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3)
같은 시각.
미화리 산골 마을 응원단은 촬영장에 도착했다.
-두둥.
-아아. 마이크 테스트.
-9번 마이크 확인해 주세요!
-그거 고정 잘해! 떨어지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심사위원분들 준비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체크해! 스탠바이 40분 전!
“우와···. 이런 별천지는 내 처음 와본다.”
“내 환갑 때 애들이 뉴질랜드 데꼬 가서 어떤 동굴을 갔었거든? 껌껌한데, 반딧불이가 파랗게 빛나는 동굴.”
“어. 니가 3박 4일을 사진 들이밀면서 자랑한 데.”
“3박 4일이 뭐꼬. 몇 년을 했는데.”
“내가 그렇게 많이 했나? 크흠. 암튼, 거기가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촥하고 은하수 같이 펼쳐지는데, 그때 내가 진짜 이런 광경이 세상천지 또 어딨겠노? 했거든?”
“여있네.”
“어. 여 있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지정된 자리에 앉는 마을 사람들의 고개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야. 장난 아니다.”
지민의 고개도 돌아갔다.
“오···.”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
산골 마을 주민들은 그렇다 치러라도, 너희가 왜?
입을 벌리고 ‘우와 우와’를 연발하고 있는 지민은 알아주는 대기업을 다니던 재원이었고. 아무런 말 없이 눈을 크게 뜬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박준혁도 한국에서 제일가는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다.
“와. 대박.”
“처음으로 생각이 통했군요.”
“어머, 진짜?”
하.
‘어머 진짜.’ 라니.
통했다는 한마디에 문어인지 오징어인지 모를 생물에 빙의한 듯, 지민은 몸을 배배 꼬았다.
“야. 이한울, 너는 안 놀란다?”
그러더니 돌연 고개를 돌려서 내게 시비를 건다.
“...”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이는 거 아니냐. 친구야.
나를 이용해 빨개진 얼굴을 가라앉히려 필사적인 친구의 모습에 내 표정은 짜게 식었다.
“전 회사에서 직원에게 준 혜택들을 생각해보지 않으련?”
그래도 어쩌겠냐.
저 연애 고자가 SOS를 보내는데,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지.
뭐가 문제인지. 뭐든 곧잘 하는 주제에 연애만큼은 젬병이었다.
“회사? 전 회사? 회사는 왜? 회사가 준 혜택이 있어?”
전 회사 얘기를 꺼내자마자 꼬리 물린 치와와처럼 파드득거린다.
“...뭐, 뮤지컬 티켓 이라던가, 문화생활 혜택 같은 것들.”
조금 큰 회사라면,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티켓들이 있다.
작은 회사에선 그 티켓들을 직원들의 사기충천을 위해 쓴다. ‘실적 1위! 뮤지컬 티켓 준다!’ 같은 말을 하며.
어디까지나 작은 회사이자,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사장이 있는 곳에 한한 얘기다. 사장이 아니면, 사장 가족이거나.
“뮤지컬 티켓?”
“어. 뮤지컬 티켓이라던지, 콘서트 티켓이라던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대기업으로 가면 급이 달라진다.
협찬사에서 오는 티켓들은 남아돌고, 직원들을 위한 할인 혜택들을 여기저기 깔아놓는다.
워라벨을 추구하고, 다른 회사는 생각지도 못하게. 통신사 할인보다 훨씬 더 큰 혜택들을 주는 게 보통.
“아니? 그런 거 없었는데!”
“메일이나, 사내 인트라넷에 가보면···.”
“메일···? 아, 그러고 보니 분기마다 뮤지컬 티켓 신청하라고 하는 메일 받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거기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어! 일이 바빠죽겠는데!”
“...”
“나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팀장 발에 무좀! 팀장 발에 무좀!”
하지만 지민의 회사는 아니었던 모양.
무엇보다 회사보다 팀장이 아주 큰 잘못을 한 건 분명해 보였다.
“...”
부끄러워하던 게 언제였냐는 듯, 회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폭주하는 지민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예?”
지민도 저 모양인데, 박준혁이라고 더 나을 리는 없지.
