와 심 할아버지의 주장은 팽팽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중이었다.
“어?”
핑크와 블랙. 정반대 의견 대립을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에서 두 분 모두를 만족하게 할 방법이 떠올랐다.
“와그라노?”
“두 분 의견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응원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그게 뭔데? 말해봐라!”
“그게 말이죠···. 잠시만요. 보여드릴게요”
관심을 보이는 두 분께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거 좋네! 좋다! 아주 좋다! 내도 찬성!”
내 의견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제 응원 준비는 끝났다.
방송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꿈.
혹은 장래 희망.
어린이들은 쉽게 대답하지만, 어른들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쉽지만, 대부분에겐 어려운 일.
꿈을 이루는 일.
“으아아! 떨려! 떨린다고!”
“너두? 어! 나두!”
“...언제쩍 드립을. 형님은, 안 떨리세요?”
“...어? 내는, 마. 괜찮은 것 같다.”
“역시! 연륜!”
“나도 지금만큼은 이장님이 되고 싶다!”
“헐. 그럼 평소에는 아닌 거? 이거 완전 돌려 까기 아니야. 피디님! 여기- 읍···.”
“하하하. 조크입니다. 조크.”
소란스러운 백스테이지.
상금 5억이 걸린 트로트 오디션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들이 모인 이곳은, 긴장감을 떨쳐내려는 참가자들로 인해 장날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아무리 옆에서 목을 푼답시고 킁킁거려도, 목청을 테스트하겠다며 소리를 질러도. 오늘만큼은 모두가 이해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인데, 이런들 저런들 어쩌리.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할 무렵.
“여러분! 주목!”
“넵!”
오디션 기간 동안 줄기차게 참가자들을 불러냈던 PD의 등장에, 시장통이 순식간에 독서실로 바뀌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에이 뭘요!”
“와 이렇게 작별 인사 하시는 건가요···. 저는, 피디님 계속 보고 싶습니다!”
“피디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우, 악마의 편집을 밥 먹듯이 하는 제작진 때문에 대부분 제작진이란 말 대신, ‘방송국 놈들’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예능 같은 곳에선 베테랑 출연자가 짓궂은 제작진들에게 장난스러운 어투로 쓰지만, 오디션 참가자들은 달랐다.
이를 갈면서.
저주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망친 제작진이 어떻게든 벌을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원한을 담아.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가 되겠네요.”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으윽.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PD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소리가 나오니까 실감 나는 것 같아···.”
“야, 너 괜찮냐? 심장 소리가 박에서 들리는 것 같아!”
“...그거 네 심장 소리야.”
참가자들은 PD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으로 반응했다.
이제 이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얼굴을 TV에 내 보내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이 천사 같은 제작진들과 헤어지는 것에 크나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 전부 하고 가야지. 난 여기서 처음으로 메이크업 받아봤잖아.”
“난 의상 챙겨주는 데서 감동.”
“난 카메라 감독님···.”
“난 음향 감독님···.”
마지막 라운드까지 올라온 참가들 대부분은 현역 가수들이었다.
영세한 소속사에 소속되어 모든 이벤트를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쉽게 말해, 무명 가수들.
무명(無名).
인기의 척도가 바로 존재의 가치가 되는 연예계에서, 이름 없는 가수는 서러워도 서럽다 말할 수 없었다.
소속사는 있지만,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고. 매니저는 있지만, 이름뿐이었다.
스케줄 장소까지 차를 운전해 가는 것도 무명 가수의 몫. 행사장에 가기 전, 의상을 고르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도 무명 가수 본인.
스케줄이 잡히면 새벽부터 매니저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의 샵에 데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성하는, 이름있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서 가슴 한켠에 그 작은 서러움들이 켜켜이 쌓여 항상 어딘가 모르게 주눅 들어있는 이들이 바로 무명 가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감독님! 저 오늘도 멋있게 찍어 주십쇼!”
“저는 무조건 잘생기게! 잘생긴 게 최고야! 짜릿해!”
주눅이라곤 없는 밝은 얼굴로 PD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외치는 참가자들 모두가 무명 가수.
“네네. 언제나처럼, 원하시는 대로 전부 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자! 오늘도 선착순! 먼저 하시는 분께 반사판 원하는 만큼 대드림.”
“저욧!!!”
“나 말리지마, 나 오늘 얼굴 없애버릴 거야. 후광을 아주 그냥···. 피디님! 제가 하겠습니다!”
제작진들과의 대화라면 긴장부터 하던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네. 홍경우 님까지. 반사판 무제한! 무제한이라고는 하지만, 5개밖에 없는 거 알죠? 더 해 달라 그러면···.”
“그러면···?”
“제가 포토샵 해 드립니다!”
으하하!
참가자들은 PD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박장대소했다.
자신을 보며 배를 잡고 웃는 참가자들을 보는 PD의 눈 또한 한껏 반달로 휘어져 있었다.
“장 이장님은 정말 안 필요하세요?”
말만 선착순이라고 하고, 마지막인 만큼 모두에게 같은 혜택을 주려던 피디는, 환호성을 지르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홀로 고요한 장순택에게 물었다.
“괜찮심더.”
걱정과 달리, 미소지으며 괜찮다고 하는 최고령 참가자의 모습에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긴장되어 보였지만, 이 모습은 익숙했다. 긴장하다가도 무대에만 올라서면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걸 몇 번이나 봐왔으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시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