준혁의 맹한 표정을 보자니, 안쓰러움만 생겼다.
“아니야. 아무것도. 내가 복지 신경 쓸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셋 다 일에만 치여서 살았을까.
“저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대학원에서 얼마나 굴렸길래, 조그마한 배려에도 이렇게 기뻐한다.
“그래. 고맙다.”
“근데 형님은 이런데 많이 와보셨나 봅니다?”
“그래 보이냐?”
“넵! 역시, 능력자라서···!”
맹한 표정이라 몰랐는데, 지민과 하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글쎄.”
능력자라, 회사에서 문화생활을 챙겨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루하루 다른 직원의 실적을 제 실적을 만 만들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리가.
만약 그런 혜택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부 팀장 선에서 잘렸으면 잘렸지, 밑에 직원에게 내려오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럼요?”
“그냥, 일 때문에.”
“일을 이런 곳에서···! 역시! 멋집니다! 형님!”
여느 중소기업이 그렇듯, (전)팀장 직책을 가진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 많은 일 중에 광고 촬영 도우미 역할도 있어 이런 번쩍거리는 세트장을 몇 번 가봤던 게 다였다.
“멋있기는. 다 구경했으면, 앞에서 대형 다시 체크해 보자.”
“넵!”
지금까지 다녔던 광고 촬영장보다 훨씬 큰 규모였지만, 그래도 몇 번 촬영장을 가봤다고, 별 감흥이 없다.
그보다는 조금 있으면 등장할 오늘의 주인공, 장 이장님을 위한 응원을 점검하는 게 먼저다.
마을에서 많이 연습했다지만, 달라진 환경에서는 흥분으로 인한 실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음마! 저기 봐라! 우리 전성 오빠 있다!!”
“오메오메오메!”
아니, 실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어르신들! 잠깐만 주목해 주세요!”
“사진! 사진! 내 핸드폰 어데 갔노?”
“찍으면 안 된다고 봉인 당했잖나!”
“어, 어르신들···!”
이번 응원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박준혁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보려 했지만, 장렬히 실패했다.
“혀, 형님···.”
가뜩이나 주변이 소란스러운 데다, 꿈에 그리던 연예인을 보느라 바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주 강렬한, 무조건 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런 것.
가령···.
“아야! 아으···.”
아픈 척 같은.
“에···?”
“뭐꼬? 누꼬? 누가 다쳤노?”
“오메. 한울아! 괜찮나?”
“야야. 한울이 다쳤나 보다!”
“어디가 아프노!”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 발목을 잡아채는 내 모습에 박준혁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 걸 확인한 나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습 한번 가볼까요?”
우리 응원이 조금 어려워서 말입니다.
**
한울의 엄살로 응원 연습이 한창일 무렵.
“후···.”
PD가 사라진 걸 확인한 장순택은 대기실 구석에서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에겐 평생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10번도 아니고, 3번밖에 안 되는 횟수가 참 야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 깊숙이 있는 얄팍한 인내심을 긁어모아 조금은 버틸만한 여력이 생기지 않을까.
나쁜 것을 다 꺼내어 썼으니, 기회를 잡기만 한다면, 이제 내 인생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할 테니.
“하하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것도 맛있네!”
“어? 진짜? 그럼 나도···. 우엑! 이게 뭐가 맛있어!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하하하! 이 사람이 하는 소리는 조크입니다. 조크!”
“뭐라는···. 아이쿠! 이걸, 들.켰.네? 하.하.하···! 뭐야? 카메라 꺼졌잖아!”
“그걸 속냐? 크하하하!”
“미쳤구만.”
PPL을 위해 준비해둔 영양제를 물도 없이 씹어 먹고는 맛있다고 함박 웃는 사람이나, 그 모습에 속아 따라 먹고는 얼굴을 찡그리다 카메라를 발견하곤 억지로 미소를 그려내는 사람이나, 둘의 모습을 보고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사람 모두.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몇 없는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잡은 것일지도.
“...”
장순택은 생기가 넘치는 젊은 참가자들을 보다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쪼글쪼글한 손.
손을 보고 있자니, 제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덜덜 떨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던 기억. 하지만 익숙한 피디와 친절한 젊은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어쩌면 내 기회는 여기까지가 아닐까.
기회라는 놈의 생김새는 희한하다고 했다.
뭐라더라,
앞머리는 길쭉한데, 뒷머리는 휑하니 빈 대머리라던가.
발에도 날개가 달려있어, 한번 놓치면 절대로 잡을 수 없게 영영 달아나 버린다고 했다.
그래도 앞머리가 길어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잡아챌 수 있다고.
“내는 벌써 다 잡아챈 거 같은데···.”
장순택은 펼쳤던 손을 오므리며 중얼거렸다.
여태 산 세월이 얼마인가.
벌써 장성한 자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오는 나이가 돼버렸는데. 이 세월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었나.
인간의 생에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미 다 잡은 것과 다름없다.
첫째는 평생 사랑할 반려인 꽃분이를 만난 것이고.
둘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던 것이였으며.
셋째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이장이 된 것이었다.
“다 내가 기회를 잘 잡아서지.”
저게 어떻게 인생의 기회라고 물을진 몰라도, 장순택에겐 하나하나가 온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것들이었다.
세상에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한 이가 얼마며.
낳고자 해도, 간절히 원함에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부가 몇인가.
마을 이장은, 나라로 따지면 대통령이나 진배없었다.
밖에서 보기엔 아주 작은 산골 마을 이장이 얼마나 높은 직책이길래 그러냐고 핀잔 줄 수도 있지만, 모두 치열하게 준비해서 한 결과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들을 어떻게 인생의 기회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하지만 지금은 무엇인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눈을 떠 보니 이곳에 서 있다.
찬란한 꿈의 무대.
많은 젊은이가 바라고 바라던 무대.
그곳을 앞두고 있었다.
“크흐흐흠! 크흠! 켁! 물! 하핫! 연습을 너뭇! 열심히! 했나! 켁!”
소란스러운 곳으로 눈을 돌리니, 목을 붙잡고 캑캑거리면서도, 미소 짓는 젊은이가 보였다.
“여기! 살살해 살살. 무대 올라가기 전에 못 쉬겠다.”
미련하다면서도 얼른 물을 찾아 건네주는 젊은이.
“하하하! 마지막까지 화이팅!”
그런 모습들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힘을 복둗는 참가자 등등.
한 명, 한 명 모두가 반짝였다.
“이장님! 왜 그러고 계세요!”
구석에서 가만히 대기실 안을 보고 있는 장순택의 곁으로 발랄한 목소리의 젊은이가 다가왔다.
“왜긴 왜야. 명상 몰라? 명상? 자자. 이장님 방해하지 말고 일로와. 이장님, 마지막까지 화이팅! 오늘도 감동적인 노래 부탁드립니다! 최고최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구름에 붕붕 떠 있는 것 같은 홍경우를 데려가며 양재성이 얼굴을 찡긋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어어. 고맙다.”
장순택은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려 답했다.
이곳에 출연하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홍경우.
이번 오디션에 목숨을 걸었다는 양재성.
이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이곳까지 올라왔는지.
얼마나 큰 꿈과 기대를 하고 이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는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그리고 이 기회를 잡은 뒤 이들의 미래는 얼마나 더 찬란해질지.
“아-아아아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목을 푸는 저쪽의 젊은이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손을 모아쥐고 기도하고 있는 젊은이도.
“쓰읍.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양재성에게 끌려가면서도 이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홍경우도.
여기 있는 누구 하나 이곳에 오기 위해, 이름있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자신만 제외하고.
“관객들 입장합니다! 생방 30분 전!”
“으아악!”
“아아악! 전지전능하신 손을 가지신 메이크업 아티스트느님! 제 얼굴 좀 한 번 더 터치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저! 차윤우로 부탁드립니다!”
“가사, 가사. 가사 틀리면 안 돼! 그러니까, 첫 번째 단어가 뭐였지···?”
스탠바이 콜이 떨어진 대기실은 카오스가 따로 없었다.
조금 전이 시장 바닥이었다면, 지금은 혼돈의 카오스랄까.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최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
한 사람만 빼고.